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전달방식부터 시작해서 흠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지만
투박하고 성긴 이 못난이를 불쑥 들이미는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
많은 돌팔매 원합니다.
악몽 (초고)
<1>
일요일, 따가운 태양이 내 눈을 더듬는다. 마치 수십년간 땅 속에 묻혀 있었던 것처럼 내 몸은 굳
어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다. 몇시나 되었을까. 오후 1시. 선반위의 동그란 팬시 자명종은 말하
고 있다. 새로 이사한 집, 아내는 마치 자신의 평생의 꿈이 실현된 양 행복해했지만 나는 아직까
진 예전집이 그립다. 아직도 매일 밤 꼭 친구집에서 끼워 자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화장실에선 더욱 그러한 이질감을 느낀다. 얼굴에 대는 물의 미묘한 온도차이도 적응하기 어렵
다. 가끔은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어쨋거나 아내가 이 집을 좋아하니 이
사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도 곧 예전 집처럼 적응할테고..
허기를 느껴 찾은 부엌에는 아내가 차려놓은 듯한 점심밥상이 유아 취향의 소용돌이 문양 밥상
보로 덮여있었고 노란 포스트잍 한 장이 그 위에 들러붙어있었다. 메모를 굳이 읽어볼 필
요는 없다. 아내는 교회에 간 것이 분명하니까. 신물이 올라올 정도로 허기가 진데 반해 오랜시
간 잠을 자서 그런지 입맛이 영 돌지를 않았다. 냉장고를 열었더니 황도, 포도, 골뱅이, 옥수수..
갖가지 종류의 통조림들이 가득 들어있다. 그 중 황도를 꺼내들었다. 2008. 7. 13. 유통기한 확
인 이상무. 전에 먹다남은 멸치 부스러기와 시원한 병맥주를 같이 들고 거실로 나왔다.
어두운 거실에는 육중한 궤종시계만이 외로이 그러나 꾸준히 시간을 썰어내고 있었다. 커튼을
걷어내자 쏟아져 들어온 태양광이 실내를 순식간에 점령해버렸다. 동시에 태양이 끌고 온 자욱
한 먼지들이 이미 무방비의 공간을 다시 한 번 사살했다. 그리고 거실을 압도할만치 커다란 결혼
사진이 이의 모든 상황을 굽어보고 있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황도 원터치 캔을 따고 맥주도
비틀어 따는 순간 동시에 핸드폰이 울려댔다. 핸드폰이 어디 있더라. TV 옆에 나뒹구는 핸드폰
을 찾아 폴더를 열어보니 착신번호가 생소하다. 우린 어쩌면 과연 숫자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
도 모른다. 주민번호부터, 카드번호, 비밀번호, 그리고 근인들의 생일, 기념일들, 기억해야 할 일
련의 숫자군들을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생일이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저번
처럼 또 잊고 있다가 아내가 삐져버리면 굉장히 곤란하다. 나는 숫자들을 기억하는 능력이 부족
하다. 아차, 내 정신 좀 봐. 전화를 받아야지.
여보세요. 당첨되셨습니다. 제주도 여행권에.. 저희 월간지를 구독하시면.. 광고전화. 난 이런걸
잘 끊지를 못한다. 네.네. 대답하면서도 끊어야지. 빨리 확 끊어버려야지. 생각하지만. 됐어요!
이 한마디가 항상 혀 끝에서 맴도는 식이었다. 결국 가입하지도 않을 껄, 나는 ‘죄송합니다. 나중
에 할께요.’ 라는 멘트로 무려 10분간의 한심한 전화통화를 끝맺는다. 게다가 ‘죄송합니다’ 라니
도대체 내가 왜 죄송해야 하는거지.
