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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菩薩의 十種心得安隱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心得安隱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自住菩提心하고 亦當令他住菩提心하야 心得安隱하며 自究竟離忿諍하고 亦當令他離忿諍하야 心得安隱하며 自離凡愚法하고 亦令他離凡愚法하야 心得安隱하며 自勤修善根하고 亦令他勤修善根하야 心得安隱하며 自住波羅蜜道하고 亦令他住波羅蜜道하야 心得安隱하며 自生在佛家하고 亦當令他生於佛家하야 心得安隱하며 自深入無自性眞實法하고 亦令他入無自性眞實法하야 心得安隱하며 自不誹謗一切佛法하고 亦令他不誹謗一切佛法하야 心得安隱하며 自滿一切智菩提願하고 亦令他滿一切智菩提願하야 心得安隱하며 自深入一切如來無盡智藏하야 亦令他入一切如來無盡智藏하야 心得安隱이 是爲十이니라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安隱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마음이 편안하여짐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스스로 보리심에 머물고, 또 다른 이도 보리심에 머물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스스로 끝까지 성냄과 다툼을 여의고, 또 다른 이도 성내고 다툼을 여의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스스로 범부의 어리석은 법을 여의고 또 다른 이도 범부의 어리석은 법을 여의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스스로 착한 뿌리를 부지런히 닦고 또 다른 이도 착한 뿌리를 부지런히 닦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스스로 바라밀도에 머물고, 또 다른 이도 바라밀도에 머물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스스로 부처님의 가문에 태어나고, 또 다른 이도 부처님의 가문에 태어나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스스로 제 성품 없는 진실한 법에 깊이 들어가고 또 다른 이도 제 성품 없는 진실한 법에 들어가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스스로 모든 부처님의 법을 비방하지 않으며, 또한 다른 이도 모든 부처님의 법을 비방하지 않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스스로 일체 지혜의 보리원(菩提願)을 만족하고 또 다른 이도 일체 지혜의 보리원을 만족하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스스로 모든 여래의 다함없는 지혜의 장(藏)에 깊이 들어가고 또 다른 이도 모든 여래의 다함없는 지혜의 장에 들어가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편안함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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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심득안은(十種心得安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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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 익숙하지 못하신 분은 아무 데나 끊어 읽는다. 그래서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아기다리 고기다리’ 가 되어 버린다. 끊어 읽는 것은 자꾸 많이 읽으셔야 익숙해진다.
이것은 선배 스님들한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초자 스님들이 오셔서 그분들을 목적으로 드리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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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은
유십종심득안은(有十種心得安隱)하니 : 열 가지의 심득안은이있다.
마음이 안은한 것이 어떤 것이냐? 마음이 안은한 것을 앞에서 우리는 최상승심이라고 했다. 증상최승심(增上最勝心), 가장 수승한 마음이다.
세주묘엄품에서 주가신(主稼神)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맛있는 맛이 어떤 맛입니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유연승미가 가장 좋은 것이다.’
곡식은 유연하고 보들보들해야 되고, 수승한 맛이라고 하는 것은 남녀노소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간의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누가 먹더라도 맛있어야 한다. 그것이 승미이고 수승한 맛이다.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심득안은이다. 누구든지 좋아하는 것이다.
마음이 편안하면 어떻게 되느냐? 가장 수승한 마음이 증폭된다. 어린아이들이 쑥쑥 자라듯이 폭발적으로 커 나간다.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면 쪼그라든다. ‘간이 탄다, 애간장이 녹는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쪼그라든다.
마음이 편안하면 우리같이 얼굴이 막 백옥처럼 뽀얗다. 믿거나 말거나 그렇다. 그러면 어떤 것이 마음이 편안한 것이냐?
하등(何等)이 : 어떤 것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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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자주보리심(所謂自住菩提心)하고 :누가 시켜서 머무르는것이 아니고 스스로 보리심에 머무른다. 스스로 머리 깎고 출가해서 살아간다. 또한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역당령타주보리심(亦當令他住菩提心)하야 : 남들에게 행의 근본이 되게 한다.
이것이 아주 근본이다.
나 스스로 부처님처럼 보리심에 머무르고, 또 마땅히 남들로 하여금 보리심에 머물게 해서
심득안은(心得安隱)하며 : 마음의 안은함을 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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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구경이분쟁(自究竟離忿諍)하고 : 스스로 구경 퍼팩트한, 완벽하게, 완전하게 분쟁을 떠난다.
이것을 금강경에서는 ‘무쟁삼매인중(無諍三昧人中) 최위제일(最爲第一)이라’고 하였다.
원효스님을 화엄의 극치로서 칭찬하는데 화쟁국사라고 했다. 화쟁이다. 모든 분쟁을 완전히 융화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상스님의 호를 줄 때도 거의 화엄의 궁극적인 목표를 가져다가 원융국사라고 해 버렸다.
의상조사는 완전히 화엄에서 종극인 원융이라 해 버리고 원효스님을 화쟁이라고 하였다. 의상스님을 완전히 원융으로 묶어버렸으니까 기분이 좀 나쁘더라도, 원효스님이 조금 낮다.
역당령타리분쟁(亦當令他離忿諍)하야 :원융이 돼 버리고 나면 강물이 어제 왔든지 오늘 왔든지 천년 전에 왔든지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다 동급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LA 바다로 들어왔든 한강으로 들어왔든 바다로 들어가는 순간에는 똑같은 태평양이 되어 버린다. 어느 것이 더 나은가? 좀 가르쳐 주시기 바란다.
심득안은(心得安隱)하며 : 마음이 편안하게, 이것이 무쟁삼매다. 무쟁삼매는 모든 다툼을 다 제압해 버렸다는 것이다.
