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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명문학교 교사가 가장 많이 하는 말
“네 의견을 말해보렴”
영국·미국·캐나다 명문 초·중·고 교육,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물리친 워털루 전투의 주역 웰링턴 공작은 1881년 모교인 영국 이튼 칼리지(Eton College)를 방문해 “나의 용기와 기상은 이튼의 운동장에서 갈고닦여졌다”고 말했다. 전투를 승리로 이끈 기백을 갖게 해준 원동력으로 학교 운동장을 꼽은 것이다.
이튼에서는 매일 오후 학생들이 스포츠나 음악 활동에 참여하는데 그 과정에서 리더십과 책임감, 사명감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江南通新은 올 2월부터 영국·미국·캐나다에서 명문으로 꼽히는 초·중·고교를 소개해 왔다.
고교의 경우 영국 옥스브리지(옥스퍼드+케임브리지)나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학생을 많이 진학시킨 곳이 망라됐다. 해외 명문 학교의 교육 시스템을 살펴봤더니 대학 입시에 중점을 둔 국내 학교와는 크게 달랐다.
본격적으로 많은 양의 학업을 소화해 내야 하는 대학에 진학하면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는 영미권 학교의 교육 방식을 소개한다.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수준 높은 교사가 선보이는 양질의 수업
미국 잡지 포브스는 2010년 미 사립고 상위 20곳을 발표했다. 아이비리그 8개 대학에 MIT·스탠퍼드를 더한 10개 명문대 진학률과 교사 대 학생 비율, 교사의 대학원 학위 취득
비율, 학교 재단의 규모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겼다. 그 결과 보딩스쿨(기숙학교) 7곳과 뉴욕·보스턴·로스앤젤레스 등 대 도시에 있는 데이스쿨(통학학교) 13곳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학교의 교사 대 학생 비율은 평균 1:5~8. 석사 이상 학위를 가진 교사 비율은 70~80%에 달했다. 뉴욕에 있는 호레이스맨 스쿨(Horace Mann School)은 석사 이상 교사가 94%나 됐다. 전체 순위 3위를 차지한 매사추세츠주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Phillips Academy Andover)의 존 팰프리 교장은 최근 학부모 간담회에서 “교사 중 상당수가 아이비리그 출신인데, 이들이 학생들의 아이비리그 진학을 적극 돕고 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교사들의 수준이 높으면 수업의 질도 올라간다.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는 영어 과목만 매년 수십 개 강좌를 개설한다.
조지 오웰의 작품 관과 철학을 공부하는 ‘조지 오웰 연구’ 강의에서부터 ‘세계 문학작품 속 여성 리더의 철학’까지 대학에 버금가는 내용이 담긴다.
주요 국가의 사립학교 순위를 매기는 프렙리뷰닷컴(PrepReview.com)의 상위 랭킹에 드는 영국 우수 사립학교의 수업 환경도 비슷하다.
옥스브리지 진학률 상위 30위에 속하는 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평균 12~18명에 불과하다. 보딩스쿨 중 1위를 차지한 웨스트민스터 스쿨 런던(Westminster School London)의 학급당 학생 수는 12명이다. edm런던유학닷컴의 서동성 대표는 “영국에선 우리의 고 2~3학년에 해당하는 12~13학년이 되면 대학 입학시험인 A레벨에 나오는 3~4개 과목에 집중해 수업을 듣기 때문에 학급당 학생 수가 10명까지 떨어진다.”고 말했다. 적은 학생을 대상으로 철저한 수준별 수업을 진행한다.
이튼 칼리지 11학년에 재학 중인 김정우(15)군은 “신청 인원이 적은 과목이나 일부 예체능을 제외하곤 수준별로 반을 편성한다.”며 “수학은 한 학년에 수준별 14개 반이 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그는 “수업마다 교과서도 다르다”며 “선생님이 학생 수준에 맞게 교과서를 직접 집필하거나 기존 교재에 다양한 자료를 첨부해 업그레이드한다.”고 덧붙였다.
