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사비성과 알람브라 궁전
최중호「한국문인협회 작가의 명문장」316
한국문인협회분과. 김영곤. 2024. 11. 6.
삶의 지평을 여는
최중호 작가의 명문장은
《계간수필》에
수록된
<사비성과 알람브라 궁전>
에 깃들어 있습니다.
- 프로필 -
『수필문학』 등단(1991)
수필문학추천작가회 회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역임
대전·충남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수상 -
박종화문학상
한국수필문학상
수필문학상
인산기행수필문학상
대전문학상
외 다수
- 저서 -
수필집 :
『장경각에 핀 연꽃』
『한국인의 두 얼굴』
『보일 듯 말 듯』
『노인의 선물』
명문장
알람브라 궁전.
빛과 공간, 물과 건축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곳,
그래서 그라나다에선
“눈이 먼 것이야말로 최악의 형벌이다.”
란 말이 나온 것 같다.
그러면 사비성을 찾아온 나그네들은
항상 허전한 마음을 안고
돌아가야 하는가?
알람브라에
헤네랄리페 별궁이 있다면,
사비성 남쪽엔
궁남지가 있다.
많은 사람이
궁남지 옛터에 핀 연꽃들을 보며
화려했던 옛 사비성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
최중호 작가
향로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참으로 기묘하게 생겼다.
12폭 너른 병풍에도 그려 넣기 어려운
120여 개의 많은 형상(形象)을
이 작은 향로에 모두 새겨 넣었다.
이 향로는 사람이 만든 게 아니다.
신이 빚어 놓고
사람이 감상하는 향로인 것이다.
아름답고 정교한
조각 예술과 주조 기법을 합성해 놓은
사비 백제의 종합예술인 것이다.
백제금동대향로.
그 신비롭고 생동감 넘치는 자태는
두 눈으로 보기엔 너무 벅차서,
가슴 깊이 간직할 수밖에….
비록 궁궐은 불타고 없지만,
화려하고 찬란했던
사비 백제의 문화는
정림사지오층석탑과 백
제금동대향로가
대신하고 있었다.
원문 감상
사비성과 알람브라 궁전
최 중 호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자 의자왕은 백마강 뱃길을 따라 당나라로 끌려간다. 이때 백성들은 의자왕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기 위해 갓개포구가 있는 유왕산에 올라 왕의 선단(船團)이 오기만 기다렸다. 이윽고 왕을 실은 배가 포구에 머물지 않고 지나가 버리자 백성들은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보압딜왕은 카스티야와 아라곤 연합군에 의해 알람브라 궁전이 포위되자 저항도 한 번 하지 않고 항복했다. 궁전이 얼마나 아름다웠기에 싸워보지도 않고 궁전의 열쇠를 내주었단 말인가. 보압딜왕이 그토록 사랑했던 알람브라 궁전….
사비성의 궁궐이 나·당 연합군에 의해 모두 불타버렸다면, 알람브라 궁전은 연합국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에 의해 그대로 보존되었다.
의자왕이 백마강 뱃길을 따라 눈물을 흘리며 당나라로 끌려갔다면, 보압딜왕은 말을 타고 시애라 네바다 산맥에 올라 알람브라 궁전을 바라보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아프리카로 떠났다.
불타버린 사비성에 화려했던 백제의 옛 모습은 찾을 길 없고, 이따금 군창지에서 발견되는 불에 탄 군량미만이 잊힌 사비성의 전설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렇게 치열했던 전쟁 통에도 그 모습을 온전히 보존한 유물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정림사지오층석탑이다. 그 탑만이 사비성을 대표하는 유물로 남아 부여를 찾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사비성의 터줏대감이 된 정림사지오층석탑. 탑은 몸체의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 아래는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져 안정된 모습으로 의젓하게 서 있다. 장중하면서 부드럽고, 육중하면서도 경쾌한 백제 예술의 세련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 했던가? 이 탑도 전에는 평제탑(平濟塔)이라 불렀다. 당의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후, 탑 몸체와 탑 지붕의 받침돌에 총 2,126자의 ‘大唐平百濟國碑銘(대당평백제국비명)’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공적을 새겨 놓았기 때문이다. 글은 당나라 사람 하수량(賀遂亮)이 짓고, 글씨는 권회소(權懷素)가 썼다.
