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다 구
병아리 한놈이 별났다.
모이가 많은데도 혼자 먹겠다고 다른 놈들을 쪼아댔다.
병아리 또래 중에서 단연코 일진이었다. 이놈이 커가면서 독특한 모습으로 변했다.
덩치는 크지 않았지만 다른 녀석들과 달리 직립(直立)했고 다리가 길며 목덜미 갈퀴도 억셌다.
주인 독고의 눈에 띄었다.
농사꾼 독고는 이놈을 ‘깡다구’라 이름 지었다.
어릴 적 구례의 저잣거리에서 촌아이들 코 묻은 돈을 빼앗는 불량배를 만나 코피가 터져도
조끼 주머니의 엽전은 한닢도 빼앗기지 않았던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고는 깡다구를 끔찍이 아껴 거름 속의 지렁이를 잡아서 그 녀석에게만 줬다.
깡다구끼리는 서로를 알아보는지 깡다구도 주인 독고를 따랐고,
심지어 말까지 알아들어 독고가 ‘깡’ 하고 소리 지르면 번개처럼 나타났다.
열댓마리 닭을 기르며 독고가 열받는 일은 툭하면 닭장에 들어와 닭을 잡아먹는 족제비다.
뚫린 구멍을 막아봐야 소용이 없었다.
땅을 파고 굴을 만들어 들어오는 데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밤은 깊어 삼경일 제 닭장에서 난리가 났다.
독고가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초롱을 들고 닭장에 갔더니 피투성이가 된 깡다구가 청아하게 ‘꼬끼오∼’ 하고
길게 승리의 고고성을 뽑았다.
그날 밤 이후로 족제비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붓장수가 포획틀을 놓아 족제비 한마리를 잡았는데 애꾸였다.
장날에 장 보러 갈 때면 깡다구 녀석이 선 자세로 머리를 곧추세운 채 독고 앞에서 또박또박 걸어가
뭇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구례 장날 장터 바닥에 닭싸움이 벌어졌다.
수탉 두마리가 깃을 세우고 치고 올라 공중에서 일합을 치르고 땅을 박차고 올라 이합을 치를 때
깡다구는 독고의 어깨 위에 앉아 닭싸움을 유심히 내려다봤다.
일합, 이합 치를 때마다 구경꾼들의 함성이 장터를 찢었다.
투계(鬪鷄)는 노름판이다.
주인이 공들여 훈련시킨 장닭을 안고 투계장에 오면 네평 멍석에서 두놈이 싸움을 벌인다.
싸움닭 오른발에는 새파랗게 날이 선 칼을 묶어놔 싸움은 보통 4∼5합에서 승패가 갈린다.
한놈이 유혈이 낭자하게 쓰러지든가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면 싸움은 끝난다.
집사가 치부책을 펼쳐 끌어모았던 판돈의 2할을 이긴 닭 주인에게 주고,
1할은 주최 측 건달들이 가져가고,
남은 7할은 판돈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배분된다.
승부의 세계는 비정하다.
이긴 닭은 주인이 치켜들고 춤을 추며 장터를 한바퀴 돌지만 패장은 투계장에서 목에 칼을 맞고 죽거나
도망을 치다가 주인한테 목이 비틀려 옆에 있는 주막집으로 가 주인의 화풀이 술안주가 되는 것이다.
‘일승일패(一勝一敗)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교훈은 투계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상처를 입고 패했든 도망쳐서 패했든, 한번 패한 투계는 두번 다시 싸우지 않는다.
영원히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닭싸움을 유심히 지켜본 깡다구가 나도 한판 붙고 싶다는 듯 독고 어깨 위에서 ‘꼬끼오∼’ 힘차게 외쳤다.
독고는 “그럼, 너는 족제비 눈깔을 파먹은 천하제일 투계, 무적이야 무적!”이라고 중얼거리며 빙긋이 웃었다.
독고는 곳간에 수삼 뿌리, 번데기, 땅콩, 지네 등등 보약을 바리바리 쌓아두고 돌에 갈아
깡다구의 모이로 만들어 주며 훈련을 시켰다.
동짓날이 장날이다.
독고가 대장간에서 특별히 주문해 만든 어른 손가락만 한 칼을 숫돌에 갈아 깡다구 오른발에 단단히 묶었다.
첫판에 만난 상대의 목을 단 일합에 따버렸다.
함성이 장터를 들었다 놨다.
깡다구가 하루에 세번 출전, 일이합 만에 모두 이기자
주최 측에서는 하루에 한번만 출전할 수 있도록 경기 규정을 바꿔버렸다.
깡다구가 나왔다 하면 모두가 피했다.
주최 측 건달들이 독고를 데리고 주막으로 가더니 청주에 너비아니를 사주며 그만 출전하라고 통사정했다.
독고는 단봇짐에 깡다구 보약 모이를 잔뜩 지고 외부 장꾼들과 장날을 찾아 다녔다.
남원·곡성·담양·화순·벌교·순천. 등등....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보약을 먹여 힘이 펄펄 솟는 깡다구를 데리고 다니다
이놈이 암탉만 보면 쫓아가 짝짓기하려고 드는 것이다.
투계가 짝짓기하는 것은 금물이다.
3년의 세월이 흐르자 깡다구도 전성기가 지나 보성 장날,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독고는 깡다구를 잡아먹지 않았다.
고이 안고 집으로 와 암탉 여러마리와 합사해 노후를 편안하게 살도록 했다더라.
첫댓글 깡 다구 심 딸 려서 암닭 여러 마리 거느리 겠냐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