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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공무원 내 친구
김 선 구
어느 겨울 날 나는 친구 K와 함께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와 오래 만에 해후였고 그의 집에서 하룻밤 유숙하기로 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연탄불로 난방 하던 때여서 갑자기 방문한 나를 재울 방이 마땅치 않아서 전기장판을 사러 나갔다. 포장마차에서 한잔만 하고 가자하고 눌러앉은 것이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애지중지하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친아들이 아니었다. 그의 동생이 낳은 애를 그의 호적에 올려 친아들처럼 키워왔다. 그 아들에게 언젠가는 출생의 비밀을 얘기 해 주어야 하지 안겠나하는 고민을 내게 털어 놓았다. 그 바람에 본의 아니게 술을 많이 마시게 되고 늦게야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니 그의 부인으로부터 크게 핀잔을 들었다. 금방 갔다 올 테니 저녁 준비하라고 해놓고 함흥차사 됐으니 얼마나 속이 탔었겠는가! 그날은 완전히 죄인의 신세가 되어 고개 들기가 민망하였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모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유산도 많았고 집안환경도 좋은 형편이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혼기에 이르자 마담뚜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그의 얘기를 빌리면 삼백 번도 넘게 맞선을 보았다. 그러나 혼처를 정하지 못하여 전전 긍긍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부인을 만났다. 미스 선발대회 출전경험이 있는 아가씨로 키가 크고 몸매도 늘씬하였다. 단란한 신혼 생활이 시작 되었다. 그런데 부부사이에 아이가 없어서 전전긍긍하였다.
하늘의 도움인지 때마침 그의 막내 동생이 속도를 위반하여 사내애를 생산했다. 대학생이었던 동생이 학내 동급생인 여자 친구와 사귀다가 덜컥 임신하였다. 둘이 모두 의대생이었다. 한창 공부해야할 처지라서 애를 키우면서 학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결혼을 시키고 애를 낳자마자 형의 아들로 입적하였다. 그들의 부모님이 상의하여 내린 조치였다. 아들을 얻은 내 친구의 부부는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였다.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
친구 K와 나는 공무원 임용시험동기로 비슷한 시기에 연구직공무원으로 임용되었다. 내가 제주에서 농업시험장에 근무할 때 그도 내 부서로 배속되어 왔다. 당시는 둘 다 총각신세여서 같은 합숙소에서 침식하고 출퇴근도 같이하였다. 의기가 투합하여 재미있게 지냈다. 얼마 후 그는 수원 소재 축산시험장으로 전근해 갔고, 나는 강원도 대관령을 거쳐 삼년 후에 수원에서 다시 만났다. 이때 우리는 모두 가정을 이루고 있었고 가족 간에 교류도 활발하였다.
우리는 축산물이용과라는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였다. 그는 우유의 가공과 이용법을 연구하였다. 상부에서 크게 관심을 둘 연구과제가 아니어서 그의 직장생활은 여유가 있었다. 나의 연구테마는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품질평가와 도체등급설정 연구였다.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이 향상되고 국민들의 식생활이 개선되면서 쇠고기와 돼지고기에 대한 등급제 실시가 정부에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나는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급설정에 관한 연구를 위하여 전국의 도축장을 순회하며 도체(屠體: 동물의 사체에서 내장, 껍질, 사지, 머리를 제외한 부분)의 분할방법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한편 쇠고기 돼지고기의 부위별 영양성분의 차이를 조사하였다.
이때 나의 신분은 연구하는 과학자이기 보다는 소와 돼지를 잡는 백정처럼 보였다. 피범벅이 된 까운을 입고 긴 장화를 신고 도축장을 드나들었다. 외부인에 대한 도축장의 분위기는 싸늘하였고, 도축장 내의 위계질서는 엄격했다. 최고 책임자의 허락을 받고 냉동창고의 천정에 매달린 도체들과 씨름하였다. 도체의 길이와 폭을 측정하고 무게를 달고, 다시 부분육(部分肉)으로 분할한 다음 뼈와 고기와 지방을 분리하여 각각의 생산량을 조사하였다. 이렇게 하여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등급제 실시에 대한 기초 시안을 작성하였다. 그 후 백화점이나 유통업체의 식품부에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부분별로 포장되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이때 고생했던 모습들이 아련히 떠올랐다.
