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보령은/靑石 전 성훈
도대체 이게 얼마만의 일인가? 언제 다시 인문학기행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 하며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넘기고 이제 세 번째 해를 맞이하여 벌써 반년이 지나간다. 2019년 11월, 인문학기행 200번째 축하 행사로 ‘청풍명월의 고장, 충청북도 제천’을 찾은 지 꼭 31개월만의 문화탐방이다. 그동안 이름도 얼굴도 잊어버린 사람들도 상당하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우리 곁을 떠나버린 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탓에 숨을 죽이고 한숨만 쉬면서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온 게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반가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손을 맞잡고 웃음꽃을 피우며 인문학기행의 꿈과 낭만을 찾아서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떠난다.
어제 밤부터 소리 없이 가랑비가 내린다. 메말랐던 대지를 적셔주는 단비가 내린다. 비가 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인문학기행을 즐기기에는 지장이 있지만 목마른 산하를 촉촉이 적셔주는 비가 와주어 고맙고 감사하다. 오전 6시 반 도봉문화원을 떠난 관광버스는 한 시간 정도 달려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 잠시 멈춘다. 이슬비가 조금 내려서 차창 밖은 어둡지만 달콤한 꿀과 젖 같은 비를 흠뻑 머금은 나무와 풀들은 파릇파릇하다. 막히지 않아 시원하게 달리던 버스가 서해 행담도 휴게소에 들어선다.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아침을 먹지 못한 탐방객들에게 식사할 시간을 준다. 뭘 먹을까 궁리하다가 날씨가 서늘한 느낌이 들어 뜨거운 국물 생각에 부산어묵을 주문한다. 밝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야외간이탁자에서 호호 불어가며 국물을 마시자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 관광버스는 오전 10시반경 보령으로 들어선다. 충남 보령 땅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하나는 유명한 머드축제이고 다른 하나는 ‘갈매못성지’이다. 보령군은 동쪽으로 청양군, 부여군과 접하고 서쪽은 서해에 면하고, 남쪽은 서천군, 북쪽은 홍성군과 접하고 있다. 보령군 주위에는 오서산, 성주산, 봉화산, 월명산, 장태산 등이 둘러싸고 있다. 보령군 지역은 그 옛날 삼한시대에는 만로국이 있었던 곳이다. (도봉문화원 자료)
첫 번째 방문지는 성주산 성주사지(聖住寺址)이다. 성주사지에는 보물인 오층석탑, 중앙 삼층석탑, 서 삼층석탑, 동 삼층석탑이 있고,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짓고 최인연이 쓴 국보 제8호인 낭혜화상탑비(朗慧和尙塔碑)있다. 몇 분이 빗속에 탑을 보호하는 보호각 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성주사지 돌계단 사자상은 1968년 누군가 훔쳐 가버려 지금은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해설 솜씨가 빼어난 현지 문화해설사의 구수한 목소리도 제법 커지는 빗소리에 제대로 알아듣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성주사지,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볼품없는 모습으로 기나긴 세월의 풍파 속에 훼손된 ‘석불입상’이 비를 맞으면서 말없이 쳐다보고 있다. 부처님의 마음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세월 따라 부처를 바라보는 세태도 변하는 것 같다. 잠시 스치듯 지나가는 어리석은 중생이지만 부처님의 ‘가피’를 청해본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백야 김좌진 장군 묘소이다. 일제침략기 청산리전투의 승리로 망국의 백성들에게 꿈을 주고 기쁨을 주었던 민족의 영웅, 비 내리는 묘소에는 반지꽃이 피어나고 파릇파릇 물기가 묻어나는 묘소 주변에는 소나무와 밤나무가 무성하다. 위대한 조상의 묘 앞에 서서 잠시 경건한 마음으로 예를 표한다. 오전 탐방을 마치고 오천항으로 이동하여 어느 횟집에서 회덮밥으로 점심을 먹는다. 어촌이라 근처에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없어 어쩔 수 없겠지만 회덮밥을 먹지 않는 사람은 매운탕국물에 밥을 먹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오후에 먼저 찾은 곳은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이다. 조선 전기 충청도 수군절도사영이 있던 곳으로 서해를 통해 침입해 오는 왜구와 해적을 감시하고 소탕하기 위해 축조한 성곽이다. 성 안에는 영보정을 비롯하여 문 4개와 연못 1개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서쪽 망화문터의 아치형 석문(石門)만 남아 있다. 영보정(永保亭)에 오르니 바람이 많이 분다. 오른쪽은 산이요 왼쪽은 서해바다이다. 임진왜란 때에 왜군이 쳐들어오지 못한 천혜의 요새였다고 한다. 20년 전에 와보았던 오천항과는 너무나 달라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항구에는 많은 고깃배들이 출어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마침 곁에 계신 현지해설사분에게 물어보니, 그 동안 바다를 메워 길을 넓히고 도로환경을 개선하여 옛 모습과는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천주교 순교사적지인 갈매못성지이다. 갈매못은 천주교 전래 초기에 교인들의 신앙 활동이 활발하였던 내포지방의 연못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로 신부 등 불란서 신부 세 분과 황석두 루가와 장주기 요셉 조선인 신자 두 분이 순교한 곳이다. 하나뿐인 귀한 목숨을 내놓으며 하느님나라를 선포한 신앙의 선조들, 그 분들의 고귀한 죽음을 기리며 주기도문을 바치고 성당에 들러 기도를 드린다. 저녁이 되어 서울로 올라갈 때는 얼마 전에 개통되어 소문난 ‘보령해저터널’을 지나서 원산도와 안면도를 연결한 ‘원산안면대교’를 건넌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간헐도 원주민 전설과 천수만 방조제를 건설한 또 한분의 불세출 위인인 고 정주영회장의 무용담을 들으면서 인문학기행을 마친다. 현지 문화해설사의 박식한 지식과 구수한 입담을 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해설을 해주신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오늘 문화탐방을 기점으로 하반기에도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원하면서 도봉문화원 담당자 여러분께도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2022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