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예술인
임병식 rbs1144@daum.net
지난 연말에 명예예술인으로 지정 받았다. 전라남도가 전국 최초로 예술인을 상대로 시행한 제도로 문학부분에 선정이 된 것이다. 이 제도는 이태 전 전남도의회에서 조례가 제정되어 바로 시행을 한 후로 이번에 두 번째 실시했다. 대상은 문학, 미술, 음악, 연극 등이지만 세분하면 국악, 공연, 서예와 조각이 포함되었다.
도에서는 예우 차원에서 각 분야 예술인에 대해 ‘동판’을 선물했다. 주물 생산한 것으로 신경을 많이 쓴 것을 알 수 있다. 대문에 게시하여 자부심을 느끼도록 한 것인데 보기에 품위가 돋보인다.
그런 이유가 읽힌다. 지방이 자꾸만 소멸해가니 마냥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어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자 한 것 같다. 대상은 70세 이상자로 지역에서 30년 이상 활동한 사람으로 한정했다.
지정식수여식 장에서다. 참석해보니 선정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늑수구레했다. 그렇지만 표정들은 밝아서 한길을 걸어온데 대한 자부심이 넘쳐났다.
그것을 보면서 전공분야는 다르지만 함께한 자리가 흐뭇했다. 내가 그래왔듯이 그들도 고뇌의 날들을 보냈을 터이다. 그 생각을 하니 대다수가 초면이지만 구면과 같았고 동류의식이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예술가 되겠다는 의식 없이 문학의 길에 입문했다. 어린 중학생 때이니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좋고, 지도하신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 좋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글을 쓰게 되었다.
다른 이들도 예술 활동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을 테지만 다른 분야는 성인이 되어서 접하는 경우가 많고 어려서부터 시작한 사람은 드므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양은 진작부터 갖췄을 것이다.
내가 가진 소양가운데는 그 바탕에 어린 시절 농촌에서 보낸 자연환경도 크게 작용 했다고 본다. 눈만 뜨면 푸른 들판이 보였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 속에서 농부들은 땀 흘려 일을 하고 부녀자들은 빨래며 물 긷는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그것만 보아도 목가적인 풍경인데, 거기다가 동심을 키운 두 가지 환경이 더 있었다.
봄철로 접어들어 모내기가 끝나고 나면 일소를 산골짜기로 내몰아 풀을 뜯겼는데, 그때는 목줄을 목에 감아놓고는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그 어간의 시간에 풀밭에서 방아개비와 풀무치를 잡고 도랑가에서 가제를 잡았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동네아이들과 칡이며 장대를 캐먹었다.
그러다가 읍내 상급학교를 다닐 때는 마을 뒤 바람재를 넘어 다녔는데 그곳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풍광을 자랑했다. 당시만 해도 늑대와 여우가 심심찮게 출현하여 긴장을 하기는 했지만 철따라 바뀌는 경치는 지루할 새가 없었다.
해발 200여 미터가 조금 넘은 고갯길은 마치 뱀이 지나가는 자국처럼 구불구불한데, 그 길을 철마다 모습이 바뀌었다. 봄에는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나 꽃 사태를 이루고, 어디서 사는지 꾀꼬리가 나타나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머리 위를 가로질러갔다. 그때마다 치렁한 노랑 꼬리가 밤하늘의 유성처럼 길게 여운을 남겼다.
여름철은 어떤가. 물가에는 노란 창포꽃이 피어나고 자드락에는 보라색 도라지꽃과 고혹적인 패랭이꽃이 피어났다. 이때는 산 속에서는 온종일 땅강아지 울음소리가 질퍼한 가운데 이따금 풀 섶에서 풀무치가 튀어나와 그 묵직한 몸을 움직여 10여 미터씩 날았다.
가을철은 그야말로 들국화의 천지였다. 온산이 하얀 국화꽃으로 뒤덮여서 마치 메밀밭을 연상케 하였다. 나는 그 무렵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고 작가가 이 풍경을 보았다면 ‘메밀꽃 대신 들국화가 소금을 뿌린 듯’ 했다고 표현했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만큼 멋진 풍경이 가을한철을 장식했다.
