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0) 2023년12월 환경동우회 2023년 제2호
시집살이시킨 며느리, 당하는 시어머니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저 친구들 하고 점심 먹고 돌아 올 때까지 아침 먹은 밥그릇 설거지도, 집안청소도, 해 놓으세요? 알았죠?”
대답을 하지 않자, “왜 싫으세요?”
“아니다 그래 잘 다녀오너라.”
2010년을 전후 요즘 70대 후반 80대 90대 시어머니들의 한숨소리가 고막을 친다. 그들이 꽃가마타고 시집갔던 며느리시절에는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였는데, 이제부터 너는 내 집 가풍을 따라야 한다. 면서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켰다. 그 때문에 신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았다. 흐르는 눈물을 남몰래 훔치며 가슴 조이고 살았었다. 그렇다고 친정에 갈 수도 없었고 간들 받아주지도 않았다.
우선 친정을 가려면 시어머니 승낙을 받아야 했으며, 시집살이로 힘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친정집에 가면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발걸음도 못 하게 했다. 그래서 고달픈 시집살이 참고 견디며 살 수밖에 없었다. 시집살이 견디지 못해 죽게 돼도 시집에서 죽어야 했다.
그렇게 시집살이 견디며 살아 온 며느리가 이제 시어머니가 되자 세상이 변해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시집살이시킨다. 시집살이 수준을 넘어 학대를 한다.
살아있는 70대 중반 이후 여자들 그들이 젊어서는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늙어서는 며느리에게 시집살이 같은 학대를 받고 산다며하는 하소연이고 한숨이다. 70대 후반의 한 여인이 한 이야기다.
그 여인은 아들 하나를 낳아서 애지중지 키워 장가를 보냈다 작으나마 아파트까지 마련 따로 살림을 내보냈다. 하나뿐인 며느리라서 딸처럼 예뻐했다. 함께 쇼핑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틈틈이 시간을 내 며느리 집에 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며느리는 인사를 하고 자기 볼일만 보며 말을 하지 않아 멋쩍었다. 내가 며느리에게 무엇인가를 잘 못했나 걱정을 하기도?
한번은 며느리가 시집을 오고 처음 생일을 맞았다.
“시어머니가 선물을 하고 싶은데 무엇이 좋겠니? 기왕 할 선물 네가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것을 해주겠다. 어서 말해보렴 돈은 얼마가 되던 걱정 말고 말해 줘.” 그렇게 말 했다.
“시어머니 괜찮아요. 안 해주셔도 됩니다.”
“아니다. 어려워 말고 말해봐,”
“필요 없다니까요. 특별히 갖고 싶은 것도 없고요.”
“그러지 말고 말해보라니까.”
“정 그렇다면 말씀 드릴 깨요. 말씀드리면 꼭 들어주실 거죠.”
“그렇다니까? 어서 말 하라니까?”
“그럼 말씀드릴게요. 시어머니! 앞으로는 저희 집에 오지마세요. 저 불편하거든요. 시어머니 얼굴만 쳐다보면 숨통이 막힐 것만 같아요. 그렇게 해 주실 거죠?”
기가 막혔다. 며느리가 그런 줄도 모르고 며느리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기회만 있으면 찾아가고 좋은 옷도, 맛있는 음식도 사 먹이고, 생일선물 사주겠다고 했었으니 바보짓이었다.
시어머니는 내가 잘 못 들었을 거야 착한 우리 며느리가 그럴 리가 없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때 며느리가
“시어머니” 하고 부른다.
“그래 애야 말해 보아라.” 했더니
“제 부탁 들어 주시는 거죠. 믿어도 되는 거죠.” 하는데 어이가 없어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이 이야기는 어느 한 가정의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며느리 중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며느리들이 없지 않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정신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그래서 나를 알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사고와 의식이 있다.
또한 공동생활을 한다. 공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배려가 그 무엇보다 필요하다. 자유가 아닌 자기 구속도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 진정한 삶, 행복한 삶의 세계가 펼쳐진다.
요즘 며느리와 시어머니도 봉건적 사고에 깊이 빠진 구시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아닌 부모와 자식으로서의 정겹고 즐겁고 행복한 가정을 함께하는 구성원이라 생각해야 한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가 아닌 섬겨야할 어른으로, 사랑해야할 며느리로. 사고가 달라져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며느리가 시어머니 시집살이를 하거나 확대해선 안 된다. 시어머니 또한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예로부터 효자 효부 집에서 효자 효부 낳는다 했다. 다시 말해 자식 앞에서 내가 부모에게 잘해야 그것을 본 자식이 자기 부모에게 잘한다는 말이다.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