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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카이 스크래퍼스 (SKYSCRAPERS) 원문보기 글쓴이: 금보다은
우선 글을 시작하기 앞서
대한민국 최고의 경영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건 사람마다 의견이 크게 갈릴것이다.
누군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경영자로
실향민 출신으로 맨주먹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을 일군 정주영을 꼽을 것이고
누군가는 천부적인 경영 능력으로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군 이건희를 꼽을 것이고
누군가는 다들 불가능할 거라고 전망한 국책 사업을
보란듯이 성공해내고 말았던 박태준을 꼽을 것이고
누군가는 국세청장이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오' 라며
청렴하게 경영하고 나서 그 수익을 사회에 환원했던 유일한을 꼽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대로 대한민국 최악의 경영자가 누군지에 대해 묻는다면
그 답은 보통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러서
대우 계열사의 수십만 직원들을 나앉게 만든 김우중과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물려받은 건실한 금호 그룹을
터트려 버린 박삼구로 의견이 나뉘는데
김우중의 경우 분식회계 규모가 천문학적이긴 하지만
셀러리맨으로 시작하여 제계 서열 2위의 대기업을 일구었으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라며
세계 경영의 포부를 '대우맨' 들에게 심어줬던 야심찬 사람이었기에
'자기가 세운 그룹 자기가 무너뜨렸다' 라는 점에서
김우중이 무능했다고 비판하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막말로 견훤이 자기가 세운 나라를 자기가 멸망시켰어도
견훤이 말년에 인생이 좀 꼬였다라고 평가하는 경우는 있어도
견훤을 한국사 최악의 군주로 평가하지는 않지 않은가?
하지만 박삼구의 경우
'제계 순위 7위' 그룹을 터트렸다는 점에서
제계 순위 2위 대우보다는 규모가 작긴 하지만,
아버지와 형들이 일군 캐시카우들로 즐비한 그룹을 물려 받았고
가만히만 있어도 잘 굴러갈 판이었던 그룹을
그동안 형들이 동생들에게
그룹을 물려주던 암묵적인 룰까지 깨버리고
형제들을 내쫒고 독차지 하고선
탐욕에 눈이 멀어 그룹을 파멸로 몰고갔다는 점에서
박삼구 쪽이 경영자로서 자질이 좋지 못하다는 의견이 대세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금호는 어떻게 제계 서열 7위 그룹으로 부상했다가
이렇게 한 순간에 폭삭 무너지고 말았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금호 그룹의 역사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I. 금호 그룹의 역사
금호는 해방 직후였던 1946년에
박삼구의 아버지였던 박인천이 '광주 택시' 라는 이름으로
택시 운송업에 뛰어들면서 시작된 회사였다.
해방 직후에는 경부선조차 하루에 한 번 운행했을 정도로
사회적 혼란으로 인하여 교통망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던 상황이었고
시민들은 교통망이 와해되어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렇게 운송 분야에서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이었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민간 운수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절이었다는 의미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회를 잡고 자동차를 밑천으로 택시 회사를 운영했던 박인천씨는
머지 않아 버스들을 구비하여 버스 회사를 차리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때마침 산업화로 인하여 서울이 팽창하며
호남을 비롯한 전국에서 사람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수도권과 호남을 이어주는 고속버스 노선을 운영하던 금호는
그야말로 '대박' 이 터졌다
당시 고속버스를 굴리던 금호고속이 얼마나 호시절을 누렸냐면
피크 시절이 아니라 쇠락기에 접어들었던 2010년대 후반조차
서울-광주 고속버스 배차는 5분에 한 대 꼴이었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고속버스로 돈을 쓸어담은 금호그룹은
이제 호남권을 넘어서 전국구 그룹으로 성장하였고
5공화국 말기에는 아시아나 항공의 창립을
대통령으로부터 허가 받기에 이르렀다.
당시 호남 연고 기업이었던 금호가
다른 기업들을 제치고 제 2 민항사 창립을 허가받은 점에 대해
금호측에서는 '호남 기업이라 균형발전 차원에서 배려받은 것' 이라고
자신들은 정권과 절대 무관했다고 의혹을 부인하였지만,
이러한 의혹이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서
금호는 전국구 기업으로 성장하였음에도
정치적 안배에 사운이 좌지우지되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금호는
이후 대외적으로는 호남 색체를 드러내는 걸 자제하면서
그렇게 정치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일을 피하며 경영을 하였다.
이렇게 금호 그룹의 경영진들은
내실을 다지면서도 정치권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정치으로 이득을 보면 이득을 봤지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박인천을 시작으로 형제들이
65세까지만 경영을 하고 스스로 물러난 다음
자기 바로 다음 동생에게 그룹을 물려주면서
금호 그룹을 차츰 키워나가고 있었다.
