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나는 눈물의 비망록. 긴머리 구름 속에 나폴거리는 당신의 천사는 살아 있습니까? 철갑의 껍질 몸에 두르고 애국가처럼 나는, 살아서 흐르지 못할 하혈의 유서를 오늘도 씁니다. 내가 쓰는 비망록의 이름은 진홍의 史記, 지렁이쥐며느리그리마지네거미응애진드기집게벌레먼지벌레입니다.”
이제 이 시점에서 나는 한 싸움에 대한 고백을 해야 할 것 같다. 지극히 부정적이거나 통념적인 뉘앙스의 싸움이 아니라 눈부신 한 맨발의 투쟁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한 시대 갑각류의 등같은 딱딱한 껍질을 깨고 유유한 세월의 강을 거슬러, 내가 건너왔던 그 붉은 루비콘강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나의 이십대 후반은 흔히 그렇듯 이십대 초반이 몰고온 무작정의 열정과 허약한 感傷과 철지난 디오니소스의 객기 같은 것들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온통 혼동과 열정의 도가니 속에 갇혀 뚜렷한 향방도, 정확한 양태도 자리매김되지 않은 어눌한 몸짓의 연속이었다. 거듭되는 亂舞, 그 진창으로부터 빠져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발목 삐치는 곤혹스러움을 나는 경쾌한 리듬의 춤으로 바꾸고 싶어했다.
그 즈음 나는 知己인 화가 J의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림의 세계에 문외한이던 내게 같은 연배이던 J는 예술적 세계를 갈망하던 나의 동경이었다. 나는 J와 모든 정서적, 일상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이 좋았다. 나는 오래 아니, 살아생전 유유한 하나의 흐름을 같이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척박했다. 지방문화의 한 귀퉁이를 점유한 그 마당에서 사소하고 커다란 얽매임의 사슬들이, 단절의 갑갑함이 우리의 날개를 무참히 꺾고 있었다. 답답했다. 훨훨 날기를 꿈꾸어 본 적이 있는 자는 안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장벽아래 서서 비참함보다 더 절실하게 느끼는 에네르기의 고갈로 어쩔 줄 몰라하는 순간 어떤 도약의 구름판을 神의 품속으로부터 훔쳐내고 싶어지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포기 박하꽃같은 머릿속까지 투명히 맑아지는 한 시인의 글을 읽게 되었다. 구체적인 구절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개인적인 삶의 ‘wollen’과 지방문화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 글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당시 내가 좇고 있던 세계에 대한 빛깔이나 무늬, 그리고 문제의 고민이 너무 흡사하다고 느꼈다. 물론 나는 그 시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글은 곧 세계이므로 나는 어쩌면 한 통의 편지가 그 시인과 나 사이의 공감대의 架橋가 되리라는 믿음을 의심치 않았다. 나는 발신지도, 내가 누구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은 채 그 즈음 나의 최대 고민에 대해 비망록의 한 페이지를 열어 보였다. 당시의 내게 있어 그것은 심심풀이 장난거리 같은 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내 삶의 가치실현에 있어서의 방법적․기술적 한계로부터, 내 주변상황의 그물망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것, 그것은 나에게 절대절명의 문제였다. 더 높은 경륜을 소지한, 또한 좇는 세계에 대한 빛깔과 무늬에 있어 동질감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나는 한 줄기 구원의 메시지를 건지고 싶었다. 그것은 꼭히 그 시인에게 보내는 전언이라기보다 나의 일방적 고해성사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잊어갈 즈음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나는 그 시인의 신간서적을 발견했다. 반사적으로 나는 그 책을 사 들고 집으로 달려와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놀랍게도 그 책의 한 단락에 그 익명의 글에 대한 감회가 실려 있었다.
“... 안타깝게 가버린 이십대가 보이고 남은 생애의 전부가 잘 보였다. 조용히 한 우주가 흔들림을 느낀다.”
