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동명천제단입니다.
우리나라 그 중에서도 전라남도에는 소위 땅끝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즉, 해남을 언급하는 말인데, 육당 최남선 선생은 우리나라가 삼천리 금수강산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해남 땅 끝에서 서울까지 1천리이고,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가 2천리"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해남을 우리나라의 남쪽 기점으로 두고 우리의 국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해남에 우리의 '해남읍 단군전'이 있습니다.
'해남읍 단군전'은 '곡성 단군전'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특별한 단군전으로 국가 관리가 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에서 발표한 '2015년 문화재 돌봄사업 문화재 목록'에는 이미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곡성 단군전'과 함께 아직은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해남읍 단군전'을 새롭게 문화재 돌봄사업 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우리 대종교의 입장에서도 매우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는 감성도 가지게 됩니다.
사실상 대종교의 유적이며, 우리 민족의 성지임에도 현재 대종교 총본사는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남읍 단군전'이 소재하고 있는 해남읍은 1919년 4월 6일 해남읍 보통학교 학생들이 독립만세 시위를 벌었고, 11일에도 해남 장날에 운집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해남읍에 소재한 '해남읍 단군전'은 그런 차원에서 민족정기를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1958년 건립된 것인데, '해남읍 단군전'의 내력은 백운 이종철 선생이 구월산 삼성사를 참배하고 1923년 고향인 금풍리에 단군전(삼성사)을 지은 것이 시초였다가 1957년에 당시 군수 주관으로 단군전건립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듬해 지금의 해남읍 서림공원내에 단군전을 신축하게 되는 것이 현 '해남읍 단군전' 건립의 계기였습니다.
지금 금풍리 삼성사 터에는 '단군영당유허비'를 1968년 세웠습니다. 이 비에는 단군신위 봉안의 유래를 밝혀두고 있어서 매우 중요한 비입니다.
그리고, 백운 선생은 우리 역사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고향에 삼성사를 세우게 되는 배경도 대종교인으로서 구월산 삼성사를 방문하였을 때, 삼성사가 거의 허물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단군 영정이라도 보전하시고 싶은 마음에서 단군 영정을 고향인 해남으로 가져왔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단군 영정을 지금 확인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현재 대종교 총본사에서는 전혀 교인 관리가 안되는 상태이다보니, 이런 분이 정말 대종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역시 확인이 안되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대종교 총본사는 사이비적 행태를 즉각 중단하고, 역사적으로 대종교인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실시하여 반드시 기록물로 남기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대종교인이셨던 백운 선생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연구와 자료 발굴이 시급히 필요하고 요구되는 사안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가지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해남읍 단군전'의 내력과 더불어 논란이 되고 있는 단군 영정에 대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대종교 총본사에서는 보다 많은 연구를 해야 할 사업이라고 판단됩니다.
사실상, 단군은 대종교를 대표하는 국가의 시조이시자, 대종교를 탄생하게 해주신 근본적 핵심 이념이자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종교 총본사에서는 단군을 찾아보기 어려운 기막힌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이유일까?
무엇보다, 시급하게 총본사는 지방 시교당에 대한 관리 및 지원 사업을 확정하는 일과 함께 경리감사에 대한 국민 공개 그리고, 지방에 산재한 단군전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대종교 백봉대종사 숭모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