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매체에 나타나는 한국인의 자화상’ 이라는 주제를 듣고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생각나서 어떻게 정리를 할까 하다가 토론의 형식을 빌려 썼습니다.--
사회자 : 오늘날의 대중매체는 과거에 비해 동시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보여주기도 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나타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제작자의 시각에 맞춰지도록 조장하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면, 잘 모르고 있던 사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주장에 대하여 강한 긍정적 견해를 갖게 되는 경험. 다들 한번쯤은 있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경우는 어떨까요? 대중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한국인의 모습. 대중매체가 주는 영향을 통해 보이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세은 : 한국은 성형수술 세계 1위 국가입니다. 그 원인중의 하나를 대중매체라고 봅니다. 외모지상주의. 이 단어를 만들게 한 것도 대중매체이고 단어를 만들어낸 것도 대중매체입니다. 성형수술에 대한 대중매체의 견해는 우선 ‘반대’입니다. 위성 TV 등에서는 성형 시술법 등을 방송하며 성형수술을 긍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성형수술에 대한 부작용이나 과소비를 문제로 지적하는 뉴스, 다큐멘터리의 횟수가 더 많습니다. 간판뉴스라 할 수 있는 9시 뉴스에서 ‘성형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뉴스를 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마 기억해 내기 힘드실 겁니다. 하지만 성형부작용으로 인해 소송을 했다거나, 해외 원정 성형수술을 한다는 등의 부정적 뉴스는 기억해 내기 쉬우실 겁니다. 왜 이렇게 ‘예쁜 얼굴’에 목숨을 걸게 된 걸까요? 최근 오락프로그램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단 한번이라도 외모에 대한 논의가 없는 방송은 없었습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해당하며, 예쁘거나 잘 생긴 외모가 아니라면 웃음거리로 만들고 맙니다. 재미를 위한 프로그램이라 하지만 자신의 외모가 단지 웃음거리로 여겨진다면 이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성형수술의 문제점을 논하기 이전에 대중매체가 우리에게 주는 ‘외모지상주의’ 신조(信條)를 문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박세은 : TV, 신문, 잡지 등의 기사는 그 시절 가장 이슈가 되는 사건들, 관심사 등을 나타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의 집중도와 와해되는 정도의 폭이 너무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를 ‘냄비근성’이라고 하죠.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축구로 몰렸습니다. 드라마, 영화, 심지어는 선거에도 관심을 접은 상태에서 축구 관련 일들만이 찬사와 관심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자, 얼마 되지 않아 그 관심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지요. 이를 계기로 프로축구의 부흥을 꿈꿨던 사람들은 한국인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을 것입니다.
또 상대방을 헐뜯는 일이 너무 빈번합니다. 상대 정당의 국회의원의 발언이나 타 방송사, 신문사 등의 나쁜 점을 골라 비판하는 것은 한국인이 특성입니까? 서로 나쁜 점은 고쳐주면서 감싸 안아 주는 것이 한국인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어린시절, 게임을 잘 못하는 친구는 ‘깍두기’로 껴주었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 는 속담을 가지고 있는 우리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이루어진 대중매체는 한국인의 진정한 모습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세은 : 하지만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면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재민이 발생 했을 때, TV화면 구석에서는 쉬지 않고 올라가는 숫자가 있습니다. 이는 ARS를 이용한 성금 모으기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재난에 대한 성금이 많이 모이는 나라가 드물다고 합니다. 힘들 때 서로 돕고 이를 당연히 여기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 밖에도 인간극장이나 때때로 나오는 기사 등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거리에서 지나가는 걸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눈길 한 번 더 주게 되는 모습들. 구세군 냄비가 매년 겨울이면 거리에 등장하고, 뉴스의 마지막 부분에 성금을 보낸 사람들의 명단을 말해주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최근 한 광고에 길 잃은 강아지를 잘 보살펴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모습은 우리가 잃지 말아하는 우리들이 모습입니다.
오세은 : ‘정’이야 말로 한국인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작은 잔정으로 인해 모두가 ‘가족’이 되는 사회가 우리나라입니다. 이를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는 그 나라의 정서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 드라마의 대부분이 ‘정’을 소재로 하는 것을 통해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자주 이용되는 소재인 출생의 비밀 등과 같은 혈연의 문제와 옛 사랑에 대한 그리움 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정’ 입니다. 또 자주 나오는 고부 갈등도 사랑이 없다면 관심조차 두지 않겠죠. 고향에 대한 단어의 애틋함은 ‘전원일기’라는 드라마를 통해 전달되었고, 사랑이라는 단어의 기쁨과 슬픔은 미니시리즈의 단골손님입니다. 픽션이 허구성이 와 닿지 않는다면 ‘인간극장’이나 신문 귀퉁이에 작은 기사를 통해 전해지는 우리 이웃의 훈훈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독거노인을 몇 년간 보살펴온 한 주부, 무료로 노숙자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업체, 버림받은 장애우들을 돌보는 가족 등의 사례가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정에 살고 정에 죽는다.’ 대중매체는 우리들이 이러한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자 :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우리들의 모습이 대중매체라는 거울을 통해 나타남으로 인해 우리들을 재평가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있겠지만 가끔은 다소 왜곡되거나 과장, 축소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어쩌면 우리들이 모르고 있던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중매체 노출도는 높은 편입니다. 그만큼 영향도 많이 받겠지요. 이 영향에는 바람직한 점도 있을 것이고 피해야 하는 점도 있을 것입니다. 대중매체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만을 문제 삼기 전에 대중매체를 바라보는 우리의 비판적인 사고를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토론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