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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세계의 역동적인 묘사
-조영민의 시세계
김관식(문학평론가)
1. 프롤로그
인류는 수세기 동안 자연에 의존하며 제1차 산업 시대를 살아왔다. 그러던 것이 점차 과학기술문명이 발달하게 되자 자연을 원료로 가공하는 제2차 산업시대로 진보했고, 더 나아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3차 산업 시대, 그리고 오늘날 정보화시대를 열어놓은 디지털 혁명의 시대, 급격하게 다가온 디지털 시대를 바탕으로 기술을 융합한 정보·의료·교육서비스 등의 지식집약형 산업으로 한 제4차산업, 취미·오락·패션 산업으로 한 제5차 산업시대를 열어놓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산업구조는 자연과의 점차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그 속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은 주체성의 상실로 인한 불안감과 고독감은 날로 고조되고, 과학기술문명의 편리함을 추구한 나머지 기계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 주체성을 상실함에 따라 신화적인 상상력이 더욱 절실하게 향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물질적인 풍요를 바탕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물질문명의 향유문화는 무한한 인간의 욕망을 실현함으로써 결국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려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기에 이르렀고, 고질화된 물질적인 가치관은 인간성마저 황폐하게 되었다.
따라서 지구촌의 평화와 공생공존의 사회이념이나 철학은 물론 예술과· 문학 등 분야의 총체적 위기를 가져왔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현대인들의 정체성마저 상실하게 만들어 풍요속의 고독감을 낳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시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하는 담론이 제기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극도의 물질주의 시대, 인간성의 상실마저 외면하고 서로가 하나의 고독한 섬으로 전락하여 서로가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 연결망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 마이크로블로그, 글로벌 모바일 메시지 서비스로 데이터 통신 기능의 이용이 가능한 카카오톡 등의 전자통신매체의 연결망으로 현실 세계을 가상현실로 수용하면서 서로가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마치 신화 속의 현실 공간에서 초현실주의 문화를 각기 창조하며 대중문화를 이끄는 미스미디어의 환상을 쫓아가며 주체성을 상실한 수동적인 인간으로 서로의 감시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에 대한 예견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암시했었다. 미래의 인류는 모든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이 송두리째 감시되고 사람들의 꿈과 무의식조차 “빅 브라더”의 전방위적 감시체계에 의해 조작되는 초전체주의 체제의 모습으로 살아가거나, 푸코가 주장하는 『감시와 처벌』 속의 판옵티콘(Panopticon)을 스스로 자초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예견이었다.
조영민의 시집 『사라지는 것들』은 내시경 카메라로 들여다본 자아의 내면풍경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내면세계에 잠재해 있는 현실적인 갈등의식을 탁월한 시적 감각으로 형상화하여 생생한 묘사력으로 표현해놓은 시들을 엮어놓았다.
제4,5차 산업혁명 시대, 정체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불안의식과 고독감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넘나드는 초현실주의 기법과 경험세계를 역동적인 형상화하여 묘사함으로써 생생한 리얼리티로 재창조해는 레시피의 방법이 독특하고, 특히 자아와 우주의 일체화를 통해 신화적 원형을 추구하는 시정신과 그의 휴머니즘적인 서정성이 육화된 그의 시는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강한 공감과 흡인력으로 다가온다.
공감하는 역동적인 서정시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시집 『사라지는 것들』 중에서 그의 시세계의 특징이 드러나는 17편의 작품을 텍스트로 하여 그의 시세계에 가까이 접근해보기로 한다.
2. 내면세계의 역동적인 묘사
1) 내시경 카메라로 들여다본 자아와 사회의 내면풍속도
21세기는 디지털 정보화 지식사회다. 정보화 사회란 사회를 움직이는 중심 자원이 에너지나 물질에서 정보로 대체되고 정보 기술의 발달로 재화와 용역의 고부가가치화가 이루어지며, 정보의 공유와 배분에 따른 경영의 고도화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말한다.
