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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83회
주양왕(周襄王) 20년, 양왕은 천토(踐土)에서 진문공(晉文公)을 위로하고 회맹의 일을 마친 다음 주왕실로 돌아갔다. 제후들도 역시 각기 본국으로 돌아갔다.
위성공(衛成公)은 천견(歂犬)의 말을 듣고 은밀히 사람을 천토로 보내 탐지하게 했는데, 그는 원헌(元咺)이 숙무(叔武)를 모시고 회맹에 참여하고 맹약문에 숙무가 서명하는 모습만 보고, 더 이상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는 않고 즉시 돌아가 위성공에게 보고했다. 위성공은 크게 노하여 말했다.
“숙무는 과연 스스로 군위에 오르려 하는구나!”
위성공은 원헌을 욕하였다.
“원훤! 주군을 배반한 도적놈! 부귀를 탐하여 신군(新君)을 세우고, 자기 아들을 보내 과인의 동정을 살피게 했구나. 내 어찌 너희 부자를 용서하겠는가?”
원각(元角)이 미처 변명할 새도 없이 위성공은 검을 뽑아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원각의 종자는 황망히 위나라로 도망쳐 원훤에게 보고하였다.
원훤이 말했다.
“아들의 생사는 명(命)이다! 주군이 비록 나를 저버렸다 할지라도, 내 어찌 숙무를 저버리겠는가!”
사마(司馬) 만(瞞)이 원훤에게 말했다.
“주군이 그대를 의심하고 있으니, 그대는 혐의를 피해야 할 것이오. 왜 벼슬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떠남으로써 그대의 진심을 밝히지 않소?”
원훤은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만약 벼슬을 버린다면, 누가 숙무와 더불어 이 나라를 지키겠소? 무릇 아들의 죽음은 사원(私怨)이요 나라를 지키는 것은 대사(大事)이니, 사원으로 인하여 대사를 버린다면 어찌 신하로서 보국(報國)하는 도리라 하겠소?”
원훤은 숙무에게 말하여, 위성공을 복위시켜 달라고 청하는 서신을 진문공에게 보내게 하였다.
한편, 진문공은 방백(方伯)으로 책봉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호분(虎賁)이 호위하고 궁시(弓矢)를 앞뒤로 늘어세워 그 기상이 한층 대단하였다. 입국하는 날 백성들이 부로휴유(扶老攜幼)하여 그 위의(威儀)를 보려고 다투었으며, 광주리에 밥을 담고 병에 음료를 담아 군사들을 맞이하였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 주군은 영웅이로다!”
모두 희색이 만면하여 말했다.
“晉나라는 흥왕(興旺)하리라!”
捍艱復纘文侯緒 어려움을 이겨내고 문후(文侯)의 업적을 다시 이어
攘楚重修桓伯勳 초나라를 물리치고 제환공의 패업을 다시 일으켰네.
十九年前流落客 19년 동안 유랑하던 나그네가
一朝聲價上青雲 하루아침에 명성을 떨쳐 청운(靑雲)에 올랐도다.
[제39회에 보면, 문후는 晉나라의 10대 군주 희구(姬仇)이다. 제5회에 신후가 서융을 끌어들였을 때 주왕실을 구원하러 갔고, 평왕이 낙양으로 천도할 때 호위하였다.]
진문공은 조정에서 백관의 하례를 받고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여, 호언(狐偃)을 제1공로자로 하고 선진(先軫)을 제2공로자로 뽑았다. 장수들이 물었다.
“성복(城濮)의 전쟁에서 기묘한 계책을 세워 楚軍을 격파한 것은 모두 선진의 공입니다. 그런데 지금 오히려 호언을 제1공로자로 뽑으신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문공이 말했다.
“성복 전쟁 때 선진은 ‘반드시 楚軍과 싸워 적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하였고, 호언은 ‘반드시 楚軍을 피해 신의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소. 무릇 적을 이기는 것은 일시적인 공이요, 신의를 온전히 하는 것은 만세의 이익이오. 어찌 일시적인 공으로 만세의 이익을 능가할 수 있겠소? 바로 그것이 호언을 제1공로자로 뽑은 까닭이오.”
장수들은 열복(悅服)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호언이 아뢰었다.
“선대의 신하 순식(荀息)은 해제(奚齊)와 탁자(卓子)의 난 때 죽었는데, 그 충절이 훌륭합니다. 마땅히 그 후손에게 작록을 내림으로써 신하들에게 충절을 권장해야 합니다.”
