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별 모더니즘의 전개 양상
1930년대 모더니즘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국 현대문학사와 시사에서 모더니즘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이 단계 이전의 한국시는 다분히 근대의 테두리에 맴돌고 있었다. 그것이 모더니즘의 진출로 시원스럽게 낡은 허울을 벗고 현대적 차원으로 발전한다. 한국 모더니즘 문학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그 분야의 훌륭한 논문을 다수 발표한 서준섭 교수는 80년대를 기준으로 우리 문학의 모더니즘을 세 시기로 나눈 바 있다. ‘30년대를 전기 모더니즘, ’50년대를 중기 모더니즘, ‘80년대를 후기 모더니즘으로 정의하면서 그 사회적 기반을 일제시대, 미국 원조 경제시대, 한국 자본주의 시대로 요약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 문학의 일종으로 현실의 반영보다는 미적 가공 기술의 세련성, 실험성과 시인의 내면성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모더니즘 이전에 한국문단을 지배한 것은 신경향파와 카프로 이어진 정치 편향, 이데올로기 지상주의 문학이었다. 특히 카프는 정치적 관념에 시와 문학을 종속시킴으로써 예술을 부정하고, 특정 이데올로기의 북과 나팔로 창작을 격하시켰다. 이 극복이 1930년대의 모더니즘에 의해 기능적으로 이루어진다.
가. 1930년대 모더니즘시
크게 두 갈래로 이야기될 수 있는 모더니즘이 우리 문단에 형성된 것은 20년대 중반기부터였다. 그러나 다다이즘을 화제로 삼은 차원에 머무는 데 그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한국시단에서 모더니즘이 전경화된 것은 30년대에 접어들어서의 일이다.김기림이 이미지즘-모더니즘의 기치를 본론화시킨 것은 1933년도부터다. 바로 그 해 그는 <시작에 있어서 주지적 태도>를 썼다. 여기서 그는 <시인은 항상 즉물주의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썼다. 김기림은 정지용을 가리켜 한국시사에 새 지평을 타개한 <선각자인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를 가능케 하는 작품으로 <조선지광>, <시문학>에 게재된 <향수> <호수> 등이다. 이 작품은 주지주의계 모더니즘 시의 본보기가 된다.
넓은 벌 도족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헤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 우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 재가 식어지면/ 븨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 <향수> -
<향수>에서 제재가 되고 있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것을 화자는 진술 형태로 노래했다. 이 시의 첫 연에서 화자가 향수의 정을 <얼룩백이 황소가 헤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 우는 곳>으로 표현한 것이나, 둘째 연에서 <븨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로 대체시킨 부분은 모더니즘적 성취다. 이것은 실체를 갖지 못하는 향수의 정을 선명한 시각적 사실, 또는 색채 감각적 사실로 제시한 것이다. <호수>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1.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감을밖에
2.
오리 모가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 모가지는/ 자꼬 간지러워
- 정지용, <호수> 전문 -
우리 일상 생활에서 호수는 물을 담고 있는 한 공간일 뿐이다. 그것을 정지용은 1에서 화자가 지닌 것으로 생각되는 연모의 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2에서는 객관적 상관물로 오리가 이용되고 그 모가지에 호수를 감기게 하는 기법이 채택되었다.
김기림은 1933년도에 <시작에 있어서 주지적 태도>를 발표한 후 주지적인 기치가 분명해진다. 이는 그의 시가 초기에는 이미지즘-모더니즘의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대합실은 언제나/ 튤립처럼 밝고나
누구나 거기서는 기빨처럼/ 출발의 희망을 가지고 있다.
- 김기림, <대합실> -
인용시는 얼핏 보아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섬명한 시각적 심상으로 제시되어 있다. <튤립>은 이 작품이 씌어질 때만 해도 흔한 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국 정조를 지니면서 붉고, 희다든가, 노랑이의 심상을 지니도록 된 것이다. 이 시는 화자의 고정관념을 깨는 인식의 전환도 돋보인다.
주지주의계 모더니즘이 김기림을 주축으로 집단형태로 전개된데 반해서 대륙형 모더니즘, 곧 다다, 초현실주의 등 모더니즘은 이상 한 사람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상의 모더니즘은 몇 가지 점에서 주지주의계 모더니즘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오감도>가 완성되기까지 그의 시는 적어도 입체파, 미래파, 다다 및 초현실주의의 기법을 두루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기림은 30년대 전반에 그와 정지용이 주도한 모더니즘 시가 하나의 중요한 결함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것이 곧 감각과 細技에 매달린 나머지 인간과 역사가 배제된 점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일제 식민지하의 시대상황은 그 기능적 수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지주의계 모더니즘이 김기림을 주축으로 집단형태로 전개되었다면 대륙형 모더니즘, 곧 다다, 초현실주의 등 모더니즘은 철저하게 한 사람의 영웅에 의해 형성, 전개되었다.이상은 <카톨릭청년>지에 대표작으로 손꼽힐만한 작품들을 발표한다. 그 가운데 <꽃나무>는 다음과 같다.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오.근처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고섰오.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느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나는막달아났소.한꽃나무를위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이상스러운숭내를냈었소.
- 이상, <꽃나무> 전문 -
인용시에 나타나는 이상의 말솜씨는 두 가지 점에서 주지주의 모더니즘시와 다르다. 이미지즘-모더니즘계 시는 우선 심상의 제시에 우선을 둔다. 이 시에서는 심상이 없이 문장 진술형태로 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무의식이나 전의식이 포착되는 점이다. 꽃나무는 식물이어서 다른 꽃나무를 생각할 리가 없다. 그런데 이상은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갈수없소>라고 했다. 이것은 의도적인 무의식적 차원의 수용이다. 이 자체가 이 작품이 비주지주의 시, 곧 대륙식 초현실주의 갈래에 드는 것임을 뜻한다.
이상의 전위시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 시단은 대체로 두 유형 시가 지배적이었다. 서정시파와 카프파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이상의 시는 습작기 때부터 이들과 달랐던 것이다. 습작기 이상의 시에서 주목되어야 할 것이 그 강한 현대열, 또는 전위성의 추구다. 그 이유를 후에 그는 <오감도>의 후기에서 뒤떨어진 우리 시와 문학을 위한 극복 시도였다고 밝혔다.
30년대의 한국 모더니즘 시가 절정을 이룬 것은 그 중반기경까지다. 30년대 후반기에 이르자 이 유파운동에는 뚜렷한 퇴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기림은 30년대 전반에 그와 정지용이 주도한 모더니즘시가 하나의 중요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곧 감각과 세기에 매달린 나머지 인간과 역사가 배제된 점이다. 그리하여 30년대 후반기부터 그는 시에 인간과 그 생활 형태인 정치를 수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30년대의 시대 상황은 모더니즘의 한계와 극복의 그 기능적 수행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30년대의 한국 모더니즘은 프랑스, 독일, 이태리 등의 전위주의 문학운동을 염두에 둔 전위주의의 일종이었다. 그것이 모더니즘의 이름으로 제기되었다는 사실은 한국문학의 낙후성을 말하는 것이다. 잡지 <인물평론>은 모더니즘의 세력 형성에 큰 보탬이 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발표된 정지용의 <향수> <백록담>, 김광균의 <추일서정>, 김기림의 <기상도> 등은 모더니즘의 성숙을 알리는 대표적인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