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 18일 : 사이코패스 유영철
癸 壬 辛 庚
卯 寅 巳 戌 乾 辰巳空
己戊丁丙乙甲癸壬 5
丑子亥戌酉申未午
제시 : 갑신운甲申運 34세 2003년 계미년癸未年에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씨와 부인 이씨를 살해했으며 이후 일가족 3명을 비롯하여 총 21명을 살해했다.
단양 : 사공巳空이니 신공辛空으로 묘술합卯戌合하니 가종아종재격假從兒從財格을 이루는데, 인술寅戌 공합拱合으로 오午를 끌어오고 묘술합卯戌合하니 종격이 성립되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이 명조의 가장 큰 특징은 경신금庚辛金 정편인正偏印이 철저히 손상되어 변질(變質:傷)되는 것에 있다.
또 명국에 화세火勢가 강한 것이 일임日壬에게는 재성財星에 불과하지만 년지 술토戌土로 인해서 모든 기세氣勢가 술토로 집중되는데, 그것이 일간 임수壬水에게는 칠살七殺이 되고 칠살국七殺局이 되며 살인상생殺印相生을 담당할 인성이 철저히 파괴되고 상傷했다는 점이다.
정인 신인辛印은 신사辛巳 자합自合하지만 일인日寅과 인사천寅巳穿되고 인술寅戌 공합에 취금脆金되니 신인辛印은 수화水火의 극설克泄이 수시로 교대한다.
편인 경인庚印은 경하庚下의 술戌에 취금脆金되면서 인술寅戌 공합으로 화세火勢가 증력되어 달궈진 상황인데, 묘술합卯戌合으로 화기火氣를 증력한다.
이렇게 정편인이 변질되었고 일임日壬에게는 년지 술살戌殺로 목화세木火勢가 집중되니 명국의 중심은 통제統制할 수 없는 칠살七殺인 것이다.
명국내 식상食傷 인묘목寅卯木이 인사천寅巳穿과 인술寅戌 공합과 묘술합卯戌合을 통해서 모두 칠살로 편중되는 특이한 구성인데, 식상食傷⦁칠살七殺의 조합은 전시戰時에는 무공을 세우는 장군이고 군인이다. 하지만 평화롭고 안정된 때에는 그 살기煞氣를 제어하기 어려워 사건사고에 직면하거나 명주 당사자가 사건사고의 중심에 서게 된다.
2명의 형이 있고 여동생이 있으며 부친은 14세 1985년 을축년乙丑年 6월에 사고로 사망했는데, 그 이유를 살피면 월사月巳가 진편재眞偏財이니 부친이다. 사공巳空이니 신공辛空인데 을신충乙辛沖으로 탈공脫空되니 신사辛巳 자합自合으로 사공巳空 역시 일시적으로 탈공된다면 축술형丑戌刑의 형개刑開로 술고戌庫에 사화가 입고入庫되니 부친의 사망으로 응했다. 축술형하고 인축합寅丑合이 묘술합卯戌合을 인발해 고문庫門이 닫히니 부친이 사망한 것이다.
월간 신인辛印이 모친인데, 사공巳空이고 신공辛空이니 유영철은 명국내에 공망으로 없어진 모친의 능력이 부족해 예고에 진학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15~24세의 계미운癸未運은 명국내 인묘목寅卯木이 미묘未墓에 입묘되고 미술토未戌土만 남았으니 칠살七殺이 태왕해져 백호창광白虎猖狂인 것이니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범죄에 노출되고 사고를 저지른다.
계미癸未 대운에 사고를 치기 시작해 19세인 1988년 무진년戊辰年 6월에 소년원에 들어갔고 그 이후, 주로 절도와 사기, 공무원 사칭으로 등등으로 11번이나 형사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를 들락날락 했던 것은 미술토未戌土만 남았으니 칠살七殺이 태왕해져 범죄에 대한 충동과 규범을 어기고자하는 욕망을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유영철은 21세인 1990년 경오년庚午年에 처를 만났고 22세 1991년 신미년辛未年에 결혼했는데, 인오술寅午戌 삼합으로 처궁妻宮을 합동合動해 혼인의 응기應期이다. 하지만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명주가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인 갑신운甲申運 32세 2002년 임오년壬午年 5월 부인이 법원에 이혼을 신청해 이혼했다.
