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외 1편
박설희
나무들은 수척하고
청설모 꼬리는 풍성하다
나뭇잎 마지막 휘발하는 냄새
비장의 무기처럼 산은
야윈 폭포를 보여주고
심심해서 돌아설까봐
제철 아닌 꽃도 피우고
안개도 풀어놓는다
길이 없다고 멈추자
바위가 제 틈을 내어준다
청년 하나가 마주 걸어온다
배낭을 메고
제 속의 산을 넘는다
나뭇잎 다 떨구고
먼 길 떠나는 나무처럼
그가 컴컴하니 끌고 온 길을 되짚어
한 발 한 발 내려놓는다
발부리에 채인 돌멩이가 비탈을 구르다
힘이 다한 듯 멈춘다
물소리에 내 소음을 얹는다
저만치 조금 남은 햇빛을 좇아
발길을 서두른다
척도
“아들이 있어요?”
“없어요”
“그럼 야크가 있나요?”
“한 마리도 없어요”
“에그, 불쌍한 사람”
미국 대통령 부인에게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다는 방글라데시 사람 이야기를 하며, 오랜만에 만난 그와 나는 깔깔 웃었다
나는 아들도 야크도 없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의 경제를 생각하니
아무래도 그들이 더 불쌍해보였다
그와 헤어진 후, 미로 같은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내 차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면서 나는 차도 있고 돈도 있고 차 열쇠도 있는데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수업 시간 이미 이십여 분 늦었는데
헐레벌떡 가는 길,
거리에는
불쌍한 사람들과
불쌍해하는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박설희
강원도 속초 출생.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 졸업.
2003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 꽃은 바퀴다 가슴을 재다 외,
산문집 틈이 있기에 숨결이 나부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