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음식점을 고르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주변에 관청이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시청, 군청 주변의 음식점에는 앉아서 밥상을 받는 정식집이 많다. 예전에 정부종합청사 주변에 있는 회사에 다닌 적이 있는데 그곳이 그랬다. 경찰서 주변에는 설렁탕을 잘하는 곳이 꼭 한곳은 있다. 경찰이나 피의자가 조서 쓰고 조사받는 와중에 먹기 좋은 설렁탕을 자주 시켜먹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법원하고도 헌법재판소가 있는 동네에는 어떤 음식점이 있으며 무엇이 맛있을까. 헌법재판소라 하면 법 가운데 최상위 법인 헌법을 다루는 기관이므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최상위 법원의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만하겠는데 도대체 이 고상한, 속세를 떠난 듯한 사람들은 뭘 먹나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 중 하나 알게 된 것이 삼천포 대구포다.
삼천포시는 지금 사천시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역시 충무에서 이름을 바꾼 통영과 함께 남해안의 대표적인 어항(漁港)으로 꼽힌다. 고기잡이 배들이 무시로 들락거리는 삼천포항으로 대구 아니라 멸치에서 고등어·갈치·꽁치·이면수·오징어·상어 그 무엇이 잡혀 들어온다 해도 하나 이상할 게 없고 대구가 포로 만들어져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그런데 그 대구포가 유난히 맛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 앞 어느 골목 맥줏집 주인장이 주장하고 증명한 바이다. 대략 12, 3년 전에 말이다. 주인장은 턱이 둥근 40대 중반의 인심 좋게 생긴 사나이였는데 고향이 삼천포는 아닌 듯했다. 그 생김새는 그 집에 드나드는 손님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고 법조문처럼 군더더기 없는 표준말을 구사했다. 한마디로 그는 어디에 치우쳐 ‘판결’할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그 집의 대구포는 두툼한 것이 보기에도 덕이 있어 보였다. 이 양감(量感)은 쥐포나 명태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나치게 딱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르지도 않아서 잘 찢어지고 씹는 느낌도 오징어구이보다 낫다. 곧 다 먹고 나서도 다음날 아침에, 오징어구이를 먹었을 때마냥 턱이 아픈 증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생맥주를 마셨는데 자그마한 맥줏집치고는 잔도 깨끗하고 온도 관리도 잘 되어 있어서 시원했다. 당연히 대구포의 약간 짭쪼롬한 맛과 궁합이 잘 맞았다. 짭쪼롬한 정도이지 아주 짠 건 아니었다.
맥줏집의 분위기는 사실 손님들이 좌우한다. 심지어 맥주맛까지 손님이 좌우한다. 생맥주는 일단 통 밖으로 나오면 빠르게 성질이 변하는 술이고 손님들도 맥주에 못지않게 빨리 교체된다. 느긋하게 앉아서 생맥주를 음미하면서 한밤을 지새우는 손님은 드물다. 맥주가 화장실까지 자주 들락거리게 하니 맥줏집이 조용하면 사실 좀 이상한 것이다. 그런데 이 집은 조용했다. 식탁이 여남은개나 되었을까, 손님이 다 채우고 있을 때도 조용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들 대부분은 양복을 입고 있었고 말소리가 나직했으며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조금씩 아는 것 같았다. 그 분위기가 편안하고 항구성(恒久性)을 느끼게 하는, 한국에서는 이색적인 느낌인데다 대구포가 맛있으니 그것이 삼천포 대구포를 기억하게 된 연유다. 그런데 그곳에 두어번 가고 나서 그만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퇴근 뒤에 친구들이 모여 그 조용한 집에서 생맥주잔을 기울이는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 삼천포 대구포도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맥줏집에 갈 때마다 나는 한동안 대구포를 찾았다. 그런데 그 집만한 대구포를 파는 곳은 없었다. 나중에 주인과 좀 친한 맥줏집에 가서 삼천포 대구포를 찾았더니 주인 말씀, 자신의 거래처 내지는 사전에는 ‘그딴’ 이름의 대구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게 왜 없다는 거야, 내가 헌법재판소 앞 맥줏집에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데. 삼천포가 있잖아, 삼천포가. 그럼 대구포도 있어야지.” 그럼 그 집에 가서 얻어먹으라고 주인은 대꾸했다. 하긴 그 맥줏집은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한밤중이 되면 취한들이 고래고래 합창까지 해대는 집이니 삼천포 대구포의 은근한 맛을 느낄 수 있을 성싶지 않다. 그런 집에 어울리는 안주는 따로 있다. 헌법재판소 앞 골목 조용한, 이따금 그윽하기까지 한 맥줏집에는 삼천포 대구포가 어울리듯이.
(며칠 전에 가보니 주인이 바뀌었다. 젊은 여주인은 삼천포 대구포를 몰랐다. 야속하도다, 세월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