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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셨죠? 지난번 174번째 《걸 인 더 다크》 서평 이후 오랜만입니다.
요새 일이 좀 많이 밀려와서 솔직히 매우 바쁩니다. 슬프게도요.
네, 바빴다가 아닌 바쁘다, 즉 현재진행형으로 전 지금도 바쁘다는 뜻이죠. 대체 이 바쁜 일감들은 언제쯤 수그러드는 겁니까!
그래도 사람이, 일에 들볶이면서만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숨을 쉴 구멍은 필요한 법!
그래서 짬이 나는 대로 독서했고, 일에 쫓기는 와중에도 짬을 내서 이 서평을 작성했어요.
원래는 개인적으로 뜻깊은 날, 11월 4일 ‘점자의 날’에 이 글을 올리고 싶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업무 전화가 걸려오는 바람에 저의 야심찬 계획은 깡그리 작살났죠. 나 그때 월차 썼었는데...... 하하!
도서명: 파리의 도서관 전 2권
저자: 자넷 스케슬린 찰스
* 이 작품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통신 사이트 아이프리 도서관 9번 문학에 4번 코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권 전부 데이지도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원래 이 작품 말고 다른 책으로 서평을 쓸까 했었다. 그 작품은 시리즈물이고, 현재 아이프리 외에 또 다른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통신 사이트 넓은마을에 총 4궘까지 데이지도서로 제작된 작품이다.
이 말인 즉, 그 작품이 끝까지 완결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 시리즈물을 소개하는 데까지는 좋다. 그런데 누군가 한 명이라도 이 얼치기 감상문에 혹해 괜히 그 책들을 다운받았다가는, 나 외에도 ‘뒷내용 궁금증’이라는 난치병을 앓을 수 있다.
요컨대, 나는 이미 그 시리즈 4권밖에 제작되지 않은 작품을 다운받아 읽었다는 뜻이고, 현재 5~6권이 제작되길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가 되시겠다. 자고로 피해자는 줄여야지 늘리는 게 아니라 했다. 그래서 이번에 소개할 책은 경로를 재설정해 자넷 스케슬린 찰스의 《파리의 도서관》 1~2권이 되겠다.
그림 설명: 파리 미국 도서관의 모습이다. 흑백 사진처럼 되어 있다. 입구에 정원인지 화단인지가 있다고 한다. 유리문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생겼다고 한다.
솔직히 이 글을 볼지도 모를 시각장애인을 위해 디테잃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머리에 시각화가 되지 않아서 설명하기 어렵다.
그림 출처: 데이지도서 파리의 도서관 1권
실제 파리의 도서관사를 바탕으로 한 픽션, 《파리의 도서관》
소설은 세계 2차 대전 무렵 파리에서 시작한다. 창작물이지만 실제 도서관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작가가 도서관 행사에서 사서들에게 세계 2차 대전 당시 활약한 파리 미국 도서관 직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명을 받아 이 소설을 집필했단다.
작품의 주인공은 오딜, 파리 미국 도서관의 사서 지망생이다. 그녀는 당시 결혼 제도에 의지하던 대다수의 여성과 달리 자신의 직업을 갖길 희망한다. 그중에서도 이모와의 추억이 있는 파리 미국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할 수 있기를 꿈꾼다. 오딜 자신도 파리 미국 도서관의 회원이기도 했다. 면접을 보고, 리더 관장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고, 낙방한 것 같아 좌절하다가, 다른 도서관 회원들의 응원에 힘입어 관장에게 편지를 쓰는 등 일련의 우여곡절 끝에 오딜은 마침내 바라던 직장에 취직하게 된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그녀는 곧 도서관의 업무를, 존경할 만한 도서관의 구심점 리더 관장과 이용자의 상황에 적절한 책을 권하는 데 달인인 보리스, 어린이 열람실의 키 작은 비찌, 회계 담당 웨드 양, 서가 정리 담당 피터 우스티노프, 그리고 파리 미국 도서관의 후원자이자 소설가인 클라라 드 샹브렝 백작 부인, 전직 외교관 프라이스-존스 씨, 그의 절친이자 말싸움 상대인 기자 조프리 드 네르시아 씨, 전직 발레리나이자 능력 있는 교수 이렌느 코헨 등 도서관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이런 오딜의 인생 경로를 모든 사람들이 격려한 건 아니었다. 특히 경찰이자 가부장적인 그녀의 아버지는 매일 주말마다 인맥을 동원해 남자들을 식사에 초대했고, 맞선 아닌 맞선 자리를 억지로 마련하며 딸의 직장 활동을 못마땅해했다. 요즘 같은 시대라면 ‘이 꼰데는 대체 누구네 집 아버지?’라는 핀잔을 면전에서 대놓고 먹어도 할 말이 없는 성품이지만, 당시 프랑스 파리는 이런 사고관이 꽤나 보편적인 사회였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이 좀 놀라웠다. 무슨 조선 후기쯤 되는 줄.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딜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녀의 쌍둥이 남동생 레미 역시 누나를 지지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아버지의 식사 초대를 빙자한 맞선 자리에서 만난 남자도 오딜의 결정을 존중해줬다. 그의 이름은 폴, 경찰이었다.