자리범우법(自離凡愚法)하고 :자리범우법한다.
오늘 진도 안 나가도 되겠다. 제가 볼 때는 진도를 안 나가도 이 구절만 가지고 맨날천날 뜯어먹어도, 한 석 달 동안 초하루 법문을 해도 되겠다.
자리범우법하고 스스로 범우법을 떠나고 그래서 우리가 흔히 번뇌에 얽혀 있는 것을 번데기 누에고치가 스스로 집을 지어서 갇힌 것, 얽힐 전(纏)자를 쓴다. 그걸 재전법신(在纏法身)이라고 한다.
누가 번뇌에 얽은 것이 아니다. 자기가 스스로 꽁꽁 얽어매어서 재전법신한 것을 문수보살의 신념으로 이지(理智)를 통해서 지혜를 통해서 끄집어내는 분이 보현보살이다.
그래서 튀어나오면 그것을 출전법신(出纏法身)이라고 한다.
그것이 자리범우법이다.
범부의 법을 여의고
역령타이범우법(亦令他離凡愚法)하야 : 또 남들로 하여금 어리석은 범부의 법을 벗어나게 한다.
자기도 어리석음을 벗어나고 남도 어리석은 범부의 법을 벗어나게 한다.
여기 범부라고 하는 것, 화엄경에서 지칭하는 우법(愚法)이라고 하는 것은 소승우법이다.
소승이라고 하는 것은 사성제, 12연기에 기반을 둔 법이라서 보살행이 조금 부족하다.
오종선근이라고 전에 이야기했었다.
심득안은(心得安隱)하며 : 심득안은이라 했을 때는 지혜로 인해서 마음이 편안한 것을 말한다.
지심안이고, 그것을 자리(自利)라고 한다.
지혜가 돋아나서 마음이 편안해진 것을 자리라 하고, 자비가 돋아나서 남을 이타행으로 편안하게 하는 것을 비심안이라 한다.
지비천선이라 하잖는가.
비심안(悲心安), 지심안(智心安) 그런다.
이타행은 비 자리행은 지, 이렇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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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근수선근(自勤修善根)하고 : 스스로 선근을 닦고
역령타근수선근(亦令他勤修善根)하야 :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선근을 닦아서
심득안은(心得安隱)하며 : 마음이 편안해지며
자주바라밀도(自住波羅蜜道)하고 :스스로 바라밀행에 머무르고
역령타주바라밀도(亦令他住波羅蜜道)하야 : 다른 사람을 바라밀도에 머물게 하여
심득안은(心得安隱)하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두 개는 선으로 나아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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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재불가(自生在佛家)하고 : 여기서부터는 드디어 증입해서 깨달아 들어가는 상태다. 스스로 부처님의 가문에 태어나고
역당령타생어불가(亦當令他生於佛家)하야 : 또한 남들로 하여금 부처님 가문에 태어나게 해서
심득안은(心得安隱)하며 :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자심입무자성진실법(自深入無自性眞實法)하고 : 스스로 깊이 무자성의 진실법에 들어간다.
무자성의 진실법은 우리가 법성게 같은 데서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이라고 하였다. 실제는 진실법이고 중도상은 바로 무자성이다.
궁좌실제중도상, 중도라고 하는 것이 안으로는 무성이고 밖으로는 무상이라고 이야기한다.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이다. 무자성이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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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전체 구절이 여기에 다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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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무명무상절일체, 제법부동본래의 경지, 궁자실제중도상의 경지, 실제의 경지에 들어간다.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파식망상필부득(叵息妄想必不得)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이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
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
궁좌실제중도상 구래부동명위불
스스로 깊이 무자성에 든다.
자성무소유라든지 무자성은 이제까지 많이 나왔다.
범행품(梵行品)의 지일체법즉심자성(知一切法 卽心自性)이라든지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揭讚品) 승혜보살장(勝慧菩薩章)에서는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가 나왔다.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승음보살장(勝音菩薩章)에서는 뭐가 나왔는가?
어제 금천선원인가 어떤 절에 가니까 승음보살(勝音菩薩)의 게송이 있었다.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이항처차보리좌가 바로 이 무자성, 진실법, 궁좌실제중도상이 다.
역령타입무자성진실법(亦令他入無自性眞實法)하야 : 다른 이도 제 성품이 없는 진실한 법에 들어가게 하여
심득안은(心得安隱)하며 : 심득안은 한다.
십회향품을 배울 때 제8진여상회향에서 한 이백 가지, 백 가지 조목으로 자세하게 나왔다.
이세간품의 이런 대목은 이제까지 앞에 나온 십지품, 십회향품, 여래현상품에 나온 무성으로 성품을 삼는다, 무상으로 위성한다는 것과 다 매칭이 된다.
신기하게도 여러분은 기억이 안 나시나 보다. 지우개처럼 배운 것을 싹 지워버리는 신통력을 가지고 계신다.
잘 기억하려면 뭘 하셔야 된다고 했는가?
반복 반복하는 것이다.
소가 꼴을 먹고 되새김질을 하는 것을 반추(反芻)라고 하는데, 반복 반추 반복 반추해야 한다.
저는 여러분보다 머리가 훨씬 나쁜데 이런 구절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여기 끌려 나와서 계속 강의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계속하다 보니 반복 반복해서 다른 사람에게 강의를 안 해줘도 제가 저한테 계속 강의하기 때문에 기억이 된다.
자학(自學)이다.
다른 이도 제 성품이 없는 진실한 법에 들어가게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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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불비방일체불법(自不誹謗一切佛法)하고 :자불비방일체불법이다. 불법을 비방하는 것은 아주 지저분한 것이다. 모든 불법을 비방하지 않는다.