공립학교에서도 뛰어난 교사를 영입하고 수업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더 데일리 비스트와 뉴스위크는 지난 5월 미 우수 공립고 2000곳을 발표했다.
이 순위 100위에 든 학교는 SAT(미 대학 입학시험, 2400점 만점) 점수가 평균 1900~
2100점 수준이었다.
유명 사립학교가 2000~2200점인 것을 고려하면 사립학교 못지않은 학력이다.
100위 내 우수 공립고의 교사 대 학생 비율은 평균 1:15다.
39년째 미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LA 3가 초등학교(Third Street Elementary)의 수지 오 교장은 “재정 투자가 많은 사립학교에 비해선 부족한 면이 많지만 미국에선 공립학교도 노력에 따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데, 그 핵심은 교사”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교장이 우수 교사를 영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맡고 있는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나쁘면 언제든 교사를 해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각 주는 매년 우수 공립학교 교사를 선정하는데, 학업
성취도 점수를 많이 올린 교사에게 수천 달러의 보너스를 주기도 한다.
조사·연구를 겸한 토론 중심의 학습
미 뉴저지에에 있는 보딩스쿨인 페디스쿨(Peddie School)을 거쳐 코넬대 건축학과를 나온 박성렬(29)씨는 귀국해 디자인 관련 벤처기업을 차렸다. 그는 유학시절 수업시간에 ‘왜’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교사는 줄곧 “네 의견을 말해봐라,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근거가 뭐냐”고 질문을 던졌다.
박씨는 “미국에선 중·고교 때부터 토론 수업과 팀 단위로 조사·연구해야 하는 프로젝트 과제가 많다”며 “관찰하고 분석하며 끊임없이 이유를 찾는 공부법이 대학 졸업 후에도 도움이 되더라”고 말했다.
미국 뉴햄프셔주의 보딩스쿨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Phillips Exeter Academy)는 1931
년부터 ‘하크니스 테이블(Harkness table)’로 불리는 원탁 토론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석유재벌 에드워드 하크니스가 “새로운 교육 방식을 고안해 내면 거액을 기부하겠다”고 엑시터에 제안한 것이 시발점이다. 학교는 큰 타원형 탁자에서 교사와 학생 12명이 둘러앉아 토론식으로 수업하는 방식을 제시해 기부금을 받아냈다. 이후 하크니스 테이블은 원탁 토론수업을 대표하는 용어가 됐고, 미국 보딩스쿨마다 이런 수업 방식을도입했다.
엑시터에선 인문학뿐 아니라 수학·과학까지 모든 수업에서 하크니스 테이블 방식을 적용한다. 교사는 중간 중간 잘못된 토론을 바로잡아 줄 뿐 토론 준비와 진행을 모두 학생들이 알아서 한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웨슬리안대에 진학한 앤드류 강(20)은 “4년간 수준 높은 토론수업과 에세이 쓰기 훈련을 한 덕분에 대학 진학 후 다른 학교 출신보다 적응이 빨랐다”고 했다.
영미권 학교에선 공립학교도 토론과 프로젝트 수업을 많이 실시한다. 올 2월까지 3년간 캐나다 한국교육원장을 지낸 김재영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연구사는 “캐나다 중·고교에선 90~120분씩 수업하는데, 주로 발표·토론 형식의 프로젝트 수업”이라고 소개했다. 발표·토론으로 학생 참여도를 높이기 때문에 수업시간이 한국에 비해 길지만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캐나다 공립학교에선 행정 업무를 분리해 교사가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며 “학교마다 학생 상담과 관리만 전문으로 하는 교사가 많게는 8명까지 있다”고 전했다.
