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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5:1-39
▣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정죄-마태복음 15장-
우리는 계속해서 왕의 은신(14-20장)을 다루고 있다. 본 장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로부터 철수하셔서(21절)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가셨고 거기서 갈릴리로(29절), 마침내 갈릴리에서 마가단 해변으로 가셨음을 본다(39절). 이 기간 동안에 주님은 유대 지도자들과의 공개적인 마찰을 피하셨으며,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십자가에서의 그의 죽음을 준비시키고 계셨다.
본 장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유대 지도자들(진리 대 전통)/ 1-20절
-예수 그리스도와 이방인들/ 21-33절
1. 예수 그리스도와 유대 지도자들-진리 대 전통(15:1-20)
그들의 비난(1-2절)-이 종교적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에게 불리한 어떤 허물을 찾고 있었다. 아마도 예루살렘 공회에서 공식적인 위원회가 이루어졌던 것이 분명하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먹을 때에 씻는 예식을 행하지 않음이 유대 장로들의 전통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이 사건과 몇 주 전의 5,000명을 먹이신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는 듯하다.
유대인들은 전통을 더 존중하였다. 미슈나(유대인의 전통 모음집)에는 “랍비들의 교훈과 모순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성경에 모순되는 것보다도 더 큰 범죄이다“라고 되어 있다. 랍비 엘르아셀은 “전통과 반대되게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에게는 장차 올 세상에서 받을 분깃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23장 25-26절에서 그들의 씻는 전통을 정죄하셨다.
그리스도의 응답(3-9절)-그리스도는 언제나 고발자들을 침묵시키는 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셨음을 명심하자. 주님은 그들 자신의 불순종을 출애굽기 20장 12절과 21장 17절에서 지적하신다.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께 “헌납“함으로써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부모를 돌보아야 할 의무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전통을 주의깊게 지키면서도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가! 그리스도는 이사야 29장 13절을 들어 그들의 종교가 마음에 있지 않고 다만 외적인 행위일 뿐임을 나타내신다. 그들은 “참된 의는 안으로부터 온다“는 산상 수훈의 교훈을 놓친 것이다.
그리스도의 공지 사항(10-11절)-그리스도는 전체 대중에게 연설하시며바리새인의 전통이 무익하고 공허한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앞서 그는 성경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그들의 과오를 나타내기 위하여 명백한 논리를 사용하신다. 음식은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므로 인간을 더럽힐 수가 없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전쟁의 선포로 보았다!
그리스도의 설명(12-20절)-제자들까지도 대경실색하였다! 베드로조차 그의 명백한 가르침을 “비유“라고 불렀다. 인간의 전통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단순한 진리를 믿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스도는 거룩함이란 마음에서 나오는 문제라고 설명하신다. 사람들은 흔히 여기 열거된 죄들에 대해 마귀를 탓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의 사악함을 탓하신다. 이는 곧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야 하며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날 세계는 종교적인 전통들에 묶여 있으며 도전을 받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곧 영감받은 진리를 공표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전통 사이의 모순을 눈여겨보자.
인간의 전통 하나님의 진리
멍에를 씌우는 외적인 형식 자유를 가져오는 내적인 믿음
율법의 문자에 구속받은 하찮은 율법의 정신인 기본적인 원리
규율
인간을 높이는 인간이 만든 율법 인간을 겸손케하는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
“종교적인 경건“을 산출함-사망 참된 거룩함을 가져옴-생명
인간을 통하여 왔으나 비인격적임 인격적임-하나님과의 교제
우리는 참된 종교가 마음에서 온다는 사실을 계속적으로 상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마음으로 믿으며(롬 10:9-10) 마음으로 사랑하고(마 22:37), 마음에서 찬송하고(골 3:16),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고(롬 6:17), 마음으로부터 드리며(고후 9:7), 마음으로부터 기도한다(시 51:10/시 51:17)."
2. 예수 그리스도와 이방인(15:21-39)
예수께서 이제 이방인의 지역을 향하여 출발하시려고 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 여인의 영적인 상태는 에베소 2장 11-12절에 묘사되어 있다.
이방인을 고치신 두 경우에 있어서 모두 먼 거리에서 고치셨음은 주목할 일이다(본문/ 마 8:5-13). 영적으로 말할 때 이방인들은 “저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 사람들에게 가시게 되는 일은 비밀이 아니었다(마 12:17-21).
