------개시곡---
6월의 력서장도 이제 몇장 남지 않았네요. 바야흐로 장마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미리 대비하여 장마피해를 줄이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밤을 함께 합니다>> 윤련월 인사드립니다.
오늘 밤에는요 생명이 경각에 달린 첫 련인이 페암으로 시한부생명을 살고 있으면서 죽기전에 한번 만나고 싶다하여 고민하고 있는 한 녀인의 사연입니다.
방송사연 들으시고 하실 말씀 있으신 분들은 생방송실전화 2561111번에 전화 주시길 바랍니다.
----간주곡----
저는 올해 50대 중반의 가정주부입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너무나 리기적인가요?
저는 본의아니게 첫사랑을 꽃피우지 못하고 중매로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여 남매를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강한 성격을 가진 저는 남편의 적은 로임을 가지고 남매를 키우기 힘들어서 닥치는대로 막일을 다하였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 아들딸을 다 대학교에 보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아들과 딸은 연해지역에 가서 다 자기 적성에 맞는 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남편하고 이런 저런 일로 많이 싸우면서 살아왔지만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고 건강하게 자라주어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어느날 저는 시장에 갔다가 우연하게 초중시절의 동창인 친구를 만났습니다. 한마을에서 살았고 또 어릴적 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에 시집온후 30여년만에 처음 만난것 같습니다. 아들딸이 다 외지에 있고 남편하고 둘이서 사는 저는 친구를 만나니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왔습니다. 그날 저는 동창의 손을 잡아 끌고 우리 집에 왔습니다. 남편이 있으면 어렵다는것을 남편이 어느 회사밤당직을 서니 저녁에 집에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둘은 옛시절의 추억속에 푹 빠져 날새는줄 몰랐습니다.
<< 부모님은 잘계시니? 그때 너네 집에 가면 어머니가 얼마나 반겨주었는지 모른다. 우리들이 놀러 가면 시렁에 두었던 엿을 꺼내 깨서는 손에 꼭 쥐여주군 하였지? 정말 인자하신 분이였어…>>
<<응. 부모님들은 다 돌아가시고. 지금 오빠가 고향을 지키고 있단다. 그렇지, 우리 어머니도 너를 많이 외우셨어. 착하고 똑똑하다고. 은근히 며느리로 삼고 싶어했었단다.>>
그러고 보니 친구오빠와 련애하던 옛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친구의 오빠는 저의 첫사랑이였습니다.
<<그래 나도 잘 알고 있지. 너네 오빠는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니? >>
저는 첫사랑 그 남자의 가정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오빤 참 불쌍한 사람이야. 너하고 련애하다 갈라진후 안해를 얻었는데 연분이 아닌지 행복하게 살지 못했어. 남자애 둘 낳아 놓고 티각태각하며 살다가 몇해전에 올케가 병으로 사망했어. 그후 오빠는 재혼하라는 친척들의 권고도 마다하고 홀로 살고 있단다. 지금 농촌에는 홀애비들도 많고 로총각들도 많단다. 녀자들은 다 어디에 갔는지 찾아보기 힘들구. 다행히 애들이 건강하게 자라 지금 다 외국에 나가 돈벌고 있단다 >>
<<응 그래? 참 안됐구나. 나 고향에 친정부모들이 안계시지 하여 시집간후 고향에 자주 가보지 못했어. 더우기 네 오빠가 살고 있으니 혹 가게 되면 마주칠가바 일부러 안갔단다. 정말 오랜 세월이 흘렀구나.>>
<<그래 우리도 학교를 졸업한지 30년이 넘는구나? >>
동창생 오빠는 우리 마을에서 멋진 총각으로 소문난 사람이였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는 항상 든든한 뒤심이 되여주군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는 5키로메터 잘되였습니다. 여름에는 날이 길어 8시까지도 날이 훤한데 겨울에는 금방 날이 어두워져 집에 돌아 가려면 무서웠습니다. 그때면 친구오빠는 동생을 마중한다며 학교에 찾아 오군했습니다. 친구오빠의 보호를 받으며 친구하고 떠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즐겁기만 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자주 있게 되면서 저는 친구오빠한테 호감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성에게서 느낀 첫정이였나봅니다. 그후 저와 친구오빠는 련애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모들의 강력한 반대로 우리 혼인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중매로 도시에 있는 한 로동자한테 시집가고 말았습니다.
<<오빠가 전번날에 우리들이 찍은 사진을 보고 너를 외우더라. 지금 잘 살고 있는지 하면서 한참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더라>>
동창생의 말에 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제가 친구오빠하고 련애를 그만두고 중매로 시내남자한테 시집간다는 소리를 듣고 친구오빠는 많이 실망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시집가기 며칠전에는 절 만나서 신신당부하는것이였습니다.
