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감골산악회
 
 
 
카페 게시글
│좋은글│ 스크랩 오래 된 나의 이야기(키리만자로 정상으로가는 길)(3)
daumho 추천 0 조회 62 15.12.21 22: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앞에는 거대한 키리만자로의 눈 덮힌 봉우리가 있고 깊은 골짜기가 가로 놓여 있으며 골짜기 반대편엔 깍아지를듯한 절벽이 있는데 등산객들이 개미 처럼 기어 오른다 암벽등반 하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우리가 그곳으로 올라 간다고 한다

짐을 챙겨 올라 가는데 지그재그로 올라 가지만 고산 보행이라 천천히 올라 가는 데다가 길이 좁으니 마냥 기다려야 한다

한참을 걸려 올라가 다시 돌이 깔린 계곡과 능선을 몇 번 지나니 내리막 길이 나타나고 깊은 계곡이 나타난다 

건너 편을  보니 다시 큰 언덕이 있고 아래 계곡에는 물까지 흐르는 캠프지역인데  천막도 드믄드믄 보인다

우리가 야영 할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앞에 보이는 가파른 언덕을  다시 올라가야한다고 해서 죽을 힘을 다해서 1시간 가까히 걸려서  간신히 도착 했다

포터들은 짐을 내려 놓고 우리가 어렵게 올라 온 언덕을  5가롱 프라스틱 물통을 들고 다시 계곡으로 물을 길러  내려 간다고 한다

흑인이라고 힘이 안 들까 마는 개도 안먹는 그 놈의 돈때문에 같은 인간으로서  그들의 고단한 ?을 다시 생각 하게 한다

잘 사는 나라에서는  산행시는 자기 짐은 자기가 지고 가고 가이드는 단지 안내만  하는 것  같은데 네팔이나 말레시아등 못 사는 나라에서는 짐꾼이 있어 편리는 한데 돈 몇푼 받고 고생하는걸 보니 마음이 영 편치 않었는데 여기서 고생하는 그들을 보니 옛 생각이 난다

캠핑지역 넓은 능선 곳곳엔  이미 먼저 온 서양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있다 우리는 늦게 천막을 치고  저녘을 먹은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곳은 해발 3,700미터라는데  다른 곳 보다 더 춥다

걸었다면 5-6시간은 기본 보행속도는 장례식장 운구행열 속도, 머리가 아프고 메식 거린다

 

안나프르나 트랙킹중 3,250미터 푼힐 전망대 ,말레시아 키나바루4,150미터 그리고 3,000미터산행도 여러번 해 보았는데 이런 고산증세는 처음 나타나는 증상이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고 더군다나  4,000미터아상 화산지대에는 개미 한마리 볼수 없다 정말 지루하다 며칠간 눈덮힌  정상만을 바라보면서 산행을 계속 하니  지루하고 한심한 생각과 후회도 된다

미개한 나라일수록  표현이 단순 하고 한 단어로 여러가지 뜻으로 통하는 것 같다

"뽈레뽈레"는  "천천히"

"잠부"는 인사도 되고 미안 하다는 말도 된 다고 한다

고산지대에서는 가이드 보다 먼저 앞서 나가면 고산증에 걸린디고 한다

그래서 가이드보다 먼저 앞으로 빨리나가면 흑인가이드가 "뽈레뽈레"라고 하고 웨치고  좁은 산길에서 사람들과 마주 치면 "잠부"라고 한다 하여튼 두 마디면 산에서는 만사 오케다

 네팔산행 중엔 "나마시데"라고 하면 인사,미안하다등으로 통하든데  그 근방 국가들도 모두 "나마시데"로통한다  인도에 가보니  "나마시데"로통한다

이 곳에서도 돈이면 만사 형통인가보다  서양사람들은  양변기 처럼 생긴 의자를 산에서도  일 볼 때 사용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의자 까지 포터가 지고 간다

우리도 10명이 식사할수 있는 천막과 의자  거기다가 5가롱 물통에 물까지 넣어서 지고 따라 온다 그리고더운 커피까지 보온병에 담아가지고는  식을까 보아  보온에 걱정하는 걸 보니 순진힌 그들의 마음씨

그리고  식기는 꼭 끓는 물로 소독하든데 아마 유럽사람들이 오랜동안  지배해서 위생관념을  터득한 것 같다

우린 저녘에는  수통에 끓는 물을 한 통씩 배급받아 보온용으로 가지고  잔 후 아침엔 그걸로 세면과 양치질을 해결한다

산행 중엔 물도 귀하지만  고산지대에서는 샤와 ,머리 감는 것은 금물이라고 한다 고산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산행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내용은 이미 안나프르나 트랙킹 중 롯지에 숙박 하면서 가이드한테 들어 알고 있는 사실)