나아가 최근에는 디지털정보 지식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정보·의료·교육서비스 산업 등 지식집약형산업을 융합하여 제4차 산업시대로, 취미·오락·패션 등의 분야를 접맥시켜 제5차 산업시대가 이미 진행되어가고 있음에 따라 모든 정보가 한순간에 전 지구촌이 공유될 수 있는 열린사회로 진화됨에 따라 개인과 사회가 다 함께 투명해지고, 정보의 공유정도에 따라 특정 지역에 급격한 변화가 예견되는 다가치화 다변화의 시대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노력으로 다가치의 이해와 변화에 적응하는 민감성이 생존과 직결되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인터넷 통신망이라는 동일한 수단으로 연결되고, 다양하게 분화되어 다양한 트렌드에 대한 이해력이 요구되며,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생존할 수 있음으로 해서 불안감과 함께 심리적인 억압을 받고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프로이드의 주장에 의하면, “감각적 인상과 경험과 상황들 속에서 우리들에게 불안하게 하는 낯설음이라는 감정. 다시 말해, 두려운 낯설음이라는 감정은 공포감의 한 특이한 변종인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오래 전부터 친숙했던 것에서 출발하는 감정이다.”
이러한 불안의식은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문화현상으로 고독감으로 자리 잡아 현대 사회의 일상 전체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조영민의 「고양이 카메라」는 집을 나간 길 고양이들이 인간을 감시하는 주체가 되는, 즉 인간이 만들어낸 디지털전자문명의 도구가 마침내 인간을 감시하는 인간의 주체가 객체화되고, 인간이 만들어낸 고양이 카메라가 주체화가 된 주체와 객체가 변화된 사회양상을 생태계의 파괴당한 고양이를 통해 감시의 카메라로 푸코의 판옵티콘이 되는 시대는 결국 “내 모든 추억은 감옥으로 가겠네/ 지금 내 모든 추억은 용의자네”로 불안의식을 낳게 된다는 사실을 진술하고 있다.
판옵티콘적 사회의 권력을 쥔 「고양이 카메라」는 어느 누구도 규범적인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박제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규범적 판단에 대해 거부 하는 순간, 그 사람은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낙인찍혀버리게 된다. 판옵티콘이란 본래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감옥을 일컫는 말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을 합성한 ‘모두가 다 본다’라는 용어인데, 감시자 없이 죄수들끼리 서로를 감시하는 감옥이다. ‘빅 브라더’란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회를 감시, 통제하는 관리권력 또는 사회체계를 일컫는데 원격스크린, 도청장치 등을 이용하여 대중에게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게 디는 사회구조로 조지오웰의 소설이 현대사회에도 적용된다고 보는 까닭 중의 하나는 컴퓨터, 정보통신의 발달로 도청이나 감시카메라가 일반 영역에 차지하는 영향이 늘어남에 따라 빅 브라더 사회가 현재 우리 삶에서도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을 뱅뱅 도네 내 집의 소화불량 같은 저 고양이
고양이 눈을 보면 찰칵찰칵 찍힌 기분이네
저놈의 고성능 눈빛 카메라
태엽을 감아놓은 듯 밤에도 불빛이 도네
멀리 있어도 녀석의 눈빛에 빨려드네
내가 키운 흑백 풍경들을 끌어당겨
시시때때로 여러 각도에서 찍어대네
면발처럼 팅팅 불어터진 내 그림자가
나를 부축하고 대문에 들어설 때 한 컷
담벼락에 걸린 달빛도 한 컷
소파에 누워 파리를 쫓을 때도 한 컷, 요즘은
집어등 같은 눈으로 마음에 잡힌 주름들과
녀석의 정보가 담긴
내 몸의 내부를 수시로 들락거리네
그곳에 숨겨둔 테이프, 가발들이 찍히네
갈수록 소화되지 않았던 것 어설프게 묻었던 것들이 드러나네
몇 년 전 누군가를 할퀴던 손톱에 앵글을 맞추고
플래시를 터트리네. 나의 모든 추억은 위법이었네
-「고양이 카메라」 일부
마치 「고양이 카메라」라는 첨단 과학기술 기기인 내시경 카메라로 들여다본 자아의 내면풍경을 “빅 브라더”의 사회의 시각으로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빅 브라더”라는 권력자의 시선으로 화자의 내면 풍경을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화자의 과거가 낱낱이 들어나는 불안의식과 공포감으로 나타난다. 그럼으로써 마침내 화자는 “추억=감옥”으로 감금함으로서 자유를 얻으려는 “잊혀질 권리”를 갈구한다. “잊혀질 권리”라는 말은 인터넷에서 생성·저장·유통되는 개인의 사진이나 거래 정보, 개인의 성향과 관련된 정보에 대해 소유권을 강화하고 이에 대한 유통 기한을 정하거나 이를 삭제, 수정, 영구적인 파기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는 『잊혀질 권리』에 대해 “유사 이래로 인류에게는 망각이 일반적이었고, 기억하는 것이 예외였다. 그렇지만 디지털 기술과 전 지구적 네트워크 때문에 이 균형이 역전되었다. 오늘날 널리 퍼진 기술의 도움으로 망각은 예외가 되어가고 있으며 기억이 일반적인 게 되어가고 있다.”라고 『잊혀질 권리』로서의 남에게 드러내놓고 싶지 않는 추억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조영민 시인의 「고양이 카메라」 에서 추억의 위법성 담론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조시인은 자신의 내면세계의 풍경을 자연현상을 보는 시각과 일체화시켜 「고양이 카메라」로 감시하는 ‘빅 부라더’의 권력주체로 역동적으로 묘사해내고 있다.
