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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15
일천번제의 힘 / 류영모 목사
솔로몬은 성군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세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막 스물을 지나는 나이였습니다. 어린나이에 왕이 되어 막중대사를 감당한다는 것이 쉬워 보일 수야 없었겠지요.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왕상3:7-8)
자신의 절대 부족을 자각한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일천번제를 드리기로 결단합니다.
I. 일천번제를 드림
당시는 솔로몬 성전이 건축되기 전이므로 제사를 드리고자 할 때 산당에 올라가 제사를 하곤 했습니다. 솔로몬도 당시 가장 큰 산당으로 알려진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일천번제를 드립니다.
일천번제를 어떻게 드렸는가에 대한 성경상 자세한 설명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당시 최고의 양과 소 수컷을 구하여 한 마리 잡아 번제를 드리고 한번의 번제가 끝나면 다시 소를 잡고 그래서 연속하며 밤낮 제사를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제사를 드렸다 할찌라도 일주일은 족히 걸렸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히브리 전통에 따라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500날을 연속해서 제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매일밤 소를 잡아 일천날을 제사했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한번에 1천마리 소를 잡든,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렸든, 1천날을 제사했던 그 방법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적으로는 세가지 설명이 모두 근거가 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솔로몬은 왕이 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이 하나님께 최고의 예물로, 최선의 예배를 드리며, 최고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렇게 일천번제를 마치는 날 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솔로몬아,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때 솔로몬은 자신의 제사가 먼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는 감사의 제사였음을 고백합니다. 본문 6절 말씀에 의하면 솔로몬은 하나님께 세 가지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과거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친 다윗 왕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둘째, 지금 부족한 자신을 왕의 자리에 앉혀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셋째, 미래에 자신을 이어 왕의 자리에 앉혀 주실 아들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나아가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네게 무엇을 줄꼬?" 라고 말씀하실 때, 이 일천번제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제사였음을 고백한 다음 자신의 한없는 부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일상 출입하는 길도 잘 모르는 철부지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깨닫는 자리였습니다. 임금의 일을 감당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고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인생을 살아본 다음 뒤늦게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나는 부족합니다" 해보는 소리가 아닙니다. 지금 솔로몬은 스물 한 살 어린 나이에 이미 자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귀함이 있습니다.
대게는 이 나이에 임금의 자리에 오르고 나면 뵈는게 없지요. 내가 가장 많이 알고, 내가 가장 의롭고,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나이지요. 쉽게 기성세대를 비판하며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시건방을 떨만한 나이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을 보십시요. "종은 작은 아이라" 얼마나 귀한 겸손입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자세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지혜입니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는 내게 구하라" 말씀하실 때 이 일천번제는 자신의 할 일, 사명,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직무가 얼마나 소중하고 무거운 것인가를 깨닫고 드린 제사임을 고백합니다. "내 사명이 너무 중요해서 하나님께 메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할 일이 무거운 것만큼 무거운 예물을 준비하여 무거운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본문 8절 9절입니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묻습니다.
당신이 받은 그 사명과 직분이 너무 귀해서 울어보셨습니까? 셀리더의 사명이, 교사의 사명이, 찬양사역자의 사명이, 권사 집사 장로, 목사의 사명이 너무 귀해서 울어보셨습니까? 그 사명 바로 감당할 지혜가 필요해서 일천날을 기도하며 사명만큼이나 무거운 예물로 예배해 보셨습니까?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바로 이런 제사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소중히 여기는 자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겨 주십니다.
