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비 오는 날은 물구경 – 사패산,도봉주릉,오봉,문사동
1. 문사동(問師洞) 계곡
萬丈峯 萬丈바위
天竺의 여러 瀑布
이 돌 이 물이야
또 어대 없으리오
내 마음 이곳에 드니
내 못 잊어하여라
―― 가람 이병기(嘉藍 李秉岐, 1891~1968), 「道峯」 제4연
▶ 산행일시 : 2024년 6월 30일(일), 비, 바람, 안개, 흐림
▶ 산행코스 : 안골, 성불사 주차장,사패능선,사패산,도봉주릉,오봉능선,오봉,오봉고개,문사동,도봉계곡,도봉산역
▶ 산행거리 : 도상 12.0km
▶ 산행시간 : 6시간 35분(08 : 05 ~ 14 : 40)
▶ 교 통 편 : 전철과 택시 이용, 갈 때는 의정부역에서 택시 타고 안골 성불사 주차장까지 감
▶ 구간별 시간
07 : 49 – 의정부역
08 : 05 – 안골, 성불사 주차장, 산행시작
08 : 14 – 안골폭포(준홍폭포, 선녀폭포)
08 : 20 – 성불교, 사패능선(1.35km) 갈림길
08 : 52 – 갓바위(송이바위)
09 : 00 – 사패산(賜牌山, 552m)
09 : 25 - ┫자 회룡사 갈림길 안부
09 : 54 – 649m봉, 산불감시초소
10 : 25 - ┣자 포대 갈림길, 오른쪽으로 포대(716.7m)와 Y자 계곡을 우회함
10 : 40 – 신선대(731m) 갈림길
11 : 20 – 오봉능선 갈림길
11 : 48 – 오봉(655m)
12 : 00 – 오봉샘
12 : 20 - ┳자 도봉주릉 갈림길, 오봉고개
12 : 38 - ┫자 갈림길 안부, 직진은 우이암 0.4km
12 : 54 – 숯가마터 쉼터
13 : 05 - ┫자 용어천계곡 갈림길
13 : 14 – 문사동(問師洞)
13 : 51 – 구봉사(龜峰寺)
14 : 20 – 도봉탐방지원센터
14 : 40 – 도봉산역, 산행종료
2. 문사동계곡
▶ 사패산(賜牌山, 552m)
오늘 모든 안내산악회는 장마 비 때문에 모객저조로 산행을 취소했다. 나로서는 차라리 홀가분하다. 갈까 말까 마음
고생 덜었다. 도봉산을 가자. 어젯밤 창문에 세차게 들이치는 빗소리에 잠을 깨기도 했지만 잠결에 듣는 빗소리는
자장가였다. 서울에 비가 70mm 정도 내렸다고 한다. 도봉산 계곡에는 물이 꽤 불었으리라. 안골로 가서 안골폭포
(예전에는 준홍폭포 또는 선녀폭포라고 했다)부터 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른 아침 도봉산과 의정부 가는 전철이 한산하다. 어쩌다 등산 차림 한 사람을 보면 말 그대로 동병상련(同病相憐)
의 심정으로 반갑다. 그러나 의정부역에서는 나 혼자다. 역사 서쪽 출구로 나가 택시 승강장으로 간다. 택시기사님
에게 간밤에 이곳에도 많은 비가 내렸는지 물었다. 의정부는 좀처럼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인즉
비구름이 준봉인 파평산과 감악산에 막혀서 그렇다고 한다. 한때 안골은 의정부의 유일하다시피 한 물놀이 유원지
로 각광을 받았는데 1998년인가 폭우로 야외 수영장이 쓸려나가고부터는 시들해졌다고 한다.
택시기사님은 오늘처럼 음산한 날씨에 혼자서 산행하는 게 무섭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냥 웃고 말려다 대답하였다.
무섭기는커녕 고적한 분위기에 여러 생각을 차분히 다듬을 수 있어서 아주 좋다고.
성불사가 개축을 하고 나서 길 또한 넓히고 미끈하게 포장하였다. 성불사 바로 아래 주차장이 금방이다. 요금 7,200
원. 성불사는 흥선대원군이 창건했다는데, 6.25.때 소실되어 그 후 중건해서 1992년 8월에는 세 분의 스님이 계신
비구니 사찰이었다. 이때는 적막한 산중의 예스러운 아담한 절이었다. 최근에 대찰(?)로 중창하고 나니 이속이 아닌
도리어 환속한 절 같은 느낌이라 다시 보기 싫어졌다.