그래서 모르는 번호가 떴을때는 받지 않는게 상책이다. 나같이 넓지 않은 인맥을 가진 사내가
알지도 못하는 번호를 받아서 이득 될 것은 거의 없다고 보면된다. 열이면 열이 다 광고전화인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나는 생각하면서도 매번 모르는 전화를 받는다. 혹시 오랜시간 연락이 끊
어졌던 반가운 동창의 전화가 아닐까. 뭐 그 따위의 기대감이 무의식중에 항상 상위순위를 차지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껏 매번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다시 소파에 앉아 숟가락을 들고
통조림의 황도를 퍼먹으며 멸치를 씹으며 시원한 밀러 맥주를 들이킨다. 소파에 몸을 더 깊숙이
기대고 다리를 꼬아 눕는다. 이 안락함이란.. 오늘 하루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다. 불쑥 내가 어쩌
면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정된 직장에 착하고 예쁜
아내. 그리고 이 간섭없는 주말. 이 정도면 남부럽지 않다는 생각과 이제 아이를 하나쯤 둬도 좋
지 않을까 하는 가족계획의 플랜이 머릿속에서 표그리기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였고 나는 역시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응답이 없다. 여보세요. 음음.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다시. 여보세요. 누구십니
까. 그러나. 뚜뚜. 끊어져 버렸다. 그 때 마침 오른쪽 어금니와 어금니 사이에 끼인 멸치의 구명신
호가 전해졌다. 동시에 긴 시간 나를 괴롭혀왔던 빌어먹을 치통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 순간
부터 주말도 더 이상 온전히 내 것이 아닐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주말은 현시간부로 치통이 접
수했다.
<2>
저녁 늦게야 아내가 돌아왔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질문보다 치통에 대한 투정으로 나는 아
내를 맞이했다. 내 얼굴은 심하게 아주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을 것이다. 아내는 슬쩍, 겸연쩍은
미소를 꺼내들며 ‘여보, 나 옷 샀어요.’라고 내게 동의를 구해왔다. 그래, 그러고 보니 처음보는
옷을 입고 있구나. 근데 왜 하필 보라색이지. 나는 보라색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
라색이네’라고 아내에게 말을 했다. 아내는 ‘괜찮아요?’라고 물었는데 옷이 잘 어울리는지를 물
은 것인지 갑작스런 소비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냥 뭉뚱그려
서 ‘좋아보여’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소파로 돌아와 앉아 생각했다. 왜 하필 보라색이지. 기분 나쁘게..
그렇다. 확실히 나는 보라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그 색은 음침하고 그래 꼭 죽음의 화신같
다. 아내가 앞으로 주로 입을 옷이니 더 이상 이렇게 싫어해서만은 서로가, 아니 주로 내가 불편
할 것이란 생각에 굳이 보라색을 싫어할 이유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또한 내가 보라색을
싫어하는 경위가 궁금하기도 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하고 싶어하는 성질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일까.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보라색을 싫어하는 그 경위를 말이다. 중학교 시절, 국어시간
이었다. 황순원의 ‘소나기’.. 아련하지만 그러나 확신하건데 소나기 속의 소녀는 분명 보라색을
좋아했다. 소녀가 소설 속에서 보라색 옷을 주로 입었었는지 아니면 보라색 꽃을 꺾었었는지 보
라색 스카프를 목에 둘렀었는지 따위는 기억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소녀가 보라색을 좋아했
고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만 이었다면 나는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고 더 이상 내 현
실의 삶에 소나기가 끼어들 틈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수업이 끝났고 친구들끼리
모여앉아 영양가 없는 잡담들을 평소처럼 떠벌이기 시작했는데 그 무리 중의 누군가가 그 때 이
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난 보라색이 재수 없어. 항상 역겹다고 생각했었는데 봐봐. 여기서도 죽음
과 병을 상징하는 색으로 쓰이잖아.’ 그 순간에 아마도 난 보라색과 죽음 사이에 어떤 필연의 인
과고리를 덜컹 채워버린 것 같다. 그게 끝이다.