II. 무엇을 줄꼬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일천번제를 마친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솔로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커다란 영광이요 놀라운 은혜입니까? 솔로몬이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네가 만복의 근원이 나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았으니 너는 복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복의 출처가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힘과 권력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일찍이 솔로몬의 부왕 다윗이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대상29:11).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2)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고 마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나의 나된 명예와 부와 귀와 수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왕관이 있고 나라와 백성의 장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생명이나 물질이나 어떤 명예나 다른 아무것도 인생은 가질 수가 없습니다. 결코 인생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 되거나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장하지 않는 솔로몬의 왕권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5절).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나 바라왔던 순간입니까? 그의 앞날은 이제 무엇을 구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 순간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바른 선택을 합니다. 그 소중한 순간에 하나님 앞에 바른 소원을 구하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그는 '이것을 주십시오' '저것을 주십시오' 하고 이것저것 잡다하게 구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요. 나의 명예, 나의 욕망에 매여있는 사람은 우둔해집니다. 내 안에 물질에 대한 욕심이 들어오면 만사에 바른 선택이 어렵습니다. 내 명예에 연연하면 모르는 사이에 나는 바보가 되고 맙니다. 솔로몬은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그 맡겨진 사명을 위하여 내가 존재한다는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 생명이 귀하고 내 왕위가 소중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때만이 존재가치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기중심으로 소원을 구하지 않습니다. 자기중심의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저에게 맡겨진 귀한 사명을 위하여, 저의 백성을 위하여 지혜로운 마음을 소원합니다. 이어서 선악을 분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잘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오래 살게 해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전쟁없는 평화를 누리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군사력이나 지식이나 번영을 구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이여,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옵소서'라고 구합니다. 지혜라는 것은 환경을 바꾸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 환경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가지지 못한 것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9절)라고 기도합니다.
솔로몬은 멋진 기도를 알았던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던 위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위대한 기도를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세기 가장 위대했던 선교사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서 큰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위대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의 능력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고 성난 사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난세를 평정하고 전쟁을 종식시키고 폭풍우를 잠재우고 마귀를 추방시키고 사망의 결박을 풀고 질병을 치유하고 태양을 머물게 하고 우뢰의 진행을 막으며 죽은 영혼을 소생케 하며 지구를 복음으로 점령한다" 얼마나 위대한 기도입니까? 기도가 위대한 사람이 위인입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 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일을 이루시고, 기도 안하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비밀과 신비를 가르쳐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정성이 하나님께 올라 닿도록 기도해 보십시오. 응답해 주십니다. 사람에게 부탁하는 만큼도 정성없이 기도하니까 아직 응답을 못받습니다.
무당이 그 신을 신뢰하는 것만큼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깡패들이 의리를 지키는 것 만큼도 하나님 앞에 헌신이 없으니 하나님의 큰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III. 감동의 제사
그러나 보십시요.
"다윗은 솔로몬을 낳고" 참으로 위대한 아버지 몸에서 위대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런 가문입니까? 성경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태어날 때 선지자 나단이 나타나 솔로몬을 일컬어 "여디디야"라 부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란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지혜의 마음을 구하자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자라"고 했습니다. 과연 감동의 물결입니다.
사무엘하 7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다윗 왕이 선지자 나단을 불러 이릅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2절)"
나는 이렇게 좋은 궁전에서 사는데 여호와의 법궤는 천막 속에 있구나 탄식합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을 마음이 있도다. 이 계획을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께 아룁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사무엘하 7장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실 수가 없습니다. 누가 너더러 성전을 지으라고 했느냐, 내가 언제 불편하다고 했느냐, 어찌 그리도 기특한 생각을 했느냐며 기뻐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견고케 하리라(13절)"
오늘 솔로몬을 보십시요. 솔로몬은 지혜로운 마음 한가지만을 구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구하는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11절)"
기특하게도 어떻게 그것을 달라고 했느냐, 내 마음에 꼭 든다 라고 하시며 크게 기뻐하십니다. 그리하여 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까지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통쾌한 일입니까? 왜 우리에게는 이렇게 시원한 마음이 없습니까?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듯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칠 때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시시하게 믿으려는 사람에게는 시시한 주님이 나타나고, 값비싸게 믿으려는 사람에게는 값비싼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감동적인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교회 안에도 감동적인 사건,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넘처나길 기대하십니다.
성 프랜시스가 살았던 땅은 좁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프랜시스가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하늘과 땅이 진동했습니다.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에 건너갔을 때 가봉의 랑바레네라는 작은 지역이 전 우주를 진동시켰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소록도의 애양원에서 나병환자들을 돌볼 때에 천지가 진동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의 감옥에서 순교 당하심으로써 영원히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킨 솔로몬! 하나님께 자신의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 지혜를 구한 솔로몬!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부와 영광 - 그 보너스가 얼마나 크고 놀라웠던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부자는 중국의 진시왕도 미국의 록펠러나 빌게이츠도 아닌 바로 솔로몬이었다고 합니다.
