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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진리의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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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20(로마42)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
“6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로마서 9:6-13)
서론: 신앙의 세계에는 증명할 수 없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난해(難解)한 진리들이 있습니다. 말고불변의 진리인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만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이해가 안 되고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진리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에 대한 교리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용어가 없지만 성경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성부’ 하나님이 계시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이라고 하는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권세와 영광과 능력이 동등하시고 한 하나님의 속성으로 계시다고 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 다음으로 난해한 진리가 “하나님의 선택(選擇)과 유기(遺棄)”의 교리입니다. 선택이란 많은 사람 가운데서 어떤 사람을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백성으로 골라서 뽑았다는 뜻이고 유기는 하나님 뜻에 따라 어떤 사람은 선택하지 않고 버려두셨다는 뜻입니다. 선택이 있으면 당연히 유기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의 교리는 반대나 오해에 봉착하기 쉬운 난해한 진리이기 때문에 많은 목회자들이 적당히 타협적인 설교를 하거나 아예 언급 자체를 안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라는 교리는 그만큼 다루기가 어려운 진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대해 언급을 안 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설교를 하느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는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의지로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입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 뜻에 따라 결정됩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칭의(稱義)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는 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칭의의 수단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서 의인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에게 믿음으로 받는 칭의와 구원의 진리를 역설하다 선택과 유기의 교리를 말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의 교리보다 구원에 확신을 주는 교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가 무엇인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스마엘’이고 다른 하나는 ‘이삭’입니다. 이스마엘은 ‘하갈’이라는 여종이 낳은 아들이고 이삭은 아브라함의 본부인인 ‘사라’가 낳은 아들입니다. 이스마엘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브라함이 여종을 통해서 얻은 아들이고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대를 이을 상속자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아들입니다. 태어난 순서로 따지면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후계자와 상속자가 돼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아브라함의 후계자와 상속자로 선택하셨습니다. 이삭은 본부인의 아들이고 이스마엘은 여종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삭을 선택하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런 생각을 불식시키기 위해 ‘에서’와 ‘야곱’의 선택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릅니다. 그러나 에서와 야곱은 아버지도 같고 어머니도 같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로 에서가 형이고 야곱이 동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삭의 후계자는 그 당시의 관습과 전통에 따라 장남인 에서가 돼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동생인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야곱의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나님의 선택에서 관습이나 전통이나 인간의 행위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의 선택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 외에 다른 이유나 원인은 찾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에서 인간적인 요소나 세속적인 조건은 철저하게 배제됩니다.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선택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됩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에서와 야곱의 선택에서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이란 쌍둥이 형제를 임신하고 있을 때 이들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심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걱정이 돼서 하나님께 어찌된 일인지 여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25:23).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야곱을 선택하시고 선과 악을 알거나 선과 악을 행하기도 전에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 뜻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선택과 유기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진리이며 만고불변의 진리인 성경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우리들의 가치관이나 인간의 정서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지혜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결정은 선하고 의롭고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역대 신학자들 중에서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의 교리를 칼빈 선생님보다 명쾌하게 정의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의 문제를 논하려면 칼빈 선생님의 말씀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칼빈 선생님은 그의 주석에서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세 가지의 보다 심도(深度) 있는 해석을 내놓으셨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받아 다른 민족들과 구별된 것처럼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 중에도 구원을 얻을 자와 정죄를 받을 자로 예정하여 구별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도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로 나누어졌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선택의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긍휼뿐이며 인간의 행위와는 무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율법이나 인간의 공로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동등한 은혜를 베푸셔야 할 하등의 의무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자들을 선택하시고 당신이 원하시지 않는 자들은 버려두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를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이 아담의 범죄로 아담 안에서 영적으로 다 죽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간은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하고 인간을 의인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2:1,에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었고 영적으로 이미 죽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중 얼마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구원해주시지 않고 일부만 구원하셨다고 하나님께 잘못이 있을까요? 다 죽도록 내버려두면 공평하고 그중 얼마나 구원하면 불의하고 불공평합니까?
