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해안 선교지역 여름 장막 집회가 끝났다. 마지막 헌신예배에서 강사가 준 메시지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짧지만 강력한 기별이 되어 결코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참석자들의 뇌리에 박혔다. 그 기별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창세기 11장과 사도행전 2장은 언어라는 소재로 깊게 연결되는데 하나는 언어의 혼잡과 다른 하나는 언어의 통일 곧 방언의 은사다. 그런데 두 사건은 모두 건축과 관련이 되는데 앞 사건은 바벨탑을 쌓았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다. 하나는 사탄의 왕국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왕국이다.
교회 일이라면 정말 열심히 하는 장로님이 계셨다. 성품도 좋고, 일편단심으로 교회 일에 전념하는 분이라서 누구라도 그의 헌신과 수고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분에게는 영적으로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자화자찬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칭찬해 줄 건데 스스로 자신이 한 일을 떠벌리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칭찬해 줄 수가 없었다.
외부에서 손님들만 오면 자신이 한 수고와 헌신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손님들은 모든 교회의 일이 그 장로님의 수고로 이루어진 일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알고 보면 그는 교회일을 하면서고 그 마음에는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벨탑의 정신은 사탄의 정신이다.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은 그동안 제자들의 마음에 올라간 바벨탑을 허무는 사건이었다. 서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면서 회개의 시간을 가지는 다락방은 바로 바벨탑 해체 공사의 현장이었다. 바벨탑이 무너지자 거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다.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그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이름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자신의 이름 대신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드높여지는 곳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성경의 모든 사건이 결국 바벨탑을 쌓는 이들과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늘 새벽 묵상하는 사사기 7장도 그런 관점에서 읽을 수 있었다.
(삿 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미디안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여룹바알이라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바닷모래같이 많은 적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기드온 군대의 수를 더 줄이라고 명령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전쟁에서 이기고 자기의 능력과 수고를 자랑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간의 전술과 능력을 믿고 그것을 의지해서 싸우는 싸움을 하나님은 허용하실 수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의 정신과 멀었다. 그렇기 기드온 군대는 삼만 이천 명에서 일만 명으로, 일만 명은 다시 삼백 명으로 추려졌다. 하나님의 일은 자신을 높이지 않을 사람, 자기 마음에 바벨탑을 쌓지 않을 사람들이 해야 한다. “내가 했다”는 정신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결국에는 많은 일을 하고도, 사탄의 길을 따를 가능성 때문에 하나님은 저들을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하나님 아버지!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열심히 건축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거대한 바벨탑을 세웁니다. “내가, 내가, 내가”를 연발했던 지난날의 허물과 죄를 고백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썩어질 인간의 영광을 땅에 묻어버리고 오로지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성전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