[제50회에, 순식은 수극지벽과 굴산지승을 우공에게 주고 길을 빌리는 계책을 써서 괵나라와 우나라를 멸망시켰다. 제54회에, 진헌공은 임종시에 순식에게 어린 세자인 해제를 부탁했다. 제55회에, 순식은 해제를 군위에 옹립했지만 이극과 비정부가 해제를 살해했고, 순식이 다시 탁자를 옹립했지만 도안이에 의해 탁자와 함께 살해되었다.]
문공은 호언의 건의를 승인하고, 순식의 아들 순림보(荀林父)를 대부에 임명하였다.
[제71회에, 문공이 秦나라에 귀국하여 곡옥에 있을 때 순림보는 문공을 영접하러 갔다. 제77회에, 문공은 순림보를 어자로 임명하였다. 제80회에, 성복 전쟁에서 순림보는 좌익이 되어 공을 세웠다.]
한편, 주지교(舟之僑)는 집에서 아내를 돌보고 있다가 晉侯가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중도에 영접했지만, 문공은 주지교를 붙잡아 함거에 가두게 하였다. 논공행상이 끝난 다음 문공은 사마 조쇠(趙衰)에게 주지교의 죄를 논하게 했는데, 조쇠는 참형에 해당한다고 아뢰었다.
[제80회에, 진문공이 황하를 건너갈 때 주지교에게 배를 준비해 두라고 명했다. 제81회에, 진문공이 성복에서 승전하고 돌아올 때, 주지교는 마침 병이 난 아내를 돌보러 가느라 배를 준비해 놓지 않았다.]
주지교는 아내의 병을 구완하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하면서 관용을 구하였다. 문공이 말했다.
“군주를 섬기는 자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했다. 하물며 아내는 말해 무엇 하겠느냐?”
문공은 주지교를 참수하여 효수하라고 명하였다.
문공은 이번 출병에서, 첫 번째로 전힐(顛頡)을 참했고, 두 번째로 기만(祁瞞)을 참했으며, 오늘 세 번째로 또 주지교를 참하였다.
[제79회에, 문공은 희부기의 집에 불을 지른 전힐을 참형에 처하였다. 제81회에, 중군원수인 선진의 명을 어기고 출전한 기만을 참형에 처하였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이름난 숙장(宿將)이었지만, 명을 어긴 자는 반드시 참수하여 결코 가벼이 용서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삼군이 군법을 두려워하여 복종하게 하고 장수들을 뜻대로 부릴 수 있는 까닭이었다.
[‘숙장(宿將)’은 노련하고 공이 많은 장수이다.]
이것이 ‘상벌이 분명하지 않으면 만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상벌이 분명하면 사방 어디를 가든 행세할 수 있다.’는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래서 문공이 제후들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문공은 군사를 증원하여 나라를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 선진 등과 상의하였다. 하지만 육군(六軍)은 천자만 지닐 수 있었기 때문에, 삼행(三行)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편제를 더 만들었다.
[제39회에 주이왕(周釐王)이 1군을 둔다는 조건으로 진무공(晉武公)을 晉侯에 봉했고, 제40회에 진헌공(晉獻公)은 2군을 편성했으며, 제77회에 진문공은 3군을 편성했다.]
순림보를 중행(中行) 대부에 임명하고, 선멸(先蔑)을 좌행 대부에, 도격(屠擊)을 우행 대부에 임명하였다. 삼군에 삼행을 더하여 분명히 6군이 되었지만, 단지 ‘6군’이란 이름만 쓰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병력도 많아지고 장수들도 많아 晉나라는 천하에 비할 바가 없는 강대국이 되었다.
어느 날, 문공이 조정에서 호언 등과 曹·衛의 일에 대해 의논하고 있는데, 근신이 아뢰었다.
“위나라에서 서신이 당도했습니다.”
문공이 말했다.
“이는 필시 숙무가 형을 위해 관용을 요청하는 것이다.”
문공이 서신을 펼쳐 읽었다.
군후께서는 위나라의 사직을 멸망시키지 않고 고군(故君)의 복위를 허락하셨습니다.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이 목을 길게 빼고 높은 뜻을 바라고 있으니, 군후께서는 빨리 조처해 주시옵소서!
이때, 진목공(陳穆公)의 사신도 晉에 도착하여, 衛侯를 대신하여 사죄하였다. 진문공은 衛侯의 복위를 허락하다는 회신을 양국에 보냈다. 그리고 오록(五鹿) 땅을 지키고 있는 극보양(郤步揚)에게, 衛侯가 귀국하는 것을 막지 말라는 명을 전하였다.
[제78회에, 선진이 위나라 땅 오록을 점령하였고, 문공은 극보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한편, 숙무는 衛侯를 용서한다는 晉侯의 서신을 받고, 급히 수레를 陳으로 보내 위성공을 모셔오게 하였다. 진목공(陳穆公)도 위성공에게 귀국하라고 권하였다.