스포츠 클럽 활동으로 책임감·리더십 배양
영미권 사립학교 중에는 캠퍼스 규모와 시설이 대학 캠퍼스에 버금가는 곳이 있다. 공식 대회가 가능할 정도의 육상 경기장이나 실내 체육관, 소규모 운동장 등이 교정 곳곳에 흩어져 있다. 기숙사나 학교 간 대항전이 학교 중요 행사로 자리 잡았을 정도다. 1805년부터 열린
영국 이튼 칼리지와 해로 스쿨(Harrow School) 간 크리켓 대항전이 대표적이다.
미국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와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도 매년 봄·가을 스포츠 대항전을 개최한다.
이처럼 영미권 학교는 음악·스포츠 등 다양한 클럽활동을 강조한다. 축구·하키·럭비·유도·수영은 물론이고 오케스트라·댄스·발레 같은 방과후 활동을 제공한다. 영국의 이튼 칼리지는 헬리콥터 타기, 패러글라이딩, 스피드 보트타기 등의 수준 높은 과외 활동까지 운영한다.
이튼 칼리지 재학생 김정우군은 “하키팀에 속했었는데 정식 감독과 코치·매니저를 두고 프로팀에 가까운 훈련을 소화해야 했다”며 “이런 스포츠 활동이 공부에 방해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팀 운동을 통해 리더십을 배우고 선·후배 관계도 돈독해졌다”고 덧붙였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스쿨을 졸업하고 국내 금융사에서 근무 중인 홍문희(26)씨도 “영국 보딩스쿨에서 화·목요일은 의무적으로 스포츠·음악 활동에 참여해야 했다”며 “클럽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 뿐 아니라 학생들이 기획하고 운영하기 때문에 책임감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국 버크셔주의 보딩스쿨 도운 하우스 스쿨(Downe House School)을 나온 김보민(22)씨는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오듯 기숙사 동별 대항전도 열린다”며 “12학년 때 기숙사 별 연극 대항전을 했는데, 동기끼리 감독·프로듀서·배우로 역할을 나눠 오디션을 실시하고 연극 세트 준비도 해냈었다”고 말했다.
외국 명문 고교들을 돌며 교육 과정을 벤치마킹한 천안북일고 국제과 이영준 교사는 “해외 명문 학교가 스포츠를 강조하는 것은 책임감과 리더십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지만 본격적으로 학업에 매달려야 하는 대학에 진학해 오랜 시간 전념할 수 있도록 체력을 닦아주는 목적도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인성, 도덕성 중시하는 영국식 교육이 뿌리
영미권 학교의 교육 철학은 영국식 교육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초기 미국 사립학교는 17세기 초 미국으로 이주한 영국 청교도가 세웠다. 뉴욕 칼리지에이트(Collegiate School)가 1628년에, 매사추세츠주 록스버리 라틴(Roxbury Latin School)이 1645년에 생겼다. 1778년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1781년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가 뉴햄프셔주에 뒤이어 들어서면서 미 사립학교의 진용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교육칼럼리스트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은 “캐
나다 사립학교도 영국식 교육을 받아들였다”며 “확실한 벤치마킹 대상이 있어서 검증 받은 교육 과정을 단기간에 적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 학교가 공통적으로 중시하는 교육 철학 중 하나는 ‘정직하고 도덕적이며 사회에 헌신하는 리더’를 길러내겠다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 정신이다.
영국의 이튼 칼리지는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동문 2000여 명의 이름을 학교 교회 벽에 일일이 새겨 그들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추도한다. 이튼 칼리지 10학년에 재학 중인 김민수(14)군은 “교회 벽을 볼 때마다 기득권을 버리고 사회에 봉사한 선배들을 떠올리게 된다”며 “이튼 재학생으로서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저절로 숙연해진다”고 말했다.
영국 햄프셔주에 있는 윈체스터 칼리지도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동문 750여 명을
추모하기 위해 전쟁기념회랑을 지었다. 회랑은 기숙사와 교실 사이 길목에 있다. 매일 교실로 향하는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다.