성불사에서 가까운 아래에 안골폭포가 있다. 도로를 확포장 하느라고 안골폭포 가는 길을 없애버렸다. 멀리 아래
나무숲 사이로 폭포가 살짝 보이는데 난간과 옹벽을 설치하여 다가가기 어렵다. 도로 따라 약간 더 내려가서 난간
넘고 가파른 비탈 내리고 잡목 헤쳐 계곡에 다다른다. 굵직한 너덜을 거슬러 한참 오른다. 모처럼 안골폭포를 본다.
이만한 물줄기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한편 성불사가 대찰로 바뀌었으니 신도들도 늘었을 것. 폭포수가 예전
과 같지 않고 오수(汚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부쩍 든다.
사패산을 간다. 성불교 직전에 지계곡으로 이정표가 안내하는 등로가 있다. 사패산 1.5km. 부슬비가 내린다. 등로
왼쪽 옆 계류는 재잘대며 흐른다. 풀숲 헤쳐 온 비까지 맞는다. 옥계암반 근처에는 너른 쉼터가 있다. 오늘은 조용하
다. 계류가 밭고 약간 가파르게 오른다. 바위군 통천문을 지난다. 커다란 가마솥을 똑 닮은 바위, 거대한 군함 같은
바위도 있다. 저 꼭대기에 오를 수 있을까? 여기저기 홀더를 살피다가 저 꼭대기에 올라도 별 다른 경치를 볼 수 있
을 것 같지 않아 그만둔다.
안개 속에 든다. 자욱하다. 후덥지근하고 가파른 오르막이라 이미 안팎으로 젖었다. 안개가 한증막 증기다. 후끈하
다. 대슬랩 덮은 데크계단을 오른다. 길다. 데크계단 끄트머리 약간 못 미처 절벽 위로 다가가면 불곡산을 비롯한
올망졸망한 산들이 무수히 보이는 일대 경점인데 오늘은 안개가 온통 하얗게 가렸다. 아깝다. 데크계단을 다 오르면
아울러 가파른 오르막도 끝나고 한적한 숲속 길이 이어진다. 등로 옆 갓바위(송이바위)는 접근하지 말라고 금줄을
둘렀다.
곧 사패능선에 이르고 사패산은 오른쪽 슬랩 0.15km다. 능선에 서니 비바람이 몰아친다. 데크계단 올라 사패산
정상이다. 너른 암반에 정상 표지석만이 오독하니 서 있다. 맑은 날 이 너른 암반에 서면 첫눈에 도봉주릉의 장쾌한
연릉 연봉과 그 너머로 북한산의 인수봉과 백운대, 만경대가 심산유곡의 첨봉으로 보인다. 그 경치를 보려고 사패산
을 오르곤 했다. 오늘은 기껏 보이는 사패산 정상표지석만 우산 받치고 사진 찍는다.
5. 안골폭포(준홍폭포, 선녀폭포)
6.1. 안개 속 풍경
6.3. 사패산 정상
7. 도봉주릉
8. 도봉주릉, 혹자는 이 암봉을 도봉이라고 한다
9. 안개 속 풍경
12. 자주꿩의다리
13. Y자 계곡 우회하는 길
▶ 오봉(655m)
비바람이 세차다. 우산을 받칠 수가 없다. 숲속에 들면 소리로는 소낙비가 내린다. 이따금 홀로 등산객을 만난다.
나는 중무장인데 그는 배낭도 없고 티셔츠와 짧은 바지, 간편한 신발에 달랑 500ml 짜리 물병 한 개만 들고 잰걸음
한다. 나는 비옷을 입었다가 너무 더워 벗어버렸다. 어둑한 숲속 자욱한 안개 속이라 갈림길이 나오면 혹시 길을
잘못 들까봐 오룩스 맵을 꺼내 진행방향 확인하고 나서 간다. ┫자 회룡사 갈림길 안부를 지나면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철난간 잡고 슬랩을 오른다. 날이 좋다면 능선은 짜릿한 손맛을 볼 수 있는 세미클라이밍 코스인데 오늘은 얌전히
잘난 등로 따른다. 그래도 슬랩을 트래버스 할 때는 여간 미끄럽지 않다. 한 차례 긴 데크계단 올라 암봉인 600m봉
을 지나고, 다시 한 피치 숨 가쁘게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649.1m봉이다. 이 봉우리에 서면 포대(721.2m)에
이르는 연봉들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데 오늘은 엷은 안개가 시스루(See-through)처럼 보여준다.