그리스도는 이 여인의 간청을 네 가지 다른 방법으로 응수하셨다. 첫째는 침묵을 지키셨고 다음으로는 거절하셨고, 그 다음에는 그 여자를 책망하시는 듯했으며, 마침내는 그녀의 믿음을 상으로 갚아 주셨다.
주님께서 그녀의 간청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한가지는 이방인인 그녀가 유대인의 용어인 “다윗의 아들“이란 말로 접근해왔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먼저 유대인이 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주님“이라고 부르자 주님은 그녀의 간청에 응답하셨다(롬 10:12-13 참조). 물론 주님의 지체하심은 그녀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이방인들은 유대 민족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기꺼이 취하려 했었다. 주께서 큰 믿음을 지녔다고 추천하신 두 사람이 모두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유대인에 대한 기소장이 아닐 수없었다!(마 8:10/마 15:28)
32-39절에 나오는 군중은 주로 이방인들이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하여 이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4000명을 먹이신 사건을 앞서 행하신 5,000명을 먹이신 사건과 혼동하지 말자. 다음의 도표는 두 사건의 대표적인 면을 보여 준다.
오천명을 먹이심(마 14:15-21) 대조점 사천명을 먹이심(마 15:32-39)
유대인 주요대상 이방인
갈릴리 벳새다 장 소 데가볼리(막 8:31- 이하)
떡 다섯개,물고기 두마리 사용된 것 떡일곱개,작은생선두어마리
열 두 바구니 남은 양 일곱 바구니
봄 시기 여름
하루 모인 기간 사흘
제자들이 주님의 능력을 깨닫는 데에 참으로 느리다! 33절에 나오는 그들의 불신앙은 5,000명을 먹이신 이전의 기적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주님이 이방인들을 먹이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변화가 있음을 제자들이 배워야 할 또하나의 교훈이기도 했다. 그리스도는 유대인을 구원하고 만족시켜 줄 것을 원하셨을 뿐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하시며 만족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 기적에 내포된 영적인 교훈들에 대하여 마태복음 14장에 나온 대목을 점검해 보자.
▣ 실천적인 교훈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전통보다 중요하다.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전통“이란 말을 썼을 때는 인간의 전통이 아니라 사도들이 말로 전한 교훈을 가리킨다(살후 2:15/살후 3:16/고전 11:2). 그 교훈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첨가하거나 전통으로 인하여 말씀에 힘을 잃게하는 것은 위험하다. 누군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당신의 성경을 단단히 제본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하나님 말씀에 전통을 첨부한다는 것은 당신의 영혼에 진노를 첨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전통을 깨는 데에는 참으로 느리다. 사실상, 다른 사람들의 말은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의심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교회를 축복해 주시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떤 값을 치를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순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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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1-28
▣ 위대한 고백-마태복음 16장-
본 장에서의 가장 핵심이 되는 교훈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지만, 그래도 배경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 전체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은신“ 중에 있으며, 주님은 다가오는 죽음과 고난을 위해 제자들을 준비시키고 계심을 기억하자. 이 지점에서의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은신 기간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 순간으로부터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시게 될 것을 공개적으로 가르치셨으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들의 길을 가기 시작하였다.
본 장에는 대립(Conflict/ 1-5절), 혼란(Confusion/ 6-12절), 고백(Confession/ 13-20절), 바로잡음(Correction/ 21-28절)의 네 가지 뚜렷한 움직임이 보인다.
1. 대립-대적들에게 시험당하시는 그리스도(16:1-5)
서로 원수 관계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그리스도를 시험하기 위하여 서로 연합한 것을 주목하자! 이와 같은 이유로 빌라도와 헤롯은 “친구가 되었다“(눅 23:6-12),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이 땅에 속한 표적들로 여겨 신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들은 과거에 엘리야가 했던 대로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거나, 또는 모세가 했듯이 하늘로부터 떡이 내려오기를 원하였는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신다.
-이들은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일들은 해석할 수가 있으나 영적인 일들을 해석할 수가 없다.
-그들은 사악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그들의 공허한 종교를 위하여 참되신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의 종교적인 사람들과 얼마나 유사한가 !
주님은 다시금 그의 죽으심과 장사와 부활을 지적하셨고, 선지자 요나를 언급하심으로써 그의 사역이 이방인을 위한 것이 될 것을 나타내셨다(본 서의 12장 해설 참조)."
