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외 1편
임지은
양파를 썰다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일회용 밴드를 찾으려고 서랍 안에 서랍을 열었다
열 것이 없어지면
창문을 열고 바람을 열고 저녁을 열고
망치가 오래된 욕실을 뜯어낸다
수도꼭지에선 조금씩 생활이 새고 있다
발밑으로 다리 많은 벌레가 지나간다
이런 날엔 나를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주말엔 가구 배치라도 다시 해야겠어
남편이 반쯤 열린 저녁을 닫는다
포크는 이제 우리의 관계를 뜯어내고 있다
딱딱하게 굳은 식빵처럼
어떤 미래도 건드리지 않고
정작 옮겨야 할 것은 식탁이 아닐지도 몰라요
혼잣말은 거의 들릴 듯하지만
남편은 유리잔에 침묵을 담는다
나는 컵을 깨뜨리고 시계 밖으로 흘러나온다
남편이 내 등에 달린 태엽을 감고 있다
이제 나는 열한 시지만 아홉 시를 가리키게 된다
지금이 몇 시인지 알지 못한 채 재깍재깍 흐르게 된다
이걸 어디다 둬야 될지 모르겠어
남편이 중얼거린다
나는 커다란 화분 옆에 놓인다
아무도 앉지 않는 의자 위에 올려진다
때때로 서랍 안으로 던져진다
남편이 문을 쾅 닫는 소리로부터 시작되는 아침
달라질 게 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벽에 걸린 나는
지금이 몇 시 인지 궁금하지 않다
정지된 산책
땀에 젖은 문장으로 내달릴 것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를 넘긴다는 기분으로
순간을 찢을 것
벤치에 앉아 주인을 기다리는
개처럼 골몰하다
잠시 모자 속에서 꺼낸 날씨를 산책한다
이리로 가지마시오
구름으로 가시오
같은 기분 위에 서 있는 오후
사과나무의 기분은 좀 멀고
방향 표지판의 기분과는 가까운
생각을 얼마나 멀리 던지느냐가 이 산책의 관건이다
목줄 보다 긴 그림자를 가지게 되는 것은
이 산책의 부록이다
날아가기 직전의 모자처럼
바람에 기대어 앉아
밑줄이 가득한 햇빛을 넘긴다
그러니
두 다리를 잃어버릴 것
처음 듣는 음악으로 조깅할 것
지루한 생각을 열고 뛰어 나가는 개처럼
첫 문장이 시작된다
임지은
약력 : 2015년 문학과 사회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