겨울은 겨울대로 멋이 있었다. 눈이라도 내리면 온 산이 백옥으로 도배가 되고 키큰 나무들은 마치 소복을 한 여인처럼 정적에 묻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 곳에는 먹이를 찾아 헤 멘 토끼나 노루 발자국만 지문처럼 드문드문 박혀있었다. 그곳을 오르내리며 나는 퍽이나 많은 유행가 가사를 외어서 읊조리며 다녔다.
그 추억들이 나중에 글을 쓰는 자양분이 되었다. 내가 쓴 작품 중에 유독 고향에서 보낸 이야기가 많은 것은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1989년 말 등단이후 잠시도 펜을 놓지 않았다. 작품을 쓰지 않으면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라도 하고 써놓은 작품을 퇴고라도 하였다. 그렇게 해서 모아진 작품이 1,550편 가까이 된다. 그러니 얼마나 나름 정진을 한 것인가.
이날은 지정서와 함께 동판이 증정되었다. 거기에 새겨진 문구가 인상적이다. <전라남도 명예예술인.> 도지사의 직인이 찍혀있는데 품격이 돋보인다.
그 무게가 상당한데 그것을 끌어안으니 혼자서 써온 내 문학작품이 그래도 외면당하지 않고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흐뭇하다.
이것은 앞으로 남은여생 글을 쓰는데 강한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나는 이것을 집에 가져와 눈에 보이는 곳에 세워두었다. 수시로 이것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에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도 있다. 내가 살아온 행적, 생각하고 보고 느낀 것을 남겨놓은 다는 것에 대하여 자부심이다.
나는 운 좋게 글 한편이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다. 그것이 5년째인데 그곳에 실린 글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뿌듯하다. 함께 참고서로 펴낸 문제집을 보면 글을 쓴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보노라면 나를 마치 분석이라도 하는 듯 해 짜릿한 기분마저 든다.
나는 동판을 보면서 보이지 않은 책임의식을 느낀다. 그것은 다음 아닌 내 행동에 대한 규제이다. 도에서 동판을 만들어 주었는데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는 없다. 매사를 돌아보며 조신하게 행동을 해야 할 것 같다. 단순한 칭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여 나는 이것을 앞으로 나를 돌아보는 거울임과 동시에 문학인으로서의 품위를 지켜나가는 징포로 삼고자 한다. 그것이 그냥 불리는 이름이 아니라 진정한 명예예술인으로 지정한 이유의 하나이기도 한 때문이다.(2024)
첫댓글 청석임병식선생님 '전라남도 명예예술인'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과서에 작품이 5년 째 실리고, 1,550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상재함은 凡作이 아닐 것입니다. 전라남도 예술담당 공무원이 제법 제대로 눈을 뜬것 같아 안심이 됩니다.
그간 창작지원금 수혜, 현대수필100인선정,한국수필문학상, 한국문협작가상, 지난 세월 한 허리 등 20 여권 가까이 책을 상재하였음은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거듭 축하드립니다.^^♥
김선생님이 저의 이력을 꿰뚫고 게시는군요.
그간 무던히 외길인생을 걸어온것 같습니다.
문학을 붙들고 산것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이 호락되는한 계속 글쓰기는 이어질 것입니다.
과찬의 말씀 면구그러우면서도 고맙습니다.
작가에게 고향은 무한한 창작의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성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직 수필 하나 붙잡고 삶의 본질을 궁구해 오신 선생님께 새삼 경의를 표합니다 초대 전라남도 명예예술인으로 선정되신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외롭고 소외된 문학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신념과 지조도 본 받을 일이지만 누구보다도 올곧게 살아오신 청정한 삶의 노정에 공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문학분야 처음은 아닙니다.
제가 글을 쓰는 소양을 길을 수 있었던 것은 평화로운 농촌풍경, 뒷산을 넘어다니며 키웠던 서정이
크게 한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