2. 혼란-제자들의 불신앙(16:6-12)
제자들은 영적인 일보다 육신적인 일들에 관하여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통탄할 상태에 관하여 유감으로 생각하고 계신 동안에, 제자들은 떡을 가져오는 것을 잊은 일로 안달하고 있었다.
4,000명을 먹이고 남은 일곱 광주리는(마 15:37)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영적인 일들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으로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오직 육신적인 떡만을 생각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마태복음 13장 22절의 예증이 되는 일들이었다. 즉, 세상의 염려로 말씀이 막히는 것이다. 그들은 믿음이 없음을 인하여 책망을 들었다. 떡이 필요하다면 주님이 그것을 공급하실 것을 의지할 수가 없었단 말인가 ! 예수께서는 떡 몇 조각과 생선 몇 마리로 4,000명을 먹이지 않으셨던가!
누가복음 12장 1절은 누룩을 외식이라고 명명하는데, 왜냐하면 외식(거짓된 삶)이라는 누룩과 거짓 교리들이 신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교회에 들어가게 되면 은밀하게 자라나 전체를 부패시키기 때문이다(고전 5:6).
3. 고백-그리스도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16:13-20)
민중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얼마나 혼돈을 일으키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주님을 높이 존중해야 할 사람으로 여겼으며 위대한 선지자의 위치에 그를 두었으나, 그분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볼 수 있는 인식력은 결여되어 있었다. 민중은 주님을 세례(침례)요한과도 비교하였으나 이들 두사람의 사역은 비슷하지 않았다(마 11:18-19). 아버지 하나님의 계시와(마 11:27-) 성령의 증거가 없이는(고전 12:3) 아무도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고백은 구원을 받는 데 중요한 일이다(요일 5:10/요일 2:22-23/요 20:31).
18-19절은 수십 세기를 내려오며 논란이 되고 있다. 카톨릭 교도들은 이 구절들로부터 교황의 직무와 인간의 삶을 다스릴 교회의 권한을 주장하지만, 복음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완전히 다르게 보고 있다. 이 구절의 상징들을 살펴봄으로써, 성경이 있는 그대로를 스스로 말하게 하자.
반석-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이사야 28장 16절을 인용하시면서 이를 언급하셨으며(마 21:42) 베드로 자신도 그렇게 말했다(벧전 2:4-8/행 4:11-12/시 118:22).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 그리스도를 반석이라고 지칭했으며, 반복해서 말하기를 교회의 머리라고 하였다(엡 1:20-23/엡 4:8-16/엡 5:23/골 1:18 참조). 구약전체를 통하여 반석은 인간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신 32:45/단 2:45/시 18:2).
예수께서는 “너는 베드로(페트로스-작은 바위)라, 내가 이 반석(페트라-기초가 되는 거대한 암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고전 3:11 참조).
열쇠-이것은 왕국에서의 베드로의 청지기 직분을 가리킨다. 이 열쇠들은 교회의 열쇠가 아니라 왕국의 열쇠이며, 죽게 하거나 영원히 살게 하는 열쇠가 아니다. 그러한 열쇠는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다(계 1:18).
성경에서 열쇠는 권한과 청지기 직분을 상징한다(사 22:22/눅 11:52). 베드로는 이 열쇠를 유대인들과(행 2장), 사마리아인들(행 8장), 이방인들에게(행 10:1-), “믿음의 문을 열어 줄“ 때(행 14:27) 사용하였다. 이것은 청지기직분으로서, 주인 노릇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매고 푼다는 의미-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것을 뜻한다. 18장 18절에서 이 말은 교회에서의 징계에 사용되었으며, 그 권한은 베드로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졌다.
그 시대에는 랍비가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거나 허락할 때에 “매고 푼다“는 말을 사용하였다. 윌리암의 신약 성경을 보면 더욱 상세하게 번역이 되어 있다. “...무엇이든지 땅에서 네가 금하는 것은 천국에서는 이미 금지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네가 땅에서 허락하는 것은 천국에서는 이미 허락된 것임이 분명하다.“ 이러므로 교회는 천국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를 말하지 않으며 천국이 교회에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을 이 땅 위에서 순종한다!(Amplified NT와-Expanded NT 참조)
베드로는 교황이 되겠다고 주장한 일은 결코 없다(벧전 5:1-4). 베드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에 유의하자. 이 구절은 신약에서 “교회“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이 단어야말로 바울의 사역에 보다 큰 의미를 가져다 준 것이다."
