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17.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삼상 9:21
*제목; 다윗처럼 살기(9) 겸손이란 무엇인가?
프롤로그. 학습된 무기력, 학습된 낙관주의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을 개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개를 묶어 놓고 전기 충격을 지속적으로 주어 개가 저항하지 못하게 한 다음 개가 포기하고 전기충격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끈을 풀고 전기충격을 가한다. 그러나 개는 이미 무기력이 학습되어서 움직이지 않고 묶인 것처럼 전기 충격을 받아들인다.
죄도 이와 같다. 처음에는 마음도 죄스럽고 후회도 되지만, 이처럼 학습되면 더 이상 죄가 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정도가 되면 신앙은 끝이다. 늘 영적 예민성을 버리지 않아야한다. 그래야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누려는 죄를 이길 수 있다.
이후 마틴은 “학습된 낙관주의”를 주장한다. 무기력처럼 낙관주의도 학습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낙관을 습관으로 가지면, 모든 상황에서도 효과적으로 긍정적 마음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으로 미국식 “긍정심리학”을 시작한다.
믿음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믿음의 그릇은 이처럼 지속적인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릇이 커야 은혜도 커진다.
오늘의 주제는 “겸손”이다. 결론적으로 겸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다는데 이 겸손도 “학습”될 수 있을까? 다른 말로 겸손하려고 하면 겸손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인간의 태도: 열심과 겸손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간의 태도가 있다. 바로 “열심”과 “겸손”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택하시고, 도구로 사용하시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누리는 인간의 성품이다.
열심으로 신약성경에서 그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이다. 그는 하나님의 핍박자였으나 그의 열심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이방인의 사도로 하나님의 택함 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열심의 원조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고후 11:2’을 보자.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고후 11:2)
바울이 낸 열심의 모형은 바로 하나님이라고 바울 자신도 고백하는 것이다.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있으시면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시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4)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일단 마음을 정하시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열심을 내시는 하나님을 닮아가라.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 가운데 머물게 된다.
두 번째 삶의 태도가 바로 “겸손”이다.
겸손을 그동안 정의한대로 이야기하면 “하나님 없이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존재 자체가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없이는 결국 죄짓고, 결국 실패할 것이다.
결국 겸손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이다.
그런데 이 겸손은 “학습된 무기력이나 학습된 낙관주의”처럼 연습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에는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단순히 나를 낮추는 것이 겸손이 아니다.
2. 겸손의 조건
오늘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겸손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능력이 있어야 겸손이 가능하다. 못난 사람이 못난 것은 겸손이 아니다. 이를 기억하라. 겸손은 스스로의 능력을 갖추어야 발휘될 수 있는 삶의 태도이다.‘1~2절’을 보자.
“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2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삼상 9:1~2)
오늘 그의 겸손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선택받은 사울은 사실 겸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스라엘의 “유력한 자”였다. 즉, 힘이 있는 자였다. 이 “유력”은 히브리어 “하일”인데 이는 “권력, 부, 능력 등”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잘 나가는 아버지를 둔 것이다.
아버지만 잘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도 “준수한 자”였다. 이는 히브리어 “토브”로 “최고”를 의미한다. 아버지도 잘 나가고, 스스로도 빠진 것이 없는 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겸손”했다. 자신을 “가장 작은 자”로 표현한 것이다.(삼상 9:21)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삼상 9:21)
이처럼 겸손은 이미 최고의 능력과 지위를 이룬 자들이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겸손이 빛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받으려면 겸손해야 하는데, 먼저 믿음으로 삶으로 최고를 이룬 후에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울을 겸손할 자격을 갖춘 자였다.
믿음과 삶이 세워져야 겸손할 수 있다. 이렇게 겸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릴 수 있다.
둘째로 겸손할 수 있는 자는 좋은 사람을 가진 자여야 한다. ‘6~8절’이다.
“6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7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삼상 9:6~8)
즉, 믿음과 삶을 세우려하는 자들은 좋은 사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사울은 몸종(사환)이 있었으나, 사실 그보다 더 지혜로웠다. 그를 이해 사무엘을 만날 지혜를 가르쳐주었고, 주인을 위해 자신의 돈을 내어줄 수 있는 충성이 있었다.
겸손하고 싶으면, 먼저 나를 갖추어야 하는데 “좋은 사람”을 갖추는 것이 “능력”을 갖추는 것만큼 중요하다.
3. 겸손이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태도”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몇 가지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겸손이란 하나님 앞에서의 위치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기꺼이 따르는 태도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둘째로 ‘자기 의존’ 대신 ‘하나님 의존’을 겸손이라고 합니다.
스스로의 능력, 공로에 기대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셋째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모습에서 겸손은 드러납니다.
겸손한 자들은 다른 사람을 존귀히 여기고,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3)
넷째로 무엇보다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겸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섬김과 희생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
성경적 겸손은 단순한 소극적 자기비하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자신을 올바르게 보는 적극적 신앙 태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선 순종, 사람 앞에선 존중, 자기 앞에선 진실한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첫댓글 겸손이란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위치를 날마다 점검하는 것이고,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는 고백이고, 다른 이들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늘 예수님의 순종과 겸손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성경적 겸손은 단순한 소극적 자기비하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자신을 올바르게 보는 적극적 신앙 태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선 순종, 사람 앞에선 존중, 자기 앞에선 진실한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