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보리밭 연가
글 32회 윤애단(용범)
여자 선배님이 여고 신입생 때 초등생 시절 짝꿍이 연애(戀愛)편지를 보내왔다네요.
일류 여고생이랍시고 우쭐해서 영문편지로 답장을 보냈고요.
하니 그 동창생 짝꿍이 결단을 했다네요.
'촌 학교는 영어 선생이 시시해서 안 되겠어, 자퇴하고 검정고시 거쳐 일류 법대 가야지'
여대생으로서 한창 콧대가 높아 있을 때 청년이 된 짝꿍이 찾아 왔고요.
"대학입시에 실패해 삼수하고 있어,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읍서, 될 때까정 할거야"
여자 선배님은 삼수생의 초라한 행색에 실망했다네요.
'어린 시절 반장으로서 왕처럼 군림하던 당당함이 사라지고, 옷매무새나 말투가 촌스러워 수준이 안 맞네'
해서 남들이 다 볼 수도 있는 엽서로요.
“이제 두 번 다시 찾아오지도 말고 연락도 하지 말아, 나 너에게 관심 없다.”
절교통보를 했고 이에 충격 받은 삼수생은 비장한 마지막 말을 남기고요.
떠났다네요.
"너와 같은 대학을 나온 여자와 반드시 결혼하겠다. 눈갈 똑바로 뜨고 지켜보아 다오."
그 삼수생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요.
마음이 아팠을 까요?
여자 선배님은 회갑 되던 해 졸업 이후 처음으로 잊고 살아왔던 고향을 찾아 초등생 동창회에 참석했다네요.
어린 시절 서로 풋사랑을 했지만 절교 선언으로 상처를 입힌 짝꿍의 근황이 궁금하고요.
인생의 뒤안길에서 지난 일을 사과하고요.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네요.
하지만 제 선배인 그 짝꿍의 소식을 알고는 놀래서 자책할 수밖에요.
‘답장을 보낸 영문편지는 본래 내 실력이 아니었는데, 참고서 예문을 적당히 단어만 바꿔서 작성한 것이지,
실연했다고 죽기는 왜 죽었어요?
하나 뿐인 목숨인데, 정말로 그 남자는 나 때문에 죽었을까?
그 남자의 불행에 내가 얼마나 관여가 된 것이람’
자책감에 괴로워하다가도요.
스스로 위안도 했겠지요.
‘에라, 모르겠다. 내가 언제 자기보고 죽으라고 했냐고?
왜 죽어서까정 내 맘을 뒤숭숭하게 만든다냐?
무슨 악연이길래, 불쌍해 죽같구만, 뒤지긴 왜 뒤졌다냐!
애단이 같은 자는 보란 듯이 글장난질만 잘 하더구만,
그나저나 그 인간은 요즈음 조용하네,
마누라가 더 이상 인터넷에 글 올리면 서울역 노숙자 만든다고 경고했다더니만, 서울역전에 가 있나 보네 그랴’
양도초등 100년사에서 여자 선배님의 글 “보리밭 연가”를 읽고요.
저는 가슴이 아팠어요.
너무 어이가 없었지요.
지난 날 고시낙방의 쓰라림 속에서 실연(失戀)의 아픈 경험이 있는 저였으니까요.
덕수궁 돌담장 길을 비를 맞으면서 하염없이 걸었던 그 쓰라림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지 싶었어요.
해서 지금도 노래방 애창곡이 “덕수궁 돌담장 길”이고요.
그 노래만 부르면 제 마누라가 난리에요.
"금방(金榜)에 이름 걸고 총각 강화군수 부임한다고 다짐하며 피 눈물을 흘렸다며?
웃기지 좀 마숑!
두 번 다시 그 노래 부르면 나 안 살거야! "
세상사 여의치 않아 한 많은 세상을 버린 제 고향선배가 너무 가엽고요.
불쌍해요.
촌사람이라는 콤플렉스를 벗어 던지고요.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여인 앞에 우뚝 서고 싶었겠지요.
‘선배님 그 심정 저도 잘 알아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누구라서 알았겠어요?
영문편지를 받아들고 독해도 못해 콤플렉스를 느꼈을 강화도 청소년의 상처받은 자존심을요.
여대생 짝꿍의 절교통보를 받고서 맛보았을 배신감과 절망감을요.
친구의 재산을 축 내면서도 안 풀리는 사업실패의 연속은 얼마나 참담했을까요?
인간만사(人間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지요?.
일체(一切) 유심조(唯心造)고 모두가 마음먹기 나름이라네요.
마음비우고 집착을 버리고 훌훌 털어버리면 홀가분하고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왜 죽느냐고요?
대학 안 나오고 사업 성공한 사장이 아니면 어디 뭐 세상을 못 사냐고요?
모두 다 나가 죽어버려야 하느냐고요?
어디 시집장가도 못가고 아들 딸도 못 낳고 밥도 못 먹냐고요?
저도 지난 날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요.
서로 만나 헤어질 운명이었지요.
해서 인천의 구멍가게 조카딸인 처녀 선생님 만났지만 오히려 축복이지 싶어요.
이제와 생각하니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고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이 딱 맞아요.
자살한 제 고향 선배님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워요.
심도직물 공장 처녀나 아니면 훗날 봉황새가 된 고개넘어 소목장집 딸이라도요.
하나 만나 진강산 산자락에 둥지 틀고 오순도순 살면 좋았을 것인데요.
살다보면 고향 땅값도 천정부지로 올라 있을 것이고 싫다고 떠난 여인 동창회에서 만나서요.
밍크코트라도 하나 선물 해주면 좋았을 것인데요.
왜 바보처럼 죽었냐고요?
혹시 팔자 사나워 서방 일찍 잡아먹고 혼자 외롭게 되었다면요.
손 맞잡고 남은 세월 함께 할 수도 있을 테고요.
제 선배님의 명복(冥福)을 진심으로 빕니다.
"고무신 거꾸로 신은 제 여자 선배님보다 더욱 착하고 인일여고거쳐 숙명여대 나온 얼굴짱 처녀귀신 하나 만나서요.
모든 콤플렉스 다 훌훌 털어 버리시겨,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옵소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