4. 바로잡음-거치는 돌이 된 베드로(16:21-28)
그리스도는 그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죽음을 공개적으로 알리신다. 주님은 이미 여러 가지 상징들로 자신의 죽음을 알리셨으나(요 2:19/요 3:14/요 6:15/마 9:15/마 12:40-41), 이제는 공개적으로 말씀하셨다(막 8:32).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충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특히 베드로는 십자가를 지는 대신 우회해 가실 것을 권함으로써 마태복음 4장 8-10절에 나오는 사단의 시험을 반복하였다. 사단은 베드로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순종의 좁은 길에 거치는 돌이 되게 한 것이 분명하다. 사단은 다시 베드로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을 방해하였다(눅 22:31- 이하).
그리스도는 베드로를 꾸짖으셨고 신자의 삶에 놓여 있는 십자가의 중요성을 가르치셨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아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치욕을 짊어지고 순종하며 주님을 따름에 있어 세상과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뜻한다. 베드로는 고난과 영광이 언제나 함께 다닌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벧전 4:12-19/벧전 5:1/벧전 5:10).
▣ 반석에 대한 부가적 연구
에베소서 2장 20절은 가끔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석이었음을 “입증“하는 데에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만일 그러하다면 다른 사도들과 신약 예언자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석“이란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구성된 기초란 뜻이 아니라 그들의 사역을 통하여 놓여진 기초, 즉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고전 3:11).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는 거침이 되는 돌이었다(롬 9:32). 이방 민족들에게는 다니엘 2장 34절에 나오는 쳐부수는 돌일 것이며, 잃어버린 자들에게는 마태복음 21장 44절에 나오는 가루로 만드는 돌이다. 그러나 교회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기초석이며 으뜸되는 모퉁이 돌이시다(고전 3:11/엡 2:20). 그는 어느 날 이스라엘 지상 왕국의 택함받은 돌이 되실 것이다(사 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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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7:1-27
▣ 변화산 상의 그리스도-마태복음 17장-
1. 영광의 왕(17:1-13)
그리스도의 변화는 그의 지상 사역 중 핵심적인 사건의 하나로서, 인간의 육신에 가리워진 그의 영광이 빛을 발한 유일한 경우이다(요 1:14 참조).
“변화하다“라는 단어는 우리가 보통 변형이라고 쓰는 말과 같은 뜻으로, “내면 세계의 변화“를 말한다. 이 영광은 외부에서 온 빛의 반사가 아니라, 내적인 거룩함이 나타난 것이다. 같은 단어가 로마서 12장 2절(rransfrmd)과 고린도후서 3장 18절(Changed)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성장을 가리킨다.
동참자들-그리스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모세, 엘리야, 그리고 성부 하나님으로서, 모두 일곱이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가지 특별한 경험을 한다. 곧 변화산에서, 야이로의 집에서(막 5:37-) 겟세마네 동산에서(마 26:36-46)이다. 각 경우마다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교훈을 주셨다.
목적-무엇보다도 변화는 다가오는 왕국의 상징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 중 더러는 왕국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볼 때까지 죽음을 보지 않을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셨었다(마 16:28). 베드로후서 1장 16-20절을 주의깊게 읽으면 이 구절이 약속된 왕국과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었고(16:16)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실이라는 것을 배웠다(16:21-23). 그와 다른 제자들은 아마도 이렇게 묻고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는다면 왕국에 대한 모든 약속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약속들이 성취될 것인가?“ 그리스도는 그의 변화를 통하여 말씀이 굳게 설 것이며 왕국이 임할 것임을 확신시키셨다.
이 장면은 실제로 왕국의 모형이다. 그리스도가 영화롭게 되셨다. 세 사도들은 구속받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며, 모세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을 대표한다. 엘리야는 휴거된 성도들을 대표하고(엘리야는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기슭에 있는 군중들은 다른 민족들을 대표하고 있다.
또다른 목적은 주께서 받을 고난을 위하여 힘을 북돋아 주는 데에 있었다.모세와 엘리야는 다가오는 예루살렘에서의 죽음(문자적으로 말한다면 “탈출“)에 대하여 주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또한 아버지의 음성이 아들을 격려하였다. 이것은 또한 제자들에게도 격려가 되었는데, 주님이 고난과 죽음을 경험할 때에 이들은 주님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만일 이들이 이 장면을 기억했다면 주님을 저버리거나 주께서 죽으셨을 때 희망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험-베드로는 다시 육적인 관점으로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지 못하게 하려고 부추킨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를 꾸짖으신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이 말은 오늘날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시는 멧세지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기 때문이다(히 1:1-3).