어떤 돈 많은 독지가가 고아원에서 한 아이를 양자로 데려왔습니다. 고아원의 많은 고아 중에서 누구를 양자로 선택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독지가의 권한이며 독지가의 뜻에 따라 결정됩니다. 독지가가 자기의 뜻에 따라 고아를 입양한 것이지 독지가에게 고아를 입양하고 돌봐야 할 책임이나 의무가 있어서 입양을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왜 고아를 다 입양하지 않고 한 사람만 입양했느냐?”고 독지가를 비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물에 빠져서 죽어 가는 사람이 구원받았으면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고마워하고 감사해야지 “왜 다른 사람은 구원하지 않고 나만 구원했느냐?”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백성으로 선택받은 그리스도인이 “왜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유기했느냐?”고 하나님을 비난하고 원망하면 얼마나 이상한 사람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결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단하고 비판할 자격이나 권리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의 교리가 인간의 이성과 정서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선택과 유기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구원의 진리이며 만고불변의 진리인 성경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어느 시대나 모든 사람을 다 선택하는 전체적인 선택은 없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고 동시에 선택에서 제외된 하나님의 유기가 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역사는 선택과 유기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후손으로 ‘셋’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담의 장자는 ‘카인’이지만 카인이 의로운 그의 동생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죽은 아벨 대신 태어난 ‘셋’을 아담의 후계자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또 범죄하고 타락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 노아의 홍수 때는 ‘노아’와 그 가족만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자손 중에서는 ‘셈’을 선택하셨고 셈의 후손 중에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는 ‘이삭’이 선택을 받았고 이삭의 자손 중에서는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다 선택하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하나님의 유기가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의 동족인 유대인의 구원을 확신하는 근거가 하나님의 선택에 있습니다. 유대인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유대인의 구원을 부정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의 역사를 보라는 것입니다. “인류 전체가 선택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가 있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반대했지만 유대인의 전부가 메시아를 반대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주장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반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유대인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민족은 없습니다. 기독교는 유대인의 경전인 구약과 유대교의 사상과 철학 위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대인과 유대교는 기독교의 요람과 사상적 배경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유대인이었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이방세계에 최초로 기독교회를 세운 바울 사도도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의 공로가 얼마나 큽니까? 이렇게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일한 유대인에게 왜 구원이 없겠습니까?
칼빈 선생님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이중 선택’(二重選擇)이란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 선택하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속한 사람들은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는 “이 사람은 하나님 소유와 하나님 백성이라”는 뜻으로 신체의 특정 부위에 표시를 하고 하나님 백성으로 인(印)침을 받는 종교의식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을 때 아브라함과 그의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과 그리고 아브라함의 집에 있는 종들까지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계자는 이삭 한 사람뿐입니다. 칼빈 선생님은 아브라함에게 속한 사람들이 할례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일차(一次) 선택’으로 그 사람들은 일차 선택으로 끝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이삭은 ‘이차(二次) 선택’으로 한 번 더 선택을 받았습니다. 칼빈 선생님은 이 이차 선택을 완전한 구원의 선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칼빈의 이중선택을 확신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칼빈이 선택과 유기의 교리의 권위자이기 때문에 칼빈의 주장을 소개해드렸을 뿐입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이중선택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백성으로 선택하사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 은혜에 평생 감사하고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예레미야 1:5). 예레미야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선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또 창세기 25장에 보면 야곱도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다가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고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태에 있을 때부터 선택하셨고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하나님 백성으로 예정하셨습니다. 사람이 누구의 아들과 딸로 태어나면 영원히 그 사람의 자식이 됩니다. 자식이 못나고 공부를 못한다고 버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녀는 절대로 버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 백성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느 시대나 모든 사람이 다 선택받은 전체적인 선택은 없었습니다. 한쪽에는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선택을 받지 못한 하나님의 유기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많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백성으로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부족한 우리를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백성으로 선택하여주신 하나님 은혜에 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충성하시고 헌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