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행 이틀째. 어제 반환점이었던 하도해수욕장에서 출발 토끼섬까지 가는 것으로 정해보았으나 막상 토끼섬까지는 4천보도 안됩니다. 해맞이 해안로 앞바다 토끼섬은 닿을 듯 닿을 듯 현무암 바위 해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데 물을 건너야 합니다. 혹시나 썰물 때는 걸어서 갈 수 있지 않을까 지켜보았지만 썰물 때도 물을 건너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
하도해수욕장 긴 산책길을 지나 카약 바나나보트 등을 탈 수 있는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지대를 지나면 하도어촌체험마을까지 이어진 모래사장이 펼쳐진 바다를 지나게 됩니다.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자 꼭 잡은 완이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내처 달려가고 싶은 욕구가 손으로 막 전달됩니다. 그래도 잘 억제시키고...
여름 한 때 우리를 즐겁게 했던 하도어촌체험마을 바로 옆 바닷가를 지나다보니 바닷가 너른 둔덕이 그토록 멋있었었는지 이제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여름에는 바다만 보이더니 걸어다니니 놓쳤던 풍경들이 새삼 펼쳐집니다. 역시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들은 세상에 널려있습니다.
오늘의 만보행은 계속 옆에 우도와 토끼섬이 함께 하는 해안도로입니다. 그런 풍경으로 인해 저는 행복한데 완이에게 그야말로 금욕의 코스이기도 합니다. 결국 하도굴동포구에서 잠시 요기나 하고 가려던 계획은 바닷물 유혹에 무산되고... 올해 마지막이었을 수도 있는 물놀이에 한참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 멀리 바라다보이는 토끼섬에 사람들이 여럿 있는 게 보입니다. 우리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데 근처에서 토끼섬까지 배로 데려다주는 곳이 있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날 좋은 날 준비를 단단히 해서 하루 마치 소설 속 로빈슨 쿠루소같은 시간을 보내고와야 되겠습니다.
밀물에서 썰물로 살짝 바뀌는 타임이라 썰물 때는 위로 드러날 앞 쪽 현무암바위가 물에 잠겨 거기에 부딪쳐대는 파도가 고래들이 노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정말 고래들이 지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내륙의 어떤 지역들은 가을비가 뿌려대고 영하에 가까운 기온까지 떨어진다고 하니 이제 가을도 마구 깊어가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아직 낮의 햇살이 뜨겁기까지 하지만 오늘밤 늦게 살짝 비가 뿌려댄다니 기온이 바닷물놀이를 더이상 허락할 것 같지 않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마당에 설치해놓은 놀이시설 정리해야 하는데 낮시간의 행군들이 너무 재미있어 차일피일이 곧 해를 넘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모든 걱정과 부담은 내려놓고 조금씩 삶의 긴장과 무게에서 벗어나보려는 요즘 세월들이 그래서 귀하디 귀하게 느껴집니다. 매일 완이와의 전쟁... 그러면서 인간의 경계로 조금씩 모습이 바뀌고 있는 녀석을 지켜보는 것도 큰 기쁨이긴 합니다.
하도굴 포구에서 바닷물을 보더니 운동화 신은 채 그냥 물에 풍당 빠져버리니 젖은 운동화는 쉽게 마르지 않습니다. 그 물에 젖은 신발을 할 수 없이 신고 돌아오는 길에 조금도 벗지않고 찝찝함을 감수까지 했다는 기특함!
백번 칭찬해도 모자람이 없지만 그냥그냥 모른 척, 대신 먹고싶은 것 가방에 다 넣어주었으니 만보행은 완이에게는 그게 큰 보상입니다. 가는 걸음 속에 가방에서 먹을 것 꺼내달라는 제스츄어는 마구마구 진화하고 있습니다. 내키는대로 마구 뒤지는 것이 아니라 요구하거나 부탁하거나 그 어떤 것이든 사람의 방식으로 진화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첫댓글 완이의 진화가 넘 즐겁고 준이까지 욕심 내게 됩니다. 요즘 준이씨의 웃는 모습이 넘 반갑지만 적극적으로 귀차니즘을 이겨냈음 하는 바램이 생기고 태균형님은 두 아우에게 엄청 의지처가 되겠구나 싶습니다. 가을과 겨울도 여름 못지 않은 발전의 계기가 됐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