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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2. 주일설교말씀. 마태복음7:1~6절
제목 :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오늘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옛 말에 이르기를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흐르는 물과 같이 빠르다는 말입니다. 새해를 맞이한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이 다 가고 오늘이 2월2일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새해의 목표를 향하여 크게 결심을 하고 앞으로 전진할 때가 되었습니다. 마음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서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관하여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Ⅰ. 우선 비판과 책망에 관한 규칙들에 대하여 정해 주십니다 7:1-6
우리가 판단하는 일들에 대하여 주의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1,2)
주께서는 판단하는 일을 금하라고 하시면서 비판하지 말라(1절).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는 하나님앞에 회개 해야 하지만 우리의 형제를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우리가 비판하고 판단하고 서로를 경계하고 감시하는 그런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말이 모든 사람에게 법이 되는 재판석에 앉아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를 경멸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 이웃을 경솔하게 비판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앙갚음의 정신과 해를 끼치려는 마음으로 무자비하고 몰인정하게 비판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나 의도를 판단해서는 더욱 안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을 시험하는 일은 하나님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이러한 판단을 금하라고 강조하신 이유는 네가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한 것이다.
오늘 본문은 당시 유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악습에 대한 경계의 말씀으로, 당시 유대 사회에는 걸핏하면 율법과 자신들이 만든 종교 계율로 이웃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나쁜 사회적 풍조가 만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비판 풍조에 물든 의식에 대하여 버릴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판’ 이라는 말은 헬라어 ‘크리노(krivnw)’를 번역한 것인데, 이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구별하기 위해 ‘정죄하고, 비난하고, 비판하고,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높아지고 싶은 충동, 욕망과, 교만함,에 비롯됨을 강조하기 위해 타인을 비판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어떤 비판이든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은 무조건 자신에 대하여서는, 또한 자신의 부족함과 자신이 다른 분들보다 한마디로 무식함을 마치나 어떤 으르릉거기는 강아지에 비교한다면 두려움이 많거나 외로움과 공포심을 마치나 누구보다 나은 모습으로 포장하며 다른 사람을 낮게 표현하는 그릇된, 충동심, 즉 하나님 보시기에 온갖 교만과 기만과 하나님을 모독하는 어떤 행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겇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 이 말씀이 우리에게 해석하고 자 하는 주요 핵심은
첫째, 만일 우리가 감히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려고 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도 또한 판단받게 된다는 것을 당연히 예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판을 받는 사람은 아주 비판적인 사람보다 덜 비판을 받기 마련이고, 남을 판단하는 일에 자비를 보이지 않는 사람은 그 자신이 또한 자비가 없는 판단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그들은 하나님의 판단을 받을 것이고 그로부터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다
(약3: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14:10)“네가 어지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끓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형제와 성도간에 판단은 오직 하나님 몫이며 하나님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형제를 섬기는 것이며 하나님앞에는 모든 무릎을 끓어야 하며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과 낙태함에 대하여 회개하고 자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겸손히 참고 견디는 자를 원하시고 교만하게 비웃는 자는 물리치시고 그에게 상당한 심판을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일에 온유하고 자비를 보이며 그들을 비판하기를 거절하고 오히려 우리 자신을 비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판단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형제들을 용서하는 자를 용서하시듯, 하나님은 그의 형제들을 비판하지 않는 자를 비판하시지 않을 것이다. 자비를 보이는 자가 자비를 얻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자에 대한 비판은 보응의 법칙이 따르는 것이며,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2절).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행하심에 자주 비율의 법칙을 준수하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다시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사람들이 형벌을 받는 가운데 자기들의 죄를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을 판단할 때 하는 것처럼 정확하고 엄중하게 우리를 판단하신다면, 또 우리가 사용한 똑같은 저울로 우리를 달아 보신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만일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이 잘 못하는 것을 철저하게 채점한다면 당연히 우리도 또한 그렇게 채점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일들에서와 같이 이 일에서도 사람들을 가혹하게 취급하는 행위는 결국 그 보응이 자기 머리로 돌아간다고 말씀합니다.
성경 말씀 안에서 자기의 이성과 양심으로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분하고, 진리와 불의를 구분하며,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판단하는 능력은 성도의 소중하고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고전 2:12-14)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오히려 이러한 비판력과 판단력이 없으면 올바른 성도의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올해 2025년에 우리 새생명교회 성도들 안에서는 서로가 교회에서 주신 직분 외에 교회 안에서 든지 밖에서든지 직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제 동생처럼 함부로 부르거나 또한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 자기에 앉아서 성도들을 판단하고 교만함으로 자신의 의를 이루는 성도들은 한명도 없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냥 겸손하고 겸손하며 또 겸손하기를 하나님께 성도들을 대하듯이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속에서 나타나는 너무나 보기에 아름답지 못한 일들에 대하여 계속하여 사도바울을 통하여 더 나아가 ‘양의 옷을 입고 오는 늑대 같은 거짓된 자들을 잘 판단할 것’을 강조하셨고(마 7:15),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앞잡이인 ‘거짓종교인들을 분별할 것’도 가르치셨습니다(마 23:23-28).
