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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시 50:7-15,22-23절
제 목 :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일 시 : 2023. 12. 31.
시편 50:7-15,22-23/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된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7절에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정리하면 내 백성 이스라엘아 내가 증언하는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증언하다란 우드라고 하는데 이중으로 하다, 두 배로 하다, 또는 반복하다, 함축적으로 증언하다, 경고를 주다, 증인이 되다 라는 뜻입니다. 증언하다란 반복해서 말하다는 뜻으로 일종의 강조이며 경고의 말입니다. 마음에 잘 세기고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는 말을 잘 듣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주권을 주장하시면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바로 앞에 나오는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4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애굽의 바로 왕(마귀)의 압제와 속박과 노예로 있던 그들을 유월절 어린양(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그들은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언약을 맺으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언약입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언약은 피의 언약이었습니다. 피로 맺은 언약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을 담보로 맺은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언약은 피로 맺은 언약(생명을 담보로 한 언약)이기 때문에 결코 그것을 파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피로 맺은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죽도록 충성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피로 맺은 언약은 결코 파기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이스라엘백성들도 하나님과 피로 맺은 언약(출24:3-8)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 드려서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 이중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순간부터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왔습니다. 제사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그의 백성된 자들만이 드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제사로 언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제사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먼저 하나님은 그들의 주인이시고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과 제사로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시50:5/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8절을 보시면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것을 맹세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 때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인정하시고 그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고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7절 말씀을 보시면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성도들에게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가 반드시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은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된 자요, 하나님의 소유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가리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고 고백(구두언약을 맺음)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향하여 주라고 고백했고, 그리스도(메시야)라고 고백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마귀의 손에 붙잡혀서 포로되고 죄의 노예로 살았지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대속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은 과거 이스라엘백성들이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신약시대 성도들이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의 백성이나 신약시대의 백성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들어보라는 것입니까?
1. 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지를 들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12-15절을 보시면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라고 반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드리는 제사의 고기를 먹고 짐승의 피를 마시고 싶어서 그들에게 제사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서 기껏해야 수소의 고기를 먹고 싶어하시고 염소의 피를 마시고 싶어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시시한 것을 요구하려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로 언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자기 백성들과 제사로 언약을 맺으셨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항상 구원을 베푸시고 싶어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구원의 하나님으로서 영광을 받으시고 싶으셔서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과 제사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을 맺는 자기 백성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하셨습니다.
1)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감사란 토다라고 하는데 손을 펼침, 숭배, 경배자들의 합창, 고백, 찬송(의 제사), 감사(제,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손을 펼치고 고백하고 큰소리고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감사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즉 감사의 희생제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앞 부분에서 보면 제사의 무용성을 지적하셨고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제사, 특히 하나님께 음식(고기와 피)을 공급하기 위한 제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본 구절에 나오는 감사의 희생제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취하실 음식으로서의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자의 바른 자세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에게 기쁨으로 마음껏 축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의미합니다.
예배와 제사의 진정성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평가해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제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가인의 제사나 아벨의 제사나 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도 가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아벨로 아벨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과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아벨의 제사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과 만족함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사를 열납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각자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나의 예배를 받으시고 은혜와 복을 주셔야 마땅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간혹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예배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입장에서는 어떤 사람의 예배는 받으시지만 어떤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감사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다음의 말씀이 바로 거기에 대해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2)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하는 자는 다름 아니라 지존하신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 하나님께 서원하는 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수 없이 많은 말을 쏟아 내는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책임지는 자는 적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쏟아 낸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자가 없음을 토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실언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거짓 맹세하는 자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입으로 하신 말씀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지시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그것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자신에게 손해가 있더라도 하나님께 서원하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3)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지구촌에는 환난당하는 자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가 보세요. 