그해 연말이었다. 과 회의에서 간부회의 결과 결정사항이 시달되었다. 그해에 우리기관에서 모범공무원으로 나의 친구 K가 결정되었다고 하였다. 이외의 결과에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뒤에 들은 얘기가 묘했다. 당시 내 친구는 직장상사나 동료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술을 즐기는 성품이라 대인관계가 원활하였다. 그런데 가끔 가정에서 불화가 있으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엄포를 놓곤 하였다. 그 얘기가 직장 상사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러한 그의 심경을 달래 주려고 모범공무원으로 추천 했다한다. 당시는 기관장의 의도가 법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가능한 얘기였다.
우리는 천하의 농땡이가 모범공무원이라니 말이 안 된다고 그를 놀려대었다. 그러나 모범공무원으로서의 진가는 그 다음에 나타났다. 그에게는 부상으로 삼년간 모범공무원 수당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 액수가 꽤 큰돈이었다. 그는 이것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하였다. 내가 모범공무원수당을 받았으면 분명 살림밑천으로 써버렸을 것이다. 그는 모범공무원이 될 만한 기개가 있었다. 나는 성실한 공무원이기는 했지만 모범공무원이 될 자질이 없음을 깨달았다.
얼마 후 나는 대학으로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한동안 그와 멀어져 지내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여 그도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하였다. 나는 그를 만나본지도 오래 되었고 사연도 궁금하여 그의 고향으로 한번 찾아가 보았다. 넓은 아파트에 아들과 단 둘이서 살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부인과는 헤어졌다고 했다. 하룻밤을 지내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의 아들은 성장하여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부인과 살림을 정리하면서 아들에게도 출생의 비밀을 다 얘기해 주었단다. 너무 어이없는 얘기에 처음에는 반시반의 했지만 사실로 받아들였고 이제 평상심으로 돌아와 마음이 후련하다고 했다. 아들의 친부와 친모는 모두 의사들이었고 요행히도 딸만 둘을 낳고 아들이 없었다. 친부모를 찾아가면 더 풍요로울 수도 있는데 자기를 키워준 아버지에게 더 정이 가는 모양이란다. 낳은 정보다는 키운 정이 더 깊은 모양이었다.
연말이 되면 공직사회에서는 우수공무원을 선정하여 포상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나는 근 사십년 공직생활을 했지만 상이라곤 받아본 일이 없다. 일복은 많았지만 상을 받을 복은 없었다. 모범공무원으로 화제가 되었던 친구생각에 얼마 전에 통화를 하고 지난 일들을 얘기하며 함께 웃었다. 아들이 결혼하여 떠난 후 아파트도 정리하고 조그만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아들 내외 그리고 손녀와 틈틈이 화상대화 하는 즐거움으로 살고 있단다. 나는 이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인생살이의 묘한 운명을 생각하게 한다. 누구의 탓인지 모르겠지만 꼬인 인생살이가 안타까웠다. 거리에 나서니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불우한 이웃을 돕자고 하소연한다. 빈방을 홀로 지키고 있을 이 친구도 사람의 정을 그리워 할 불우한 이웃이란 생각에 괜히 마음이 무겁고 걱정스러워진다. (2014. 12. 26)
첫댓글 노후에 외로움은 정말 힘든다고 하네요. 대비에 최선을 기울여야겠지요. 잘읽고 갑니다.
두 분의 깊은 우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서로의 삶의 모습과 속내까지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좋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당시 모범공무원 표창을 못받아 위로를 드립니다.연말년시 불우이웃돕기 참으로 필요합니다. 모두 거주지 경로당에라도 한번 가볼 필요성이 있습니다.요즘 찿아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석염선생님께서도 인품이나 일 처리로 미루어 충분히 모범공무원이 되실수 있다는 생각이듭니다. 그 친구분이 동생의 아들이 아닌 - 혈연적으로 아무런 관계에 있지 않는 아이를 입양했더라면 더 훌륭한 화제거리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친구가 부인과 헤어지셨다니 참 안됐습니다. 앞으로 더 진한 우정을 지속하셨으면 합니다.
모범공무원 자격이 있다하니 표창을 받은 느낌입니다. 이 글을 올린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