나는 밤새 뒤척였다. 짧은 밤에도 우주는 간간이 열렸다 지워졌다. 비망록을 수없이 썼다 지웠다. 꽃아래 버섯아래 누가 숨어서 저리 살긋한 향기를 피우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불면의 밤은 깊고도 짧다. 나는 그 시인의 門下로 들어갔다. 처음엔 밝힐 작정이었다. 내가 그 익명의 독자임을. 그러나 그건 고역스런 작업같은 것이었다. (막상 그 시인 앞에 섰을 때 나는 더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었다.) 나는 글로서만 바라다 본 한 익명의 독자에게 그토록 큰 기대와 믿음을 투척한 시인에게는 마침내 커다란 실망이 될 그 작업을 차마 감행할 수가 없었다. 당분간 아니, 때가 될 때까진 익명의 꽃으로 숨어 피리라, 다시 생각했다.
그 시인의 門下에서 나는 수십 번의 고백과 절단을 생각했다. 더욱 나를 가로막았던 건 묘한 장난같은 운명이었다. 내가 그 시인에게 편지를 띄웠던 바로 그 해가 그 시인이 지방문화의 분발을 위해 당시로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시 전문잡지를 출범한 해였다. 그리고 그 키치 아래 열린 門下... 애써 끼워 맞추고 싶진 않지만 내게 있어 그 사실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운명은 가락지처럼 서로를 죄어 왔다. (그 시인이 문하를 열게된 진정한 연유야 따로 있었겠지만 내 글이 끼쳤을 얼마간의 영향력을 내가 어찌 피할 수 있었겠는가! 그 후 더 많은 시간이 흘러, 나는 실제 그 시인이 익명의 독자를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은 내게 커다란 사실적 부담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시인은 아마 내 편지를 읽고 하나 남은 플라타너스 이파리처럼 문 밖에서 떨고 있을 그 익명의 독자를 맨살처럼 투명하고 눈부시게 건져 주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시인이 진행하고 있는 일의 비중도와 고뇌 앞에서 ‘나 하나의 구제’ 같은 문제로 덧보탠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쯤에서 나는 참으로 고독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늘한 침향! 그래, 내가 한 세월을 적시는 침향이 되어 유유한 흐름의 강을 더 멀리 더 깊이 끌고 갈 수 있다면... 그리고 나는 비망록을 적어 나갔다.
젊은 날의 연대, 누가 그러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던 우리의 가치에 대한 투척과 믿음은 서로가 깨어서는 안되는 신성의 결빙이고 섣불리 빼어서는 안되는 生의 가락지였다. 그 후 몇 년의 세월동안 나는 깊은 산자락 바위틈에 홀로 피는 꽃처럼 고독하였고 숨가빴다. 아마 그 시인도 그랬을 것이다. 다다를 수 없는 곳을 향해 길을 떠나본 적이 있는 자는 안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허리 끊어질 듯 끌고 가는 한 마리 개미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태산같은 그 짐의 무게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을 터였다. 손가락이 부르터도록 조이고 조이는 운명의 가락지를 빼지 못한 채 나는 門下를 걸어 나왔다. 생애의 꽃을 지우지 않기 위해 그림자 쪽에 내 인생의 무게를 실었다.
4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어느날 나는 내게로 배달되어온 한 문학잡지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참으로 놀랍게도, 그 시인이 그 익명의 독자에게 보내는 詩 한 편을 읽게 되었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날의 약속을. 길고도 지루했던 나날들과 각자의 고독했을 몸부림과 보이지 않게 읽어낸 더불어인 맨발의 투쟁을! 그것은 더 이상의 시간을 결박된 비망록에 묻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이제는 비망록으로부터 걸어나와 날개를 달고 날아올라라는 전언이었다.
