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임금이 팔도에 공문을 내려 길동을 잡도록 하였지만,
그 조화가 무궁하여 서울의 큰길에 혹은 수레를 타고 왕래하고,
혹은 각 고을에 도착 날짜를 미리 공문으로 알려 놓고는
가마를 타고 왕래하기도 하며,
혹은 어사의 모습을 꾸며 탐관오리의 목을 자르고 임금에게 보고하되
임시어사 홍길동이 올리는 공문이라 했다.
이에 임금은 더욱 진노하여,
"이 놈이 각도에 다니며 이런 난리를 치는데도 아무도 잡지 못하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오?" 하면서
삼정승과 육판서를 모아 놓고 의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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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연이어 공문이 올라왔는데,
다 팔도에 홍길동이 작란한다는 내용의 공문이었다.
임금이 차례대로 보고는
크게 근심하여 주위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이 놈이 아마 사람은 아니고 귀신인 것 같소.
조신 중에서 누가 그 근본을 짐작할 수 있겠소?"
한 사람이 나와서 아뢰었다.
"홍길동은 전임 이조판서 홍아무개의 서자요, 병조좌랑 홍인형의 서제이오니,
이제 그 부자를 잡아 와서 친히 문초하시면 자연히 아실까 하옵니다."
임금이 더욱 화를 내어.
"이런 말을 어찌 이제야 하는가?" 하고는,
즉시 그렇게 하도록 명령했다.
홍아무개는 의금부에 가두고,
먼저 인형을 잡아들여 임금이 몸소 문초를 하였다.
임금이 진노하여 책상을 치며 꾸짖었다.
"길동이라는 도적이 너의 서제라는데,
어찌 조치하지 않고 그냥 두어 국가에 큰 재앙이 되게 한단 말인가?
네가 만일 잡아들이기 않으면,
네 부자의 충효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
빨리 잡아들여 나라에 대변이 없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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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이 황공하여
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신의 천한 아우가 있어
일찍 사람을 죽이고 달아난 지 몇 년이나 지났으되,
그 생사를 알지 못하여 신의 늙은 아비 그 때문에
신병이 위중한 나머지 목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길동이 착하지 못하여 성상께 근심을 끼쳤으니,
신의 죄는 만 번 죽어도 애석하지 않사옵니다.
그러나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자비로운 은택을 내려 신의 아비 죄를 용서하시와,
집에 돌아가 조리하게 하시면,
신이 죽음으로써 맹서하고 길동을 잡아
저희 부자의 죄를 면하올까 하옵니다."
임금이 다 듣고 나자 감동하여 즉시 홍아무개를 사면하고,
인형에게 경상 감사를 제수하면서 말했다.
"경이 만일 길동을 잡지 못하면 감사로서의 능력이 없다고 볼 것이니라.
기한을 1년으로 정하여 주니 쉬 잡아 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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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이 수없이 절하며 은혜를 감사하고 임금께 하직하였다.
바로 그날 출발을 하여 감영에 도착하여, 감사로 부임해서는 각읍에 공고문을 붙였다.
그 내용은
길동을 달래는 것이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사람이 세상에 남에, 오륜이 으뜸이요,
오륜이 있음으로써 인의예지가 분명하거늘,
이를 알지 못하고 임금과 부모의 명을 거역해
불충불효가 되면 어찌 세상에 용납하리요.
우리 아우 길동은 이런 일을 알 것이니
스스로 형을 찾아와 사로잡히라.
아버지께서 너로 말미암아 고칠 수 없는 병환이 들고,
성상께서 크게 근심하시니, 너의 죄악은 가득 차서 넘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나를
특별히 감사로 임명하여 너를 잡아 들이라 하신다.
만일 잡지 못하면
우리 홍씨 집안의 여러 대에 걸친 깨끗한 덕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리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바라나니 아우 길동은
이를 생각하여 일찍 자수하면 너의 죄도 덜릴 것이요,
우리 가문도 보존할 것이니,
너는 만번 생각하여 자수하라."
감사가 이 공문을 각읍에 붙인 뒤 공무를 전폐한 채
길동이 자수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
하루는 나귀를 탄 소년 하나가
하인 수십 명을 거느리고 병영 문 밖에와 뵙기를 청한다 하기에,
감사가 들어오라 하니,
그 소년이 당상에 올라와 인사를 했다.
감사가 눈을 들어 자세히 보니
그토록 기다리던 길동인지라,
기쁘고도 놀라와 주위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고,
손을 잡고 흐느껴 울면서 말했다.