도시의 아웃사이더 서민의 삶을 내시경 카메라의 시선으로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나는 어디론가 날마다 인출되었지요
몇 해 전 햇빛과 나비를 꾸어간 친구는
맑은 가을을 송금해 준다더니 감감무소식,
도시에선 도무지 자산이 붇지 않아요
사람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제 몸의 살구꽃 향기나
하루하루 반딧불이 빛을 탕진하며 살아요
변두리로 이사 한 나는 소주병보다 먼저 쓰러져
모서리를 껴안고 잠들 때가 많았어요
이제는 깨진 적막을 치우고 꽃잎 넣어 도배하고
낡은 의자에 노루표 페인트를 칠하고 싶어요
마당 입구는 까치 부부에게 세놓고
지난날 집의 심장 소리 같은 냉장고 플러그를 뽑아
텃밭 냉장고를 가동하고 싶어요
누구도 받지 않던 매미 전화벨을 받아 들 때는
창으로 부침개 냄새를 흘리고 싶어요
날이 어두우면 밝은 별 하나만 켜고, 그 빛으로
대처로 인출된 아이에게 가고 싶어요
-「봄의 은행銀行」 일부
익명에 의해 인출된 봄은 “맑은 가을”을 송금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도시의 생활은 자신이 증식되지 않고 “사람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제 몸의 살구꽃 향기나/ 하루하루 반딧불이 빛”으로 유추되는 조상들의 생활근거지이고 화자가 태어난 고향의 유년시절의 추억을 탕진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아웃사이더의 소외감에 갈등을 하게 되고, 치솟는 전세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변두리를 전전하게 되는 정서의 상실감을 벗어나기 위해 “변두리로 이사 한 나는 소주병보다 먼저 쓰러져/ 모서리를 껴안고 잠들 때가 많았어요”라고 몸부림쳤다는 사실을 실토한다.
그는 도시 공간에서 “마당 입구는 까치 부부에게 세놓고/ 지난날 집의 심장 소리 같은 냉장고 플러그를 뽑아/ 텃밭 냉장고를 가동하고 싶”다는 향토적인 유년시절의 생태공간에서 살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웃과 소통이 없는 단절 공동주택의 도시문화에서 “누구도 받지 않던 매미 전화벨을 받아 들 때는/ 창으로 부침개 냄새를 흘리고 싶”은 서로가 소통하며 정을 주고받는 휴머니즘의 세상을 꿈꾸고 있고, “대처로 인출된 아이”를 찾아가겠다는 소시민의 소망을 내시경 카메라로 들여다본 자아와 사회의 내면풍속도를 형상화해냈다.
2) 시공간을 넘나드는 경험세계의 역동적인 묘사
조영민 시인은 경험세계를 역동적인 묘사력으로 재창조해는 독특한 스타일의 산문시다. 외형묘사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을 일체화시켜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자유 분망한 그의 내면세계를 표출해낸다.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복합적인 심리를 정확한 관찰력으로 묘사해내는데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든다. 사회적인 현실의식도 자연과 버물려서 조형을 해내는 마술을 부린다. 「수상한 달」에서는 ‘무면허약장수=능변가’로 등장시키고 그가 파는 만병통치약은 환한 가루약과 여름철 잘 말린 향기를 섞여 제조해 “늦은 밤 창에 기댄 사람”, 즉 절박한 고통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만변통치약이었다는 역설과 “그가 고치지 못한 병은 현대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었지”라는 익살로 시를 읽는 재미성을 가미하고 있다. 현대시가 독자와 멀어진 까닭이 난해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조영민의 시는 익살과 역설을 구수한 입담을 섞어 진술하기 때문에 감칠맛을 있다.