나는 한없이 울었고 아득한 심연으로 내리꽂혔다. 근 한달 반 동안 제 정신이 아니었다. 온몸으로 들뜨고 온몸으로 가라앉고 온몸으로 비틀거린 시간이었다. 그래, 다시 일어서는 거다. 젊은 날의 약속이 돌아오지 않는 강이 되게 해서는 안되는 거야. 내게서 나간 빛들이 세상을 돌아 다시 내게로 환원되는 저 결 깊은 약속의 강을 지켜내는 거야. 그리고 나는 글을 썼다. 하염없는 白書처럼.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수천 마리의 누에고치가 일제히 실을 푸는 순간이었다.
“강기슭에서 우리는 목 잠긴 나룻배였다. 저 미동도 않는 강의 유유한 흐름을 일찌기 읽었더라면 우리는 오만의 삿대를 그 강에 담그지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빛나지 않을 풀반지는 일찍 버리는 게 좋으리라. 패랭이꽃 쓸쓸히 져 내리는 꿈들 사이를 걸어 노을 묻은 가슴의 기러기떼 떨어져 내리는 강 어디메쯤, 살아서 우리는 몇 겹 붉은 파초 꽃잎의 노래 강물에 띄울 수 있을까? 저 깊은 환희의 강이 되어 돌아오도록!”
인간은 살아서 한 번은 꿈틀거리길 원한다. 배추색 애벌레의 천천한 배밀이에도 친친 감기는 실가닥처럼. 내가 살아서 아니, 영원한 익명의 풀뿌리로 묻힌다 할지라도 저 감추인 비망록에 묻어나는 흔적은 어쩌지 못하리라. 젊은 날의 치열했던 몸부림과 붉은 파초꽃잎의 노래와 잎새 뒤 그늘에 숨긴 내 말은.
인간은 왜 살아서 숨쉬고 노래하는가?
나는 지난 세월을 되돌려 지피고 싶진 않다. 그것은 내 안에서 오래 묵은 침향처럼 자오록이 浮上할 것이므로.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홀로 남은 싸움, 내 안에 이어왔던 면면한 흐름의 강물을 밖으로 끌어낼 싸움! 나는 끝내 돌아오리라 한다. 내 익명의 비망록이 제 살을 베어 물고 절뚝거리며, 진물 흘리며... 그러나 눈부신 노래로 회귀하기를 ― 내 젊은 날을 죄다 투척하면서.
글은 곧 세계이므로 나는 어쩌면 한 통의 편지가 그 시인과 나 사이의 공감대의 架橋가 되리라는 믿음을 의심치 않았다. 나는 발신지도, 내가 누구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은 채 그 즈음 나의 최대 고민에 대해 비망록의 한 페이지를 열어 보였다.----투쟁이 여기서 부터 시작 되었나요? 어려운 글 잘 읽었습니다.
첫댓글 눈부신 한 맨발의 투쟁 이야기! 붉은 루비콘강, 붉은 파초... 그 시인과의 사랑 이야기인가요? 한번 읽고는 어렵네요
"젊은 날의 연대, - 우리의 가치에 대한 투척과 믿음은 서로가 깨어서는 안되는 신성의 결빙이고 섣불리 빼어서는 안되는 生의 가락지였다. - 그림자 쪽에 내 인생의 무게를 실었다." 아직 뚜껑을 열지 않았군요. 현학적? 문학적 표현이라해야 하나?
글은 곧 세계이므로 나는 어쩌면 한 통의 편지가 그 시인과 나 사이의 공감대의 架橋가 되리라는 믿음을 의심치 않았다. 나는 발신지도, 내가 누구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은 채 그 즈음 나의 최대 고민에 대해 비망록의 한 페이지를 열어 보였다.----투쟁이 여기서 부터 시작 되었나요? 어려운 글 잘 읽었습니다.
이인주님의 필력이 넘치는 글 <해바라기>를 비평하신 이동민 선생님의 글이 생각납니다. 이번 작품에도 시적인 어휘들이 많은 것 같아 난해합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