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왕
작가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삶
이 책은 절판된 책이다. 도서관 서고에 들어가 있던 책을 대차 신청해서 받아 읽었다. 계속되는 공부 속에서 어느 교수님이 소개해 주신 책으로 이 책의 저자인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삶은 이 소설에 등장한 만주 호랑이 ‘위대한 왕’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러시아 제국 군인으로 출발해서, 만주 일대에 근무하는 동안 저자는 만주 호랑이(혹은 한국 호랑이)를 비롯한 만주와 아무르 일대의 동물들을 관찰할 충분한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38점의 삽화나 소설에 기술된 세세한 부분들은 작가의 상상만으로는 도저히 재현 불가능한 생생함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동전과 탄피를 이용한 목걸이를 만드는 것처럼, 니콜라이 바이코프는 대신 이렇게 멋진 소설을 쓰기 위한 자전 준비를 했던 모양이다.
제정 러시아 시기에는 만주 동청철도 수비대에서 근무하였으며, 적백내전이 발발하자 러시아 백군에 가담하여 안톤 데니킨 휘하에 있었으나,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이 패배하자 중국 동북 지방(당시는 만주국)으로 망명하여 사냥꾼으로 살았다. 그 시기에 신문에 이 소설을 발표하였다. 바이코프는 만주 전략 공세 작전으로 만주가 소련군에 접수되자 박해를 받았고, 호주로 이주해 브리즈번에서 삶을 마무리 한다.
왕대와 그 일가
왕대는 만주의 밀림 지역을 배경으로 호랑이가 주인공.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왕(王)자와 대(大)자 무늬가 있는 호랑이 왕대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하여, 자연에 스스로 적응하는 호랑이의 강인함과 자연을 침범하는 인간과의 투쟁과 영웅적인 최후를 묘사한다.
왕대는 이 책 의주인공으로 주요 서식지는 북만주의 대두정자산 일대였으나 작품 후반부에서는 대두정자산이 러시아군에 의해 개발되면서 연해주, 백두산 등으로 확대된다. 또한 등장 호랑이로는 왕대의 누이가 있다. 새끼 때 이후로 왕대와 따로 지냈으며,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왕대의 어머니와 왕대의 아버지인 왕따이는 백두산 일대를 지배하는 왕대의 아버지로 머리에 왕과 대 무늬가 있다.
마지막으로 왕대의 첫 암컷은 "맹수들의 밤"에 늙은 암컷 두 마리를 제치고 왕대에게 선택된 어린 암컷이지만 사냥꾼 리산이 설치한 부비트랩 총에 맞아 즉사하는 사건으로 왕대는 복수를 겸해 처음으로 인간을 잡아먹는다.
인간들
퉁리 영감은 사냥꾼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원로 사냥꾼. 한번은 왕대와 한밤중 길에서 마주쳤으나 초인적인 의지로 눈을 부릅뜨고 왕대의 옆을 지나간다. 그 모습에 기가 눌린 왕대는 노인이 멀어져 가는걸 물그머니 바라본다. 이때 뒤를 돌아보면 그대로 잡아먹힌다는 것을 아는 노인은 그대로 걸어간다. 러시아인의 침략 속에서 노쇠해가는 왕대를 살리기 위해 소설 마지막 부분에는 늙은 몸을 이끌고 스스로를 왕대의 먹이로 바치기 위해 산을 오르지만 사냥꾼의 총에 치명상을 입은 왕대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쑹파는 병든 어머니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주인의 흑담비 생가죽 2장을 훔쳐 달아났다 잡혀 온 쿨리로, 사냥꾼들의 법에 따라 재판을 받고 왕의 먹이로 바쳐져 처형된다. 퉁리 영감은 재판관 6명 중 하나로 참여해 사면하는 쪽에 표를 던졌지만 나머지가 전부 사형 찬성표여서 처형을 막지는 못했다. 처와 자식이 있었는데 쑹파가 처형된 후 퉁리 영감이 집이 딸린 토지를 사 주어서 생활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리산은 젊은 사냥꾼. 부비트랩을 설치하면 쉽고 안전하게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 설치해 본 부비트랩으로 왕의 첫 암컷을 잡았다. 리산 때문에 짝을 잃게 된 왕은 분노했고, 호랑이를 잡았으니 이제 부자가 되었다고 기뻐하며 한달음에 달려온 리산은 죽은 암호랑이 옆에서 원수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왕에게 그대로 걸린다. 총도 없는 채 왕과 정면으로 마주친 리산은 선 채로 똥오줌을 싸며 혼비백산하고, 그대로 죽임을 당하고 한 끼 식사가 되고 말았다. 왕이 잡아먹은 첫 번째 사람으로, 이 사건으로 왕은 인간이 별것 아닌 먹잇감임을 알게 된다.
