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의 「삼 초만 보는 여자」 감상 / 박연준
삼 초만 보는 여자
정끝별(1964~)
난 동물 짤을 좋아해
삼 초의 돌입과 몰입이
난 아이 짤을 좋아해
삼 분의 희열과 집착이 되고
난 춤 짤도 좋아해
삼십 분의 중독과 세 시간의 망각이 되는
2배속의 길거리음식 짤과 드라마 짤도 좋아해
밥을 잊고 일을 잊고 잠을 잊고
반복과 증식을 거듭하는 삼초의 무한루프 속
모든 각도에서 모든 지점을 보는 삼초의 알레프
삼 초의 빨판과 삼 초의 갈고리에
말을 잊고 생각을 잊고 시간을 잊고
삼 초만 보는 내 뇌는 텅 빈 스크린
나는 야, 백 개의 눈을 가진 눈먼 아르고스*
_________
시인의 각주(脚註)
*이십 년 전 나는 ‘삼초 먼저 보는 여자’였어
똑딱 똑딱 똑딱의 순간을 먼저 예감하고 예지하고 예견했어
삼초 먼저 본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삼초 후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나의 불안이자 공포, 절망이자 저주였어
그러니 업이었달까
이십 년 후 나는 ‘삼초만 보는 여자’가 됐어
터치 터치 터치를 거듭하며 나는 예정되고 예속되고 예인됐어
삼초만이 삼초만으로 되풀이된다는 게
삼초 만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한다는 게
나의 쾌락이자 우울, 자폐이자 망각이었어
그러니 독이랄밖에
*짤 : 부사•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지는 모양.(북한어) •‘몽땅’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북한어)•주로 인터넷상에서 사진이나 그림 따위를 이르는 말. ‘짤방’에서 비롯된 말이다.
*무한루프(endless loop, 無限루프) : 프로그램이 일련의 명령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무한 루프는 프로그래밍 실수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탈출 조건을 설정한 다음 만들 수도 있다.
*알레프(El Aleph) : 환상 문학의 틀 속에 담아낸 현대 사상의 현란한 만화경. 익숙했던 세계의 지평이 무너져 내리는 가장 충격적인 문학 체험.
*아르고스(Argos) : 그리스 신화에서, 세 개 또는 네 개의 눈을 가진 괴물. 온몸에 무수한 눈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는 이 괴물은 아르카디아를 황폐하게 하는 소와 사티로스를 죽이고, 헤라의 명으로 암소로 변한 이오를 감시하다가 제우스의 명령을 받은 헤르메스의 계략에 걸려 살해되었다.
...........................................................................................................................................................
인간은 이제 삶을 살지 않고, 삶을 본다. 어디서건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세상이 눈앞에 실재하는데 기어코 액정 속 세상을 보고, 액정 속에 세상을 담으려는 사람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제 누구도 고독하기 어렵다. 초연결 시대에 혼자 오롯이 사색할 수 없고, 두어 시간 집중해 독서하는 일도 쉽지 않다. 궁금증은 인공지능(AI)이 해소해 준다. 세상은 스마트폰만 한 크기로 작아졌다.
“삼 초의 돌입과 몰입”을 모르는 현대인이 있을까? 화면을 쓰윽 터치하면 3초씩, 평생이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짤과 릴스가 넘쳐난다. 3초라는 평생이여! 말을 안 해도, 생각을 안 해도, 삶을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시인은 시 말미에 각주를 달아 이십 년 전 자신은 “삼 초 먼저 보는 여자”였음을 고백한다. 예감하고 예지하고 예견할 수 있었던 시절! 생각이 삶을 이끌어가던 그 충만한 기분을 당신은 기억하는가?
박연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