실상 내가 평생토록 보라색을 가까이 두려하지 않았던 것이 그런 별것 아닌 이유 때문이라고 생
각하니 씁쓸한 웃음이 일었다. 아마도 그 이후 나는 살아오며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굳이 보라색
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러한 습관들이 퇴적되어 지금의 나의 취향을 더욱 굳건히 하고
어쩌면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순간 내가 마치 기계덩어리인
것 같이 느껴져 잠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쩌면 선과 악이라는 본질마저도 인류의 그리 하
찮은 습관이 퇴적되어 이루어 놓은 난지도에 불과할거라는 불온한 상념이 들 때 쯤, 아내가 새
로 산 옷을 입고 방에서 나오며 내게 물었다.
‘아차, 이는 괜찮아요?’ 라고.
<3>
회사이다. 지금은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파를 듬뿍 썰어 얹은 설렁탕을 먹고 매점에서 입 냄
새 제거 껌을 사 씹으며 부서로 올라왔다. 복도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마시려는데 어디선가 묘
한 향기가 났다. 자판기 커피 향처럼 익숙한 내음이 아니었다. 돌아보니 대기 의자에 인상적인
붉은 빛깔의 옷을 입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못 보던 여자였다. 이제껏 맡아본 적이 없는 묘한 그
향기는 그녀가 뿜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향기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것처럼 낯설었
다. 정말 묘한 것은 그 뜻밖의 경험에 오히려 동질감을 느꼈었다는 사실이다. 혹시 내 몸에서 나
는 냄새는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오히려 내 소매를 코에 들이대고 냄새를 맡아보았을 정도니까. 그
녀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얼른 시선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었다. 이유없이 무언가
를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스치듯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형체를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뽑았던 커피를 천천히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저기요 안녕하세요’ 돌아보니 그녀였다.
‘오늘부터 여기 옆 부서에서 일하게 된 사람인데요, 죄송하지만 XX과가 어디에 있나요. 처음이라
서..’ 그녀는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친절히 알려주었고 ‘고맙습니다, 종종 뵐께요.’
라고 말하고 그녀는 간단히 사라졌다. 대낮임에도 형광등이 환히 켜진 복도였지만 그녀는 마치
어둠으로 스며들어 버리듯이 홀연히, 동시에 그 인상적인 붉은 빛을 데리고 자취를 감추었다. 다
만 그 묘한 향기만이 사그라들지 않고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4>
지뢰찾기를 하고 있다. 오늘은 업무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열심히 달라붙었더니 금새 내 할당량
은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퇴근까지는 내 시간이다. 딸깍딸깍. 고급단계는 쉽지 않다. 불과
10X10도 안되는 사각형 안의 세계지만 지금은 한없이 광활하게만 느껴진다. 이번 판은 단서가
너무 없다. 이럴 땐 처음부터 내키는데로 마구 찔러보는 것이 최상책이다. 한 참 공을 들여 문제
를 푸는 도중에는 이렇게 맘 편히 찔러보기가 쉽지 않다. 어느샌가 이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 몇분 노력에의 집착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미지의 영역으로 뛰쳐들어갈 의지를 따를 수 없
다. 그래서 시작하자마자 우선은 이렇게 마구 찔러보는 것이 이 지뢰찾기의 요령이다. 아직까진
죽어도 그만, 재시작을 클릭하면 그만이다. 아무 미련도 없다. 좋아.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신기록
이다. 그 때 누군가가 날 불렀고 지뢰가 터졌다. 웃고 있던 스마일이 X.X 죽어버렸다. ‘O대리, 지
금 지하 카페에서 제수씨가 자네 기다린다는데.’ 카페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나를 기다린다
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이 아주 많았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그녀였고, 예의 그 인상적인 붉은 빛깔의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5>
‘어디까지 가십니까’ 택시 운전수가 물어왔다. 뒷좌석에 편히 기대어 앉은 나는 ‘△△동이요’라
고 대답했다. [사랑은 가질 수 없을 때 더욱 아름답다] 오늘 그녀가 선물해 준 책이다. 제목에서
도 어렴풋이 느껴지지만 잠시 읽어본 결과 역시나 틀림없는 신파였다. 불과 50페이지를 읽은 것
이지만 그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했고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찬란한 태양을 닮은 사랑을
했고 그런데 40페이지부터 여자의 집안에서 그 찬란한 태양의 사랑을 결사반대하며 나오기 시작
한 것이다. 이쯤되면 100페이지 즈음해서 여자가 병에, 그것도 반드시 백혈병에 걸리리라는 사
실은 굳이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확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성의는 고맙지
만 이 책을 더 이상 읽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추억하자면 내게도 글을 쓰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그런 비슷한 시절이 있지 않은가.