알세네프는 러시아 국경수비대의 사관으로, 말리킨과 함께 멧돼지 사냥에 나섰다가 따로 떨어졌을 때 왕에게 습격당해 죽임을 당하고 한 끼 식사가 되었다. 그리고 말리킨은 알세네프의 전우. 알세네프와 함께 사냥에 나섰다 잠시 떨어진 뒤, 알세네프가 당한 후 그의 잔해를 발견한다.
만주의 밀림을 호령한 한국 호랑이, ‘위대한 왕’
은 신령스러운 백두산 호랑이의 후예로 태어나, 만주의 거대한 숲을 지배하는 군주로 성장한다. 이 호랑이는 광활한 숲의 왕자(王者)이자 준엄한 자연법칙의 현현이기에 타이가의 모든 동물은 왕에게 복종한다. 특히 인간들은 위대한 왕을 산의 신령으로 모시며 절대적으로 순종한다. 왕은 굴종을 모르는 순수한 자연의 힘과 태곳적부터 이어져 내려온 밀림의 법칙을 대변하는 존재이며, 이러한 왕이 경외심을 느끼는 대상은 오직 타이가의 현자 퉁리 노인뿐이다. 그러나 철도로 상징되는 무자비한 문명이 만주 타이가를 송두리째 파괴하기 시작하자, 왕을 비롯한 숲의 터줏대감들은 새로이 등장한 인간에 맞서 반격에 나선다.
왕과 곰의 사투
인간세계에서 유행인 격투기를 연상시키는 세밀하면서도 정교한 방식으로 왕과 곰의 사투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깊은 타이가 숲의 침묵 속에는 그렇게 삶과 죽음이 오가는 치열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 수다쟁이 까치와 어치는 그런 이야기들을 부지런히 물어 나르며 숲의 곳곳에 정보를 전달한다. 한편, 왕이 처음으로 만나 짝짓기를 한 아무르 암호랑이의 비참한 죽음은 온갖 자원이 넘쳐흐르는 만주 지방을 차지하기 위해 충돌한 러시아와 일본 제국주의 열강의 치열한 각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무진장으로 펼쳐진 산림자원을 채취하기 위해 철도가 놓이고, 인간들이 마구잡이로 숲을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숲에 평화롭게 지내던 동물들 역시 보금자리를 잃고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할 운명을 맞게 된다.
사라진 우리의 호랑이, 그리고 만주의 고통스러운 역사
이 책은 지난 세기의 사라져 간 밀림과 한반도에서는 거의 멸종되어 버린 한국 호랑이 이야기로 신화와도 같은 매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동시에 다양한 동물과 식생, 원주민들의 풍속에 대한 묘사는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요로운 세계를 생생하게 펼쳐 보여주면서도 주목할 것은 이 작품의 역사적 함의이다. 니콜라이 바이코프가 이 작품을 쓰던 때는 러시아가 동청철도 부설권을 획득하여 만주를 호시탐탐 노리던 시기이자 한반도를 식민화한 일본이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본격화하던 때이다. 따라서 ‘번쩍이는 금속 용’(기차)으로 대변되는 문명의 침략에 대항하는 ‘위대한 왕’과 숲의 동물들은 인간의 발아래 상처 입고 쓰러져 간 자연을 상징할 뿐 아니라, 식민자들에게 침탈당한 피식민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호랑이들의 비극적 최후를 따라가는 비장함과 가슴속 깊은 통증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고독한 망명자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성찰
이 책의 독창성과 뛰어난 작품성은 저자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이력에서 비롯된다. 바이코프는 제정 러시아의 장교로서 러시아의 동청철도 수비대로 만주에 파견되었던 그는 만주의 원시 밀림에 마음을 빼앗겼고, 이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한다. 그리고 30여 년을 만주의 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만주 밀림의 동식물과 원주민 생활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담은 여러 작품을 저술하는데 이 책은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큰 인기를 얻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특히 1936년 「만주일일신문」에 일본어로 번역되어 연재되다가 단행본으로 발간되어 일본 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생생한 밀림 체험과 완성도 높은 구성이 어우러진 멋진 작품으로 우리 시대 아픈 역사를 호랑이를 통하여 돌아보게 한다.
첫댓글 독후감을 정신 없이 읽었습니다^^
이런 소설도 있네요
몇 해전 최민식이 열연한 영화(제목은 기억이 안남)가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