공자 천견이 위성공에게 말했다.
“숙무가 군위에 오른 지 이미 오래되어 나라 사람들이 귀부하고 이웃 나라들과도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번에 주군을 영접하러 온다는 것도 가벼이 믿어서는 안 됩니다.”
위성공이 말했다.
“과인도 역시 염려하고 있소.”
위성공은 영유(寧俞)를 먼저 초구(楚丘)로 보내 실정을 탐지해 오도록 하였다.
영유가 위나라에 도착했을 때, 마침 숙무는 조정에서 정사를 의논하고 있었다. 영유가 조정에 들어가 보니, 숙무는 전당의 동쪽에 자리를 마련하고 서쪽을 향하여 앉아 있었다. 숙무는 영유를 보자 자리에서 내려와 영접했는데, 매우 공손한 태도를 취하였다. 영유가 짐짓 물었다.
“태숙(太叔)께서는 섭정하시면서 어찌하여 전당에 정좌(正坐)하지 않으십니까?”
숙무가 말했다.
“전당은 나의 형님이 앉으실 자리요. 나는 비록 그 옆에 앉아 있더라도 편하지 않은데, 감히 정좌할 수 있겠소?”
“저는 오늘 숙무의 진심을 알았습니다.”
“나는 하루 속히 형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소. 대부는 군형(君兄)께서 조속히 돌아오시도록 권하여,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오.”
영유는 길일인 6월 신미일(辛未日)에 위성공을 입성시키겠다고 약조하였다.
영유가 조정에서 나오자, 백관의 의논이 분분하였다.
“고군(故君)이 복위하게 되면, 분명히 주군을 따라 망명한 자와 남은 자를 구별할 것이 아니겠소? 망명한 자는 공이 있고 남은 자는 죄가 있게 될 것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소?”
영유가 말했다.
“나는 여러분께 이렇게 전하라는 고군의 명을 받고 왔소. 즉 ‘과인을 따라 망명한 자나 남아 있는 자나 모두 공은 있되 죄는 없다.’라고 하셨소. 만약 믿지 못하겠거든, 내 이 자리에서 삽혈하고 맹세하겠소.”
백관이 모두 말했다.
“저처럼 맹세하는데, 어찌 다시 의심하겠는가?”
영유는 하늘을 우러러 맹세하였다.
“망명한 자는 주군을 호위하였고, 남은 자는 나라를 지켰도다. 국내에 있든 국외에 있든 각기 힘을 다하여, 君臣이 협력하여 함께 사직을 보전하였노라. 만일 서로 속이는 일이 있다면 천지신명이시여 재앙을 내리소서!”
백관은 모두 흔연히 물러가며 말했다.
“영유는 우리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숙무는 대부 장장(長牂)에게 국문을 지키게 하면서 분부하였다.
“남쪽에서 오는 사람이 있거든 지체 없이 입성시키시오.”
한편, 영유는 陳나라로 돌아가 위성공에게 보고하였다.
“숙무는 진심으로 주군을 봉영하고자 합니다. 결코 나쁜 뜻이 없습니다.”
위성공은 의심을 풀고 완전히 믿게 되었으나, 그동안 거짓 비방을 일삼았던 천견은 벌을 받게 될 것이 두려워 또 위성공을 꾀기 시작했다.
“숙무와 영유가 짜고 주군을 해치려고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주군께서는 기약한 날짜보다 빨리 가셔서 그들의 의표를 찌르십시오. 그러면 무사히 입성할 수 있습니다.”
위성공은 그 말에 따라 즉시 수레를 준비하라고 명하였다. 천견은 자기가 먼저 가서 준비되어 있는 위난을 제거하겠다고 청하였다. 위성공은 이를 허락하였다. 영유가 진언하였다.
“신이 이미 나라 사람들과 날짜를 약정하였습니다. 주군께서 약정한 날보다 미리 가신다면, 나라 사람들이 필시 의심할 것입니다.”
천견이 소리를 질렀다.
“주군이 속히 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대체 무슨 속셈이오?”
영유는 더 이상 간할 수 없어 다시 청했다.
“주군께서 지금 출발하신다면, 신이 한 발 앞서 가서 신민(臣民)들에게 알려 민심을 안정시키겠습니다.”
위성공이 말했다.
“경은 나라 사람들을 위하여 그런 말을 하는데, 과인은 단지 신민들을 조금이라도 일찍 만나려는 것뿐이오. 그 외에 다른 뜻은 없소.”
영유가 떠난 후, 천견이 말했다.
“영유가 먼저 가려는 것도 의심스럽습니다. 주군께서는 지체하지 마십시오.”
위성공은 어자를 재촉하여 힘껏 수레를 달리게 하였다.