환난을 당한 자, 사고를 만난자, 생명이 위독한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 환난을 당한 자들 중에서 환난을 당했을 때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가장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고 부르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하나님은 어떤 문제이든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이신데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사람을 찾고 응급실을 찾고 의사를 찾습니다. 119를 불러서 병원 응급실에 가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명이 위독한 환자는 병원 응급실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전도하면서 느끼는 것과 안타까운 점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합기도 학원과 태권도 학원과 그 외에도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에는 많은 돈을 주고 보내면서 자녀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영원한 복을 받게 하는 교회로 인도하는 것을 외면하고 전도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나쁘게 말합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살 길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보내신 전도자를 존중히 여기고 목사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정반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가장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도움과 받고 문제해결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방법으로 모든 일을 다 해 보다가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면 맨 나중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방법과 세상의 방법으로 모든 것을 다 해 보다가 더 이상의 방법이 없을 때 그제서야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안타깝고 속이 터지겠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말씀하시고 싶어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자신이 하나님께 서원하고 맹세한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지키라는 뜻이며, 또한 환난을 당했을 때도 마땅히 선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그것을 원하십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시편 50:22-23/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에게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22절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라고 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함으로써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었던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신8:19/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고 했으며, 삿3: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라고 했으며, 욥8:13/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 왜 그토록 큰 문제가 됩니까?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예로 들어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냥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반드시 다른 신을 섬기게 되었는데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돈의 신이요, 음란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들, 즉 참되게 믿는 자들은 항상 하나님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만을 좇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돈도 명예도 권세도 쾌락도 음란도 아니고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만을 좇아갔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업적으로 예배의식에 종사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습관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지만 실제 삶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참된 성품과 하나님이 진정으로 요구하시는 것을 잊어버린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 결과 실천적 무신론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이론적 무신론자입니다. 이론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두 번째는 신천적 무신론자입니다.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백성들은 이론적 무신론자가 아니라 실천적 무신론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사도 드립니다. 하나님을 찾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고 종교적으로 볼 때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실제적인 삶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실천적인 무신론자인 외식주의자요 이율배반적인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찢으리니란 타라프 라고 하는데 움키다, 물어뜯다, 갈기갈기 찢다라는 뜻으로 먹이를 갈기갈기 찢는 몹시 굶주린 야수의 모습으로부터 따온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화가 났으면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 그 결과 건질 자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면 더 이상 소망이 없는 버린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짓는 죄는 하나님께 나와서 용서받을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 범한 죄는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삶 자체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삶을 사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은 빨리 깨닫고 돌아서야 합니다.
2) 그러면서 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인지를 말씀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다시 반복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구원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순간마다 이 두 가지 일, 즉 구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시는데 누구한테 이 두 가지 일을 하시고 싶어하실까요? 그것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들에게 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를 직역하면 감사함으로 희생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여기서 제사를 드리다라는 동사(자바흐)는 14절에서 사용된 것으로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희생제사가 무엇인지, 또는 그 제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즉 그 제사란 어떤 동물을 죽여서 끌고 오는 그러한 외형적이고 습관적인 행위가 아니라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릴 때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게 죽으셨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참회와 감사와 감격과 기쁨의 눈을 흘리면서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14절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또다시 23절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린다는 말씀을 반복해서 하시는 이유는 서론에서 증언하리라는 단어에서 그 중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증언하다란 반복해서 말하다, 경고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감사의 제사를 드리지 않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경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드리는 수많은 제사들이 하나님께는 역겹고 견딜 수 없도록 만드는 제사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감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죄와 불의는 사탄 마귀의 악한 성품이라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성품(겸손과 온유와 사랑)을 닮아서 하나님처럼 살아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지 않고 예수님을 닮지 않는 종교인의 삶은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감사가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감사로 예배를 드리고, 감사로 기도하고, 감사로 전도하고 봉사하고, 감사로 헌금을 드리고, 감사로 찬양을 드리고, 감사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감사로 잠을 자고, 감사로 일어나는 그런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그리고 날마다 깨닫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가 우러나와서 감사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 결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고 그런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왜 삶에서 구원이 없습니까?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감사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며, 삶과 인격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여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자는 반드시 성품의 변화가 일어나서 하나님처럼 되고 예수님처럼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격과 삶의 변화가 없는 제사와 예배는 그 숫자와 횟수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감사로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맛보고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아멘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시편 50:7-15,22-23절을 읽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소유인 두 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이 듣기를 원하는 두 가지 내용은 무엇입니까?
3.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의 또 다른 의미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두 가지 면에서)?
5.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이 두 번 나온 것은 무엇에 대한 경고입니까?
6. 성도의 삶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1.1)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백성이 될것이라는 언약을 맺으셨고 2)하나님과 이스라엘백성들이 맺은 피의 언약-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을 담보로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2.1)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지 들어보라 2)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신다
3.1)지존하신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하나님을 향해서 쏟아낸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라 2)환난날에 나를 부르라-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무슨일을 만나든지 가장먼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구원과 도움을 받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입니다
4.1)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반드시 다른 신을 섬기게 되는데 바알과 아세라 곧 돈의신이요 음란의 신을 섬기게 되는것을 말합니다 2)이론적무실론자는 하나님을 부인하는자이지만 하나님을 잊어버린자는 실천적무실론자들로서 겉으로나 종교적으로는 아무문제가 없이 제사를 드리지만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5.이스라엘 백성들 곧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감사의 제사를 드리지않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하시는 경고입니다
6.감사로 제사를 드리지 않기 때문 곧 삶과
인격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