산행중  쓰레기를 거의 보지 못했는데 캠프 지역에도  쓰레기를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떠나면서 포터들이 주변 청소를 하고는 쓰레기는 모두 가지고 가기때문이다  또 캠프장에는  판자로 지은 간이  화장실이  설치 되어 있든데 화장살 일 보는 구멍이 너무 작아서 정조준 하기가 몹씨 어렵다

흑인들은 궁둥이가 뾰죽해서 그런지 하여튼 불편하다 그런데도 내부가 깨긋하다 포터들이 수시로 청소를 해서 그런 것 같다   서양 사람들은 화장실사용이 불편하니 추가 돈을 지불하고 나무로 만든 양변기모양 의자를  운반해서 사용하는 것 같다

다음 날은  비교적 단거리를 이동 서너시쯤  도착 본격적인 등산 준비를 한후 밤 10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저녘을 일찍  먹은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하산 길 목에 천막을 쳤드니  하산객들이 지나는 바람에 잠을 못자고 있었는데 천막 안에 느닷없이  들쥐 한마리가 들어와 난리를 친다

  이곳에 오기 전에 마라리아약을 고대안산병원에 가서 거금을 내고 처방전을 끊어  미리 먹고 김포공항 검역소까지 일부러 가서 황열병 주사도 맞고 증명서까지 휴대는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유행성 출혈열을 ?긴다는 들쥐가 개미 한 마리 못 본  이곳에서 느닷없이 혼자 있는 좁은 천막애 들어와 설치니 처치 곤란이다 할 수없이 메트레스 밑으로 유도 눌러 죽이긴 했어도  한 동안 찜찜했다

밖을 보니 독일인 부녀인듯한 사람이 하산한다

정상 정복에 성공했는지 모르겠다  다시 잠을 청하다가 9시 반쯤 일어나 서 밖으로 나오니 달이 휘영청 밝다 방풍복이며 헤드랜턴  겨울 장갑등 겨울 등산복장으로 갖추고   등산 배낭은  가이드한테 맡기고 긴장 속에 등산을 시작 했는데 포터들은 현지에 남고 가이드 3명만 올라간다

잔뜩 긴장하고 앞 사람 뒷꿈치 만 보고 가는데 다른 팀들이 우리를 추월하기시작 한다 올라 갈 수록 춥고 숨이찬다 걷긴 갇는데 가도가도 제자리다 졸음이 오기시작 한다 앞 사람을 따라가다가 앞사람이 서면 서고 몽유병 환자처람 비몽사몽간이다

앞 사람들은 가는데 내 앞사람은  그냥 제자리다  툭치면서 가라고 하니 스틱에 머리를 밖고 졸고있다 산소 부족 현상 이란다

고산지대에선  산소가 희박 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기압이 낮아  혈액순환이  잘안 되는데다가  산소까지 부족 하니  부 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다

우리 일행 구성은  용인에서 야생화 농장을 운영하는라 국내 높은 산은 거의 모두등반했다는 47년생 남자,수의사를 하다가 다시 서울 농대를 나온 산림학과 45년생 교수,

그리고 등촌동에서 미장원을 경영하면서  백두대간을 완주하고 하루에 25키로까지 걸었다는 여성(그녀의 남자 애인은 오래 전  남미 안데스 산맥 등반 중 사고로 실종되어 시신을 찾는다고 국내메스콤에 요란하게 난 적이 있다)으로 40대 초반 ,

대구에서 원룸을운영하는 40대초반의 부부부와  그 당시 고교입시를 끝낸 16세의 여학생 딸,중3인 아들,그리고 38년생인 본인 ,

외대 산악부원이였다가 졸업후 오지 전문여행사 사장으로 이번 산행팀을 인솔하는  40대의 여행사 사장,

그리고 일년에 8-9번 키리만자로를 직업상 등반 한다는 흑인 가이드 3명이다

 

문제는 어른들은 그렇다치고  아이들이 문제다 우리도 힘이 드는데 아이들은 거의 빈사지경이다

심봉사 처럼 현지 가이드의 스틱 붙잡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해서 올라간다

늘 산행을 하며 해외 높은산 산행도 여러번 다닌  나도 사실  중도에 몇번이나  왜 돈 들여가며 이 고생을 해야하나  포기 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본전 생각도 나고 실패했을 때 창피한 생각등으로 이를 악 물고 올라가는데  기온이 영하15-20도가까이 되는 것 같다 바람도 작난이 아니다

二重으로 된 장갑도 손 끝이 아려온다 거기다가 정신은  몽롱하지 ,앞 사람은 자주 서서 졸지

하여튼 지옥의 언덕길을  지그재그로 올라 가다 보니  마침내  햇살이 비친다

남 반부의 일출을 보려고  발 걸음을 부지런히 옮겨 보는데  꿈 속에서 버등대는 것 같다

 100미터를 올라 가는데  몇시간은 걸린 느낌이다

아침9시가 다 되어서야  "셀라포인트"(5,845미터),분화구가 보이는 고갯마루에 도착해서 주저 앉은 나는 이제 더 못 가니 다른 사람들이나  다녀 오라고 하니 모두 못 가겠다고 한다

어린 남매를 보니 눈물이 난다 부모들의 공명심 때문에 고생을 사서 한다고 생각 하니 ...

