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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이나 은행업계에서 보이스피싱의 피해사례에 대해 알려주고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엄청나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즘은 각종 언론을 통해 공익광고로 보이스피싱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광고를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정말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지, 기발하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대비하지 않다가 당하면 모두가 피해를 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몇 가지 보이스 피싱피해 사례를 보고 오늘 말씀에 들어갈까 합니다. 타인 인터넷 매신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해킹하여 로그인 한 후 이미 등록되있는 가족이나 친구 등 지인에게 대화또는 쪽지를 통해 금전,교통사고 합의금등 긴급자금을 요청해서 피해자가 속아 송금하게 만드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는 명의도용, 정보유출, 범죄사건 연루 등을 면목으로 현혹하여 개인정보를 다 바꿀 수 있는 사이트에서 정보를 다 바꾸어야한다며 보이스 피싱업체가 만든 가짜 정보변경사이트에서 신용카드 정보나 인터넷뱅킹정보를 알아낸 후, 사기범이 ARS 또는 인터넷으로 피해자명의로 카드론을 받고 사기범이 공인인증서 재발급을 통해 인터넷뱅킹으로 카드론대금 등을 사기범 계좌로 이체해갔다고 합니다. 또, 70대 이상의 고령층을 대상으로 전화통화를 해서 텔레뱅킹 가입사실을 확인하거나 가입하게 한 후에 명의도용, 정보유출, 범죄사건 연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를 현혹해서 텔레뱅킹에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어 피해자 계좌에서 예금액을 사기범의 계좌로 이체한답니다. 또 다른 방법은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계좌가 범죄사건에 연루되어 피해자명의 계좌의 안전조치가 필요하다고 속이고 현급지급기에게 가서 잔액 모두를 이체해야한다고 피해자가 직접 이체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혹은 검찰이나 경찰, 금융감독원 등 공공기관 및 금융기관이라고 말하면서 어떤 사람이 잘못 이체된 돈 있다며 연락왔다며 예금인출을 하려고 하니 거래내역추적에 필요해서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아낸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등으로 사기범 계좌로 이체하여 가로채는 수법이랍니다. 또 한 가지는 정말 이런 것도 있냐라고 생각되는 방법인데요, 설문조사라며 “독도는 누구 땅인가요?”라는 하는 질문에 “대한민국 땅이다. 맞으면 1번, 아니면 2번을 눌러주세요”라는 멘트를 하면 바로 결제되는 사례입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사람이라면 1번을 누르는데 누르자마자 몇 천원에서 몇 만원까지 그냥 빼나가는 숫법이랍니다. 이것외에도 참 많은 방법으로 우리 통장의 잔액을 빼가려는 보이스피싱의 피해사례가 너무나 많고 더욱 다양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 많은 유혹을 받고 어떤 계략에 빠져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참 많은 세력들이 우리 주변에 산적해있습니다. 특히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영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사탄마귀입니다. 사탄마귀의 유혹과 꾐은 우리를 무너뜨려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유혹과 꾐을 빠지지 않고 바른 길로만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모함하여 죽이려고 하는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을 보면서 그들이 어떤 유혹을 하는 지, 어떤 계략을 세워놓고 예수님 무너뜨리려고 하는 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세상의 유혹과 꾐에 빠지지 않도록 대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유혹과 꾐에서 이겨내신 예수님의 지혜를 발견하고 우리 또한 세상의 유혹, 사탄마귀의 꾐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의 꾐과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로 의인인 체 하는 사람들의 속본성을 잘 봐야 합니다.
누가복음 20장 20절입니다.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예수님을 모함하고 잡아서 죽이려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정탐꾼들을 보내어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합니다. 혹여나 어떤 말을 꼬투리잡아서 로마인 총독에게 넘기려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이 하나 나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은 스스로 의인인 척 하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것처럼 보여줘야 어떻게든 속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악한 자들의 특징입니다. 자신들은 옳고 남들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연예인 캐스팅한다고 명함도 받고 사무실로 안내받아 갔는데 정말 그럴 듯한 공연장비를 놓여져 있고 각종 연예인 포스트, 공연과 드라마 촬영사진 액자등이 있고 유명인들이 왔다갔다고 하면 우리는 쉽게 제대로된 연예기획사이구나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기꾼들이 많다고 합니다. 박보영, 진경등 지금은 이름이 난 연예인이지만 중,고등학교시절 연예인이 되게 해주겠다며 의상구입비, 트레이닝비, 각종 프로필 촬영비 등등으로 수많은 돈을 떼이고서도 사기를 당한 것인지 몰랐던 경우를 인터뷰를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기를 당한 후에라도 정식적으로 데뷔하고 좋은 결과가 있으면 추억이라도 되는 양 이야기를 꺼내지 아예 사기만 당하고 가산이 몰락하고 아무런 피해보상도 받지 못한 수없는 사기피해자들이 세상에 참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멍청해서 그럴까요? 그렇죠... 일단 본인이 판단하고 결정한 것이니.. 하지만, 정말 명함에 그럴 듯한 건물과 간판에, 심지어 돈을 주고 섭외한 유명연예인이 피해자와 사기꾼 가짜 사장이야기 나누는 사무실 바깥쪽을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면 누가 안 속겠습니까?