한창 무언가에 대한 열정으로 타오르던 시절. 나는 방학이면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나름의 분
신을 형상화하는 일에 몰두했었다. 연애소설을 쓰던 날엔 대상없이도 뜨거웠고 범죄소설을 쓰
던 밤길에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재촉했었다. 하루종일 귀에 꼽힌 이어폰에서는 조지 윈스턴의 쓸
쓸한 피아노 선율이 끊이지 않았고, 나는 그 일련의 쓸쓸한 아우라의 성(城)에서 나의 조약한 언
어로 그를 모방한 자기연민에의 배설덩어리들을 수없이 빚어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혼자 읽
고 또 읽었다. 그 소모적인 쾌락에 젊은 시절을 기꺼이 바쳤던.. 그런 때가 내겐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사랑보다는 냉소에 몸을 던지고 구원보다는 복수에 시선을 붙잡혔다. 피의 색깔
은 짙고 또한 더웠다. 마이너리티에 본인의 의지가 포함되면 그것이 프라이드가 될 수도 있는 것
이다. 그리하면 더 이상 마이너리티는 전복을 꿈꾸지 않는다. 다만 성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열
정이 뜨거웠던 만큼 나는 타자에 대해서,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타적이었다. 그리고
그 타자와의 벽이 굳건해질수록 이 후 모순과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아주 순리적
인 것이지만 그걸 그 때는 잘 알아채기도 어렵거니와 후에 깨닫게 되더라도 자기의지로 그곳을
빠져나오기란 그리 녹록치가 않은 일이다. 어쨌든 그 버릇이 남아 지금도 이런 종류의 신파소설
들을 접하게 될 때면 무관심을 넘어선 경멸감마저 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매우 순수
한 여자인 것 같다. 적어도 이런 사랑에 같이 마음 아파하고 같이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책을 덮고
선 며칠 밤을 같이 앓아 누웠을테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제멋대로 상상했다.
그 때 갑자기 택시가 섰다. 인적이 없는 도로가였다. 가로등이 듬성듬성 빠진 머리칼처럼 너부
러져 있었고 그 한복판이라 사위는 매우 어두웠다. 택시기사가 갑자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두려움이 고갤 내밀었다. 무슨 일일까. 나는 본능적으로 주변에
서 뭔가 단단한 것을 찾으려 했다. TV에서 보아오던 택시강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
문이다. 다행히 좌석 뒤의 선반에 관광 기념품인 듯싶은 효자손이 있었다. 효자손을 오른손으로
꽉 쥐어 잡고 한참을 앉아 있었으나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식은땀이 마르면서 한기가 몸을 감쌌
다. 나는 슬며시 택시에서 내려 주위를 살피었다. 그리고 도로가 한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
는 택시기사를 발견하였다. 다행히 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는 구토를 심하
게 한 것 같았다. 그가 힘겹게 몸을 추스르며 내게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따라 멀미가
좀 심해서, 차에서 조금 기다려 주십시오. 곧 가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차에 돌아와 앉아 생
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멀미하는 택시기사라니.. 그리고 여태껏 오른손에 꽉 쥐어진 효자손을 보
고 있자니 웃음이 계속 새어나왔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나는 한동안 실컷 웃어댔다.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스스로 웃는것인지 우는것인지 혼동을 느낄만
큼 의식해서 일부러 과장되게 웃어댔다. 잠깐 눈물이 맺힌 것 같았다. 나는 퍼뜩 이것도 마조히
즘 혹은 흔해빠진 나르시시즘 같다는 생각에 그 우스꽝스러운 짓을 한 순간 그만두었다. 그리고
비참해졌다.
<6>
‘밥 안 해놨는데... 미안해요. 라면이라도 끓여줄까요?’
