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바로크 시기의 화가 '도메니코 페티'(1589~1623) 가 그린 '가라지의비유' The Parable of the Weeds/Tares 는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를 시각화한 그의 대표적인 걸작 중의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페티가 만토바 공국의 궁정 화가로 활동하던 시절 제작한(1618-1621) '예수의 비유 시리즈'하나로, 독창적인
구도와 깊은 내러티부로 미술사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1.작품의 배경;성경 속 '가라지의 비유'
그림의 모티브가 된 성경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좋은 씨(밀)를 뿌렸는데, 사람들이 잠든 밤에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 '가라지(독보리,잡초)'를
덧뿌리고 달아납니다.
훗날 종들이 가라지를 당장 뽑아버릴지 묻자,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힐까 염려되니,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답합니다.
이는, 세상의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현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하느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상징합니다.
2.작품의 주요 특징 및 시각적 요소
*악마(원수)의 묘사
페티는 밤을 틈타 가라지 씨를 뿌리는 '원수'를 악마의 모습으로 직관적이고 해학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림 속 인물은 뾰족한 위와 머리에 작은 뿔이 돋아나 있어 그가 사탄(악마)임을 암시합니다.
-그는 남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고 신속하게 밭에 잡초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잠든 일꾼들과 밤의 대조
-화면 우측 하단이나 배경에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일꾼(농부)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들이 영적으로 방심하고 잠든 사이에 악이 세상에 침투했다는 비유적 메시지를 극적으로 시각화한 부분입니다.
*독특한 풍경과 바로크식 명암법
-역동적인 자연;페티 특유의 거칠고 자유로운 붓 터치로 그려진 나무들은 구불구불하고 기괴한 형태를 띠며, 작품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불어넣습니다.
-빛과 어둠의 대비;어두운 밤하늘과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미묘한 빛이 악마의 실루엣과 나무의 윤곽을 도드라지게
만들어 극적인 느낌을 배가시킵니다.
3.미술사적 의의
*도메니코 페티의 '비유시리즈'는 당시 거대한 크기의 종교화들과 달리, 일반 가정이나 개인 서재를 장식하기 위해
작은 패널(나무판) 에 조밀하게 그려진 것이 특징입니다.
거창하고 이상화된 르네상스식 풍경에서 벗어나,서민적이고 일상적인 정서 위에 영적인 교훈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페티의 사실주의적 접근은 이후 네덜란드 장르화나 풍경화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4.소장 정보
도메니코 페티가 그린 '가라지의 비유'는 여러 버전과 모작이 존재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작 중 하나는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의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마태오 복음에만 언급되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13,24-30 참조)는 ‘비유에 대한 설명’(13,37-42 참조)이 명시하듯 ‘세상 안에 선악의 공존’을 기술한다. 안전하고 풍요로운 밀 소출이 목표라면, 독보리의 일종인 가라지는 시급한 제거 대상이다. 그런데 밀밭 주인은 밀과 유사한 외형을 지닌 가라지에 대한 용인이 아니라 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토대로 이렇게 선언한다.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13,29)
이 비유는 앞의 두 물음에 적용할 수 있다. 밀에 기생하는 가라지처럼 선으로 위장한 악은 식별하기 어렵다. 악은 단독으로 활보하지 않고 선에 기대어 전파된다. 밀 수확의 최종 책임자처럼 ‘만물을 선하게 창조하시고’(창세 1,31 참조) 더 나아가 ‘만물을 선하게 돌보시는’(지혜 12,13 참조) 하느님은 악의 문제에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죄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마련하신다.(지혜 12,19 참조) 이런 맥락에서 상선벌악 교리는 ‘수학의 비례 정식으로 계산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로마 8,27) 하느님에 대해 안내한다.
세상과 마찬가지로, 교회는 차이와 선악의 공존 장소이다. 차이는 인정과 관용으로, 선악은 회개와 인내로 공존한다. 선악의 공존 장소인 교회는 거룩하면서도 죄로 타락해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양면적 교회를 ‘혼합된 몸’(corpus permixtum)으로 해명하였다. 거룩한 교회는 선을 위해 악을 활용하는 권능을 지닌 하느님의 교회이며, 타락한 교회는 선을 피하여 악으로 기우는 신앙인의 교회이다. 죄 많은 교회는 주님의 기도에서 이렇게 청원한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악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인간에게 현명한 방안을 소개한다. “내버려두어라.”(마태 13,30) 이는 악에 대한 방관과 묵인이 아니라 예민과 집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자세다. 분노와 미움의 감정을 내버려두지 않기에, 곧 이로부터 자신이 점령당하고 있기에 갈등과 불화의 골이 더욱 깊어진다. ‘내버려둠’은 정화 기간의 확보이며 하느님의 활동에 대한 확신이다. 의인이 받는 고통에 대한 절박한 탄원 중에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화려하게 입히시는 하느님’(마태 6,30 참조)을 체험한 욥은 ‘내버려둠’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밀 대신 엉겅퀴가 나오고 보리 대신 잡초가 자라도 괜찮네.”(욥 31,40)
-광주대교구 김일두 신부의 '생활속의 복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