건축가들이 말하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은 동양에는 타지마할이요, 서양에는 알람브라(Alhamra) 궁전이라 했다. 궁전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침략군도 수개 월 동안 궁전을 포위한 채 공격하지 않았고, 보압딜왕도 궁전이 파괴될 것을 염려하여 싸우지 않고 항복했단 말인가. 나라보다 알람브라 궁전을 더 사랑했던 보압딜왕.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알람브라 궁전으로 가보자.
궁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아벤세라헤스 방으로 갔다. 들어가는 입구에 예쁜 레이스 커틴 모양의 아치와 그 위에 있는 벽 장식무늬가 너무나 섬세하고 정교하다. 어느 장인의 섬세한 손끝으로 곱게 짜놓은 레이스라고나 할까? 그곳에 들어서는 사람 모두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은 반구형으로 되어 있다. 꼭짓점이 8개인 별 모양으로 된 입체적 천장엔 각각 2개씩 16개의 창문이 있다. 해가 뜰 때면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5,000개의 정교한 벌집 모양에 비춰, 천장에선 환상적인 빛의 향연이 시작된다. 여기저기서 영롱한 빛에 취한 사람들의 탄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이방은 기하학적 문양의 타일과 벌집 모양으로 세공된 종유석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방에도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 후궁이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남자를 몰래 사랑한 까닭에, 그 가문의 남자 36명이 이 방에서 살해되었던 것이다.
화려한 아벤세라헤스 방을 뒤로하고 알람브라 성 밖에 있는 헤네랄리페 궁전으로 간다. 이곳은 꽃과 나무와 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여름 별궁이다. 길 양쪽에 조경이 잘된 사이프러스 나무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그곳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물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이곳은 50여 m의 직사각형 수로를 건물이 에워싸고 있는 스페인식 정원이다. 수로 양쪽에 경사지게 지그재그로 설치한 분수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 분수에서 서로 교차해 나오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수로에 떨어진다. 그 모양이 잘 그려 놓은 한 폭의 산수화다. 수로에 떨어지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뤄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다. 이때 어디선가 애잔한 기타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그래서였을까? 프란시스코 타레가는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불후의 명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고 한다.
알람브라 궁전. 혼자 보기엔 아깝고, 여럿이 보면 여기저기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는 그런 궁전이다.
빛과 공간, 물과 건축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곳, 그래 그라나다에선 “눈이 먼 것이야말로 최악의 형벌이다.”란 말이 나온 것 같다.
그러면 사비성을 찾아온 나그네들은 항상 허전한 마음을 안고 돌아가야 하는가?
알람브라에 헤네랄리페 별궁이 있다면, 사비성 남쪽엔 궁남지가 있다. 많은 사람이 궁남지 옛터에 핀 연꽃들을 보며 화려했던 옛 사비성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
사비성에도 나·당 연합군의 눈을 피해 꼭꼭 숨겨 놓았던 또 하나의 귀중한 보물이 있었다. 그것은 백제 예술의 진수요, 조각 예술의 걸작품인 백제금동대향로이다.
향로는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황 모양의 손잡이와 뚜껑, 몸체와 용 모양의 받침대이다. 손잡이에 있는 봉황은 향로의 맨 꼭대기에 앉아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펴 곧 날아갈 형상이다. 또한 뚜껑에는 산, 악사, 사람, 동물 등 101개의 형상이 있고, 연꽃 모양으로 된 몸체엔 불사조, 물고기 등 26마리의 동물들을 돋을새김하였다. 그리고 맨 아래의 받침대에는 용이 몸체인 연꽃을 입에 물고 승천하려는 기상이다.
향로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참으로 기묘하게 생겼다. 12폭 너른 병풍에도 그려 넣기 어려운 120여 개의 많은 형상(形象)을 이 작은 향로에 모두 새겨 넣었다. 이 향로는 사람이 만든 게 아니다. 신이 빚어 놓고 사람이 감상하는 향로인 것이다. 아름답고 정교한 조각 예술과 주조 기법을 합성해 놓은 사비 백제의 종합예술인 것이다.
백제금동대향로. 그 신비롭고 생동감 넘치는 자태는 두 눈으로 보기엔 너무 벅차서, 가슴 깊이 간직할 수밖에….
비록 궁궐은 불타고 없지만, 화려하고 찬란했던 사비 백제의 문화는 정림사지오층석탑과 백제금동대향로가 대신하고 있었다.
역사란 우리가 기억하고 공유할 때만 그 가치가 더욱 소중하다고 할 것이다.
사비성과 알람브라 궁전은 이렇듯 서로 같은 듯하면서 다른 특징이 있었다.
*김영곤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