오기전 대구 어는 방송국인가에서 인터뷰까지 했단다

아이들은 오기 싫어서 오는 경비중  100만원만 주고 부모만 다녀오라고 했는데 억지로 데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경비는 은행 대출을 받어 왔다고 한다 부모때문에 쌩고생하는 아이들을 보니 안 쓰러워 눈물이 왈칵 난다

한 참을 쉬는라니 본전 생각도 나고 명색이 군 생활 30여년 하면서 생사의 고비를  무수히 넘긴 내가 여기서 주저 앉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기로  정상까지 간다고 하니  모두들 따라 나선다

그래서 어는 팀이나 위기시 리더의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분화구에 올라 오는 루트는 어려 곳이 있는데 우리가 올라 온 루트는 세라 포인트이고 여기서 1 시간 쯤 가면 화산 분화구가장자리에서 가장 높은  둔덕이 있는데 그곳이 "우후르피크(5,895미터)라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데 거기까지 가야 정상 등반으로 인정하고  분화구 턱까지 오르면 수료라고한다

그래서 정상을 향해 앞장 서서 가는데 여행사 사장이 부른다 50미터즘 앞에 가던 나는 다시 어렵게 발걸음을 옮겨   되돌아 오니 여기서 되 돌아가도 등반으로 인정해 주겠다고 가이드대장이 말했다고 해서 다시 물으니 언제 그랬냐고한다 그래 다시 출발하려니 이번에는  나하고 누구한사람이 다녀 오면  인정하겠다고하더니  잠시 후엔 다시 안 된다고 해서 할수 없이 모두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결국 어렵게 모두 정상에 도착하여 기념 사진을 찍었는데  공교롭게도 내 배낭을 맨 가이드가 넘어져면서 내 카메라가 부서 지는 바람에 정상 독 사진 일명 증명사진이 없다 아직까지 서운하다

흑인 가이드는완주 여부를 감독 한후  관리사무소에 보고하는 임무를 지닌 것 같다 예전에는 한 200불 쥐어주면  눈감아 준 적 도 있는 것 같았다

오늘 도 우리팀을 보고 사정이 딱 하니  눈 감아주려고 하다가 갈등이 생겨 포기하는 바람에 혼선이 생긴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상까지 못 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경험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 키리만자로 분화구는  여의도의 몇배라고 하던데  정말 넓다 그리고 멀리서 보면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낭만적 인 키리만자로의 만년설은 분화구가장자리로부터밀려나 깊은 계곡  넘어에 산을 아루고 있어 빙하는 눈으로만 보고  만져 보지도 못한 체 내려 왔다

헤밍웨이의"키리만 자로"에 나오는 표범은 개미 새끼한마리 보이지 않는 이곳에 무엇 하러 왔다가 죽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언덕에 서서 올라 온 길을 내려다 보니 어이가 없다 밤새 몇시간을 걸려 고생고생하며  지그재그로 힘들게 올라 온 화산재로 뒤덮인  언덕을 내려갈 때는 직선으로 화산재 흙 미끄럼을 타고 순식간에 내려왔다 이걸 보고 허무하다고 하나?

일본 후지산 등반시도 내려올때는 화산재(?)같은 마사토 때문에 미끄러워 몇 번 미끄러져서 고생을 한 생각 이난다

내려올때는 스펫츠를착용하고 스키 타듯 내려오는데 내 미끄럼 속도가 너무 빨라 먼저 내려가든 서양 남녀를  추월했는데 먼지가 너무나서 미안하다고 싸인을 하고 내려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갑자기 앞 쪽에 군대 위장망을 씨운  차량이며 군인들이 보인다 그래서 잎에 가는 우리 일행 아주머니 한테 군인이 훈련하는 곳으로 가지 말라고 하니 그 아주머니 그곳으로 가더니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그냥 통과한다

나는 탄자니아가 사회주의국가이므로 군인이였던 나는 날 해코져 할까 보아 걱정을 하면서 차량으로 보이는 쪽으로 가보니 커다란 바위에 넝쿨이 덮힌 것이였고 위병소인 줄 알았던 곳도 마찬가지였다

