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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목자(4월 21일 오전 예배설교)
시편 23:1-6(구약 818)
시편 23편은 거의 모든 성도들이 암송하는 성경일 것입니다. 아마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도 시편 23편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시편 23편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가장 잘 묘사한 노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은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등과 같이 여러 가지로 묘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유목민족이라고 할 수 있고, 유대인들은 목축업을 하지만 소나 말과 같은 가축보다는 양을 많이 키우는 민족이기 때문에 양과 목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가장 익숙한 표현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도와 예수님의 관계를 설명하시면서 너희는 나의 양이고 나는 선한 목자라고 요한복음 10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와 관계에서 선한 목자와 양이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과 우리와 관계도 역시 목자와 양으로 오늘 말씀에 묘사했습니다.
다른 가축에 비해서 양은 목자의 손길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가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돌봄이 필요한 양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신데 진정으로 양을 사랑하신 목자이십니다. 목자 자신을 위해서 양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양을 위해서 목자의 목숨도 내어주시는 사랑의 목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이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사 부활하게 하신 것은 진정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양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가 잘 아는 그리고 많은 성도들이 암송하는 시편 23편의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목자”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은혜는
1. 하나님은 나의 목자
시편 23편은 다윗왕이 지은 노래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들에서 양치기를 하던 목자였습니다. 이새의 8번째 아들이자 막내인 다윗은 집에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면서 산 것이 아니라 어린 나이에 들에 나가서 양을 치는 일을 하면서 성장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양과 목자의 관계를 잘 알았습니다. 양을 치면서 다윗은 많은 것을 깨달았고, 특히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라고 노래했습니다.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는 고백입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나의 목자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의 목자라는 표현을 하지 않고 나의 목자라고 고백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공동체적인 것보다는 개인적이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고, 군중심리에 좌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무리들에게 역사하시기도 하지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주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군중심리에 빠져들어서 자기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잃어버리고 무리에 휩쓸려서 행동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군중심리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은 군중심리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끌어드리고 가스라이팅을 해서 자신들의 집단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의 목자라고 표현하지 않고 나의 목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나와 예수님과 개인적인 만남과 개인적인 신앙고백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나의 신앙이 고백 되어지고 예수님과 내가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개인적이고 인격적으로 만난 하나님은 목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라고 고백한 다윗과 같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고백을 하면서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은 내게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1-2절을 보면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신데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은 하나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노래했습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충분하게 공급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나의 삶을 돌아 보건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을 충분하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양인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초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오트’는 ‘거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푸른 초장’ 은 단순히 푸르른 풀이 많은 즉 먹을 거리가 풍성한 목초지라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막의 뜨거운 태양열을 피하여 쉴 수 있는 그늘진 곳, 즉 휴식처라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양들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는 의미와 함께 뜨거운 사막의 열기로부터 양들이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게 하신 것처럼 오늘 이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날 그날 일용할 양식과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쉴 수 있는 믿음의 가정을 주셔서 몸과 마음이 쉴 수 있게 하십니다.
모든 동물들은 양식만으로 살아갈 수 없고 물을 먹어야 합니다. 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들이 마음껏 물을 먹을 수 있는 냇가로 데리고 가서 물을 마시게 하는데 진정한 목자는 잔잔한 물 가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 ‘쉴 만한’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메누호트’은 세찬 물결과는 대조적인 개념으로 ‘잔잔한’ 이란 의미입니다. 만일 목자가 급류로 인도하였다면 그 양떼들은 물을 마시기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목자는 양들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함으로써 안전히 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은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해 주셔서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2. 언제나 함께 하시는 목자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나의 목자라고 표현함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목자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과 함께 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다윗이 경험한 언제나 함께 하시는 목자이신 하나님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3절을 보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소생하다’(슈브)는 ‘되돌아오게 하다’는 뜻으로 죄악과 곤경으로 헤매던 영혼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게 되었다는 뜻인데 이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의지로 죄에서 돌이켜서 온 것이라는 의미보다는 목자 되신 여호와의 인도하에서 돌아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죄악의 어둠에서 이끌어 내어 광명의 빛으로 나오게 하셔서 영혼이 소생되게 즉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 107: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사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하나님의 빛이 어둠에 영역에 비추심으로 어둠 속에 있는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고 그러므로 영혼이 소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참빛을 세상에 보내주시고 우리 앞에 