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논술>
열 명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인권,
-‘십시일反/창비’를 읽고 -
광주 동아여중 1학년 이수린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별의 대상은 다양하다.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여자, 노약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차별은 쉽게 우리들 눈에도 들어온다. 그러한 것을 이해하기 쉽게 한 눈에 나타낸 것이 바로 ‘십시일反’이다. 원래 ‘십시일반’이란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모아 밥 한 그릇을 만든다는 뜻으로 협동과 사랑이 담긴 말인데 만화 속에 그려진 것은 열 사람의 눈으로 본 반인권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우리의 부끄러운 부분을 본 듯 가슴이 뜨끔하고 창피했다. 아마도 열 명의 만화가가 노린 것이 바로 이런 마음인 것 같다.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대우를 잘 나타낸 그림은 박재동의 '숫자세기'이다. 이 그림은 그냥 사람은 '사람'이라고 부르고 노인들은 '두 분' 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 명' 하고 부른다. 동물들은 '~마리' 라고 부른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들도 동물들을 부르듯 그렇게 ‘마리’로 부르는 것이다. '여섯 마리'라고. 이 한가지로도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얼마나 인간이하 취급하고 박대하는지 알 수 있다. 얼마 전 외국인 노동자로 이루어진 락벤드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충격 받은 것과 비슷했다.
“빨리, 빨리, 개새끼야. 멍청아, 꾸물대지마”
베트남 락커의 입에서 나오는 노랫말은 놀랍게도 욕지거리였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빨리 배운다는 우리말이기도 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홍승우가 그린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는 애한테 또 무슨 일을 시켜' 는 성차별에 관한 것이었다. 직장인이자, 엄마이자, 며느리인 여자는 남편과 똑같이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남편보다 더 늦은 시간에 집으로 귀가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시어머니의 그 매서운 눈초리하며 무거운 것을 나르는 힘겨운 일까지 또 기다리는 것은 집안 노동이었다.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며느리의 말을 가로채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는 애한테 무슨 일을 시켜?!"라고 화를 내는 시어머니의 태도는 우리나라의 여자라면 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커다란 산 같아 보였다. 우리나라의 여자는 일인 다역을 완벽하게 소화해야 하는 슈퍼우먼이 돼야 하는 것이다. 여성의 권위가 향상되고 남녀성평등이 많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이걸 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메스컴에서 홍보하는 것뿐이지, 실제생활에서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바로 우리 집만 보더라도 회식으로 아버지께서 저녁 늦게 술 드시고 오실 때와 어머니께서 늦게 오실 때 집안 분위기부터 다르다. 허용되고 허용되지 못하는 게 어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자냐 남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일 것이다.
장애인들이 받고 있는 차별대우를 표현한 그림은 유승하의 '새봄나비'다. 준이엄마는 준이를 낳고 난 다음부터 말을 더듬고 거동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은 따로 살림을 차리고 준이 엄마에게 목숨처럼 소중한 준이마저 데려가 버린다. 그러고는 준이엄마에게 오랫동안 아이를 보내주지 않는다. 여기에서 준이 아빠는 준이엄마에게 '장애인이 돈도 없으면서 어떻게 아이를 키운다고 그래' 하고 말한다. 준이를 못 보게 된 슬픔과 함께 국가에서 주는 수급권도 끊기려고 하자 준이엄마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작가는 이 만화를 통해 준이 아빠의 생각이 크게 잘못 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장애인은 자식을 키울 권리도 없단 말인가. 아무리 장애인이라고 하지만 충분히 생활력이 있었고 설령 생활력이 없었다 할지라도 자기아들 하나를 건사할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랬지만 준이 아빠는 오로지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아들을 빼앗아가 버렸다. 그것은 준이엄마에게도 목숨을 버릴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준이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이었다. 자신을 낳다가 병을 얻은 엄마를 병이 들었다고 버린 꼴이 되었으니 그 아들이 어떻게 바르게 자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서로 위해주고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인데 준이아빠는 건강할 때만 가족이고 병든 가족은 가족도 아니라는 생각만 준이에게 심어주고 만 것이다. 이 세상에 예기치 못한 불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준이 아빠도 언제 어떻게 불행을 맞이할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 건강하게 살고 있는 우리 모두도 예비 장애인들이 아닌가.
이런 여러 종류의 차별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서로 배려하며 이해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법적으로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나라 국가이미지와도 직결되는 것으로 인권에도 국가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관한한 인권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않는다면 어떤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에 오려하지 않을 것이다. 이밖에 장애우, 남녀, 빈곤으로 벌어지는 차별은 우리의 의식을 바꿈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바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나와 배치된 너의 입장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그 필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