가다 보니  예전에  내가 한 번 와 보았던 곳 같은 생각도 들고 멀쩡한 산길을 가는데 자꾸 좌측으로 쏠리더니 급기야는 넘어져서 손까지 다쳤다

그리고 바위가가  많은 곳을 식인종 부락 인줄 알고 조심 조심 지났는데 알고 보니 시커먼 바위 들이 였다내려 오다 보니 큰 강이 앞에 보인다 그래서 일행에게 배가 없는데 어땋게 건느냐고 걱 정을 하니 강이 어디있느냐고 핀 잔을 준다 나중에 그 증상을  알고보니 순간 치매 현상이라고 부른다나?

뇌세포가 파괴되면 치매가 온다고 하든데  산행 중 산소 공급이 원활치 못하니 뇌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못해서 그런것 같다 

원래는 그냥  나들 목까지 얼른 내려가야 하는데 일행 중 하산 길에 갑자기 걷지를 못해 가이드 3명이 부축해서 내려 오는 바람에  바로 저지대로 내려가야 고산증세가 풀리는데 할수 없이  어제 숙영지인 4,500미터에서 고생을 하면서 1박을 또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부축해준 대가로 별도로 25불을 지불해야만 했다 저녘 취침 중에는  나도 모르게 설사가 나와서 홍역을 치루었는데 설사는 멈추지 않고 15일간 지속 되는 바람에  체중이 무려 8키로 나 줄었다 약을 먹어도 안듣는다 

자율신경게통에 이상이 생긴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은  회복이 삐른데 나이가 드니 그런 것 같다 

우연의 일치인줄 모르겠으니 귀국 후 갑자기 망막에 신생 핏줄이 생겨 실명에 이르는  황반변성이 발병 한 눈은 현재 실명상태이고 다른 한 눈도 진행 중이다 현재 10여년간 치료중이다

발병 원인은 불명이나  자외선이 원인이 될 수있다고하는걸 책에서 본일이있다 또 고산 지대에서는 용변시 힘을 주면 졸도의  위험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다음 날은 일어나자마자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내려 오는데  4,000미터 화산 지대에서는 풀한 포기 없더니 3,000이터 휴게소 근방에 오니 나무도 보아고 풀도 보인다

도중에  휴게소에 들려 콜라한잔을 마시면서 보니 포터들이 수거해 온 쓰레기를 용수철 저울로 달던데 얼마 이상을 수거해와야 하는 것 같다 그 래서 캠프장이 깨끗 한것 같다

책임량을 완수해야 포터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디 여기도 사회주국가이니까 

산행 들머리에 매표소에서 보니  장총을 멘 군복 차림의 사람들을 보고 약간 거부감을 느꼈는데... 

내려 오다 도중에 보니  우리나라 공사장에서 쓰는 외바퀴 손 수레가 다니는 길이 있던데 위급시 환자를 항공기가 아닌 손 수레로  수송하는 것 같다 

내려오는 도중  소나가를 만났는데  여름철 우리나라 소나기는 저리가라다

드디어 고대하던 공원게이트에 도착  등산 완료 도장을 받고  고난의 키리만자로 등산을 마쳤다

 

한 가지 재미 있는 일은 숙소에  오는 버스를  타고 있으니 모자를 사라고한다 조잡하지만  기념으로 15불을  주고 하나   샀는데  차가  떠나려니  7 불에 판다

나만 손해를  보았는 데  다른 곳에서도 한국 말로 5불,19불한다

우리나라가 살기가 좋아 지니 아프리카 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오니 국력이 신장 된것 은 좋은데 얼마  전 티브이를 보니 필리핀에서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현지 여자들을  임신시키고는 도망쳐서 코피칸이 많다는데  그  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면서 그런 면으로 어그리 코라언이라는 이름을 남겨서는  안 된고 생가한다 

 며칠 전 황정민 주연의 "히말리야"란 영화를 보면서 목숨을 바쳐 눈덮힌 산을 정복하려는 산악인들의  의지 그리고 산행  중 사망한 동료 산악인의 시신을 찾으려  무려 67일간 동안  8,500미터산을 헤메는 장면을 보면서 각박한 삶 속에서 잊고 살았던  인간에 대한 예의와의리,우정을보니 등산 장비없이 정상을 갈수있는 유일한 高山이라는  아프리카 키리만자로 산행 중 고생했던 생각이 나서 그 때 적어놓은 글(작문)을올려봅니다

 

재래식 카메라 사진은 몇  장있는데  올 릴 재주가 없어 글로만 옛일을 적어 봅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