남방에 가서 좀 있었다고 해서 불교를 비방하고, 참선을 좀 한다 해서 염불하는 사람 비방하고, 염불을 좀 한다고 해서 경전 보는 사람 비방하고, 율을 좀 본다 해서 비율사들을 비방하고 엉망진창이다. 자기 것이나 하면 잘할 것이다. 그런 것을 ‘니나 잘하세요’라고 한다.
역령타불비방일체불법(亦令他不誹謗一切佛法)하야 : 다른 사람에게도 모든 불법을 비방하지 않게 하여
심득안은(心得安隱)하며 : 마음이 편안하다.
소초 같은 데도 ‘이 세상에 가장 크게 불교를 비방하는 게 뭐냐?’‘비불설이다. 부처님 설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을 가장 큰 비방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미미하고 작은 비방은 어떠냐?
‘그 내용이 조금 부실한데?’ 이런 것은 적은 비방이 되겠고, 내용이 부실하다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부처님 설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큰 비방이다.
합론이나 소초에는 그렇게 기록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제대로 알면 미세한 비방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자식을 되게 아끼는 부모들은 자식의 똥이 조금도 더럽지 않다. 효자들이 부모님들을 병구완하면서 대소변을 받는 데도 추접하다는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다.
오직 연민의 정으로 안타까운 부모님이 계실 뿐이고, 그 어린 나약한 돌봐야 될 자식이 있을 뿐이다.
보살심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불교라고 해놓으니까 서푼어치 아는 것을 가지고 욕을 하고 비방하고 ‘이거 비불설인데 내가 배운 건 어떻고 경전성립사는 어떻고, 교리발달사가 어떻고’ 한다.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이 차 앞에서 저를 가로막으면 그 차 본네트를 뜯어버리는 일이다. 사람도 뜯어버리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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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일체지보리원(自滿一切智菩提願)하고 : 스스로 온갖 지혜의 보리의 원을 만족한다. 스스로도 만족하고
역령타만일체지보리원(亦令他滿一切智菩提願)하야 : 남도 하여금 지혜의 보리원을 만족케하여
심득안은(心得安隱)하며 : 심득안은하다.
남도 잘 되고 나도 잘 되는 것이다.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 너도 잘 되고 나도 잘 되고 집집마다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불어난다.
여의주는 줄어드는 것이 없으니까 내 여의주를 가지고 누구에게든 줄 때마다 나한테도 또 생긴다. 그러니까 주고 또 준다.
아무리 퍼주어도 강의 달이나, 샘물의 달은 줄어드는 법이 없다.
여기서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완전한 보리열반 구경안락이다. 구경열반을 지금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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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심입일체여래무진지장(自深入一切如來無盡智藏)하야 : 스스로 모든 여래의 다함 없음, 부처님의 다함 없는 무진지장, 무진장을 조금 더 늘리면 무진지장이라고 한다.
무진지장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허공장이라고 한다.
허공의 창고가 굉장히 크잖은가.
또 다른 말로는 여래장이라고 하고, 또 다른 말로는 금강장이라고도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고 혜장, 일장, 월장, 소리야장, 창고장이라고 하는데, 이 무진장이 바로 일체 여래의 무진지장이다. 이것을 줄여서 여래장이라 하고 기신론 같은 데서는 여래장법신이라고 이야기한다. 여래법신을 다른 말로 무진장이라고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마지막에 구래부동명위불에 해당한다.
스스로 모든 여래의 다함없는 지혜의 장에 깊이 들어가고
역령타입일체여래무진지장(亦令他入一切如來無盡智藏)하야 :
다른 이로 하여금 모든 여래의 다함없는 지혜의 장에 들어가게 한다. 나도 들어가고 남도 깨닫게 하는 데서
심득안은(心得安隱)이 : 마음이 편하여 지나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이것이 열 가지다.
요즘 모종을 심어보면 봄에 심을 때 튼튼한 논이 가을에 영험이 있다.
좀 있다가 그 코스모스나 이런 모종도 심어보잖는가.
모종을 고를 때도 곡식이든지 고춧대든지 상추 같은 것도 심을 때 제가 보기에 탄탄한 것을 심어 놓으면 별로 병치레도 안 하고 좋다.
사람도 별로 시원찮은 것을 심어 놓으면 도도 안 닦고 사람 애만 태운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학인들 세 분이 사미계를 받고 왔는데 23살 24살 산삼(山蔘)이 들어왔다.
제가 어른스님께 ‘스님 저는 와 이래 복이 많습니까?’
세 명이서 수계를 했는데 한 분이 탈영을 해서 기본선원인 백담사로 도망가 버렸다.
아무리 꼬셔도 안 되고 방장이든 아니든 ‘부처님이 오신다 해도 나는 백담사 가서 수행해야겠다’ 해서 ‘가라 가라 가라’ 해서 보내놨는데 수계산림을 하다가 옆에 어름한 분이 한 분 사미분이 계셨던가 보다. 범어사가 좋다고 해서 또 잡아온 것이다.
자기가 잡아 왔다고 얼마나 스물세 살짜리가 자랑을 하는지, 오늘 제가 기념으로 짜장면 사먹으라고 20만원을 줬다.
뭔가 상벌이 분명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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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일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여래무상대지안은(則得如來無上大智安隱)이니라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편안함을 얻느니라
(7) 菩薩의 十種成就衆生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成就衆生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以布施로 成就衆生하며 以色身으로 成就衆生하며 以說法으로 成就衆生하며 以同行으로 成就衆生하며 以無染着으로 成就衆生하며 以開示菩薩行으로 成就衆生하며 以熾然示現一切世界로 成就衆生하며 以示現佛法大威德으로 成就衆生하며 以種種神通變現으로 成就衆生하며 以種種微密善巧方便으로 成就衆生이 是爲十이니 菩薩이 以此成就衆生界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중생을 성취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시로 중생을 성취하고, 육신으로 중생을 성취하고, 법을 설하여 중생을 성취하고, 함께 행함으로 중생을 성취하느니라.