“그는 막대한 부를 축적 했어 은밀히 찾는 사람들도 많았었지 독수리가 이사 간 불암산 선바위 밑에 펜션도 마련해두었지 하지만 위기는 빨리 왔어 곳곳마다 아파트 신축현장이 들어서자 철근들 속에서 린치를 당했지”라고 불암산 선바위와 아파트 신축현장을 대비하여 달이 뜨고 지는 변화와 크기의 변화를 건설사를 운영하는 사장과 은유함으로써 달의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놓고 있다.
요즘은 가짜들이 너무 판을 친다지 스키장이나 마천루의 불빛들 빛이 아니면서도 빛인 척 빛을 모조해 파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도시에서 그의 약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아 빨대로 쪽쪽 빨아 팩처럼 일그러진 도로변의 달 더 이상 재기는 어려울 것 같은 달 그래서 몇 년째 달은 뜨는 둥 마는 둥 도시를 조용조용 맴돌지 날마다 수상스런 저 달, 누군가에게 이 폐암 같은 도시를 다 팔아넘길지도 몰라
-「수상한 달」 일부
스키장, 마천루의 불빛과 만병통치의 가짜약과의 동일한 이미지, “빨대로 쪽쪽 빨아 팩처럼 일그러진 도로변의 달”은 수상한 달이며 “폐암 같은 도시에 팔아넘길지도 모”른다는 폐암과 희뿌연 매연, 그리고 도시의 환락을 상징하는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불빛, 그 이면의 병든 도시를 달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낯설게 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 인간사의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엮어 편집해놓은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주체 및 경계를 해체하여 자연과 인간의 삶을 믹스하여 형상화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다양한 상상력의 영역을 확대시켜놓고 있다.
추억이 어두울 때면 나무 하나를 켭니다
플라타너스는 빛이 가장 환한 혈족이지만
기름이 떨어져도 어둠으로 불을 켤 수 있지요
그 어둠으로 골방을 비추면, 곧장
사라지는 것들의 빨간 내복이 보입니다
선반 위 기도하는 인형과 머리맡에 누워있는
할머니의 타구 안쪽까지 환하게 어둠을 켜 놓으면
그런데, 할머니는 왜 가까운 미래를 소등 했을까요
주름 골짜기 사이마다, 언뜻언뜻 켜져 있던
민가의 불빛들도 이제 더는 보이지 않아요
저수지 속으로 유성들이 하나, 둘 꺼지고 나면
낯선 풀벌레 소리는 점점 환해지곤 했지요
언제나 정전된 과거를 과다 복용하는 할머니
싱싱한 염문들 모두 말라버린 빈집 마당 같은 치마폭에
얼마 남지 않은 시든 풀잎들이 얼비치곤 했어요
불 꺼진 노을은 다음 생으로 가는 플랫폼 인가요
가끔 골방의 적막을 열 때마다
오래전 떠나간 등 굽은 시간들과 재회하는 기분이에요
그녀, 진통제 같은 집 한 칸 마련하려
서둘러 후생의 램프를 장만했던 것인지, 밥알 흘리는
할머니가 오래 앉았던 그늘 밑엔
문고리도, 유리창도 죄다 그녀를 따라가고 없네요
이런 날이면 나는,
가끔씩 나의 길도 단 한번 멀리까지 열어보기 위해
잔가지 무성한 나무를 켜듭니다
벌써, 내 주변은 온통 타들어가는 것들 천지네요
- 「나무 램프」 전문
「나무 램프」는 유년의 경험세계다. 과거의 세계를 탐험하는 탐험가처럼 절묘한 세부묘사와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그런데, 할머니는 왜 가까운 미래를 소등 했을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낯선 풀벌레 소리는 점점 환해지곤 했지요.”의 청각적 이미지의 시각적 이미지로의 변환묘사, “정전된 과거를 과다 복용하는 할머니”에서의 시간의 전기에너지화와 시간을 “과다 복용”하는 미각적 이미지, 그리고 그러한 할머니라는 사물화, “싱싱한 염문들 모두 말라버린 빈집 마당 같은 치마폭”에서의 “싱싱한(시각적 이미지의 수식어)와 염문들(청각적 이미지의 복수형태)” 등등 초 공감각적인 상상력으로 자유 분망한 이미지들을 결합해서 시적인 탄력이 넘치는 시로 변신해놓고 있다. 이러한 탁월한 시적인 형상력과 언어의 탄력성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그의 독창적인 묘사력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조영민 시인만의 개성이다. 이러한 장점은 근래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시적 묘사력의 鬼才라 해도 지나친 찬사는 아닐 것이다.