그러나 오딜의 평온한 일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폴과 썸을 타다가 연인 사이가 되고, 파리 미국 도서관의 정기 간행물실을 맡아 이용자의 레퍼런스에 응하고, 도서관 소식지를 발간하는 등 보람찬 책냄새 하루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세계 2차 대전, 독일의 한 잘못된 사상을 가진 지도자가 일으킨 전쟁의 그림자였다.
오딜의 쌍둥이 남동생 레미는 이 시국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군에 입대하고, 설상가상으로 파리는 금세 독일군의 수중에 넘어간다. 그리고 파리 미국 도서관 역시 존속될 것인가 폐쇄당할 것인가 하는 불투명한 위기 속에 휘말리게 되는데......
《파리의 도서관》, 도서관을 구한 사서 이야기가 떠오르는 작품
예전에 추리 소설 <나비 정원>을 읽으면서 루피너스 꽃말 전설을 연상한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예전 대학에서 점자문헌정보학을 전공할 때 도서관문화사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도서관을 구한 사서>라고, 카페 신혜령의 작은 도서관 제5 열람실, 그러니까 아띠 열람실에 소장하고 있는 이야기 말이다. 전쟁통에 도서관에 폭격이 예보되자 한 사서가 장서들을 보존하기 위해 그 난리통에 책을 차에 싣고 폭격을 피해 달렸다는 내용의 이야기.
그 당시 사서의 책임감이란 저런 거구나 속으로 감탄했더랬다. 그런 한편 그 위기일발의 상황, 생존이 우선시되는 현실 속에서 책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회의적인 의문을 품기도 했었다. 교수님, 이제사 밝히지만 제 감성이 이렇습니다. 헤헷!
물론 나도 책의 가치는 충분히 공감하고 인정하는 바이다. 그 어떤 힘보다도 책의 힘을 믿는다. 마음이 고단하고 몸이 힘겨운 나날들에 큰 위안이 되어준 게 바로 책이었다. 독서함으로써 다시 힘을 낼 수 있었고, 달콤한 휴식을 취하면서
스트레스에 너덜너덜해진 심신을 회복할 수 있었다. 때로 밤잠을 줄이면서 탐독했던 적도 있다.
그렇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책이, 도서관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좀 미심쩍었다. 일단 삶이 불안정해지고 생명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 판국에 책을 볼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직접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내게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의문에 대해, 이 소설은, 아니 과거의 도서관사는 리더 관장의 대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직 여기 있습니다. 도서관은 사람의 몸으로 치면 폐나 마찬가지입니다. 신선한 공기와도 같은 책이 도서관에 들어오면 우리의 심장은 멈추지 않고 뛸 것이며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사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희망도 계속 남아 있게 되고요. 도서관 이용자들은 우리를 통해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서로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병사들은 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파리 미국 도서관의 친구들이 그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릴 필요가 있고요. 이토록 중요한 우리의 업무를 지금 이 시점에서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의 문헌정보학에서도 그러-고, 점자문헌정보학에서도 누차 강조하는 의의가 있다. 도서관은 그저 책을 보관하는 공간이 아니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곳이라고.
오랜만에 이 작품을 통해 그 말을 되새긴다.
《파리의 도서관》, 고난 속의 힘, 도서관의 가치를 어필하다!
