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하게 살았다. 결혼 전까지 이재명 만큼은 아니지만 악으로 깡으로 살아야 했고 결혼 해서 가정을 이룬 다음부터는 경제적으로는 최소한의 생활이었지만 비로소 정서적으로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목사가 되어서도 비주류의 길에 들어서서 빈민운동을 하다가 아이들이 장성하면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호주로 가서 25년을 살다가 돌아왔다. 서울의 위성도시인 시흥의 국민임대주택에 입주하여서 다시 대한민국의 기층 사회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한국사회의 상류 계층에 진입해 본 적이 없어서 냉정하게 판단하면 한국 사회 전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은 숫적으로는 다수에 속하지만 계층적으로 한국 사회의 일부분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전혀 모르는 나머지 부분은 경제학을 하는 아들 때문에 알게 된다. 아들 역시 박봉의 교수이지만 그가 상대하는 고객들이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태와 정서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아들에게서 얻는 정보를 통해 내가 받은 느낌으로는 문재인 정권은 희망이 없는 정권이었다. 이제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권으로 바뀌었는데 과연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윤석열은 능력이 안되는 일을 맡아서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지만 나는 금년초 임대 아파트 단지 작은 도서관 관장을 맡았다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서 2 달 만에 그만 두었다. 왜냐하면 도서관 단골들이 대부분 나이 먹은 여성들이어서 나로서는 그 분들을 상대하기어려웠기 때문이었지만 아내가 한글을 가르치는 일은 계속하고 있다.
한글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가난해서 교육을 받지 못했고 10대 부터 공장 혹은 농촌에서 일을 했던 80대 여성들이다. 아내에게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는 강남 아파트촌 사람들의 생활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국가가 발전한 탓에 현재의 그들의 생활이 넉넉하지는 않아도 각박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비록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인격적으로는 전혀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거품이나 비게가 전혀 없는 단순 소박한 삶에서 감동적인 이야기거리가 많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10살 소녀로서 8.15 해방을 맞았던 날 아침의 분위기였다. 그것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서 녹화를 해두자니 한사코 사양해서 안타깝다.
한 때 공산주의 혁명 때는 출신성분이 대단히 중요했었다. 왜냐하면 출신성분에 의해서 삶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출신성분은 수저론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요즘 입에 많이 오르 내리는 인물 중 대표적인 금수저로는 이준석, 박지현이고 대표적인 흙수저는 이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