지혜와 함께 보너스를 얻은 솔로몬이 본문 이후에 어떤 업적을 남겼습니까? 곧이어 그는 7년에 걸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권위있는 통계에 의하면 건축비만도 50억달러, 우리돈으로 6000억원에 달하는 거대한 공사였다고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백성을 잘 송사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의 지혜서 세 권을 기록합니다. 인생이 무엇인가를 노래한 전도서, 지혜로운 삶이 무엇인가 교훈한 잠언서, 성도가 예수님을 얼마나 아름답게 사랑하며 예수님이 그의 신부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노래한 아가서를 기록합니다. 그외에도 많은 시편을 기록했으며 솔로몬은 식물학과 동물학에까지 능통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축복이 일천번제의 축복이었다고 하면 정성스런 일천번제의 능력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 아니겠습니까? 일천번이란 숫자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아름다운 마음, 힘에 지나는 하나님을 향한 예물, 바른 기도의 목적과 내용 -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능력이었습니다.
일전에 말씀, 간증 잔치 강사로 왔던 박순애 전도사의 간증에 등장하는 한 장로님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박순애 청년은 분열된 교회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교회 건축비용을 최고 많이 드리겠다고 작정하고 기도합니다. 새벽마다 돈 한푼없는 그가 드리는 기도는 "최고로 많이" 삼창이었습니다. 헌금을 드리기로 약속한 시간을 이틀 남겨두고 아직 손에는 한푼의 돈이 없었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오다 먼동트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한없이 통곡합니다. 예배당 문밖에서 두 손을 하늘 향해 뻗고 "주여, 내 기도를 들어 주소서!" 몸부림치며 미친 사람처럼 부르짖습니다.
바로 그 순간 성령님은 조간신문을 펼쳐서 읽던 한 장로님에게 역사를 하십니다. 박순애에겐 통곡과 부르짖음으로, 장로님에겐 신문의 기사를 읽게 하심으로 역사하셨던 바로 그날 장로님이 전화를 걸어옵니다. 이미 오래전 박순애가 청송교도소 보호감호소 수많은 재소자들에게 추운 겨울 내복과 양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글을 써 신문사로 보냈습니다. 그 글이 오랫동안 실리지 않고 있다가 박순애가 울부짖던 그날, 장로님이 조간신문을 펼쳤던 그날 기사화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장로님은 박순애를 만나 필요한 물품을 뭐든지 얼마든지 말하라고 합니다. 그때 박순애는 울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재소자들은 감방이라도 있지만 우리교회는 이제 하나님이 거할 방이 없어요." 바로 그때 장로님의 머리와 가슴을 강타하는 하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아! 이 돈은 이미 가난한 개척교회를 위한 돈이었구나! 하나님께 개척교회에 보내겠다고 서원한 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박순애에게 너무 너무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자칫 교도소 사람들 불쌍하다고 동정하다가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어길뻔 했던 게지요. 장로님이 "딸아 귀한 믿음 가졌구나." 그리고 당신이 살아오신 인생의 걸음 걸음을 얘기하는 겁니다.
장로님은 맨주먹으로 어린 나이에 서울에 올라와 공장에 취직을 합니다. 15년만에 70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그 공장의 사장이 됩니다. 그때까지는 피눈물나는 새벽기도, 눈물겨운 헌신, 힘이 지나는 봉헌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그가 회사, 공장이 번성하면서 점차 하나님과 교회를 멀리하게 됩니다. 10년이 지난 어느날 직원은 300명이 넘는 큰 회사로 성장되었습니다. 교회서는 장로란 이름까지 달았습니다. 그때쯤 그는 봉사 멀리한적 오래요, 너무 바빠 기도 잊은지 오래요, 봉헌은 형식적인 껍데기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성공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어느날 15억을 막지 못해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맙니다. 회사, 부동산, 살던 집까지 추풍낙엽으로 날아갔습니다.