‘저녁을 먹긴 먹었는데. 이상하니 출출하네. 부탁할게.’
아내가 라면을 끓이러 간 사이 난 예의 그 안락한 소파에 기대 누워 TV를 켰다. 마침 뉴스에서
는 오늘 일어난 사건 사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는데 매일 매일 그렇고 그런 세상 소식에 새삼 뉴
스라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도대체 저렇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뉴스라고 떠들어대
고 앉았으니 이 얼마나 무료한 세상살이인가. 차라리 신파소설 따위가 저런 뉴스에 비하면 참신
할 것이다. 채널을 돌렸다.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개그맨이 나와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웃음을
유도하고 있었다. 과장된 방청객의 웃음과 호응들이 오늘따라 몹시 거북하게 느껴졌다. 한 곳에
선 사건소식을 전하고 한 곳에선 개그판이 벌어진다. TV를 통해 찰나의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세
계를 경험한다. 이를테면 지금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조기축구회에 갔다가 동시에 누
나는 강간을 당하고 이 때 동생은 자기 키만한 잉어를 낚아올리는 꼴이다. 모든 것이 한 순간 동
시에 일어난다. 그래서 어느 날엔 TV가 판타지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판타지가 생활이 되
면서 오히려 그것이 이제는 이 세계의 진부함을 더욱 공고히한 것은 아닌가 싶어 쓸쓸해진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있을까. 그리고 온전히 나의 것 이란게 있을까싶다. 내 감성도 이제 분명히
내 소유는 아니다. 덕분에 난 스스로가 일종의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건 이 시대, 누구에게도 자유로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가만 있어보자 근데 그 책을 내가 들어와서 어디에 뒀던가. 그 때,
‘라면 다 끓였어요. 와서 먹어요’
그래 라면은 라면이고
‘저기 아까 내가 들어올 때 들고 있던 거 그거 내가 어디에 놨는지 기억나?’
‘글쎄요.. 뭔데요?’
어디에 놨더라.. 아무리 찾아도 책이 보이질 않는다. 방에다 놨나?
그런데 이게 뭐야.
‘한 큐에 끝내는 TOEIC? 이거 당신이 산거야?’
‘그거요? 예. 영어공부 좀 해보려고요..’
‘이거 혹시 전화 판매하는 거 아냐? 1년 정기 구독하면 뭐시기 뭐 사은품 준다는 거’
‘예, 그게 유명강사가 쓴 건데 참 잘 나와 있데요. 그리고..’
‘서점가면 잘 나온 교재가 얼마나 많은데 이런 걸 사. 전화판매 그거 다 속여파는거 아냐. 알아
서 잘 팔리면 뭐 하러 전화질까지 하겠어. 그리고 생각 좀 해봐. 제목도 한 큐에 끝내는 TOEIC 이
라면서 1년 어치를 팔아넘기는 게 말이 되니? 1년이면 백 큐는 치겠다.’
아내의 대꾸가 없다. 이거야말로 한 큐에 알 수 있다. 또 삐진 것이다. 젠장.
후루룩.
라면은 또 왜 이리 떫은가.
‘저기 내가 저번에 이 라면 사지 말랬잖아. 기억 안나? 그리고 또 이거 왜 이리 띵띵 불었어.’
쿵. 그 때 방문이 닫혔고 내 얼굴은 일그러졌다. 모든 악재는 한 큐에 일어난다. 아내는 우는 것
이고 동시에 치통이 재발한 것이다.