속이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자기가 이 정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의 대제사장들, 서기관들도 사람들에게 의로운 척, 사람들앞에서 바른 삶을 사는 척 합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앞에서 어느 누가 의로운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니 예수님 앞이 아니더라도 세상앞에서 정말 자신은 부끄러울 것 하나 없는 의인이라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로마서 3장 10~12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장 23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살아가는 악한 존재들입니다. 이런 악한 자들이 의인인 체하면서 유혹하고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것인 양 유인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우리 총회가 정한 이단경계주일입니다. 우리는 성경공부를 통해 한국에 있는 이단들의 특성과 종류에 대해 그래도 좀 많이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서 알고 있어도 정작 만나면 혹하기 쉽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성경공부를 하면서 그들의 미혹전략을 들어서 알듯이 직접 만나서 처음 보여주는 것은 그럴 듯하고 괜찮은 것같은 것만 보여주고 오히려 정말 더 좋은 것같은 것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쇼핑을 할 때도 미끼상품이라는 것이 있지요? 그런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속은 정말 별로인데 겉만 좋게 포장한 상품과 비슷한 것입니다. 내면은 안 그런데 겉으로는 정말 좋은 척, 깨끗한 척, 가치있는 척 하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사람들이 사나운 멧돼지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숙련 된 사냥꾼을 동원해 산돼지를 잡으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습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산돼지를 잡으러 간다고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달 후 노인은 멧돼지를 잡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어떻게 잡았느냐고 묻자 노인은 “멧돼지가 음식을 구하는 곳을 찾아서 곡식을 계속 뿌렸더니 멧돼지들은 별 노력없이 공짜로 곡식을 먹게 된 것을 알고 날마다 그곳으로 모이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 옆에 함정을 파 놓아 잡았습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내가 필요한 것을 거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계속 그 자리를 찾아가다가 결국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즐거움, 우리가 생각하는 좋아보이는 것들이라고 쫓아가다가는 그냥 죽을 수도 있습니다. 유혹에 빠지고 함정에 빠져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0장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우리는 미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보이는 것만 믿으면 안 됩니다. 겉만 볼 것이 아니라 속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아닌 그 내면의 진실된 모습과 내면의 의도를 잘 살펴 봐야합니다. 이런 저런 일들속에서도 어떤 것이 진실인 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세상에 휩쓸려 오히려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선한 의도를 퇴색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악함에 무너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의 올무와 꾐에 무너지지 않고 사탄마귀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리 의인인 척, 바른 척, 착한 척 다가오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과연 어떤 의도가 있는 지를 항상 생각해보며 하나님의 관점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상을 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의 꾐과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둘째로 말씀을 잘 알고 말씀대로만 살아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20장 21절입니다.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모함할 근거를 찾기 위해 예수님을 정탐하면서 오히려 예수님을 칭찬하는 이상한 모양을 취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정치인들도 잘 보면 이상한 행동을 참 많이 합니다. 줄기차게 싸우고 서로를 비방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정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엄청 친한 모습의 사진을 찍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인터뷰를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좋은 분위기가 되어서 그런 지는 우리는 잘 살펴봐야합니다. 그냥 그렇게 보여줌을 통해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예수님께 아부하고 예수님을 존경하는 듯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씀은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높이며 찬양하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비아냥거리며 비꼬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이 인정하는 부분이고 이들도 어쩌면 이런 예수님의 삶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존경하는구나라고 생각하였기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비꼬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바른 말만 하시고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진리의 말씀으로만 살아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인 드와이트 무디의 일화입니다. 하루는 어떤 청년이 무디를 찾아와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성경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인데, 선생님의 성경을 한 번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무디는 자기를 찾아온 청년에게 자신의 성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성경에는 구구절절 색연필로 그어져 있었고, 깊은 묵상의 언어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또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도처 에는 “T. P.”라는 스펠링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무디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니, 무디 선생님! 도대체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때 무디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실험해 보았더니 입증되었다」라는 뜻입니다.”
무디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어느 말씀, 어느 구절 하나라도 생활 속에 적용될 수 없는 말씀이 없으며, 이 말씀은 곧 그대로 그에게 생명과 능력과 광명이 된 것을 우리에게 체험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시편 34편 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있는 말씀이시기에 그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기독교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회의에 러시아 교회에서 세 명이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회의의 주제는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변증할 수 있느냐?”라는 내용이었고 사흘내내 이 주제로만 토의를 하였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러시아 교회의 참가자 세 명은 그 토의기간동안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회의를 폐하기 위해 마지막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소감을 이야기하는데 그 세 명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여러 분들이 사흘 동안 이 회의를 여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말씀대로 살다보면 오류가 없다는 것을 저절로 알텐데 그런 것 가지고 뭘 회의를 하고 앉아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이 너무나 숙연해졌습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말씀의 권위와 영광과 말씀의 능력을 알 것입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경에 많은 번역이 있는데,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성경번역이 있다면 그것은 내 삶으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우리는 세상의 온갖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과 삶이 일치될 때 비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말씀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 살아가며 비참한 인생을 살 것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가까이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올무에 빠지지 않고 사탄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위해서는 항상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넘어지지않고 은혜가운데 살아가도록 항상 말씀과 함께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의 꾐과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셋째로 욕심을 가지지 않고 세상 것은 포기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것만 찾아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20장 25절입니다.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정말 신앙으로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방금 읽었던 구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입니다.