교회 목사님은 이무렵 예배당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장로님을 건축위원장으로 생각합니다. 장로님은 늘 입만 열면 건축 시작하면 본인이 절반은 감당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날 새벽 장로님은 너무나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있던 새벽기도회에 나와 "하나님 살려주세요. 나 부도났어요. 어떡해요." 울며 기도합니다. 목사님의 가슴이 철썩 내려앉았습니다. "하나님 성전 건축 어떻게 해요. 우리 교회 별이 떨어졌네요. 건축 헌금 절반이 날아갔네요." 장로님 부도소식이 온 매스컴에 다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부도난 그 장로님은 한 번 하나님이 응답주신 것이니 하나님을 믿습니다하고 건축위원장에 임명합니다. 장로님이 임명을 받고 말합니다. "목사님, 사실은 너무 창피해서 장로직 내려놓고 이 교회 떠나 멀리 가서 살려고 했는데요." 이때 목사님의 한마디 대답 "오직 하나님만 아시니 기도하고 순종하시오." "하나님 어떡할까요. 빚더미에 앉은 날보고 건축위원장 하라니?" 장로님이 기도하다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마지막 방법이 남아 있더랍니다. 모든 재산 다 날아갔는데 처조카 이름으로 등기된 집 한채가 있더랍니다. 그래서 자기 가족은 살집이 없는데 그 집을 팔아 제단에 올려드리고 자신은 오직 눈물과 기도로 건축위원장직을 감당하리라 결단하고 바로 그 시간 일천번제 작정합니다.
첫째, 다 망한 집 좁은 셋방에서 가정 예배 일천번제를 드리겠습니다.
두번째, 새벽예배 일천번제를 드리겠습니다.
세번째, 주머니에 돈 한푼 없지만 모든 기도회에 1만원 예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봉헌 봉투를 매일 드리는데 언젠가부터 1만원이 없어 빈봉투 들고 그날은 좀더 일찍 나가 울기 시작합니다. 울다보면 울음소리가 커집니다. "하나님, 1만원이 없어 빈봉투 들고 왔어요. 엉 엉!" 옆에 앉은 교인이 그 기도소리 듣고 너무 불쌍해서 조용히 1만원을 무릎위에 얹어 놓고 갑니다. 그런 일이 잦아지자 교인들이 하는 말 "일천번제는 지가 작정하고 돈은 우리가 내네."
일천번제가 1년쯤 계속되는데 성전 건축은 아름답게 올라가고 장로님은 할일도 없어졌으니 밤낮 가리지 않고 성전에 엎드려, 건축현장이 보이는 언덕위에서 매일같이 기도만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종아, 네가 부자로 살았더라면 너는 신실한 종이니 헌금은 했을 게다. 그러나 내 제단에 눈물은 드리지 않았을 게야.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너 자신이요 너의 눈물이었다."
하나님이 감동을 주십니다. "종아 때가 되었으니 백지 한장 들고 빚쟁이들을 찾아가라." 빚쟁이들을 찾아가 합의서를 써 달라고 무릎 꿇어 빕니다. 나를 감옥에 보내고 빚 떼이면 좋겠습니까? 3년짜리 큰 적금을 들고 있는데 3년후에 갚을테니 용서해 달라고 빕니다. 여기 3년짜리 적금은 하늘에 붓는 일천번제를 의미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사람 저사람 모두 만나 합의서를 받아 경찰서에 제출하고 다시 공장을 가동시킵니다. 흩어졌던 직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습니다. 일천번제가 마쳐질 무렵, 빚도 갚고 성전건축도 완공이 되었습니다. 회사는 날로 더욱 번창해 갑니다. 그무렵 장로님의 돈과 물건을 떼먹고 도망갔던 사람이 찾아와 돈을 곱배기로 내어놓습니다. "사장님 용서해 주시고 이 돈 받아 주세요. 그래야 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래서 그 돈을 받아 정액만큼 회사에 넣고 배로 가져왔길래 절반은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는구나 싶어 개척교회 섬기겠다고 떼어놓은 것입니다. 바로 그 돈이 박순애 청년의 교회로 전달이 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일천번제의 파우워를 깨닫고 박순애 전도사는 집회를 인도하는 곳마다 일천번제를 작정시킵니다. 순종하는 교회, 순종하는 사람들은 모두 합당한 복을 받았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우리교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일천번제를 작정했고 많은 분들이 이미 일천번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일천번제가 진행되는 앞으로 3년어간 동안 저희교회는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기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교회의 비전이 구체화되고 비전의 사닥다리가 완성되고 힘있게 운동화되고 작동되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둘째는 비전센타 건축이 완공되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박순애 전도사야 가는 곳마다 동일한 메시지로 동일한 결단을 요구한 적이겠지만 저는 앞으로 3년이 이 교회의 역사를 좌우할 만큼 너무나 귀한 기간이라 하나님이 우리의 헌신과 기도를 요구하신 명령으로 받았습니다.