II. 이런 상황에서 박삼구가 회장이 되다
이렇게 전통에 따라 박인천의 차남 박정구가
2002년 금호 그룹을 박인천의 삼남인 박삼구에게 물려주었다.
당시 박삼구가 금호그룹 회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금호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은 다음과 같았다.
큰 돈은 벌지 못하더라도 까먹지는 않는 금호보험,
금호 그룹을 여전히 먹여 살리고 있는 금호고속,
국제 여행 수요 증가로 나날이 발전해 오던 아시아나,
자잘하긴 해도 소소하게 돈은 벌어다 주던 금호렌터카,
그리고 운수업 하는 김에 시도했는데 꽤나 성과가 좋았던 금호타이어 같은
일확천금은 벌어다 주지 못하더라도 캐시카우들이 즐비한 상황이었고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중화학 공업에 도전했는데 자부할 만한 성과를 내던 금호석유화학
대형 건설사는 아니더라도 어울림 브랜드로 인기를 끌던 금호건설까지
나름 화학과 건설까지 만지고 있던 상황이라
당시 금호 그룹은 CJ나 롯데처럼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진 못하지만
소소하긴 하지만 꾸준히 돈이 들어오는
화수분 같은 튼튼한 사업구조로
금호그룹은 망할 일이 없을 것으로 전망되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삼구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할 수 없다면서
2006년 그룹 차원의 자금력을 총동원하고
외부 투자자들의 자본을 끌어모아
6조 2천억에 대우건설을 인수하였고
2008년 4조 2천억을 들여서
대한통운을 인수하였다.
그 결과 금호그룹의 자산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재계 순위 7위로 우뚝 서며
주변에서는 박삼구 회장의 통큰 베팅에 대해
'경영은 저렇게 하는 거다' 라며
마이더스의 손이라고 극찬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금호는 박삼구 회장이 이야기 하던 것처럼
여객은 금호고속, 항공은 아시아나, 렌터카는 금호렌터카가 잡고 있는 상황에서
물류를 맡는 대한통운이 추가되면 그 시너지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되었으며,
심지어 여기에 들어가는 타이어도 다 금호타이어가 생산하는 판이었고
타이어의 원료도 금호석유화학에서 납품받던 상황이었기에
일관 체계를 갖춘 대한민국 최고의 물류기업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현대건설 다음으로 규모가 크던 대우건설은
향후 금호그룹을 지탱하는 대들보가 될 것으로 부러워했으나
박삼구가 야심차게 인수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금호그룹을 파멸로 몰고가 버렸다.
III. 금호 그룹의 몰락
박인천의 4남이었던 박찬구의 경우
전통에 따라 박삼구가 65세가 되면 그룹을 물려받아야 했지만
박삼구는 동생인 박찬구에게 그룹을 물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박삼구의 '천재적인' 베팅에 대해
박찬구는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반대 하였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동생인 박찬구에게 회사를 넘겨주면
지금까지 자기가 이루어 낸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그렇기에 박삼구는 동생인 회사를 물려주는 전통을 깨버리고
자기 아들인 박세창에게 그룹을 물려주려고 하였다.
이렇게 되자 박찬구쪽에서 발끈하였고
결국 형제들끼리 법정에서 경영권을 다투게 되었다.
결국 수년여간 기나긴 진흙탕 싸움 끝에
박삼구가 계속 그룹 회장으로 경영을 하되
이에 불복한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을 가지고 독립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결과로 막을 내렸다.
이렇게 박삼구는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서
자기 형제들을 원수로 돌렸던 상황이었지만
금호 그룹의 진짜 불행은 이제 시작이었다.
바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대금 문제였다.
박삼구는 이들을 각각 6조 2천억, 4조 2천억씩 주고 인수했는데
당연하게도 금호 그룹에는 그럴 만한 현금이 없었다.
결국 대부분의 자금은 외부 투자자들에게
비싼 이자와 중도 환매 풋옵션을 걸고 끌여들인 거라
좋게 말하면 레버러지를 극대화 한 거고
솔직하게 말하면 자기 자본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걸
'아무튼 따서 갚겠다' 고 판을 벌인 거였다.
그야말로 전두광마냥 그룹을 건 도박을 한 거였는데
문제는 박삼구는 대기업 회장으로서 잃을 게 참 많은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그의 배팅은 금융위기로 경기가 악화되면서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것임이 명백해졌고
결국 대우건설 인수 과정에서 금호가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약속한
풋옵션들이 실제로 행사되면서
금호 그룹은 유동성 위기가 닥쳤다.