사실, 많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이 부분을 가지고 세금내야할 것은 세금을 내고 세상의 법은 세상법으로 지키고 하나님의 법은 교회에서만 지키라는 식으로 적용을 하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말씀인데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주로 최근에 나오는 교회에 대한 세금징수문제가 나올 때 꼭 이것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이 만들어서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 주권하에 있고 하나님의 소유권에서 벗어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을 구분하셨을까요? 사실 이 말씀은 어떤 행위의 지침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신앙적인 기준에 따라 믿음으로 행하라는 의미가 더욱 강한 말씀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적인 법칙을 따르며 살아갈 것입니다. 반면 믿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믿음의 법칙을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이사를 위해 더욱 살아갈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사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함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로마의 통치의 비난하며 하나님의 나라만은 강조하는 대답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믿음의 기준이 잘못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세상의 통치법에 굴복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통치법대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에 굴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라는 뜻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세상의 것은 아무 것도 소중하지 않습니다. 세금을 거두어가든 말든 그것으로 내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기에 별 소용이 없습니다. 물질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만이 이것을 세금을 바쳐야할 것인지, 말아야할 것인지를 고민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물질의 욕심에 사로잡히면 바르게 해야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권력의 욕심에 사로잡히며 정말 본질적인 일들을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어느 장관후보자의 재산과 입시 관련 일들과 자녀의 장학금수령문제로 참 시끄럽습니다. 그가 왜 그랬을까? 지금은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개혁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장관의 임명에 동의해달라고 하지만 결국 욕심이 많아 재산과 권력과 자녀의 학력이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는 정말 인간의 욕심을 내려놓을 때 행복이 있습니다. 내가 행복할 때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때 더욱 행복합니다. 포기는 할 수 없다고 멈추는 것이고, 내려놓음은 할 수 있지만 비우는 마음으로 하지 않기로 결단하고 멈추는 것입니다. 포기는 아쉬운 결정이고, 내려놓음은 깊은 성찰인 것입니다.
독수리 한 마리가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있는 호수를 날면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독수리의 눈에 죽은 양 한 마리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독수리는 쏜살같이 내려와서 양의 시체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꽉 움켜쥐고는 그 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죽은 양은 계속 물살에 따라 폭포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고기를 뜯어먹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날개가 있어서 날 수 있으니까 폭포에 떨어지더라도 아무 상관없어!’ 그러는 사이에 죽은 양은 점점 흘러 나이아가라 폭포에 와서는 물줄기와 함께 빠른 속도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독수리는 먹기를 중단하고 위로 솟구쳐 오르기 위하여 날개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독수리의 발톱이 죽은 양의 몸 속에 깊이 박혀서 빠지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이 독수리도 양의 시체와 함께 폭포수에 휩쓸려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렇지 않습니까? 썩어서 없어질 세상의 것들, 인생의 마지막에 아무리 가져가려고 해도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을 붙들고 그것을 얻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결국 궁극적으로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을 가져보려고 치고박고 싸우며 죽음앞에서 경쟁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정말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썩어질 육신의 안락을 위해 잡고 있는 것, 육신을 위한 일을 버려야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붙잡히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필요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정말 우리가 세상에서 올무에 빠지고 꾐에 넘어지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있으면 좋을 것 같은 권력, 명예, 재산, 학벌, 건강 등등 우리의 유익을 위한 육신의 것을 찾으니 결국 사탄마귀에게 우리의 영혼을 팔고 우리의 영적인 생명보다 세상의 것을 더욱 쫓아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유혹들에게 빠지지 않도록 정말 우리의 욕심을 내려놓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세상의 사람들의 속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오죽하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라고 말할까요? 정말 개혁적인 언행을 하며 검소하게 살았을 것 같은 장관후보자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온갖 특혜로 입시에 관여하고 학교에 결탁하여 자녀를 위한 유일한 장학금을 만들어서 자녀에게만 지불해서 지금 정말 그 사람 그렇게 안봤는데라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욕심을 다 버리고 하늘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정말 예수님외에 어느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올무와 꾐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근본적으로 완성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속마음을 알고 말씀대로 살아가고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우리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며 우리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서 충만하게 우리의 인간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만들어주셔야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세상가운데 어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고 예수님의 힘으로 승리하며 올무와 꾐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