영국 명문 학교의 이 같은 전통은 미국 사립학교에서 명예 규율(honor code) 선서로 자리 잡았다. 유학 업체인 세쿼이아그룹 박영희 대표는 “명예 규율은 학교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항목뿐 아니라 사회에서 지켜야 할 도덕규범도 담고 있다”며 “미 명문 보딩
스쿨 중엔 이런 도덕규범을 교칙으로 강하게 적용하는 학교가 많다”고 소개했다. 절도·폭행 같은 범죄에 대한 윤리적 규범과 비방이나 따돌림을 엄격히 금지하는 내용 등이 담긴다. 교사·선배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생활태도와 인용·표절 등에 관한 학문적 윤리규정도 포함된
다고 한다.
뉴욕 인근 보딩스쿨 트리니티 폴링 스쿨(Trinity-Pawling School)의 프로그램에서도 인성과 도덕성을 중시하는 영미권 학교의 교육 방침을 파악할 수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일반적인 성적표와 별도로 ‘노력 성적표’를 받는다. 7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는데, 우선 과목별 성적이 50%를 차지한다. 수업 태도 등 공부에 들인 노력과 성실성 30%, 성적 향상도 20%를 반영한 것이다. 나머지 50%는 인성·사회성 평가다. 기숙사 생활 15%, 자발적인 노동·봉사 10%, 규율 준수 10%, 운동 10%, 방과 후 활동 참여도 5%를 반영한다. 이렇게 종합성적을 매겨 1~5등급(최고 1등급)을 부여한다. 1등급을 받으면 식당 청소를 면제해 주거나 주말 외출, 아침 늦잠 같은 특권을 준다.
최 소장은 “이 학교는 설립된 지 100년밖에 안 됐지만 인성교육 프로그램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진학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인성을 중시하는 이 학교의 교육방식을 명문 대학에서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수학 과목은 수준별로 14개 반까지 나눠 공부한다. 교재는 교사가 직접 집필하거나 기존 교재에 자료를 추가해 맞춤형으로 만들어 준다.”
(영국 기숙학교 이튼 칼리지 재학생 김정우군)
“수업 중 교사가 항상 ‘왜’라고 물었다. 토론에서 의견을 말할 때는 이유와 근거를 정확히 설명해야 했다.”
(미국 기숙학교 페디스쿨을 거쳐 코넬대를 졸업한 박성렬씨)
“미국 교사는 철밥통이 아니다. 평가가 좋지 않으면 언제든 퇴출될 수 있고, 우수 교사는 보너스를 받는다. 그래서 공립학교도 노력만 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미국 LA 3가초등학교 수지 오 교장)
“캐나다는 공립학교에서도 발표·토론 수업이 활발하다. 90~120분에 달하는 수업 동안 토론하며 집중력을 유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놀라웠다.”
(김재영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연구사·전 캐나다한국교육원장)
“영국 학교에서 스포츠·음악 클럽활동은 학교생활의 꽃이다. 대학에서도 공부만 잘하는 수재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인성·사회성이 발달한 학생을 원한다.”
(영국 기숙학교 웨스트민스터 스쿨과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홍문희씨)
“입학 첫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생님이 졸업생의 이름이 적힌 벽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총리가 됐고, 이 사람은 유명한 학자가 됐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저 벽에 이름을 올리겠느냐’라고 물었다.”
(영국 이튼 칼리지 졸업 후 옥스퍼드대에 진학한 김우재씨)
“뉴욕 인근 기숙학교 트리니티 폴링 스쿨은 ‘노력 성적표’를 학생들에게 별도로 나눠준다. 자발적인 봉사와 기숙사 생활 태도, 규칙 준수 등을 평가한 것이다. 미국 사립학교가 인성과 사회성 교육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알 수 있는 예다.”
(교육칼럼리스트 겸 자녀경영연구소 최효찬 소장)
첫댓글 음 ..맞는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