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시 67:1-7절이고, 제목은 “주의 얼굴을 비추소서.”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굴 빛을 비추는 은혜를 베푸셔서 땅 위의 모든 나라가 주의 구원 알기를 구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공평히 심판하시고, 다스리심으로 그들로 주를 찬송하기를 간구합니다. 땅이 소산을 내어 줌과 같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라고 합니다.
묵상
오늘은 하나님의 얼굴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본문 1절의 말씀은 마치, 민 6:24-26절에 나오는 대제사장의 축복 기도를 연상하게 합니다. 특히 원문의 히브리어 ‘야에르 파나우 이타누’(יָאֵר פָּנָיו אִתָּנוּ-yā’êr pānāw itānū)라는 표현이 그러합니다. 이는 우리 말로 “그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소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야에르’(יָ֤אֵ֥ר-yāêr)는 “빛나다, 밝아지다, 비추다.”라는 뜻의 동사로, 또는 ‘빛’(light)이라는 명사인 ‘오르’(אוֹר-ʼôwr)에서 유래한 단어이고, ‘파나우’(פָּנָ֖יו-pānāw)는 “얼굴”을 말하는 남성명사 ‘파님’(פָּנִים-pânîym)의 3인칭 표현으로 문자적으로는 “그 분의 얼굴”을 말하는 데, 앞에 나오는 ‘엘로힘’(אֱלֹהִ֗ים-’ĕlōhîm)과 연관됨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타누’(אִתָּ֣נוּ-ittānū)는 전치사로써 “우리에게”라는 뜻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없습니다. 보는 즉시, 죽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보여 달라고 구했던 위대한 선지자 모세가 은혜로운 배려를 통하여 하나님의 등-뒷 모습-을 살짝 보았을 뿐(출 33:17-23)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가하나님의 얼굴을 비춰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 얼굴’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시 27:8절에는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환난 중에 있을 때(시 69:17)나, 의로운 중에도 주의 얼굴을 볼 것을 기대(시 17:15)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은밀한 죄까지도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다(시90:8)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니엘은 주의 얼굴 빛을 황폐한 성소에 비춰 주시기(단 9:17)를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본문의 내용처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자리 즉, 주의 얼굴이 비취는 곳에는 반드시 복이 임합니다. 구원이 있습니다. 풍성함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얼굴 빛을 비춰 주시기를 간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말씀 역시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겸손한 자라야만, 내 아버지 하나님의 얼굴을 비춰 주시기를 기도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겸손한 사람만이 자기 자신에게 아버지의 은혜와 구원, 회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다. 네가 너의 입술로 내 하나님의 얼굴 빛을 비춰 달라고 기도할 때, 반드시 네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그 이상의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연약하고 어리석은 저에게 당신의 얼굴 빛으로 비춰 주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보다 더 시급한 것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지금도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2,000만 동포가 있는 북녘 땅에 주님의 얼굴을 비춰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특히 오늘은 “빛의 절기”인 ‘하누카’의 첫 날입니다. 성령이여 도우사, 이 밖에도 생명의 빛(요 1:4) 되시는 주님의 긍휼함과 자비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들과 상황을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래서 그들을 대신해서 당신의 얼굴을 비춰 주시기를 간구하는 신실한 ‘대도자’(代禱子)로 살아가는 오늘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