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일 대표는 암에 걸려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죽는 것이 부처'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지난 20년 간 사찰 숲 지킴이로, 언론의 불교폄훼를 감시하며 불교의 권익을 위해 노력 해 온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 대표. 그는 암투병 중에도 7년 간의 작업 끝에 《산사의 숲》10권을 펴냈다. 2월 9일 서울 종로 소재 죽림헌(사찰생태연구소 사무실)에서 생의 마지막 기로에 서 있는 그를 만났다. 편집자
한주영(이하 한) : 최근 《산사의 숲》10권을 완간하셨습니다. 그간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김재일(이하 김) : 7년 동안 조사를 했는데, 사실은 개인이 할 일이 아니라 산림청이나 환경부, 종단에서 할 일이었죠. 아무도 안하니까 내가 했어요. 그 과정에서 종양이 발견돼 어려움을 겪기도 했죠. 이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는데, 다행히 부처님 가피력으로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거의 대부분 혼자 했지만 1/3정도는 누군가가 도와 줬어요. 일반적으로 사찰과 관련된 책은 문화유산, 관광에 관련된 것들이 많은데, 사찰의 자연생태를 다룬 책은 처음입니다. 책을 묶는데도 2년이 걸렸어요. 100년, 200년 후의 사람들이 오늘날의 사찰 숲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해서였죠. 역사기록으로 생각합니다.
한 :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는데도 지속적으로 사찰 생태를 조사하고 연구할 수 있었던 힘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김 : 나 자신부터 생태적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젊은 시절, 햇수로 5년 간 출가자로 살았습니다. 그때 불교가 다른 종교의 교리보다도 생태적, 생명적인 종교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죠. 당시 노스님들에게서 듣고 배운 불교는 매우 생태적이었어요. 행자생활을 하던 절에 고시생들이 많았는데, 제 소임은 나무를 해다가 군불 때는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한 노스님이 “군불 때는 장작을 가져 오라”해서 갖고 갔더니, 장작을 부러뜨리시더군요. 그 속을 보니 벌레들이 많았어요. 나 하나 살자고 출가했는데, 더 많은 생명을 죽이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생태ㆍ생명운동을 하고 있는 밑바탕입니다.
불교의 생태사상은 이론적 생태가 아니라 실천하고 삶에 녹아든 실천적 사상입니다. 부처님이나 제자들은 생태이론에 대한 책을 한 권도 남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경전에 나오는 그들의 삶은 지극히 생태적이죠. 고기 먹고 외제차 타고 다니면서 생태운동을 할 순 없습니다. 불교는 대한민국 숲을 지켜온 1등 공신인데, 일반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릅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도 내가 이 일을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한 : 사찰 수행환경이 파괴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사찰생태를 연구하신 걸로 압니다. 사찰생태 파괴가 수행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김 :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위험하잖아요. 이 시대는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거나 성능이 안좋아요. 이대로 가다가는 자연환경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져요. 특히 사찰 수행환경 문제가 그렇습니다. 사찰 자연환경은 일반 자연환경과 달라요. 사찰의 자연환경이 파괴되면 불교의 존립자체가 위험해집니다.
우리나라 스님들의 출가자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스님들 인터뷰를 해보니 예전에는 수행하기 위해서 출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계를 받고 난 뒤에 뭘 하겠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선방이나 강원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했죠. 요즘은 ‘포교 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편리하게 세속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죠. 물론 포교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불교의 법등이 전해지니까요. 하지만 자기공부를 하지 않고 포교하는 것은 오히려 불교 발전에 장애가 됩니다.
공부하는 불교인을 배출하려면 수행환경이 지켜져야 합니다. 초심자에겐 환경이 참 중요합니다. 불교의 힘은 수행에서 나옵니다. 그렇게 볼 때 산중의 사찰은 수행의 본거지요, 고향입니다. 재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단체 실무자와 운동가가 있지만 단체에 들어와서 관련 분야에 대한 배움과 전문적인 지식없이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안됩니다. 공부가 된 사람의 주장과 공부가 안된 사람의 주장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환경을 지키자’는 목소리를 냈을 때, 똑같은 목소리 같지만 감동과 울림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한 : 사찰생태연구소를 운영하시면서 생태기행이라는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대중화 하는데 기여를 하셨습니다.