물들지 않음으로 중생을 성취하고, 보살의 행을 열어 보임으로 중생을 성취하고, 모든 세계를 치성하게 나타내 보임으로 중생을 성취하느니라.
불법의 큰 위엄과 덕을 나타냄으로 중생을 성취하고, 갖가지 신통과 변화로 중생을 성취하고, 갖가지 비밀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을 성취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보살은 이것으로 중생계를 성취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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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성취중생(十種成就衆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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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성취중생(有十種成就衆生)하니 : 열 가지 중생을 성취 하나니, 성취라고 하는 것은 ‘사람 만든다’ 이 말씀이다.
성숙시킨다, 메주를 담가서 된장이 되도록 장이 되도록 구더기 안 타도록 되는 것이 성취된장이다, 성취중생이다,라고 한다. 장이 되기 전에는 안 됐다고 ‘안 된장’이지만 다 되면 ‘된장’이다.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인가. 중생은 어쨌든지 보시로 성취중생을 한다.
우리가 바라밀행을 어떻게 해야 될까?
보시라고 했을 때는 생멸법을 먼저 전해준다.
특히 삶 속에서 생축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망축을 한다.
생멸법에 대한 두 가지 축원을 끝내고 난 뒤에는 ‘연후원(然後願)’하고 나서 실제 축원을 한다.
‘중생회향 보리회향 실제회향’을 하듯이 생축하고 망축하고 실축을 하는데, 그다음에는 불생불멸축 불생불망이다.
중생에게 생축을 할 때는 보시부터 먼저 한다.
소위이보시(所謂以布施)로 :이른바 보시로써
성취중생(成就衆生)하며 : 중생을 성취한다.
중생은 보통 자기 것을 아끼고 남의 것을 탐낸다.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중생이 살아가는 마음 자체, 그 마음의 모양새, 마음의 꼬라지가 아주 빈궁한 중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시로써 중생을 성취한다고 하는 것은 일단 있는 사람한테도 ‘봉투하나 더 챙겨 줘라’ 이런 뜻이다.
이색신(以色身)으로 : 육신으로 색신으로써
성취중생(成就衆生)하며 :중생을 성취한다.
중생들은 색신을 가지고 교만을 떨기를 좋아한다.
색신이 있으면 얼굴에 온갖 것을 붙이고 옷에도 온갖 것을 걸치고 물건도 비싼 명품을 걸친다. 그런 것이 중생의 심보이기 때문에 여기 자세하게 써놨다.
그냥 써놓은 것이 아니다.
차에 스티커를 많이 붙여서 다니거나 차 안에 향수도 많이 놓고 다니면 ‘중생심보이고 수행자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된다.
차가 밋밋하다, 색깔도 밋밋하고 대충 회색이나 흰색, 무채색이면 ‘아이고 중인갑다’ 생각하면 된다.
고무신만 해도 그렇다.
절에 오는 보살들의 고무신을 보면 완전히 꽃을 그려놓고 별걸 다 그려 놓았다. 그런 것은 사치스럽거나 조금 교만이 심한 사람이다.
조금 더 지나쳐서 거기다 입승이나 찰중까지 딱 시켜놓으면,
회장자리, 반장, 줄반장을 시켜놓으면 갑질을 한다.
그런 것이 다 여기 써놓은 대로다.
화엄경을 거의 한 백 번만 읽으면 대놓고 믿는 사람들, 짱대 꼽아 놓는 사람보다 낫다.
중생들은 형상을 으시대고 교만을 떨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중생은 어떻게 제도해야 된다고 했는가?
악한 중생들을 가르칠 때는 세력으로 가르쳐라.
중생이 돈이 많다고 딱 똥폼 잡으면 돈을 더 많이 갖다 내는 것이다.
‘내 천만 원 냈는데 스님은 어떻습니까?’
‘아 내는 요번에 1억 냈다 아이가.’
이렇게 꽉 죽여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힘자랑하고 역기를 300kg 들고 500kg 들고 이렇게 하잖는가? 그럴 때는 ‘내 600kg든다. 이번에 봐라’ 하고 한 손으로 딱 들어 보여주는 것이다.
공부 잘한다고 으시대면 ‘아이 내가 하버드 석 달만 공부해서 들어갔다 아이가’ 그런 식으로 해서, 중생은 뭘로 꺾어야 된다? 악한 중생들은 세력 대 세력으로 꺾는 것이다.
인물 좋으면 인물로 꺾는다.
그런 것은 괴롭히려고 꺾는 것이 아니고 본질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마음이 다 된 중생들은 어떻게 꺾는가? 화엄경 저 앞에서 배웠다. 그런 이들은 꺾는 것이 아니고 마음 상태가 순수해진 사람들에게는 법을 가르쳐야 된다.
그러니까 자기 체면과 양심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귀에 법문이 안 들어오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법문이 들어올 때까지 제압하는 것이다.
부처님도 앙굴리 말라를 제도해야 되는데 제압이 안 되니까 ‘나잡아 봐라’ 하셨잖은가.
앙굴리말라는 재빠르게 와서 사람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람인데, 아무리 부처님을 쫓아가도 잡을 수가 없으니 식겁하고 난 뒤에 ‘부처님 이제 됐습니다. 고만하입시더’ 라고 하니까 ‘그래? 그럼 이제 들어온나’ 이런 식으로 부처님이 또 신통을 써서 딱 제압해서 눌러주셨다.
신통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가 그렇게 안 하면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지금 그런 뜻이 여기에 다 쓰여 있다.
