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오차 없이 밟아가고 있는 [신석기 블루스]의 재미는, 신석기 변호사 역의 이성재가 틀니를 끼고 구부정한 어깨로 형편없이 망가져서 연기하는 모습이 유일하다. 그만큼 이 영화는 절대적으로 이성재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신석기 블루스]가 로맨틱 코미디의 모범답안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기발하고 신선한 상상력보다는 정형화되고 관습화 된 하나의 규범과 틀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영화의 도입부부터 결말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로맨틱 코미디에서 이야기의 새로움이라든가 영화적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미 우리가 예측한 방향 안에서 어떤 잔재미로 우리를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제작진의 유일한 문제인데, 그것을 이성재 개인기로 끌고 가려고 한다.
이성재는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스크린 데뷔한 이후 열 번 째 작품인 [신석기 블루스]에서 작품의 거의 전체를 책임지는 비중 있는 주인공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신석기 블루스]가 관객들과 친화력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이성재의 호연 때문이다.
신석기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변호사(이성재, 이종혁 분)는 이름만 같지 모든 것이 판이하다. 한 사람은 잘 나가는 대기업의 법무팀장이다. 그는 외모부터 훤칠하고 능력도 뛰어나다. 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깔끔하며 세련된 내부구조를 가진 아파트에서 산다. 벤츠 카브리올레를 타고 다니고 여자들에게서도 인기짱이다. 대신 인간성은 최악이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의 신석기 변호사는 구부정한 어깨에 앞니가 툭 튀어나온 못생긴 외모를 갖고 있다. 낡은 양복에 냄새나는 몸, 서민층 비좁고 낡은 아파트에서 산다. 집안도 더 이상 어떻게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헝클어져 있다. 천식호흡기를 달고 사며 약골이고 긴장하면 방귀를 뀌며 낡은 시장바구니가 매달린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대신 인간성은 더없이 좋다. 남들이 기피하는 국선변호인을 도맡아 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자신의 법률지식으로 도움을 준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를 좋아한다.
자, 이렇게 대조적인 두 명의 신석기 변호사라는 캐릭터 자체가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상투적이지 않은가. 두 사람이 우연히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사고로 영혼이 뒤바뀐다. 그렇다면 결말은 뻔하다. 이것은 공식이다. 착한 사람 몸에 나쁜 영혼이 들어와서 개과천선하고 지금까지 자기가 잘못 살아왔음을 뉘우치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 줄거리가 될 것이다. 역시 영화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착착 공식적 수순을 밟으며 전행된다.
그 과정에서 잔재미를 더하기 위해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성질 나쁘지만 능력 있는 대기업 변호사에게 적극적으로 프로포즈를 했다가 버림받은 대기업 안내데스크 여직원 서진영이다. 김현주가 맡고 있는 서진영이라는 캐릭터에 새로움은 없다. 서진영이 대기업에서 부당해고 당한 뒤 법정투쟁을 거쳐 복직에 승리하는 것이 영화의 외형적 줄거리라면, 내면적 기둥은 엘리베이터 사고로 뒤바뀐 캐릭터가 올바른 인생을 깨닫는 것이다.
[신석기 블루스]가 영화적으로 나쁘지는 않다. 내러티브도 무리가 없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으며 연출도 모범답안처럼 제 때 제 역할을 다한다. 그런데 그것이 불만이다. 너무 반듯하게 공식적으로 진행된다는 것, 예상을 추호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도덕적 결말로 끝이 난다는 것, 이것은 로맨틱 코미디의 한계이면서 장르 안에서 변주를 하지 못하는 [신석기 블루스]의 한계다. 나는 이런 영화가 싫다. 볼 때는 웃으면서 즐겁게 볼 수 있지만 속이 빤하게 드러나 보이는 이런 영화를 두 번 보고 싶은 생각은 절대 안 든다.
[신석기 블루스]는 김도혁 감독의 데뷔작이다. 안정감 있는 연출과 적재적소에 놓인 카메라는 감독의 연출 역량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 공식 안에서만 맴돌고 있는 이야기들이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줄 수는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투적인 이야기의 반복과 답습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에 자극을 주고 인간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며 인물들이다. 그러나 [신석기 블루스]는 공식처럼 예정된 수순을 벗어나지 않는다. 안정감은 있지만 신선함은 없다. 배우들의 호연은 있지만 새로운 발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