한편, 영유가 먼저 위나라 국문에 도착하자, 장장은 위성공의 사신을 알아보고 문을 열어 들어오게 하였다. 영유가 말했다.
“주군께서 곧 도착하실 것이오.”
장장이 말했다.
“신미일에 입성하기로 약속했는데, 오늘은 무진일(戊辰日)이 아닙니까? 왜 이렇게 빨리 오셨소? 그대는 먼저 들어가 이 소식을 전하시오. 나는 주군을 봉영하겠소.”
영유가 성중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천견이 당도하여 말했다.
“주군께서 바로 뒤에 오고 계십니다.”
장장은 급히 수레를 정비하여 위성공을 영접하러 나갔다. 천견은 먼저 성중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때 숙무는 친히 하인을 감독하여 궁실을 소제하고 나서, 뜰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숙무는 주군이 곧 도착한다는 영유의 말을 듣고 한편 놀라고 한편 반가우면서도, 뜻밖이었으므로 약속한 날보다 먼저 오게 된 연유를 물으려 하였다. 그때 홀연 수레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숙무는 위성공이 이미 도착한 줄 알고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한손으로 움켜잡고 급히 뛰어나가다가 천견과 맞닥뜨렸다.
천견은 형제가 상봉하게 되면 자신의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 멀리서 숙무가 오는 것을 보자마자 화살을 날렸다. 숙무는 가슴에 화살을 맞고 넘어졌다. 영유가 급히 달려와 숙무를 부축하였으나 이미 절명한 뒤였다.
원훤은 숙무가 피살되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위성공을 욕하였다.
“무도한 혼군(昏君)아!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죽였으니, 하늘이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내 이제 당장 晉侯에게 달려가 호소하리니, 너의 지위가 온전할 것인지 어디 두고 보자!”
원훤은 한바탕 통곡하고 나서 급히 晉나라로 달려갔다.
염옹이 시를 읊었다.
堅心守國為君兄 군형(君兄)을 위해 굳은 마음으로 나라를 지켰건만
弓矢無情害有情 무정한 화살은 정 많은 아우를 죽였구나!
不是衛侯多忌忮 衛侯가 의심하고 시기하지 않았더라면
前驅安敢擅加兵 앞서 간 자가 어찌 함부로 무기를 썼겠는가?
한편, 위성공은 성 아래에 당도하여 영접하러 나오는 장장을 만났다. 위성공은 장장에게 어떻게 마중하러 나왔는지를 물었다. 장장이 말했다.
“일찍 오시든 늦게 오시든, 오시는 대로 곧장 영접하라 하였습니다.”
위성공은 탄식하였다.
“나의 아우는 과연 딴 마음이 없었구나!”
위성공이 성중으로 들어가자, 영유가 눈물을 흘리며 와서 말했다.
“숙무는 주군께서 오신 것을 기뻐하며, 미처 머리를 닦지도 않고 머리를 움켜쥔 채 달려 나왔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숙무는 먼저 들어온 천견의 화살에 피살되었습니다. 이제 신은 나라 사람들에게 신의를 잃었으니,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위성공은 부끄러운 빛을 띠며 말했다.
“과인도 이숙(夷叔; 숙무)의 억울함은 이미 알고 있소. 경은 다시 말하지 마시오.”
위성공이 조정으로 들어가자, 아직 모르고 있던 백관은 갑작스레 영접하러 나오느라 갈팡질팡하였다.
영유는 위성공을 숙무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였다. 숙무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위성공은 숙무의 머리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자신도 모르게 실성한 듯 통곡하면서,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숙아, 이숙아! 나는 네 덕분에 돌아왔건만, 너는 나 때문에 죽었구나! 슬프고도 슬픈 일이로다!”
그때 시신의 두 눈이 번쩍 빛나더니 스르르 감겨졌다. 영유가 말했다.
“천견을 죽이지 않으면, 숙무의 영혼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위성공은 즉시 천견을 잡아오라고 명하였다.
도망치려다 잡혀온 천견이 말했다.
“신이 숙무를 죽인 것은 주군을 위해서입니다.”
위성공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네놈이 나의 아우를 비방하여, 무고한 사람을 제멋대로 죽여 놓고, 이제 그 죄를 과인에게 뒤집어씌울 셈이냐!”
위성공은 천견을 참수하라고 좌우에 호령하였다. 그리고 숙무를 군주의 예로써 후하게 장례 지내게 하였다.
위나라 사람들은 처음에 숙무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논이 분분하였으나, 위성공이 천견을 참수하고 숙무를 후히 장례 지냈다는 말을 듣고 민심은 비로소 안정되었다.
첫댓글 쓰레기 천견.기레기 같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