이설법(以說法)으로 : 법으로써
성취중생(成就衆生)하며 :중생을 성취한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법에 대해서 자꾸 의심하니까 확실히 보여서 의심을 타파하는 것이다.
이동행(以同行)으로 : 동행으로써
성취중생(成就衆生)하며 : 성취중생한다.
괴각(乖角)이라고 하는 이들은 같이 가려고도 안 하고 항상 삐지고 혼자서 따로국밥이잖은가. 대구에 가면 따로국밥이 있는데 따로따로 노는 사람들, 뭔가 대중 화합이 안 되는 사람들, 물에 기름 돌듯이 뱅뱅뱅 도는 사람들은 동행이 안 된다. 중생 심보가 대충 그렇다. 이기심 때문이다.
이무염착(以無染着)으로 : 무염착으로
성취중생(成就衆生)하며 :성취중생한다. 중생은 빠졌다면 푹 빠진다. 도박이든 어디든지 중독이 되어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특히 탐내는 마음, 애착심 때문에 그렇다.
그런 중생들에게는 무염착, 무착심을 가르쳐야 된다.
물위를 걸어가도 빠지지 않는 것처럼 여연화불착수(如蓮花不著水) 심청정초어피(心淸淨超於彼)가 되어야 한다.
이개시보살행(以開示菩薩行)으로 :개시보살행으로
성취중생(成就衆生)하며 :성취중생한다.
보살행은 이렇게 사는 것이다.
보살행은 무엇인가? 쪼잔하게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고, 포용심으로 바라밀행으로 중생들이 하는 대로 동체대비심으로 사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답게 사는 것은 자기성취가 목적이 아니라 남을 도우면서 사는 것이다.
이치연시현일체세계(以熾然示現一切世界)로 :모든 세계를 치성하게 나타냄으로
성취중생(成就衆生)하며 : 중생을 성취한다.
이 대목은 화엄경 십지품 원행지에 보면 자세하게 나온다.
본래 치성할 것도 없는 줄 알지마는 중생들을 위해서 일부러 치성하게 하는 것이다.
장엄할 것 하나도 없는 줄 알지만 장엄하게 해준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꺼내놓는 것이다. 본래 꺼낼 것이 없지만 일부러 장황하게 꺼내놓는 것이다.
화엄경도 너무 많이 꺼내놔 버려서 우리가 80권을 읽어야 된다. 조금만 꺼내 놨어도 됐는데.
*
이시현불법대위덕(以示現佛法大威德)으로 : 불법의 큰 위엄과 덕을 나타냄으로써
성취중생(成就衆生)하며: 중생을 성취한다.
불법의 대위덕을 안 나타내면 중생이 부처님의 결과물에 대해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종종신통변현(以種種神通變現)으로 : 갖가지 신통 변화로써
성취중생(成就衆生)하며 : 중생을 성취시킨다.
신통이라고 하는 것은 사마타 수행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생각을 끊음으로부터, 잡짓을 끊음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본래의 정신 상태가 딱 이렇게 벌어져 나오는 것이다.
참선을 오래 하더라도 그것이 보인다.
그렇게 못 들어가면 도금이 되어서 금멕기나 은멕기 해놓았을 때 문지르면 금방 벗겨져 버리는 것과 같다.
그런 삿된 것으로 자꾸 잔재주를 부린다.
그다음 대목이 더 정확하게 그런 것에 대해서 나온다.
이종종미밀선교방편(以種種微密善巧方便)으로: 종종 미밀 선교 방편으로
성취중생(成就衆生)이 : 성취중생이다.
갖가지 미밀 너무너무 신통방통할 정도로 딱 안성맞춤으로 그 사람한테 딱 맞는 것으로써 중생을 성취한다.
약을 먹었는데 정확하게 약이 처방되는 것이다.
약도 어린아이용 어른용이 다르다.어른의 처방은 대방이라고 한다.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을 성취하는데, 교묘한 방편이 없고 솜씨가 능수능란하지 못하면 사기를 쳐야 된다.
위선자들은 삿된 지혜로써 교활하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교활하게 ‘요거 좀 줄게’ 미끼를 던진다. 대표적으로 보이스 피싱이 미끼를 던지는 것이다. 그런 것은 방편을 교묘하게 쓰는 것이 아니고, 아주 교활하게 쓰는 것이다. 교활한 것과 교묘한 것은 다르다.
걸렸다면 여지없다.
일반 사람들은 지혜가 없이 무지하기 때문에 교활한지 교묘한 지 잘 모른다.
교묘하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간접적으로 완전 전폭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걱정 안 해도 된다. 먹어도 죽지 않는다. 자기한테 딱 맞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속이는 것 같지만 ‘이거 이거 사탕이다 먹어라’해서 딱 먹어버리면 감기약으로, 감기가 나아버린다.
그런데 ‘이거 이거 먹어라 먹어라 사탕이다’ 해서 딱 먹었는데 독약이라면 먹고 죽어버린다.
그런 것은 교활한 것이다.
교활한 것과 교묘한 것이 그런 차이다.
그러니까 자비롭고 힘을 얻어 버린 사람은 같이 이야기할 때 금방 안다.
“아유 스님 오늘 일찍 오셨네요.”
“니 보고 싶어서 빨리 왔다.”
“스님 일찍 오셨네요.”
“와? 안 왔으면 싶더나?”
말을 던질 때 속에서 탁탁 가시가 바로바로 느껴진다.
말을 안 해도 안다.
딱 왔는데 조금 눈치가 그러면 금방 말 안 해도 다 알아버린다.
뒤에서 얘기는 못 해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
교활한 것과 교묘한 것은 그렇게 많이 다르다.
선정의 힘을 못 얻은 사람은 무조건 편법을 사용한다.