김 : 생태기행은 여행의 한 방편이 아니고 교육의 한 방편입니다. 교실 안에서의 닫힌 교육을 교실 밖으로 꺼낸 것이죠. 생태기행은 차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걸어서 다니는 것입니다. 서울이 회색빛 도시라고 하지만 생태는 살아있어요. 시멘트 벽 사이의 이끼도 우리의 눈이 초록색이 아니어서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생태입니다. 생태기행이 많이 확산됐지만, 부작용도 있습니다. 생태기행을 가서 가이드라인 지키지 않아 오히려 동식물을 해치는 경우도 있죠.
한 : 두레생태기행과 (사)보리는 모범적인 불교NGO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불교계 NGO가 어떻게 활동해야 할까요.
김 :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20년 동안 불교운동을 해왔는데, 저는 좌파도 우파도 아닙니다. 어디엔가 속해 있다고 스스로 못박으면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불교단체는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 통찰력은 수행에서 나옵니다. 그래야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냉철함을 가질 수 있어요. 흔들림없는 냉철함으로 진실을 꿰뚫어 봐야 하는데 현재는 부족합니다. 항상 타종교, 정치권, 운동권에서 시작해 놓으면 이름만 올려 무임승차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렇게 해서라도 사회참여를 해야 겠지만요.
한 : 일찍부터 미디어에 관심을 갖고 (사)보리를 만드셨고, 많은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불교계가 미디어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김 : 지금은 정보통신의 시대에요. 미디어는 우리시대의 실크로드인 셈이죠. 미디어를 접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 육성보다 자동차나 TV 소리를 더 자주 듣게 됩니다. 현대생활에 있어서 미디어가 현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주 막강합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미디어 자체는 ‘선이다, 악이다’ 라고 말할 수 없어요. 인간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악이 될 수도, 선이 될 수도 있죠. 각 종교는 교리를 전파시키는 데 미디어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어요. 불교는 미디어에 익숙하지 않아요. 오히려 무시하죠.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유용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사)보리를 만들었는데, 제대로 활동 못했어요. 요즘은 불교미디어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 : 그동안 (사)보리에서 제정해 시상해 오던 불교언론문화상(옛 보리방송문화상)을 지금은 조계종으로 넘겨 규모가 더 커졌습니다. 성장한 모습에 뿌듯하실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김 : 그것도 19년 됐네요. 공중파 방송에서 불교다큐멘터리 등 불교 관련 프로그램들이 여럿 나왔는데, 불교전문인이 만드는 게 아니다보니 전문성이 없고, 질도 떨어졌었죠. 어떻게 방송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좋은 프로그램을 뽑아 상을 주면 나아지겠다 싶어 부산지역 스님들과 논의해서 부산에서 시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서울로 가져와 시상하다가 조계종에 넘겨줬어요. (사)보리는 실무만 맡고 있어요. 상의 위상도 높아졌고, 불교 관련 프로그램의 질도 향상됐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손을 뗄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 올해부터는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한 : 대단히 여쭙기 어렵고 저 자신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텐데, 암으로 투병하신지 꽤 오래 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불교적 가치관에 따라 남다른 삶을 살아오셨는데 불교계에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김 : 모든 문제는 자기에서 비롯됩니다. 남의 문제도 자기의 문제입니다. 사회문제에 동참함으로써 개인고를 해결할 수 있어요. 병원에서 잔여 생명이 50일 남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50일 동안 몸이 아프다고 해서 드러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으면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아 일을 더 많이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니 아픔도 덜하고 그것을(시한부) 잊을 수 있더군요. 불자들도 기도는 대부분 자기 이익적입니다. 자타불이의 기도라야 진정한 기도입니다. 나의 병을 낫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내가 갖고 있는 욕심과 탐심을 털어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 뿐입니다.
생노병사는 어느 누구도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죽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죠. 그것이 법이요, 부처의 길입니다. 죽지 않는 것이 부처가 아니라 죽는 것이 부처에요. 늙지 않는 것이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라 늙는 것이 부처님의 가피입니다. 그러한 인식이 없으면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고해를 벗어나려고 할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생은 없습니다. 있다면 늙고 죽는 것이 영생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죠. 생노병사는 자기 문제이면서 우주 모든 사물의 문제입니다. 자기의 문제에 천착해 사회에 등 돌리고 앉아선 안됩니다.
▲ 죽림헌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는 김재일 대표와 한주영 씨.
김재일(64)
=두레생태기행 회장
=숲해설가협회 회장
=국립공원위원회 위원
=(사)보리 이사장
한주영(42)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 석사
=조계종 재가불자 신행체계화 연구 책임간사
=현 불교여성개발원 사무처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여성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