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4:19
선지자는 사명을 받아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입니다.
역사의 수난을 백성과 함께 겪는 자입니다.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뜨거운
사랑을 가진 자입니다.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기에 괴롭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에 슬프고 아픕니다. 선지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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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길을 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참담할 것입니다.
과연 저를 포함한 부모의 탄식 속에 담긴 사랑을 깨닫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
하나님께서 복수의 청자 너희에게 주시는 말씀은 사뭇 충격적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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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1) “ 옛적에 소돔을 구하기 위해서는 의인 10명이 필요
했는데(창18:23-33), 예루살렘의 용서는 의인 한 명이면 용서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성전과 다윗 왕조가 있고 여호와의 율법이 선포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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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단 한 명의 의인이 없어 멸망을 피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한 명의 의인도 없다는 하나님의 주장은 어쩌면 예루살렘 주민에게
황당하게 들렸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지만 이는 모두 거짓 맹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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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습니다(2). 고대세계에서 특정 신의 이름을 부르며 맹세하는 자는 자신이
그 신의 통치 아래 있음을 전제하는 행위로, 일종의 신앙고백과 같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사람들은 입술로만 여호와의 통치를 인정했고,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의는 일차적으로 이웃들 사이에서 행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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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으로 사회, 경제적 약자를 돌보고 불법과 폭력을 멀리하는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경험되고 올곧음을 의미하는 진리는 거짓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교훈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나타납니다(7:28).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 거리와 광장을 찾아 살펴본 결과, 선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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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예루살렘의 상황을 탄식하듯 보고합니다.
여호와께서 찾으시는 올곧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실을 추구하는 자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다들 영적으로 무감각하여 하나님께 매를 맞으면서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3a). 이들은 거듭 임하는 재앙에서 이스라엘의 실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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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재앙의 배후를 살펴 그분의
의지를 읽어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도를 더해가며 치셨건만
징계를 받아들이기는커녕 그럴수록 더욱 완강해져갔고 얼굴을 바위보다 더
굳게 하며 돌아오기를 거절했습니다(3b). 비천한 자들과 지도자들 모두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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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의인을 찾았지만, 비천한 자들은 토라를 몰랐고, 지도자들은 알고도
하나님의 법이라는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어버렸습니다. 무리는 생계를 핑계로
무관심했고 지도자들은 율법을 아는 자의 책임을 무시한 채 의도적으로 반역
질을 했습니다. 이제 심판은 불가피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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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사자가 물어뜯고, 사막의 이리가 찢어발기고. 표범이 성을 엿보다가 나오는
자들을 모두 갈기갈기 찢어 죽이듯이 모두 죽음에 넘겨질 것입니다(6). 다시 화자가
선지자에서 하나님으로 바뀝니다(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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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 지르는 도다~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7-9) “ 거짓 맹세에(2)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
했으며(7a) 필요에 따라 여호와의 이름으로도 우상의 이름으로도 맹세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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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급하면 여호와께 구원을 간구합니다. 종교적 혼합주의와 간음이 윤리적 간음을
조장합니다. 욕정을 주체할 수 없는 우상숭배자들은 성욕을 채우기 위해 무리지어
창녀의 집으로 몰려다닙니다. 발정기의 수말이 암말을 찾아 들판을 헤매며 돌아다니듯,
음란에 빠진 예루살렘 사람들이 헐떡이며 제 이웃의 아내를 뒤쫓아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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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도저히 용서하실 수 없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거짓 회개를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이들을 용서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불의가 아닙니까?
나는 언제까지 거짓 안전 속에서 나를 합리화하며 살 작정인가?
우리 시대를 선지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예언자의 탄식(19-21)
a.탄식의 말:19a
b.전쟁으로 인한 고통:19b-20
c.예언자의 탄식, 어느 때까지:21
하나님의 탄식(22)
a.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22
혼돈에 빠진 땅(23-28)
a.비어 있는 땅이 되다:26-27
b.황무지가 되다:26-27
c.하늘에까지 미친 재앙:28
임박한 죽음(29-31)
a.성읍 사람이 도망하다:29
b.헛된 수고:30
c.임박한 죽음에 처한 시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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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아프다(19a)
내 마음속이 아프고(19b)
내 마음이 답답하여(19c)
잠잠할 수 없으니(1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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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나의 심령이(19e)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19f)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20a)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2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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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20c)
내가 저 깃발을 보며(21a)
나팔 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21b)
내 백성은(2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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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22b)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22c)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22d)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2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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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땅을 본즉(23a)
혼돈하고 공허하며(23b)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23c)
내가 산들을 본즉(2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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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진동하며(24b)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24c)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25a)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2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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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본즉(26a)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26b)
그 모든 성읍이(26c)
여호와의 앞 그의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2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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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길(27a)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27b)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27c)
이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할 것이며(2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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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하늘이 어두울 것이라(28b)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28c)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한즉(28d)
또한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2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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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과 활 쏘는 자의 함성으로 말미암아(29a)
모든 성읍 사람들이 도망하여(29b)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29c)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2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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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사는 사람이 없나니(29e)
멸망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30a)
네가 붉은 옷을 입고(30b)
금장식으로 단장하고(3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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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그려 꾸밀지라도(30d)
네가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30e)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30f)
네 생명을 찾느니라(3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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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할지라도(30h)
내가 소리를 들은 즉(31a)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31b)
초산하는 자의 고통 하는 소리 같으니(3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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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시온의 딸 소리라 (31d)
그가 헐떡이며 그의 손을 펴고 이르기를(31e)
내게 화가 있도다(31f)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31g)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 도다(3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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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이 없고 미련한 백성들_
insensitive and foolish people
혼돈하고 공허한 땅이 될 약속의 땅_
Promised land to be a chaotic and empty land
멸시와 고통이 기다리는 백성들_
the people whose contempt and suffering awa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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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고
하십니다.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한즉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할 진데 주여 어찌하오리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큰 슬픔과 고통을 느끼지만 듣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복되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2023.7.14.fri.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