<<도시에 시집가서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라 >>
한마디하고 돌아서서 가던 오빠의 뒤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습니다. 저도 이루지 못한 우리들의 첫사랑을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도 애들을 다 키웠으니 여가가 많겠는데 한번 고향에 가보렴.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가고 외국에 돈벌이 가서 우리 자랄 때보다 고향마을이 많이 스산해졌어. 하지만 고향이고 오빠가 있으니 나는 가끔 가본단다 >>
저는 시집와서 한두번 고향에 가보고는 여직껏 가본적이 없습니다. 저의 첫사랑이 있는 곳이여서 가보고 싶었지만 남편이 저의 련애사를 알고 있기에 고향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친구와 갈라져 여러 달후에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의 오빠가 페암말기란다. 내가 오빠한테 너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죽기전에 한번 보고 싶다고 한다. 올수만 있으면 한번 와 줄수 없겠니?>>
친구의 애원에 찬 부탁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망설이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저의 처녀시절에 있었던 련애사때문에 남편한테서 수없이 많은 곤욕을 치렀습니다. 근데 제가 30여년전의 첫련인을 찾아가면 남편이 용서할것 같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항상 저를 의심하면서 박대하고 그랬는데 이 일로 인해 제 후반생이 더 불행질가봐 주저심이 들었습니다.
하여 저는 연해지역에 가 있는 딸애한테 전화로 이 딱한 사정을 말했습니다. 딸애는 어머니선택을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첫사랑 옛 련인을 만나본것을 아버지가 알면 아버지는 엄청 어머니를 못살게 굴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도 딸애와 같은 생각이여서 주저되기도 하지만 이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의 마지막부탁을 못 들어준다는것이 가책되기도 합니다.
하여 저는 된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남편한테 한마디 여쭈었습니다.
<<여보! 한가지 의논할게 있어서 그래요. 당신 듣고 성내지 말고 당신의 의향을 말해줄래요?>>
<<무슨 말인지 하오.>>
잔정이 없이 무뚝뚝한 남편은 제 말을 재촉했습니다.
<<몇달전에 저의 집에 왔던 동창생 순이가 말이얘요. 그친구오빠가요. 지금 페암말기래요. 살아생전에 절 한번 보고 싶다는데 병문안가도 될가요?>>
남편은 내 말을 듣기 바쁘게 거절의사를 밝혔습니다.
<<가지마오. 당신이 처녀때 련애했던 그 남자 때문에 결혼해서 내가 얼마나 기분이 잡쳤는지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소. 근데 내가 미워하는 그 남자한테 병문안을 가겠다니 그게 될 말이요?>>
<<우리 이제 중년나이를 훨씬 넘어가는데 지난 과거사를 잊을 때도 되지 않았나요? 저 딱 한번 병문안 가볼게요. 그렇게 딱 한번 저를 보고 싶다는데 안갔다가 그 사람이 죽은 후에 후회할가바 그래요. 딸애도 아빠가 동의하면 가보라하던데요>>
<<난 절대 동의안하니 그렇게 아오. 당신이 30년 나하고 살면서 마음속으로 당신의 첫사랑인지 하는 그 사람을 그리며 살아왔다는것을 내 다아오. 그러니 절대 안되오.>>
제가 시집오면서 하나 실수한것이 있습니다. 첫사랑을 나누며 서로 주고 받았던 련애편지를 몰래 가지고 온것이 그만 남편한테 들키고 만것입니다. 그 련애편지사건이후부터 저는 오래동안 남편의 박대를 받고 고향에는 발길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저와 다툴때면 련애편지를 거들면서 저를 닥달했는데 그것이 점점 심해지면서 의처증 증상까지 보였습니다. 날마다 제가 어디 다니나 따지고 묻기가 일수였습니다. 그런 남편의 고집을 제 힘으로는 꺽을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동창생한테 전화로 말했습니다. 남편이 너무 강력하게 반대해서 갈것 같지 못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동창생은 매우 실망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외롭게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 오빠의 소원을 못들어주는 저한테 고까운 마음을 가지는것 같았습니다.
저는 오래만에 만난 동창생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니 마음이 불안해나면서 많은 고민에 빠지고 있습니다. 정말 제가 어찌하면 좋은지요? 여러 분의 도움 말씀 듣고 싶습니다.
----간주곡----
페암으로 시한부생명을 살고 있는 첫 련인이 죽기전에 한번 만나고 싶다하는데 남편의 반대로 만나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한 녀인의 사연입니다.
오늘 사연 들으시고 하실 말씀 있으신 분들은 생방송실전화 2561111번에 전화 주시길 바랍니다.
맺는 말: 살아가면서 이루지 못한 첫사랑 때문에 고민해본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정을 이룬 후에는 가정에 충실함이 더 좋지 않을가 생각됩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편안해야 사업도 잘 되고 자식들도 잘 키울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도움 말씀이 사연을 주신 주인공한테 많은 도움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방송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남편분이 너그러운 성격이면 병문안 가도 좋겠지만, 반대로 남편이 그토록 사절하는 만큼 아무리 첫사랑이고 아무리 생명의 경각에 달한 첫사랑이라도 잊혀지지는 않겠지만 될수록 첫 사랑의 그림자를 지워버리는게 더 이치에 맞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님의 말에 동감입니다 의처증남편이라니....
