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교보문고 북뉴스)
서울에서 가장 서울 같지 않은 곳을 찾고 싶을 땐 경복궁 근처로 간다. 돌멩이처럼 딱딱해진 도시인의 마음을 거짓말 같은 여유로 녹여주는 공간. 경복궁 서쪽마을은 그렇다. 병풍처럼 인왕산이 둘러싼 이 곳은 키 큰 건물 하나 없이 아담한 집들과 갤러리, 음식점, 카페, 공방 등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하늘과 산과 거리와 사람과 가게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그래서인지 한없이 마음이 편해진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먼 옛날 겸제 정선, 윤동주, 이상 같은 뛰어난 작가들이 머물렀던 곳, 여전히 한옥과 좁은 골목길, 재래시장 등이 없어지지 않고 서민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경복궁 서쪽마을 혹은 서촌, 효자동, 세종마을이라고 불리는 이 곳에서 ‘통의동에서 통인동으로’ 프로젝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23일(금)부터 시작해 오는 1월 22일(일)까지다. 집과 골목과 시장이 예술작품을 보여주는 컨버스가 됐다. 일상과 예술이 아무렇지도 않게 엉겨 붙었다. 당연히 관람은 무료.
'통의동에서 통인동으로'는 대림산업이 후원하고 이 지역에 터를 잡은 대림미술관, 종로구의 재래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인 ‘통인시장의 발견’ 진행팀, 그리고 건축/ 도시설계 프로젝트 그룹 Streetology이 모여 기획한 대규모 공동체 예술 프로젝트다. 더불어 지역주민, 통인시장 상인, 그리고 이 동네 학생 1000여 명도 참여했다. 그야말로 동네 사람들이 6개월간 함께 ‘동네의 재발견’을 도모한 것이다.
통인시장의 재발견 ‘오! 통통한 시절’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와서 10분 정도 걸으면 종로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통인시장이 보인다. 통인시장은 이번 프로젝트의 메인 무대다. 지난해 8월부터 4개월간 지역주민들과 통인시장 상인들의 일상을 찍은 사진이 시장 곳곳에 전시됐다. 총 7,000여 장에 달하는 멋진 작품들을 카메라에 담은 이들은 지역주민들과 덕원여고, 배화여고, 서울예고, 상명대학교 사범대학부속여고, 석수초등학교 등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덕분에 허름하고 소탈한 인상의 통인시장이 참 예뻐졌다. 가게의 특성에 맞는 앙증맞은 인테리어들이 절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발소 앞에선 나무로 만든 커다란 가위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유명한 ‘기름 떡복이집’ 간판 위엔 보라색 고양이가 자리잡았다.
시장 한켠, 빈티지한 벽면엔 통인시장 상인들의 실제 소싯적 사진들을 모은 ‘오! 통통한 시절’ 전이 한창이다. 70대인 하나마트 정의선 사장은 삼륜차 지붕에 기댄 채 한껏 젊음을 발산했던 사진을 내놨다. 개성상회 홍순호 사장은 마치 서커스를 하듯 한 손으로 자전거를 번쩍 들어올린 사진을 골랐다. '아, 할아버지. 예전엔 여자들 꽤나 울리셨겠네요', 싱그러운 추억이 담긴 상인들의 사진들 앞에서 빙그레 웃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통인시장을 지키는 이들의 과거와 현재가 그렇게 만난다.
조금 더 걸어가면 이번 프로젝트 기간 동안에만 문을 여는 ‘명농산 시장속, 대림미술관’이 보인다. 행사 참여 학생들이 찍은 사진들과 그 과정을 찍은 영상도 볼 수 있다. 귀여운 여고생들의 풋풋한 시선이, 마음이 전해진다. 우리동네지만 몰랐던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즐거운 놀이를 하고, 전시회까지 연 아이들의 경험이 부럽다. 예술이란 게 그리 멀리 있는 것도, 낯선 것도 아니란 걸 배우고. 1층 전시장 벽에 걸린 동네 사진들 중 1장은 관람객이 무료로 가져갈 수도 있다.
그저 늘 거기에 있던 동네 시장이 거리미술관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무채색이던 동네가 자신만의 색감을 지니고 말을 걸어올 때, 새로운 이야기는 어떻게든 쓰여질 터다. 아름다움이 돈을 주지는 않겠지만, 경험은 돈으로도 살 수 없으니. 경복궁 서쪽마을에 대한 소박한 탐사와 기록이 지금 이렇게 전시되고 있다.
통인시장 길 건너에 위치한 통의동의 대림미술관. 현재 샤넬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l 글, 사진_ 유지영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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