사랑하는 여러분, 주 안에서 올바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은, 자신과 교회를 성장시키고 악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신앙의 방패라는 사실을 믿으시고 겸손히 서로 섬기며 봉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악한 판단과 비판은 자신과 이웃을 해롭게 하지만 건전한 판단과 비판은 오히려 자신과 이웃을 이롭게 하고, 악으로 가는 발길을 돌려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성도의 필수적인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올바른 판단력과 비판력을 가지기 위해 무엇보다도 지혜의 근원인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이웃을 함부로 비판하는 자가 받을 심판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비판한 자는 그가 비판한 그대로 오히려 자신이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멀리 볼 것도 없이 주위를 살펴보면, 남을 뒤에서 흉보거나, 모함하거나, 늘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형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그들은 결국에는 자신이 비판하고 흉본 대로 수모를 당하고,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입으로 먼지를 부는 자가 먼저 먼지를 뒤집어쓰게 되고, 부메랑은 던진 자에게로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부당하게 남을 비판하는 자를 가리켜 ‘누워서 침 뱉는 자’ 또는 ‘물 떠놓고 그림자를 보라’라고 합니다.
우리는조금이라도 시기와 질투로, 교만한 마음과 우월감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2025년이 되어야 합니다
비판 대신 이웃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해주고, 또 축복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무조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용서하시기 위해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흠도 없으시고 죄도 없으신 그분이 오로지 우리모두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고 용서하시기 위해 사랑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이 땅의 심판관으로 보내시기 위함이 아니라, 십자가의 전달자로 부르시기 위함임을 명심하는 우리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악의로 이웃을 비판하는 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의 눈에서 ‘티’를 찾는 이는 자신의 눈에 ‘들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십니다.
‘들보’는 옛날, 집의 기초가 되는 대들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신에게 대들보와 같은 큰 단점과 죄가 있음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이웃의 작은 허물을 보고 그것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자들의 모순을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사람의 가장 큰 불행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태를 바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니 회개하지 못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작년이나 올해나 고치지 못하고 계속하여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죄로 더러워졌는지, 또 어떤 죄를 지니고 있는지를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기 때문에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 앞에 서 계셔도 보지 못하고 영접하지도 못합니다. 아집과 편견과 불신앙과 교만이 늘 그의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의 눈에는 무엇이 먼저 보입니까?
자신과 자신의 죄입니까, 아니면 타인과 그의 죄입니까?
우리는 마땅히 예수님이 열어 주신 신령한 눈으로 자신의 죄부터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가 이웃의 죄보다 더 크게 보여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기에 사도요한은 함께하는 성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직도 죄의 어둠 속에 거하는 맹인이라고 교훈했습니다
(요일 2:9-11) ”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고 있으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지금 내 눈의 초점은 어디에 맞추어져 있고, 또 무엇을 먼저 발견하고 있는지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6절에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교훈하셨습니다. 여기서 ‘개나 돼지’는 비판을 잘했던 ‘위선적인 종교인’을 가리키고, ‘거룩한 것과 진주’는 ‘천국 복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위선적인자들, 교만함과 악독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자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유독 이러한 자들에게 만큼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위선적인 종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하시며 심하게 질책하셨습니다(마 23장).
예수님께서 이렇게 까지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선물인 신앙과 천국선민으로서의 특권을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을 이익의 위주로 생각하는 자들’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디모데전서6:3~4)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신중하게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전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미 철저한 사탄의 자식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들은 도리어 성도를 해하고 복음을 훼방할 뿐입니다.
(갈 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자기들의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대해야 하지만, 그러나 신앙을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접근 하는 자들과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지키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사명입니다.
(고전 5: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해 2025년에는 새생명교회 성도 모두는 영들 분별력을 가지시고 교회를 파괴하려고 하는 어떤 사탄마귀와 항상 영적으로 싸워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의 말씀을 결론 맺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려는 것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 역시 시몬 베드로의 고백과 마찬가지로 짧지만 교회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말씀해 줍니다.
우선,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언한 것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들의 교회” 또는 “우리 교회”라고 하지 않으시고 분명히 “내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신 그 분이 우리모두를 사랑하셔서 판단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 몫이며 우리는 서로 사랑할 의무 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올해 우리 새생명교회 성도님들 모두는 말에 정말 주의하셔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용납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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