비춰주시고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셔서 생명으로 나오게 하셨고 우리의 영혼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소생하게 되었습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은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다시 3절을 보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서 ‘의의 길’ 이란 도덕적으로 의로운 삶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평탄의 길, 형통의 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자녀 된 성도들을 평탄하고 형통의 길로 인도하심으로써 목자로서의 자비하신 성품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의 길 즉 형통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이유를 ‘자기 이름을 위하여’ 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에 담긴 의미는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심으로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삶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영혼을 소생 시켜 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노래하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4절을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목자는 양 떼를 이끌고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 때론 험한 길을 선택할 때도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말은 팔레스틴의 지형적인 특징으로 음침한 즉 어둡고 캄캄한 골짜기를 말하는 것으로 목자는 양을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 그런 계곡을 지나가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양들은 자기들이 그 길을 가겠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가는데 목자는 양들을 데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이 말은 죽음의 어둠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런 곳으로 양들을 인도해도 양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길을 자기들끼리만 가면 두려워하겠지만 언제나 목자가 자신들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목자로서 양들을 인도할 때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겪었던 고난의 시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던 때는 다윗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때였지만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도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끌어 주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을지라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에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다윗은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고백했습니다. 4절을 다시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지팡이’ 와 ‘막대기’는 목자의 장비이자 무기입니다. ‘지팡이’(미쉬에네트)는 양들을 인도하기 위한 장비이며, ‘막대기’(쉐베트)는 일종의 무기로서(삼하 23:21) 공격해 오는 맹수들을 방어하는 도구라고 합니다.
목자는 양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위험한 길로 가지 않도록 인도하는 용도로 지팡이를 들고 다니고, 양들을 잡아 먹으려고 달려드는 맹수들을 물리치기 위한 막대기를 들고 다니면서 양을 돌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지팡이와 원수를 대적하는 막대기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우리가 곁길로 가지 않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3. 내 삶의 주인 되시는 목자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함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한 다음에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심으로 내 영혼이 소생하게 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은 지팡이와 막대기를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은 내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할 때 이 고백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내 삶의 주인 되시는 목자이신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십니다. 5절을 보면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윗의 주변에는 그의 생명을 노리는 대적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으로 어디를 가든지 늘 풍성한 대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여기서 ‘상을 차려주시고는’ 과거로 부터 지금 까지의 계속적으로 하나님이 상을 차려 주셔서 언제나 부족함이 없이 지내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상을 차려주셨고, 앞으로도 차려 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내 앞에 원수들이 나를 공격해 오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내게 부족함이 없이 항상 풍성하고 넉넉하게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의 주인이십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풍성하게 주시고,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도 성도들에게 언제나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또한 다윗의 이 고백은 하나님께서 다윗과의 언약 관계를 견고히 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적인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서 베풀어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및 언약 관계의 발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약 교회의 특징은 공동식사를 하고 서로 떡을 떼며 교제하는 것인데 이것은 구약의 전통과 같이 음식을 먹으므로 교제하고 언약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이 힘든 상황들을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가 있었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을 차려주시고, 함께 교제하게 하시고, 약속하신 말씀의 은혜를 주시고, 교회가 식탁 교제를 통해서 주님 앞에서 하나 된 교회 공동체가 되어 주님의 은혜를 함께 받아 누리게 하십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십니다. 5절을 다시 보면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기에서 ‘기름’은 왕이나 선지자 또는 제사장의 위임식에서 붓는 것이 아니라 잔치 때에 주로 사용되었던 향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필수품은 아니었고 귀족들, 특히 왕실에서 주로 사용한 귀중품이었습니다.
이들 귀족들은 잔치에 참여할 때 이 기름을 머리나 수염 등에 발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크게 높이시고 부요하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 찬양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다윗의 왕실에는 이 값비싼 기름이 풍부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인 되시는 가정마다 이 은혜와 복이 임하서 잔이 넘치는 복이 임하길 축원합니다.
다윗의 마지막 고백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라는 고백입니다. 6절을 보면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언약을 지키시고 풍성한 기업을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해서 앞으로 그의 남은 삶도 하나님 안에서 복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인자하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여호와의 집’은 예루살렘 성소를 의미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은 영원히 성소에 머물겠다는 고백을 한 것이기 보다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하나님과의 보다 깊은 영적 교제의 세계에 들어가게 될 것에 대한 확신의 표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은총을 누리기에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집에 머무는 삶이고 우리의 육체의 삶이 끝날 때 저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주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와 가정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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