"길동아, 네가 한 번 집을 떠난 뒤
생사를 알지 못하여 아버지께서는 고칠 수 없는 병을 얻으셨다.
너는 갈수록 불효를 끼칠 뿐 아니라 나라에 큰 근심이 되게 하니,
무슨 마음으로 불충불효를 하며 또한 도적이 되어 세상에 비할 데 없는 죄를 짖느냐?
이 때문에 성상께서 진노하시어
나로 하여금 너를 잡아들이도록 하셨다.
이는 피치 못할 죄이니
너는 일찍 서울로 올라가 왕명에 순종해라." 하고
말을 마치며 눈물을 비오듯 흘렸다.
☆☆☆
길동은 머리를 숙이고 말했다.
"제가 여기에 이른 것은 부형을 위태로움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것이니,
어찌 다른 말이 있겠습니까?
대감께서 당초에 천한 길동을 위하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게 하셨던들 어찌 여기까지 이르렀겠습니까?
지나간 일은 말해 봐야 쓸데없거니와,
이제 소제를 묶어 서울로 올려보내십시오." 하고는 다시 말이 없었다.
감사는 이 말을 듣고 한편 슬퍼하면서 한편 공문을 쓰고는
길동의 목에 칼을 채우고 발에 차꼬를 채워 죄인 호송용 수레에 태웠다.
건장한 장교 십여 명을 뽑아 호송하게 한 뒤,
주야로 갑절의 길을 가도록 시켜 올려 보냈다.
각 읍 백성들은 길동의 재주를 들었는지라,
잡아 온다는 소문을 듣고 길에 모여 구경을 하였다.
☆☆☆
이때, 팔도에서 다 길동을 잡아 올리니,
조정과 서울 사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를 아무도 몰랐다.
임금이 놀라서 온 조정의 신하들을 모으고,
몸소 죄인을 다스리는데, 여덟 명의 길동을 잡아 올리니
그들이 서로 다투면서 말하기를,
"네가 진짜 길동이지 나는 아니다." 하며 서로 싸우니,
어느 것이 진짜 길동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임금이 괴이히 여겨 즉시 홍아무개를 불러 말했다.
"자식을 알아보는 데는 아비만한 자가 없다 하니,
저 여덟 중에서 경의 아들을 찾아내라."
홍공이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면서 아뢰었다.
"신(臣)의 천한 자식 길동은 왼편 다리에 붉은 혈점이 있사오니,
그것으로써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여덟 길동을 꾸짖기를,
"지척에 임금님이 계시고 아래로 아비가 있는데,
네가 이렇듯 천고에 없는 죄를 지었으니 죽기를 아끼지 말라." 하고
피를 토하면서 엎어져 기절을 하였다.
임금이 크게 놀라
궐내의 약국에 지시해 치료하게 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여덟 길동이 이를 보고 일시에 눈물을 흘리면서
주머니에서 환약 한 개씩을 내어 입에 드리우니, 홍공이 잠시 후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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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 등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의 아비가 나라의 은혜를 많이 입었사온데,
신이 어찌 감히 나쁜 짓을 하오리까마는,
신은 본래 천한 종의 몸에서 났는지라,
그 아비를 아비라 못하옵고 그 형을 형이라 못하와,
평생 한이 맺혔기에
집을 버리고 도적의 무리에 참여하였사옵니다.
그러나 백성은 추호도 범하지 않고
각 읍 수령이 백성들을 들볶아 착취한 재물만 빼앗았을 뿐입니다.
이제 십년이 지나면 조선을 떠나 갈 곳이 있사오니,
엎드려 빌건대 성상께서는 근심하지 마시고 신을 잡으라는 공문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고, 말을 마치며
여덟 명이 한꺼번에 넘어지므로,
자세히 보니 다 풀로 만든 허수아비였다.
☆☆☆
임금이 더욱 놀라며
진짜 길동을 잡으라는 공문을 다시 팔도에 내렸다.
길동이 허수아비를 없애고 두루 다니다가
사대문에 글을 써 붙였는데, 그 글에다,
"소신 길동은 아무리 하여도 잡지 못할 것이오니,
병조판서 벼슬을 내리시면 잡히겠습니다." 고 하였다.
임금이 그 글을 보고
신하들을 모아 의논하니, 여러 신하들이 말했다.
"이제 그 도적을 잡으려 하다가 잡지 못하고
도리어 병조판서를 제수하심은 이웃 나라에도 창피스러운 일입니다."
임금이 옳다고 여기고
다만 경상 감사에게 길동 잡기를 재촉하니,
경상 감사가 왕명을 받고는
황공하고 죄송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