악독한 사람들, 욕심 많은 사람들은 그렇다.
그런데 욕심을 버리고 무착심이며, 무심하게 사는 사람들은 방편을 사용한다.
정정당당한 방편이다.
그 변(便)자를 갖다 우리가 편(便)이라고 읽는다. 편법(便法) 방편(方便) 제가 생각하기에 욕심 많고 방편을 잘못 편법으로 사용 사는 사람은 편법이 아니고 변법 같다.
소변 대변도 편자를 같이 쓰기 때문이다. 변법 똥법을 사용한다. 똥법 아주 오염법 변법 편법이 아니고 변법 같다.
방편은 편리하다 할 때 편자 있잖은가. 편리, 남을 이익되게 하는 쪽으로 쓰는 것이다.
이익되는 편으로 편리하게 해주는 게 방편이다.
편리가 아니고 법을 이용해서 그 틈바구니에 남을 골탕먹이는 것을 교활하다 한다.
이런 이야기를 화엄경에서 이렇게 자세하게 써놨다.
그래서 화엄경을 읽을 때마다 ‘아 우리 일상 사례를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써놨지?’ 감탄할 때가 많다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십이니
보살(菩薩)이 : 보살은
이차성취중생계(以此成就衆生界)니라 : 이것으로써 중생계를 성취한다.
중생의 간탐심이나 쪼그라든 빈궁한 마음, 교만한 마음, 어그러진 마음, 의심 많은 것, 삿된 것, 교활한 것 이런 것을 제압하는 것을 정확하게 일곱 번째 단락에서 다 써놨다.
(8) 菩薩의 十種戒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戒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不捨菩提心戒와遠離二乘地戒와 觀察利益一切衆生戒와令一切衆生住佛法戒와修一切菩薩所學戒와 於一切法에 無所得戒와以一切善根으로 廻向菩提戒와不着一切如來身戒와思惟一切法호대 離取着戒와 諸根律儀戒가是爲十이니라 若諸菩薩이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廣大戒波羅蜜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계(戒)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리심을 버리지 않는 계와, 이승(二乘)의 지위를 멀리 여의는 계와, 일체중생을 관찰하여 이익하게 하는 계와, 일체 중생을 불법에 머물게 하는 계와, 일체 보살의 배우는 것을 닦는 계이니라.
일체 법에 얻을 것이 없는 계와, 일체 착한 뿌리로 보리에 회향하는 계와, 일체 여래의 몸에 집착하지 않는 계와, 일체 법을 생각하되 집착을 여의는 계와, 모든 근(根)의 계율과 의식의 계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고 광대한 지계(持戒)바라밀다를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계(十種戒)
*
보살의 십종계, 보살의 열 가지 계가 나온 것을 보니까 중생의 심보가 어느 정도 사그라든 것이다.
우리가 다비장에 가서 다비를 할 때 어떤가?
처음에 육신인 고기가 불꽃에서 탄다. 그러다가 뼈는 숯불에 녹는다.
맨날 다비장 안 가는가?
가서 보면 고기는 하나도 없고 뼈만 밤새도록 타서, 바람이 불면 한 꺼풀 날리고 뼈가 또 날리고 날리는데 숯불은 이글이글 타고 있다.
여기에 나오듯 계에 넘어온 것은, 다비장의 꽃불은 지고 숯불쯤 되겠다.
계율이라고 하는 것은 군더더기가 다 떨어져 버린 것이잖은가. 계율은 대비심이 견고한 사람들, 중생을 위한 대비심, 자비심이 견고한 사람들이 갖는 것이다.
자비심이 결국은 삼매로 가는 길이다.
자비심이 견고한 것이 계향이다.
계향 정향 혜향 할 때 계향, 계라고 하는 것은 대비심, 대비심이 견고해서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금강대비심이 있어야 된다.
신중신 중에서도 집금강신이 바로 불교의 계율을 지키는 호법신장이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계(有十種戒)하니 : 열 가지 계가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 계율이냐.
소위불사보리심계(所謂不捨菩提心戒)와 : 이른바 보리심을 버리지 않는 계율이다.
원리이승지계(遠離二乘地戒)와 : 이승의 경지를 멀리하는 경계다.
관찰이익일체중생계(觀察利益一切衆生戒)와 : 일체중생을 관찰하여 이익되게 하는 경계다.
중생을 뭐하려고 관찰하는가?
사찰하는 것이 아니고 중생이 어찌하면 잘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늘 보살피는 것이다.
보살은 보살핀다고 보살이다.
영일체중생주불법계(令一切衆生住佛法戒)와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어디에 머물게 하느냐? 불법에 머물게 하는 계다.
수일체보살소학계(修一切菩薩所學戒)와 :일체 보살의 배우는 바를 닦게 하는 계다. 보살이 배울 바를 닦게 하는 계
*
어일체법(於一切法)에 :일체법에
무소득계(無所得戒)와 : 무소득계라. 이무소득이 결론이다. 지혜가 툭 터져 현전에 손금 보듯이 환해야 무소득을 알잖는가.
반야심경의 주제는 이무소득고다.
아무것도 얻을 바가 없는 것, 얻을 바가 없으면 우리는 사실 또 아무것도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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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체선근(以一切善根)으로 :일체선근으로써
회향보리계(廻向菩提戒)와 : 보리에 회향하는 계
불착일체여래신계(不着一切如來身戒)와 : 일체 여래의 몸, 부처님의 몸에도 집착하지 않는 계와, 대단하다.
사유일체법(思惟一切法)호대 : 일체법을 사유하되, 모든 법을 생각하긴 하되 모든 법에 대해서
이취착계(離取着戒)와 :집착을 여의는 계다.
이런 것은 화엄경 범행품에 보면 자세하게 나온다.