가봐도 무관하다고 생각되는데요
그래요? 어덯게 가보면 좋을가요?
첫사랑이였다는 개념을 떠나서 곧 죽어가는 친한 친구의 오빠인데...마지막 소원을 들어준들 큰일날가요..당장 죽어가는 사람을 두고 이제는 머든 이해가 앞설 그 나이에 지금도 부인의 첫사랑을 두고 맘을 펴지못하는 그런 남편을 믿고 평생을 살았다는 자체가 이해 안가네요...점잖은 년세에 부인동반해서 병문안 다녀오시면 오죽이나 멋질가...ㅎㅎㅎ...그사람 간뒤에 오래도록 속으로 끙끙 후회말고 가보고 싶으면 슬써 다녀오실거지...아이구, 그 남편님은 그토록 걱정거리가 머게요..부인이 그렇다고 그남자랑 같이 따라갈 길도 아니요...
잼있어요 리플도 ㅎㅎㅎㅎㅎㅎㅎ 그 나이에 무슨 안해가 병문안갔다오면 머 어때서요?인생자체가 힘이 들었겠군요..고민거리도 없지..증말...가고싶음 가서 보구 오면 되지..그걸 굳이 남편하구 말하구 가나요?뻔히 말리는걸 알면서?이런것도 고민이라고 라디오에 번듯이 내고서...그래서 내가 라디오방송 듣기싫어하는겝니다 실지는ㅎㅎㅎㅎ
정말 그리고 여자도 이상해요 솔직이...첫사랑이라고 그렇게 애틋해서 가보고 싶나요?남편이 그렇게 말리는데도? 남이 하는 고민은 고민도 아닌데 내 고민은 왜 고민이 될가?사람의 마음이요상한거죠..ㅋㅋ
글게말이제..말리는 사람이나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나...거기서 거긴데요...하긴 고민이야 서로다르겠지... 집집에서 색갈다르게 산다는게 이런게겠짐...ㅎㅎ..
나도 찬성.그여자 나그네 넘 속이 좁슴다.남자라는게 ㅎㅎ 글구 그여자도 별랗지.나그네 몰래 바람도 쓰는여자들도 많은데 지 나그네한테 오솝쏘리 말할건 뭔데???
슬서 다녀오시라 ...좋은 생각이네요 세상에 아름다운 거짓말이 있습니다.사람은 평생 숱한 아름다운 거짓말을 하는데 하루 평균 7차 한다는 통게가 있다는데 정말인지?
그나이에 하는 말이 늙은 호박을 손가락질하는거 같해서 웃음이 나오네요 애호박은 맛없어서 시장에 가면 눈길이 안가던에요 ㅋㅋㅋㅋㅋ롬담한마디 던져봅니다.백양나무도 늙은 백양나무 좋겟는데요 잎사귀 무성한게요. 그래도 쑈뺘이양노래는 있어도 로빠이양노래는 없구요 좋은 리풀에 사족을 답니다. 이 사족을 떼버리게 백양나무님 메스를 대보세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보고싶어도 남편이 동의 안 하면 방법없지요.....
그래요 대통령싸인이 나고 가면 후에 치란을 안듣는데요. 몰래가는 방법도 잇는데 남편이 영원히 모르게 할자신이 있다면요....리플 감사합니다. 님의 작품 연변문학에 련속 두차 나간걸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 작품을 이 방에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편협하고 질투심 많은 남편은 못난 사내로 접어 두더라도, 여자도 융통성 없는 여자로군요...문병가고 싶었다면 애당초 남편에게 말하지 말고, 친구와 둘이서 친구오빠이자 첫사랑의 남자한테 병문안 살짝 갔다왔으면 될일을...뭘 그렇게 어렵게 사는지 모르겠군요. 지금의 남편이 나중에 알았다하더라도 친구의 간곡한 부탁으로 죽어가는 사람 마지막 소원이라서 거절할 수 없었다고 변명하면 될 것을...남편이 이일을 꼬투리 잡는다면 남편과 일전을 벌려야지요 언제까지 남편에게 노예처럼 매어 살건가요?
그래요 별난일 다 있는게 우리 삶의 한 모습인거같습니다. 톨쓰토이의 안나까레니나 소설의 첫구절이 생각나게 합니다.행복한 가정은 대략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됏던지? 리플 감사합니다.
그렇게 화목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애들을 키우면서 여태껏 살아왔다는 자체가 큰 모순이 없었다는걸 말하죠.가정모순을 불러일으키지않기위해서라면 아름다운 거짓말 필요한거죠.위에 분들 말한것처럼 슬그머니 다녀오는것도 좋은 방법이구요.후에 들통나나 안나나 하는것은 여자의 지혜에 달렸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