봉봉을 오르내린다. 오는 이 가는 이도 없는 산길이다. 가도 가도 안개 자욱한 산길이다. 등로 주변 바위틈에서 자주
꿩의다리를 보곤 한다. 실처럼 가느다란 꽃잎에 비에 젖어 뭉툭하다. 그나마 원근농담의 안개 속 풍경이 볼거리다.
단풍은 실루엣도 아름답다.
포대(721.2m)와 Y자 계곡 갈림길이다. 바람이 거세지만 안개를 쓸어내지는 못한다. 포대주릉을 오른다 해도 막막
하기만 할 것 같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 오른쪽 사면을 도는 우회로로 간다. 이 길도 처음 가는 듯 새롭다.
어둑한 숲속 길이다. 바람이 지나가면 소낙비가 지나가는 것 같다. 우산은 아까 바람에 살이 세 개나 부러지고 말았
다. 반편 우산이다. Y자 계곡을 돌아 오르고 신선대 갈림길이다. 이왕 금 간 사발이다. 깨진들 어떠랴. 신선대도
오르지 않는다. 안개 덕분에 발품 던다. 배가 출출하다. 등로 옆 숲속 공터에 들어 우산 받치고 요기한다. 비싼 사과
와 비싼 뚜레쥬르 크림빵이다. 크림빵은 두 개 먹으니 물린다. 그리고 얼음물 한 모금이다.
주봉과 그 아래 깡통집터 지나 슬랩 오르고 암릉 길 오르내린다. 기름바위(706.5m)는 달달 기어오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꾹꾹 눌러 참는다. 데크계단 길게 내리고 올라 칼바위 직전 오봉능선 갈림길이다. 오봉은 아무리 안개
가 자욱하다 해도 그곳의 지형 때문인지 안개에 가린 적이 없었다. 보러간다. 그런데 물개바위(660m)에서 바라보는
지척의 칼바위(695m)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불안하다. 철난간 붙잡고 울퉁불퉁한 슬랩 내리고 사면 돈다.
오봉능선 길도 어둑한 숲속이다. 두 개 봉우리 넘는다. 684m봉 왼쪽 사면의 슬랩을 조심스럽게 지나면 곧 ┫자
오봉샘 갈림길이 나오고, 데크계단 한 피치 길게 오르면 헬기장이고 그 오른쪽 암벽 밑을 돌아 오르면 오봉 제1봉이
다. 오봉 연봉이 캄캄하니 가렸다. 이런 적이 없었다. 바람이 불어대니 잠깐이라도 볼 수 있을까 기다렸으나 허사다.
여느 때는 고양이들이 나와 반겼는데 내 기척을 해도 나타나지 않는다.
16. 자주꿩의다리
17. 오봉 가는 길
18. 자주꿩의다리
19. 문사동계곡 가는 길
20. 거북골 합수점 근처
23. 용어천계곡 합수점 근처
▶ 문사동(問師洞)
오봉의 앞모습은 어떨까, 능선 길게 내리며 그 전망바위에 다가간다. 천지가 어둑하다. 능선 막아놓은 데까지 가서
왼쪽 사면을 길게 내려 오봉샘이다. 오봉샘은 넘쳐흐른다. 이골 저골 모아 계류는 우당탕 흐른다. 지계곡 건너고
사면 돌고 다시 지계곡 건너고 사면 돈다. 도봉주릉 오봉고개다. 도봉주릉을 올라 칼바위를 보고 그 아래 갈림길에
서 거북골로 내리려고 했는데 안개가 걷힐 기미가 없으니 수월한 길을 택한다. 우이암 쪽으로 간다.
이제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인 물구경을 하러 간다. 우이암 직전 ┫자 삼거리에서 왼쪽 문사동계곡으로 간다. 4년
전 여름 태풍 장미가 서울을 강타할 때 물구경을 하러 이곳을 찾았다가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겼다. 그때 이곳은
등로와 수로가 전혀 구분되지 않았다. 물구경을 할 여유가 없었고 그저 살아서 돌아가기에 급급했다. 오늘은 비가
적당하다. 그때 물바다였던 4휴식처(숯가마터 쉼터)가 평안하다. 용어천계곡의 옛 이름인 어룡골에는 6.25. 전쟁
전까지 숯을 굽던 숯가마터와 숯 굽던 이들이 머물던 움막자리가 있다고 한다.