범행품을 다시 리바이브해 놓은 것이다.
범행품의 꽃이 무엇인가?
초발심시변성정각이다.
초발심시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집착할 것이 없다는 데 대해서 확신을 가지는 발심이다.
발보리심이 득보리심이 되는 것을 변성정각이라고 한다.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것을 줄이면 득보리심이다.
즉득보리심, 즉발보리심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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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근율의계(諸根律儀戒)가 : 모든 근의 율의계, 계율과 의식이니, 율과 의식의 계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이것이 열 가지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 보살마하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여래무상광대계바라밀(則得如來無上廣大戒波羅蜜)이니라 : 그 자리에서 여래의 무상 광대한 계바라밀을 성취하게 된다. 계율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을 성취하고자 해서 스스로 모든 악을 그치고 선한 것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 나오는 열 가지 중에서 망보리심이 될 것 같으면, 보리심을 잊어버리면, 저 뒤에도 나오지만, 보리심을 잃어버리고 나면, 어떤 착한 일을 하든지, 어떤 좋은 일을 하든지 전부 파계다. 보리심을 잃어버리면 파보살계다.
(9) 菩薩의 十種受記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有十種受記法하야 菩薩이 以此自知受記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以殊勝意로 發菩提心하야 自知受記하며 永不厭捨諸菩薩行하야 自知受記하며 住一切劫行菩薩行하야 自知受記하며 修一切佛法하야 自知受記하며 於一切佛敎에 一向深信하야 自知受記하며 修一切善根하야 皆令成就하야 自知受記하며 置一切衆生於佛菩提하야 自知受記하며 於一切善知識에 和合無二하야 自知受記하며 於一切善知識에 起如來想하야 自知受記하며 恒勤守護菩提本願하야 自知受記가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수기 받는 법이 있어서 보살이 이것으로써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아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수승한 뜻으로 보리심을 내어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모든 보살의 행을 영원히 버리지 않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일체 겁에 머물러 보살행을 행하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일체 부처님의 법을 닦아서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일체 부처님의 교법을 한결같이 깊이 믿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아느니라.
일체 착한 뿌리를 닦아 모두 성취케 하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일체 중생을 부처님의 보리에 두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일체 선지식에게 화합하여 둘이 없이 하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일체 선지식에게 여래라는 생각을 내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보리의 본래 소원을 부지런히 수호하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아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수기법(十種受記法)
*
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수기법(有十種受記法)하야 : 열 가지의 수기법이 있는데 이것으로써
보살(菩薩)이 : 보살이
이차자지수기(以此自知受記)하나니: 이차로 스스로 수기 받을 줄 아나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수기라고 하는 것은 이미 허물이 다 벗겨져 버리고 없는 사람들이 받는 졸업장이다. 수기라고 하는 건 졸업장이다.
공덕이 완전히 성취된 사람들이, 스스로 이미 모든 행에 대해서 열심히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가을 수확을 하듯이 수기라고 하는 결과물을 취득하는 것이다.
자기가 무생법인을 알아버리면 스스로 저절로 안다고 한다.
한번 들어가 보겠다.
소위이수승의(所謂以殊勝意)로 : 소위 이른바 수승한 뜻으로써
발보리심(發菩提心)하야 : 발보리심하야
자지수기(自知受記)하며 : 스스로 수기를 받을 줄 안다.
발심이 수승했기 때문에 결과를 얻을 것이 의심 없다고 치문에 나온다.
인과(因果)가 역연(亦然)한데 기뻐하고 슬퍼할 것이 있느냐, 인과가 역연하다, 우리가 화엄경을 분명히 봤고 오래 공부했으니 다음생에 어떻게 될지 뻔한 것이 아닌가.
조금 위선은 있지만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고 부처님이 탕감 안 해주겠는가?
염라대왕은 약인욕요지만 외워도 탕감해준다고 하던데, 우리가 게송을 몇 개나 외우는가, 그 앞에 운집해서 약찬게 다 외우고 ‘나 이거 압니다 저거 압니다’ 그러면서 세주묘엄품을 다 외워 버려야지, 안 되면 어떡하겠는가.
인과가 분명한데 살아온 길이 분명한데 뭘 걱정하겠느냐?
인과역역(因果歷然)인댄 기무우구(豈無憂懼)요. 어찌 근심하고 걱정할 것이 있느냐, 치문할 때 배웠잖은가?
참 특이하시게도 다 까먹으신다.
인과가 분명한데 뭘 근심 걱정할 것이 있겠나.
도둑질하고 발 뻗고 못 잔다 하지 않는가.
도둑질 안 했으니까 발 뻗고 자는 것이다.
언젠가는 되찾을 것이다. 그래도 양심은 많이 찔린다.
영불염사제보살행(永不厭捨諸菩薩行)하야 : 영원히 보살의 행을 버리지 않고
자지수기(自知受記)하며 : 스스로 수기 받을 줄 알고
주일체겁행보살행(住一切劫行菩薩行)하야 : 온갖 겁, 일체 겁에 머물러서 보살행을 행하고
자지수기(自知受記)하며 : 스스로 수기 받을 줄 안다.
지금 우리 집 앞에 복숭아 꽃이 필 때인데 벌써 꽃보고 복숭아를 따먹으려고 하면 안 된다.
저는 복이 얼마나 많은지 낡은 요사채 비슷하게 다 찌그러져 가는 토굴이 있는데 아무 소리도 안 했는데도 십지품을 보면 그런 게 나온다. ‘배고픈 사람이 밥 찾듯이, 목마른 사람이 물 찾듯이, 아픈 사람이 약 찾듯이’ 그러면서 ‘벌이 꽃을 찾듯이’ 이런 표현이 있는데, 제가 가만히 있는데도 토종벌이 몇년 전부터 와서 서까래 밑에다가 꿀을 막 재놓는다.