소설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가 일어난다. 유대인 박해와 수용소 현실, 문화․사상적 억제, 약탈, 책을 불태우는 분서 행위까지.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은 유대인뿐 아니라 파리에 거주하는 독일의 적국의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여 수용소로 보낸다. 그리고 도서관의 책을 모조리 압수해서 불태워 버리기도 한다. 또 도서관 보호인 ‘비블리오테크슈츠’를 통해 문화․지식․사상을 검렬하기에 이른다. 텅 비어버린 파리에서는 빵 하나, 고기 한 조각 구하기도 힘들어지고, 때때로 머리 위를 지나가는 전투기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한편 파리 내에 있다지만 파리 미국 도서관은 미국 도서관 협회의 지경점과 비슷한 곳이다. 직원 중에는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해 스위스나 러시아, 영국인들도 있고, 이용자 또한 다양한 국적과 계층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면서 외국인 직원에 대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오딜 포함 도서관 식구들은 리더 관장이 떠나지 않을까, 파리 미국 도서관이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에 휩싸인다. 더불어 서적에 대한 검렬과 함께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며 도서관 출입 제한이 생기고, 금서 지정까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리더 관장은 어떻게든 도서관을 존속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오딜과 다른 직원들은 군영과 병원의 병사들에게 책을 대여하고, 도서관에 출입 제한을 당한 이용자들에게 몰래 책배달 서비스를 진행하며 암담한 현실의 하나의 구심점이 되도록 노력한다.
우선 그 전쟁통에, 독일군 감시가 엄혹한 가운데서도 도서관을 열고, 장서를 지키며, 책을 배달했다는 사실이 상당히 놀라웠다. 또 암울한 현실 와중에 책으로 피난처를 마련하고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는 일종의 가교 역할을 했던 부분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들에게 독서는 잠시 힘든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피난처였을까?
“조심들 하시오. 게슈타포에서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 금지 서적을 밖으로 돌리다가 그들 손에 들어가게 하면 안 됩니다.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든 당신들을 체포할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독일군이 파견한 비블리오테크슈츠 훅스 박사가 파리 미국 도서관에 호의적이라는 부분이었다. 리더 관장과의 인연도 있고, 나름 자신의 선에서 도서관을 살펴주거나 경고를 전하기도 한다. 훅스 박사가 나치독일의 명령 아래 활동한 것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성향은 그렇게 막되먹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적은 우리들 속에 있다는 말처럼 위기는 뜻밖의 계기로 찾아온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책, 그리고 도서관
전쟁은 인간다움이 상실되는 극단적 환경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써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잔인한 행위가 벌어지는 현장이고, 대규모 학살에 비해 덜 잔인하지만 책을 태우는 것 역시 끔찍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내가 점자문헌정보학을 전공해서가 아니라, 또 책의 가치를 진지하게 느끼는 시각장애인이어서가 아니라, 책은 인간다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기록을 남기고 문학을 창조하는 건 인류밖에 없다. 책은 그 대표적인 상징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 인류 문명의 상징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그래서인지 무슨 사상적 난리라든가, 혁명이라든가, 전쟁 등이 터지면, 책과 도서관은 제일 먼저 불타고 가장 먼저 억압되었다.
《파리의 도서관》 소설 속에서도 그 단면은 여실하게 드러나는데, 사실 작품 내에서 문제가 되는 건 책이 아닌 그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서로 단합해도 부족할 판에 이웃을 고발하는, 아니 밀고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글 속에서 때때로 나오는 익명의 제보자 편지들이 바로 그 고발문이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다. 난데없이 도서관 관장에 대해 비방하고 지식인 여성 교수를 모함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도서관 직원을 의심하는 글들.
하나같이 근거가 없고, 뇌내 망상 수준의 내용이라서 초반에는 장난 편지인 줄 알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작품 말미에서 이 고발장이 단초가 되어 사건이 터지고, 대체 누가 이런 쓰잘머리 없는 일을 하나 싶은 의문도 풀리게 된다. 그들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글을 써서 죄없는 사람들이 잡혀가도록 만들었을까?
알고 봤더니 질투 때문이었다. 시기라고 해도 좋으리라.
