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22년의 유죄를 확정받고 수감 중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이 2021년 12월 31일 자정(0시)을 기해 단행됐다. 2017년 3월 구속된 이후 4년 9개월 만이다.
이 긴 수감 기간 중 정성을 다해 보필한 류영하(柳榮河) 변호사는 선대의 고향이 의성군 단밀면 생물리이다. 이곳은 한때 상주목 속현(屬縣)으로 서애 류성룡이 상주 목사로 재임할 때 점지해 두었던 땅이다.
입향조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를 지낸 류단 (1580~1612)은 임란 극복에 앞장섰던 『징비록』의 저자 명재상 류성룡(柳成龍) 둘째 아들이다. 후사(後嗣)가 없어 사헌부 지평을 지낸 아우 류진(1582~1635)의 둘째 아들 백지(百之)를 양자로 삼으니 비록 단과 진 두 집안의 가계는 달라도 사실상 같은 핏줄이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왼쪽이 류 변호사(사진, YTN)
가전청백 세업충효(家傳淸白, 世業忠孝)의 가훈은 선대 서애의 유지를 이어가려는 뜻이다. 많은 인물을 배출하니 관료로 사헌부 장령 류천지, 상서원 직장 류백지(柳百之), 사간원 정언 류광억(柳光澺), 돈녕부 도정 류심춘(柳尋春), 의정부 좌의정 류후조(柳厚祚), 청송 부사 류교조(柳敎祚), 충청도 도사 류주목 (柳疇睦), 양산 군수 류인목(柳寅睦), 자인 현감 류도석(柳道奭), 고원 군수 류진휘(柳進徽) 등이며, 문집을 낸 사람은 류단의 『도암선생문집』 류진의 『수암』선생문집』 류백지의 『이송당문집』 류심춘의 『강고선생문집』, 류후조의 『낙파선생문집』, 류주목의 『계당선생문집』, 류흠목(柳欽睦) 『극암문집』, 류휴목 (柳烋睦)의 『직재문집』, 류도승(柳道昇)의 『과재문집』, 류시완(柳時浣)의 『강사문집』 등이고, 유고를 남긴 분이 류천지의 『어은유고』, 류성림의 『이안당 실기』, 류회춘의 『낙은유고』 등이며 독립운동가로 류우국(애국장), 류원우(애족장) 류도발(독립장), 류신영(애국장) 등이 있다. 근현대에도 이명박 정부 때 비서실장, 통일부 장관을 지낸 류우익이 있다.
특히, 고종 때 남인으로는 180여 년 만에 정승에 오른 류후조는 고급 관리 출신임에도 세사에 거리낌 없이 청빈하게 살았다. 조용헌 칼럼에 의하면 퇴임 후 고향인 상주에 돌아와서 낙동강 지류의 동네 나루터에 나가 강변을 바라보며 자주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신임 사또가 부임하면서 나룻배를 타고 오게 되었다. 사또를 모시고 오던 수행원들은 어떤 노인네가 나루터에서 배회하니까 동네의 보통 노인으로 여길 수밖에. 사또가 배에서 내릴 때 발이 물에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로하여금 사또를 등에 업도록 하였다. 아무 말 없이 시키는 대로 신임 사또를 등에 업었다. 그런데 사또가 등에 업혀서 보니까 이 노인네가 머리 뒤에 옥관자(玉貫子)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관자(貫子)는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감싸게 해주는 망건의 끈을 잡아매는 고리를 가리킨다. 품계에 따라 재료가 달라진다. 1품(品)은 무늬가 없는 조그만 옥관자를 사용하였고, 2품은 금으로 만든 금관자(金貫子), 3품은 소나무나 학을 조각한 큼지막한 옥관자를 썼다. 사또가 등에 업혀 가면서 보니까 이 노인네는 1품이 착용하는 무늬 없는 옥관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사또는 깜짝 놀랐다.
"대감 어른을 몰라뵙고 이거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는 일화를 남겼다고 한다. 류영하 변호사는 이런 선조들의 가학적 전통을 이어받은 법률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