금호그룹에서는 이런 식으로
풋옵션이 행사되더라도 감당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알짜배기 자산을 매각할 의향을 밝히지도 않았을 뿐더러
'대우건설의 주가를 풋옵션 행사 기준까지 최대한 끌어 올리겠다'
같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을 '대책' 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오히려 금호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는 것만
시장에 알려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금호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2010년이 되자마자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문제의 원인이 되었던 대우 건설과
보험이나 렌터카 같은 비주류 계열사들은 팔려 나갔고
금호 그룹의 근간인 금호산업이나 금호고속, 아시아나 항공 같은 경우
박삼구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채권단이 출자전환하는 형태로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IV. 1년도 지나지 않아서 경영에 복귀한 박삼구
보통 이렇게 되면 그룹을 위기에 빠뜨린 회장은
경영자로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기 마련이고
경영 일선에 복귀하지 못할거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삼구는 2010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영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그가 경영에 복귀한 이후 채권단에게 넘어간 계열사들의 경영권들을
하나씩 되찾아 오기 시작했다.
2015년 경에는 금호산업과, 금호산업의 계열사인 아시아나 항공의 경영권을
채권단으로부터 출자전환 한 지분을 매입하는 것으로 되찾았는데
박삼구가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에 대해
아시아나 기내식 사태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아시아나 항공기에서 기내식이 공급이 되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하청 업체 대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게 붉어져서 수사에 들어간 결과
박삼구가 계열사들의 경영권을 되찾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저런식으로 아시아나 그룹의 30년간 기내식 사업권을 넘겨주고
대신 무이자로 발행한 신규인사권부사채 1600억원어치를
게이트 그룹이 매입해주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한 거였다.
당시 아시아나 항공이 매년 300억원 가량
기내식으로 수익을 내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20년 동안 벌어들일 수 있는 6000억이 넘는 걸
박삼구가 인수 대금 1800억 마련해 보겠다고
저렇게 헐값에 넘겨버린 거였다.
경영자가 자기 경영권을 위해 회사에 피해를 끼치는 행동은
배임이라는 범죄 행위라는 점에서
누구도 그를 옹호하기 힘들 것이다.
이와 별개로 가장 안타까웠던 건
박삼구가 그룹 재건을 노리던 시기
당시 금호그룹의 계열사들은 저런 식으로
품질 향상보다는 저런식으로 원가 절감이나 매출 증대에만 급급하다보니
금호 타이어 같은 경우 당시 나날이 품질이 조악해진다고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우하향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채권단에서는 이러한 사태에 뒷목을 잡고
그나마 가격을 쳐주겠다는 중국 자본에게 금호타이어를 매각하려 했으나
금호 타이어 노조와
금호 타이어 공장이 있던 호남 주민들은
'기존 경영자가 능력이 부족했어도
중국에 매각할 바에야 한 번 더 기회를 주자' 라며
중국 자본에 매각하려고 하는 채권단의 계획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박삼구는 '금호 타이어 인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없어서 송구스럽다' 라며
금호 타이어 인수를 사실상 포기하였다.
이렇게 박삼구가 금호 타이어 인수에 나서지 않자
노조와 호남 주민들만 닭 쫒던 개 꼴이 되어 버리고
결국 금호타이어는 중국 더블스타에게 매각되었다.
원래 쌍용차나 하이디스의 사례처럼 한국 기업이 중국에게 매각되면
보통 볼짱 다 본 상황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박삼구가 경영에서 손 떼고
더블스타가 약속대로 금호타이어의 독자 경영을 보장해 주자
그 동안 단기적인 이익 창출에 급급하여 원가 절감으로 악평을 들었던 금호 타이어가
그런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자 품질이 우수해지고 경영 상태가 개선된 걸 보면
박삼구는 '마이더스의 손' 이 아니라 '마이너스의 손' 이 아니었을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애초에 아버지와 형들로부터 그룹을 물려받았을 당시에는
정말 건실한 회사들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룹 계열사들의 문제는 아니었을텐데 라는 안타까움만 든다.
V. 마지막까지 아름답지 못했던 박삼구의 행보
결국 박삼구는 아시아나 기내식 배임 행위 등의 비리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을 상대로 사과를 하였지만
이와 별개로 금융 당국으로부터 수사가 들어오면서
정치 논리로 호남 그룹이 희생당한다고 호소해 보았지만
사실 위에서 적은 것처럼 금호가 정치권에 줄을 섰으면 섰지
정치권과 척을 진 회사가 아니라서 별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막말로 박삼구는 'LCC 그딴 게 왜 필요하냐'고 했었었는데
새 정부에서 저가항공의 활성화를 추진하니까
바로 연고도 없던 부산에 에어부산을 설립하고
부산 지역 인재들만 뽑겠다고 했던 걸 보면
금호보다 정치적 처신을 못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일텐데
그런 기업들 냅두고 금호만 날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 뿐만 아니라 사법당국에서도
박삼구의 비리를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박삼구는 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금호 그룹 회장직에서 사임하였다.