구약을 대표하는 율법(모세)과 선지자(엘리야)가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눅 24:27/눅 24:44). 그런데 그리스도는 모세와 엘리야보다 우월하시다(롬 10:4/행 10:43). “오직 예수“(8절)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오직 한 가지 안전한 마음가짐이다.
당황-산을 내려오며 제자들은 말라기 4장 5-6절과 3장 1절에 나오는 약속을 가리키며 엘리야에 대하여 주님께 물었다. 그리스도는 세례(침례)요한이 영적으로 이 약속들을 성취한 것이라고 언급하신다(눅 1:17). 그런데 엘리야 자신도 왔었다(마 11 장 / 본 서의 “말라기“ 참조)."
2. 능력의 왕(17:14-21)
우리는 왕과 더불어 영광의 산에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는 없다. 우리는 사단이 역사하고 있어 도움이 필요한 골짜기로 주님과 더불어 내려가야만 한다. “휘장안“과 “영문 밖“은 승리를 위한 필수적인 두 가지 요소이다(히 10:19-22/히 13:13).
산기슭에 남아 있던 아홉 제자들은 실패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신 귀신을 극복하는 능력을 잃었던 것이다(10:8). 원인은 그들의 불신앙과 헌신의 결여에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다른 세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올라갔기 때문에 시기했을런지도 모른다. 은밀한 죄가 우리에게서 능력을 훔쳐간다.
여기 상징적인 모습이 나온다. 왕이 다시 오실 때 그가 사단을 결박하실 것이며 마귀의 능력으로부터 세상을 자유롭게 하실 것이다(계 19:11-/계 20:1-3).
3. 겸손의 왕(17:22-27)
얼마나 역설적인가! 왕은 그의 성전세를 지불하지 못할 만큼 빈곤에 처해 있다! 진실로 주님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셨다(고후 8:9). 이 기적에는 주목해야 할 네 가지 특징적인 성격이 있다.
주님이 자신의 필요를 위하여 행하신 유일한 기적이다. 반 세겔의 성전세금은 모든 유대 남자들이 내는 것이었다(출 30:11-). 예수께서는 너무나 가난해서 이 정도의 금전도 없으셨다. 예수께서는 얼마나 겸손하신가(빌 2:5-8).
마태만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왕의 복음이다. 이 기적도 그리스도의 왕권과 관련이 있음이 틀림없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그가 “왕의 자녀“이므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음을 확실히 하신다.
그리스도는 복잡한 기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왕권을 입증하셨다. 동전이 바다에서 분실되었고, 물고기가 그것을 입 속에 넣었으며, 다음으로 그 물고기가 베드로의 낚시를 물어야 했다! 그리스도는 “바다의 물고기들“을 다스리신다(시 8:6-8/히 2:6-).
돈을 사용하신 유일한 기적이다. 이 세금은 유대인들이 애굽의 노예에서 구속받은 일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았으며, 은이나 금으로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은 한 세겔은 그러한 구속의 상징이었다. 베드로는 이 교훈을 알게 되었다(벧전 1:18-19).
이 기적은 베드로를 위해서도 행해졌다. 예수께서는 특히 베드로를 위하여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그의 장모를 고치셨고 바다 위를 걷도록 도우셨으며, 가라앉을 때 구해 주셨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게 하셨다. 사도행전에서도 그리스도는 여러 번 베드로를 구해 주셨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위하여 이 모든 일들을 행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나와 너를 위하여,“ 즉 베드로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하여(벧전 5:7)라고 말씀하셨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리스도는 그것을 해결하실 수 있다.
▣ 변화산의 일에 대한 부가적 연구
우리는 영광 중에 있을 때 서로를 알아 보게 된다.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를 알아 보았다.예수께서 변화되었을 때 그는 기도하고 계셨다(눅 9:29). 기도는 하늘의 영광을 우리의 생활에 가져다 준다.
이것은 모세가 약속된 땅에 발을 디딘 첫번째 일로 알려져 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통과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은 영광으로 인도해 갈 뿐이다(벧전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