명국에 진정재眞正財인 정재丁財가 없어 대신론에 따라 가정재假正財를 찾으면 겁재劫財인 계겁癸劫이 진정재를 대신하는 가정재이다.
미묘未墓에 입묘된 인묘목寅卯木이 대운 유년 양미兩未와 명국 술戌의 미술형未戌刑으로 들락거리는데, 유년 신미辛未는 가정재인 계하癸下의 묘목卯木과 묘미卯未 목반국木半局을 이루니 결혼했다.
25~34세의 갑신운甲申運은 사신합巳申合으로 사공巳空과 신공辛空이 탈공되지만 인사신寅巳申 삼형三刑이 성립되는데, 갑신운甲申運 32세 2002년 임오년壬午年 5월 부인이 법원에 이혼을 신청해 이혼했다.
처궁妻宮 인寅을 인신충寅申沖하고 계하癸下의 묘목卯木을 묘신절卯申絶하니 결혼생활의 재난을 뜻하는데, 유년 임오壬午에 진정재인 오재午財가 등장해 인오술寅午戌 삼합을 이루니, 이혼이나 사건사고의 응기이고 명주의 처妻가 오재午財와 교대하는 상황이 만들어져 이혼한 것이다.
사공巳空의 탈공으로 명국내 왕화旺火가 더욱 격렬해져 술살戌殺로 명국의 모든 목화기木火氣가 응집되고 인사신삼형寅巳申三刑이 준동하니 명주의 성격이 편협되고 사회의 모든 것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서 왜곡되었고 폭발하게 되었다.
2003년 34세 계미년癸未年에 9월 23일까지 19명을 살해했고, 2004년 1월 절도 혐의로 잡혔으나 살인사건을 알아차리지 못해 곧 석방되었다.
갑신운甲申運의 인사신寅巳申 삼형과 유년流年 계미癸未의 미술형未戌刑으로 형刑이 중중하면서 칠살七殺이 극강해져 명주의 흉폭함이 극에 달했고 무자비하고도 잔인하면서 묻지 마하는 식의 연속 살인이었던 것이다.
을유운乙酉運 2004년 35세 갑신년甲申年에도 살해를 계속하다가 2004년 7월 15일 체포 후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병술운丙戌運 2015년 을미년乙未年(46세)에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을유운乙酉運 2004년 35세 갑신년甲申年은 신유술申酉戌 금국金局을 이루니 명국에서 진멸되고 손상되었던 인성印星이 되살아나 명주가 체포되는데, 식상食傷과 인성印星의 상충하는 운세運歲이니 허점을 보이고 평상시와 다른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체포되었던 것이다.
[ 유영철을 이른바 소시오패스라 말하는 이유는 죄의식을 찾아 볼 수 없어서다. 그는 지난 2003년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씨와 부인 이씨를 살해, 이후 일가족 3명을 비롯하여 총 21명을 살해했다. 많은 사람들을 살해 해놓고도 그는 기자에게 “이 계기로 여성들이 함부로 몸을 놀리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라고 답했다. 죄의식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희대의 살인마. 사형 미결수로 분류되어 있다. 유영철은 1970년 4월 전북 고창에서 막노동으로 가난하게 살던 부모 밑에 3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고, 14세 1985년 6월에 부친이 사고로 사망한 이후 홀어머니 밑에서 예고 진학이 좌절, 국제공고에 입학했지만 적응 못해 2학년에 자퇴했다. 편협한 성격으로 사람들과 융화되지 못하고 자신의 요구사항이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참지 못하고 격분하는 반사회성 인격장애 및 경계선 인격장애 성격의 소유자이다. 고등학교 중퇴후, 사진 기사 1년, 중장비 기사 1년, 선원 2년, 대중음식점 종업원 1년 등등의 직업을 가졌으나 1995년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일정한 직업이 없이 야간에 경찰관을 사칭해 불법 유흥주점이나 노점상 등을 상대로 갈취행위를 했다. 22살에 1991년 안마사인 황모씨와 결혼 14차례 특수절도 및 성폭력 등으로 11년을 교도소에서 보냈고 2000년 3월 교도소에 수감중 2002년 5월에 부인이 이혼소송으로 이혼 당했다. ]
이 명례는 사주팔자DNA 사건사고편에 실린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