사실 박삼구가 아예 회장직을 맡지 않았다면
본인에게나 그룹에게나 모두 이득이었겠지만
아무튼 그룹이 다시 한 번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
좀 많이 늦은 사퇴여서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퇴임하실 때도 본인과 측근들에게
알뜰살뜰 퇴직금을 셀프 지급하는 걸 잊진 않으셨다.
하지만 박삼구가 경영에서 물러나고도 수사가 계속되자
박삼구는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려다가
공항에서 제지당하고 말았다.
일부에서는 박삼구가 일본으로 밀항하려고 했던 게 아니냐고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범죄자 상호 인도조약을 맺고 있는 나라라
굳이 그런 나라로 밀항할 정도로 생각이 짧은 분이 아닐 거라 생각하기에
박삼구씨에 대해 음해하는 주장을 받아들이고 싶진 않다.
결국 박삼구 회장은 금호 그룹 경영권을 회복하기 위해
계열사들 자금을 마음대로 끌어다 쓴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수사 결과 상당한 내용들이 밝혀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박삼구가 아시아나 승무원들을 '기쁨조'로 동원했다는 거였다.
물론 박삼구 나이가 70대인 고령이었기에 성적인 접촉은 없었고
마치 70년대 건전 소년만화 모범생 하렘물 같은
뭔가 깨긴 하지만 성적인 문제는 없었으므로
이미 기소장에 혐의가 수두룩히 적혀있던 상황에서 이 내용이 굳이 들어가진 않았다.
보통 재벌가들의 재판의 경우
검사부터 적당히 구형을 하고
법무팀이나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치열하게 다툰 끝에
판사가 검사가 구형한 형량을 집행유예 가능한 선으로
적당히 털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에도
판사가 '공적자금을 지원 받고도 지배권을 찾으려 횡령을 벌이다니 죄질이 무겁다!' 고
대놓고 일갈할 정도였다.
당시 검사가 박삼구의 범죄 행위에 대해 징역 10년을 구형했는데
판사가 그냥 그걸 노빠꾸로 받아들여서 그대로 10년이 선고되었다.
태어나서 재벌 회장에 대해 구형과 선고가 동일하게 나가는 경우는
정말 처음 봤었던 사례였을 정도로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당시 판사는 박삼구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배경에 대해
박삼구의 범죄 행위가 국가 경제에 커다란 피해를 입혔다고 지적했다.
사실, 박삼구의 탐욕으로 금호 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그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혈세가 공적자금으로 투입되었던 상황에서
자기가 경영권을 회복하기 위해 계열사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끼쳤으니
판사가 분노할 만도 했다.
실제로 박삼구의 무능과 탐욕으로 가장 피해를 본 게
바로 금호 그룹 공장들이 대거 위치한 호남 주민들이었다는 점에서.
아마 박삼구는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는 게 아니라면
가석방이나 사면 논의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을 거 같다.
지역 화합 차원에서 사면을 하더라도
해당 지역에서 원하는 인물에게나 해주는 거니까.
그리고 박삼구에게 4000억원에 육박하는 추징금이 선고되었는데
항소심과 상고심 재판 결과에 따라 형량이나 액수가 달라질 순 있어도
현재 80세에 달하는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가 추징금을 완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를 비롯한 나머지 계열사들은 이미 매각된 상황이고
전통적인 화수분이었던 금호고속의 경우
호남고속철도 개통과 코로나로 인하여 수요가 급감한 상황이라
예전처럼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금호 건설이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지만
아무래도 대형 건설사가 아니다보니 이래저래 쉽지 않은 상황이라
아마 박삼구가 형을 살고 기적적으로 경영에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다시 재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첫댓글 아 대체 누굴 최악의 경영자로 뽑아야하지
헐 금호가 저래서 난리였구나ㅠㅠ 그니깐 욕심을 왜부려서ㅠ
와 진짜 무능의 끝판왕이네..자기 경영권 되찾겠다고 별..
진짜 잘 정리된 글이다 재계인사에 대해 1도 모르는데 더 있으면 보고싶네
와 재밌다 술술 읽혀
나쁜놈...
개노답ㅋㅋㅋ
정말 안타깝군..
으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