<7>
이제 제법 바람이 쌀쌀하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진통제를 녹
여 먹으며 난 또 다시 다짐한다. 내일은 조퇴를 해서라도 반드시 치과에 갈 것이라고. 1년이 넘도
록 한 솥밥을 먹어 온 충치 덕에 이제는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 할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
다. 굳이 별 일 아닌 일로 아내에게 뭐라고 한 것도 어쩌면 치통에 대한 예감에서 온 히스테리일
런지도 모른다. 아내는 참 착한 여자다. 세상 사람들이 정확히 뭘 기준으로 착하다 아니다 하는
지는 내 모르겠지만 나의 아내는 그 비슷한 기준에 의해서 보편성을 획득한 정말로 착한 여자임
에는 분명하다. 난 무엇 때문에 아내를 처음 보던 날 그리 맘에 들어 했던 걸까. 잘은 몰라도 내
가 꿈꾸어 온 이상적인 삶의 빈 틈새에 아내는 아주 꼭 들어맞는 레고 블록이라고 그때의 난 생
각했었다. 현재는? 사실 매순간의 나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낼 수는 없다. 하루에도 셀 수 없
이 쏟아지는 선택의 순간에서 나는 무엇에 의지해 무엇을 집어 들었던 것일까. 고정불변한 가치
가 없듯이 이미 행해진 선택에의 자가 평가마저도 선과 악의 양극단을 오늘 내일 끊임없이 오고
갈 것이다. 자장면과 짬뽕 사이에서의 번민이 이 사회의 Frequently Asked Question이 된 것을
보면 다른 이들도 사실은 나와 별 반 다를 것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것은 곧
안도감과 동시에 패배감으로 다가왔다. 모든 것은 결국 확률의 문제이다. 그래서 다들 취향이
그 수준이고 뉴스가 그 따위인 것이다.
불쑥 참을 수 없는 파괴에의 충동이 치밀어 올랐다. 이 자동차를 부수고 싶고, 저 건물을 폭파시
켜버리고 싶고, 이 덩치 큰 사내를 때려눕히고 싶고, 무엇보다 이 빌어먹을 이빨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나타난 그녀는 여전히 그 묘한 향기를 발산해 주었고 여전히 그 인상적인 붉은 빛깔의 옷
을 입고 있었으며 작금은 내게 자애로운 미소까지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 표정은 마치 ‘지금 당신
의 심정을 다 헤아리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나는 이 순간 주저 없이 그녀
를 선택할 수 있었다.
<8>
눈을 뜨니 먼저 일어난 그녀가 의자에 앉아 나를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
에는 빨간 칵테일이 늘씬 잘 빠진 글라스에 담겨 출렁이고 있었다. 한 벽면을 다 차지하는 커다
란 창문을 통해 황금빛 찬란한 태양이 쏟아져 들어와 온 방안을 다 감싸 안았다. 나는 순간 그녀
와의 꿈같은 여행을 상상을 했다. 여기는 남쪽의 겨울 없는 해변가, 나는 이제 일어나 카푸치노
커피를 마시고 오전엔 그녀와 해변가를 걷을 것이다. 분명히 하얀 강아지가 우리를 졸졸 쫓아다
닐 것이고 그녀는 행복하게 웃겠지. 그리고 오후 느지막이 보트를 타고 근 바다로 낚시를 나갔다
가 그녀와 함께 배 위에서 일몰을 바라보면서 키스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완벽한 하루인가.
그 때 슬며시 그녀가 내게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내밀며 사랑스런 목소리로 ‘우리 함께 떠나요’라
고 말했다. 근데 나는 사실 꽃을 싫어한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유는 역시나 단순 명료했다. 이
제껏 살아오며 그간 내가 꽃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 때 나는 그녀와 도망치
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녀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역질이 났다. 무엇이 그 순
간 나를 붙잡았던 것일까. 나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9>
딩동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초인종을 누르며 나는 고민했다. 대답이 없었다. 불안했다. 아내가 집을 나
가버린 것은 아닐까. 그 여린 마음에 상처를 받고. 난 정말 못난 놈이야. 그렇게 착한 아내에게 그
리 몹쓸 말들을 쏟아내었다니. 아니지. 설마 그만한 일로 집을 나가기야 했을라고. 나는 상황을
너무 과장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난 그저 투정을 한 번 부린 것뿐이었다. 때마침 치통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딩동. 다시 벨을 눌렀다. 제발! 주말엔 아내와 함께 다정히 교회에 다녀와 오후엔 서
울근교로 드라이브를, 그리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식사를 나는 스스로 굳게
다짐했다. 그러니 제발 문만 열어다오. 아이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 날엔 주말메뉴를 김밥 싸
들고 오손도손 동물원으로 바꾸어볼까. 아~아 그러니 제발!! 비명이라도 튀어나올 무렵.