진짜 저는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제가 아무 소리도 안 했는데 벌이 와서 토종꿀을 만들어 준다. 몇 년 됐으니까 따가지고 오시게장에 한 번 가 볼 생각이 있다.
제가 어려서 강원 졸업하기 한 6개월 전에 발심을 해서 통도사 적멸보궁에 가서 기도를 한다고 했는데, 저는 얼마나 복이 많은지 그 해부터 통도사에서 설법전을 지었다.
지금 통도사 설법전 있지 않은가? 제가 기도한다고 짓기 시작해서 설법전이 다 지어질 때까지 기도를 했다.
이런 것을 자가당착이라고 한다.
너무 지루하니까 살짝 웃으면서 가겠다.
우리가 팔자가 사납고 공부가 힘들고 이럴 때는 화엄경 가르침으로 해서 옛날부터 남 탓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전생에 너한테 무슨 원수를 지어가지고. 업을 지어서 이와 같은 과보를 되돌려 받노? 내가 니한테 죄가 많은가 보다’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
요즘은 신문이나 이런 것을 보면 전부 다 남탓하지 내 잘못은 없다.
요새는 ‘내가 니한테 해준 게 얼만데. 니가 내한테 이럴 수가 있나’하지 않는가. 전형적으로 바깥 탓을 하는 배타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러니까 가리왕이 아무리 팔다리를 잘라도 ‘아이고 내가 받아야 될 것이구나. 오온이 개공하던지 뭘 하든지 일체법이 요지일체법이 자성이 있든지 없든지’ 이렇게 해야 되는데, 내가 번듯한데 나도 인격체인데 해서 없는 것도 고소 고발하는 것이 일반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이런 때일수록 화엄경 같은 가르침이 좀 널리 퍼져야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
*
수일체불법(修一切佛法)하야 :일체 불법을 닦아서.
자지수기(自知受記)하며 : 스스로 수기 받을 줄 알고
어일체불교(於一切佛敎)에 : 일체 불법을 닦는다고 하는 것은 금강경에 1불 2불 3불 4불 5불 ‘이종선근(而種善根) 이어무량(已於無量) 천만불소(千萬佛所)’를 여기 이렇게 대충 묶어 놨다.
일향심신(一向深信)하야 : 모든 부처님 교법을 한결같이 깊이 믿고, 이렇게 계합하듯이 이치에 딱 떨어지게 맞게
자지수기(自知受記)하며 :스스로 수기 받을 줄 알고
*
수일체선근(修一切善根)하야 :일체선근을 닦아서
개령성취(皆令成就)하야 : 모두를 다 성취하게 한다.
자지수기(自知受記)하며 : 스스로 수기 받을 줄 알고 일체중생을 어디에다가?
치일체중생어불보리(置一切衆生於佛菩提)하야 :일체중생어불 보리라, 부처님의 깨달음의 분상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딱 두고
자지수기(自知受記)하며 : 스스로 수기 받을 줄 알게 하고
어일체선지식(於一切善知識)에 : 일체 선지식들에게
화합무이(和合無二)하야 : 화합무이
자지수기(自知受記)하며 : 자지수기라.
일체선지식들에게 딱 들어맞아서 둘이 없이 한다.
일체선지식처럼 가르침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
어일체선지식(於一切善知識)에 : 일체 선지식에게, 모든 선지식에게
기여래상(起如來想)하야 : 여래라는 생각을 내고
자지수기(自知受記)하며 : 스스로 수기 받을 줄 안다.
공부 조금 한다고 하는 사람은 끓지도 않고 넘쳐서 ‘아이 그 스님 알기는 뭘 알아’ 이렇게 대선지식을 눈앞에 두고도 그렇게 말한다.
저는 어떤 때는 신기하다. 우리 어른스님 같은 분이 어디에 계신가? 그런데도 가만히 계시면 누구신지 모르는 분들이 너무 많다. 옆에서 보면 신기하다.
‘아 이분이 안과에 좀 가셔야 겠다’ 이럴 때도 있다. 전혀 보고 들리지 않는가 보다.
8시 통근길에 유튜브 있잖은가? 모르시는가?
김상희 노래 ‘여덟 시 통근길에’, 아침에 어른스님의 유튜브 화엄경을 들으시기 바란다.
항근수호보리본원(恒勤守護菩提本願)하야 : 항상 부지런히 보리에, 항상 보리본원이라. 본원을 수호하여
자지수기(自知受記)가 : 스스로 수기 받을 줄 안다.
십지품에 본원을 그려 놨다.
당념본원도중생(當念本願度衆生)이라.
우리가 매일 했던 구절이다.
대충 이런 뜻이다.
너는 번뇌의 불이 다 꺼져서 ‘여수이멸번뇌화(汝雖已滅煩惱火)나 세간(世間)은 혹염유치연(惑焰猶熾然)이라’ 저 세간 중생들은 혹염이라, 치열하고 미혹한 불길 속에서 저렇게 타죽고 있는데, 너하고 같이 살아가는 동료들은 저렇게 유치연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대는 당념본원도중생이라, 네가 마땅히 본래 중이 해야 될 목적, 부처님의 목적, 근본 본래의 원력, 부처님 본원이 뭐냐? 극락가는 것이 아니고,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니까 그들로 하여금 바라밀을 행해서 실사수인(悉使修因)에 취해탈(趣解脫)이라. 모두로 하여금 그 원인 바라밀을 잘 닦게 해서 해탈 구경열반으로 나갈 수 있게 하라, 그렇게 해놨다.
너의 열반을 포기하고도 중생 열반을 취해라 그게 마지막 뜻이다.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시위십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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