IV. 일천번제의 자세
우리가 오늘 일천번제를 드리고자 할때 어떤 마음, 어떤 자세를 가지고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첫째 자신에게 주신 인생의 목적과 비전 그리고 사명을 바로 감당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시작해야 합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은 너무나 큰데 자신은 너무나 부족하다는 자각에서 시작된 제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세상도 나라도 하나님의 것이요, 모든 권세와 힘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나는 그분께 매달리겠다는 각오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는 분이고 이 나라를 무너뜨리기도 하시는 분이시구나. 하나님은 생명을 생명을 주신 분이시며, 거두시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내가 가진 모든 자원들을 주시기도 하시는 분이시며 거두시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나는 그분앞에 매달려 그분의 힘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이것이 일천번제의 결단입니다.
내 자원으로 살아가지 않겠습니다. 내 능력으로 살아가지 않겠습니다. 내 경험으로 살아가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죽이시면 죽고 살리시면 살겠습니다. 당신이 흥하라 하시면 흥하고 망하라 하시면 망하겠습니다. 당신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당신이 주시는 힘으로 살겠습니다는 결단입니다.
둘째 일천번제가 계속되는 동안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장로님이 일천 가정예배, 일천 새벽시도회를 작정했듯이 말입니다.
물질 때문에 늘 시험을 당하신 분이 계십니까? 물질만 보면 유혹이 있으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이번 기회에 여러분에게 물권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영권이 필요하신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몸과 기도를 드리십시오. 세상을 정복하는 세상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돕는 손길들 인권을 허락하여 주셔서 천사들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혹 "나는 이 기간동안 성경을 10독 하겠다. 성경을 한번 쓰겠다. 100명을 전도하겠다. 12제자를 만들겠다." 구체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셋째 10가지 기도제목을 너무 쉽게 정하지 말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잘 정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1천번 공예배나 기도회에 참석할 때마다 일정한 예물을 정성껏 드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1천마리의 숫소를 드렸습니다. 그 예물은 약간 부담이 될만큼 힘에 넘치도록 드리는 것이 일천번제의 정신입니다. 매번 1만원을 드리기로 결단하신 분들은 일천번제가 마쳐지고 본인이 원하시면 천수림 번호를 부여해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교회에 일천번제의 메시지가 선포된데는 크고도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상상도 못할 축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찌어다!
사랑하는 한소망 가족 여러분!
성령님이 감동을 주시는 분들은 결단해 보십시요. 그러나 성령이 감동 주시지 않는 분들은 때를 기다리십시요. 내 의지로 결단하려 하지 마십시오. 인생이 지은 마음은 절대로 3년을 가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면 3년은 30년을 흘러가며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는 역사의 위대한 세계적인 인물들이 여러분의 가정에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적인 인물이 아니라 세계적인 인물 말입니다.
그 어느때보다 이 나라와 우리교회는 여러분의 기도와 눈물이 쌓여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천번제의 방법과 수준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정하는 것입니다. 자기 믿음의 수준에서 결정할 일입니다. 뿌린만큼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책임있는 중직자들 사역자들은 의무감에서라도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어린 신앙인들은 성령의 감동에 따라서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소망 모든 가족들이 앞으로 3년동안에 일천번제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났습니다. 순종하면 교회의 비전 중심에 내가 서게 될 것입니다. 꿈도 꿀 수 없었던 믿음이 자라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이 자기 가정의 복이 될 것입니다. 자손 만대의 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의 영광을 21세기 이 땅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교회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자손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솔로몬이 복 받았던 비결! 일천번제 파우워를 믿어 보십시다. 일천번제는 주님의 명령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자원하여 기쁨으로 결단한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힘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에게 명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만 순종하십시오. 순종! 하기로 결단했다는 것은 하나님 이미 여러분을 위하여 준비된 복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