덜컹. 문이 열렸고 내 앞에는 잠이 덜 깬 듯한 표정의 아내가 서 있었다. ‘미안해요, 기다리다 깜
빡 잠이 들어버렸어요. 괜찮아요?’ 시계를 들여다보니 2004년 11월 20일 새벽 4시였다. 나는 무
심히 손을 내밀었고 그 손에는 빨간 장미 한 송이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생일 축
하해’
<10>
난 지금 아내의 손을 붙잡고 치과에 왔다. 치료 석에 앉아 치과의사의 기적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아내는 대기석에서 여성잡지를 뒤적이고 있다. 난 행복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치통만 사라지면 모든 게 더욱 잘 되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안정된 직
장에 착하고 예쁜 아내, 건강한 이빨, 그리고 열 달 후에 태어날 나의 2세. 나에게 무엇이 더 필요
하단 말인가. 모두가 꿈꾸는 삶 아니던가. 난 항상 감사하고 있다. 게다가 오늘따라 아내가 왜 이
리 예뻐 보이는 걸까. ‘이야, 오늘 코디 괜찮은데. 역시 당신은 빨간색 옷이 아주 잘 어울려.’ 했더
니 ‘당신도 참, 누가 색맹 아니랄까봐, 이게 어떻게 빨간 색이에요 연두색이지, 어쨌든 고마워요’
하는 것이었다. ‘그런가, 좀 헷갈리네.’ 나는 멋쩍게 웃었다. 아무려면 어떤가.
‘자 입 벌리세요.’
불이 켜지고 시야에 자비로운 치과의사의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진한 마취향이 돌았고 뽑혀 나
온 그 시커먼 충치를 눈으로 확인했고, 현기증이 잠깐 났다. 몹시 피로했다. 그래 지독한 악몽이
었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내 질식할 듯 깊은 평온함이 찾아왔고,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첫댓글 아 좋군요. 현실, 현상을 인식, 사물과 그 인식과의 관계. 생즉고라는 말이 다시 한 번 떠오르는 군요. 치통. 아마도 현실의 고통을 대표하는 대표고통을 치통으로, 그리고 그 고통과 인간과의 관계가 참 좋습니다. 그리고 악몽. 현실과 현상, 사물의 무의미함을 악몽이란 표현으로 참 잘 이끌어 내신 것 같습니다.
많은 사유가 보입니다. 깊은 통찰도 적지 않군요. 초입의 시제 혼용이 조금 눈에 거슬립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것 같진 않은데, 시제상의 혼용이 보이는 것은 의도라기보다는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몇 맞춤법이 틀린 곳도 조금 거슬립니다. 퇴고의 과정이 조금 짧으셨던 것은 아닌가 싶고요. 초고라 그렇겠지요.
하지만 요런 실수는 정말 소소한 것이고요. 전체적인 주제 표출이나 문체는 아주 좋았습니다. 다만 너무 거시적인 관점이어서 그런지 소설에서 등장해야할 명확한 갈등관계가 없다는 것이 흠이군요. 갈등이 없는 귀결은 모호하기 쉽고, 독자에게 전파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독백 수준을 넘어서는 내면의 갈등에
조금 더 치밀한 묘사를 하셨더라면 좋았지 싶습니다. 하지만 그대로도 좋은 것이 독자에게 그만큼 상상의 여지를 주는 점도 있고, 또한 생각대로 행동하는 주인공으로써 표출해낸 현대인의 군상또한 짙게 배어 있어 좋습니다. 몇번 더 읽어 봐야겠지만, 첫 느낌에도 공감할만한 부분이 많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아..역시..알타리님의 감상문은..그냥 봐두 도움이 되네요. 아..그냥 저는 디게 잘 읽었어요. 디게 잘 쓴다..라고 느꼈습니다//오옷..감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