거북골과 만나고 주계곡(지도에는 ‘도봉계곡’이다)은 아연 활기를 띈다. 인적 쫓아 계곡에 들락날락한다. 용어천계
곡과 만나고는 더욱 장관이다. 아예 계곡으로 내린다. 가경의 연속이다. 그 아래 문사동계곡 폭포는 절정이다. 나로
서는 문사동폭포의 이런 진면목을 보기는 처음이다. 도봉산에 이런 데가 있다니 깜짝 놀란다. 영화 혹은 꿈에서나
보던 밀림 속 환상의 절경이다. 두 줄기 폭포는 수 갈래로 나누어 널따란 절벽에서 떨어지는데 별유천지비인간(別有
天地非人間)이 바로 여기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내려가서 올려다본다. 앞으로 두고두고 그리워할 폭포다. 이 옥계(玉溪)에 세면탁족을 한다
는 것은 불경하고 망령된 짓일 것만 같다. 다만 바라보고 또 바라볼 뿐이다.
‘도봉계곡 문사동(問師洞) 마애각자’ 안내판의 일부 내용이다.
“이 곳 큰 바위에는 초서체로 문사동(問師洞)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계곡을 압도하는 멋진 글씨로 새겨져 있는
이 각자는 ‘스승을 모시는 곳’ 또는 ‘스승에게 묻는 곳‘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디지털도봉문화대전의 내용이다.
“‘문사동(問師洞)’은 (…) 예를 갖추고 스승을 맞아 초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문(問)’은
예를 갖추어 누군가를 불러들인다는 의미라고 한다. 문사동은 도봉동천 가운데 경치가 특히 빼어나, 도봉 서원의
선비들이 스승을 이곳까지 모시고 와 함께 학문을 논하며 산수의 경치를 즐겼음을 의미한다.”
문사동계곡을 지나서도 폭포는 무수히 이어진다. 문사동폭포의 후예려니 일일이 다가가 바라본다. 계류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구봉사에 이르러 크게 용틀임을 한다. 나처럼 물구경 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다. 나더러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달라는 사람이 여럿이다. 그럴 때면 나는 하나 둘 셋 하지 않고 자연스런 포즈를 여러 장 찍는
다. 상대방이 사진 찍는 것을 의식하게 김치 또는 치즈, 하나 둘 셋 등의 신호를 보내면 긴장하게 되어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26. 문사동계곡
31. 송락사 근처
32. 구봉사 앞 계곡
서원교 건너 자운봉(2.1km), 천축사(1.2km) 갈림길 지나고 도봉서원 터 아래 ‘고산앙지(高山仰止)’ 안내판이 있는
계곡이 볼만하다. 슬쩍 금줄 넘어 계곡에 내려가서 가까이 관폭한다.
‘고산앙지(高山仰止)’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문구로 ‘높은 산을 우러러 사모한다’라는 의미인데, 1700년(숙종 26
년)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의 덕을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으로 새긴 것으로 추측
한다고 한다.
대로를 간다. 비는 그쳤고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녹야원 갈림길에 색소폰 부는 사나이는 보이지 않는다. 도봉탐방
지원센터를 지나고 뒤돌아보는 도봉산 연봉은 여전히 안개에 가렸다. 한편 나로서는 다행이다. 안개가 걷혔다면
저기서 더 오래 머물지 않았음을 얼마나 분해할 것인가.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의 「견주 도중에 읊다(見州途中)」로 그 연봉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견주
(見州)는 고려 때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을 말한다. 이병주(李炳注, 1921~1992)는 그의
에세이 『산(山) 생각한다』(바이북스, 2021)에서 우뚝한 세 봉우리는 도봉, 자운봉, 만장봉을 말하고, ‘峻路長水馬不
前’은 ‘길이 갈라지고 물이 흐르기 때문에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풀이하는 것보다 다양한 경치 앞에 말조차
넋을 잃었다고 읽어야 할 것이다’라고 한다.
우뚝한 세 봉우리는 푸른 하늘을 찌르는데
멀고 험난한 갈림길에 물이 흘러 말도 가질 못하네
석양의 외론 마을엔 연기도 나지 않는구나
이 나름의 흥취는 누구에게 전한단 말가
截然三嶺揷靑天
峻路長水馬不前
落日孤村烟火絶
箇中情興有誰傳
36. 구봉사 앞 계곡
39. 고산앙지(高山仰止) 각자 바위 근처
40. 도봉탐방지원센터 근처
43. 무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