나는 전쟁통에 낡은 옷으로 버티는데 누구는 화려한 옷을 입는다. 나는 순무만으로 끼니를 연명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소시지와 초콜릿 등을 먹는다. 나는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허덕이는데, 누구는 책이나 보면서 산다.
그런 차이가 부러움을 낳고, 시기를 낳고, 질투를 낳고, 종국에는 중상으로 이어져 은밀한 비난과 음모,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을 낳았다.
글 속에서 주인공 오딜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원망을 투사하는 장면을 곧잘 접했다. 오딜은 남동생이 입대한 것을 여자친구 비찌의 부추김 탓으로 돌리고, 폴은 마거릿을 폭행하는 걸 정의를 실현한 행위라고 자위한다. 레미가 군대에 입대한 건 순전히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고, 비찌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마거릿이 독일군과 정분이 나긴 했지만, 솔직히 사람이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폴은 그것을 면책 삼아 자신의 폭력을 합리화했다.
전쟁은 실행하는 나라도 그렇고, 피해국의 사람들까지 어떤 광기에 빠뜨리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평소라면 그런 부러움이 음모나 고발장, 폭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 장면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유종필 <세계 도서관 기행>에서 봤던 문장이 생각났다.
“그것은 단지 전야제에 불과했다. 책을 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태우게 될 것이다.(Das war ein vorspiel nur, dort wo man Bucher verbrennt, verbrennt man am Ende auch Mensche.) - 시인 하이네”
독일 베벨 광장 지하 서고 조형물 인근 동판에 새겨진 구절이라고 한다. 책이, 지식이, 그것을 나누는 행위, 서로의 소통이 억압된 곳에, 인간 지성도 사라지는 걸까? 그리하여 인간다움이 소실되고 남는 것은 폭력과 질투뿐인 걸까.
책을 태우면 결국 사람도 태우게 될 것이라는 말은, 곧 책을 억압하면 인간성이 마모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도서관은, 그리고 책은 우리가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등대가 아닐까 한다. 왜 책을 읽는가. 착해지기 위해,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렇기에 우리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교류하고, 안내하고, 찾기 위해 우리는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확고부동하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부식되지 않고,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중에서”
결국 일련의 사건 후, 오딜은 프랑스를, 고향을, 폴을, 파리 미국 도서관을 떠난다. 그리고 미국의 시골 마을에 정착하고, 세월이 흘러 마을의 소녀 릴리와 인연을 맺게 된다.
소설은 크게 오딜의 과거사와 소녀 릴리의 시점에서 관찰하는 오딜의 현재로 구성되는데, 과거와 현재가 서로 교차하는 부분에서 실마리와 궁금증을 던지는 방식이다. 그리고 오딜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릴리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돕고 그녀의 상처도 내보일 수 있게 된다.
비록 도서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떠나왔어도, 방황하는 소녀의 길을 인도했다는 점에서 오딜은 여전히 사서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위의 저 문장이 떠올랐다.
총평을 적자면, 정말 오랜만에 내 전공을 돌아볼 수 있었던 독서였다.
덧붙여 다음 감상문 서평은 <에놀라 홈즈 시리즈>로 썼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5~6권이 하루빨리 데이지도서로 제작되어야 하는데......
PS. 점자문헌정보학이란, 문헌정보학 계열의 학문으로 장애인, 난독자, 노인, 외국인 등 책 소외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위해 큰글자도서, 쉽게읽는도서(이지북), 촉각도서, 점자도서, 데이지도서 등 특수매체 문헌을 연구하고 다루는 학문이다. 대표적인 책 소외계층인 시각장애인을 위해 장애인 전문 사서를 양성하기 위한 학과로 나사렛대학에 개설되었고, 아쉽게도 지금은 학과생 부족으로 인해 학부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책 소외계층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보소외계층 혹은 독서소외계층이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이 감상문을 남긴 카페 신혜령의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담당자입니다. 오랜만에 <도서관을 구한 사서> 이야기를 보려고 아띠 열람실에 갔더니, 그 자료가 없네요. 아무래도 재활통신망 아이프리 미니홈피에서 이 자료들을 다음 카페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자료가 살짝 유실된 모양입니다. 혹시 <도서관을 구한 사서> 책 전체 내용이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조만간 도서관에서 대여해 개작 등록하겠습니다. 내 귀한 자료를 이대로 떠나보낼 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