3) 자아와 우주의 일체화를 통한 신화적 원형 추구
조영민 시인의 시 창작방법은 자아와 사회현상의 내면풍속도를 정밀묘사법에 의해 형상화해내는 시적 묘사력의 마술에 있다. 그만큼 독창적인 시적 감수성이 탁월하고 시적인 기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고 예견 된다. 시작과정에서 자아와 우주를 일체화시고, 과거의 경험을 끌어내어 변용하고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형상을 빚어내는 언어의 마술사다운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러한 표현방법에 있어서 감각적인 표현으로 사물의 이면을 정밀하게 드러내는 상상력의 원천은 신화적 원형을 추구하려는 그의 피나는 시적 産苦에 있다고 본다. 자아와 우주의 일체화를 통한 신화적 원형을 추구하는 그의 시정신은 신화적 상상력으로 시작품으로 현현함으로써 신화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크나큰 감동과 울림으로 서정적인 충격으로 다가온다.
「가을史」에서 “카드를 슬쩍 바꿔치기한 날씨였다”처럼 날씨를 인간의 생활한 장면인 “카드 바꿔치기”로 묘사한다든가 “돌 틈에 꽃이 만발하고 냇물에 간밤 별들의 겨드랑이 냄새가 날 때/ 판을 뒤엎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는 습관적인 카드놀이의 행위를 가지고, “돌 틈에 꽃이 만발”한 자연현상과 “냇물에 간밤 별들의 겨드랑이 냄새가 날 때”라는 신화생성의 순간을 감각적이고 역동적으로 변용하고 형상화하여 묘사와 진술로 풀어내는 그의 감각적인 재능은 현대시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현대시가 건조한 문명의 잔해를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 정서의 사막화가 진행되어 독자들이 외면하는 상황에서 독자를 유인해 시적인 감동과 정서의 샘을 자극하여 시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안 될 운명적인 인연으로 맺어줄 묘책을 그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인간의 원형으로 복귀시키는 주술적인 힘의 위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 「가을 호수에 앉아」에서 물활론적인 사유를 통해 “호수는 울렁울렁 제 몸에 슬픔을 가두고 머리맡에 달 하나를 띄워두고 나는 달을 접고 또 접어 물갈피에 감춘다”라고 호수의 이미지를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역동적으로 활성화시킨다.
또한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지나간 후 그의 냄새는 남는다”는 불가시한 바람의 후각적인 이미지로의 변형은 토템사상이나 샤머니즘의 원시적인 신화적인 원형을 추구하는데서 비롯되며, 결국 시인 자신이 시창작 행위를 운명으로 알고 행하듯이 인간의 원시형태 사고라고 할 수 있는 물활론적인 발상과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자연현상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원시성은 「저녁은 운명 같다」는 인간의 변함없는 원형에 대한 확신에 찬 “저녁”에 대한 단정이다. 모든 원시적인 신화가 활성화되는 때는 어둠이 둥지를 트는 “저녁” 때이다. “저녁”이 되어야 하늘에는 달과 별이 눈을 뜨게 되고, 어둠 속에서 신령들이 활동하게 된다. 바로 인간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두려움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이때를 놓치지 않는다. 새로운 형태의 원시적인 신화를 창조하는 귀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행」에서 사람들이 자주 가는 백화점이라는 현실공간과 히말라야 등반의 이미지를 융합한 신화적인 상상력은 그가 일상에서 창조해내는 신화다. 그는 산행은 서랍의 수납장에 “히말라야 바람의 취사도구와/ 패션모델 같은 구름의 옷을 개어 놓”은 현실공간에 신화를 정리하는 작업으로 시를 통해 신화적인 상상력의 유발하는 행위를 묘사해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을 신화적인 상상력의 공간으로 강하게 빨아들이는 싱크홀로 작용한다.
그의 이 같은 신화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능력은 유년시절부터 비롯된다. “벤치에서 불량한 바람 서넛이/ 학급문고 같은 하루를 뒤적이고” 있는 「수상한 봄」에서도 알 수 있으며, 그가 태어난 장흥 유치의 덕산리는 신화적인 상상력의 원천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그는 자신의 고향에서 「햇살을 찾아서」나선다. 이러한 사향의식은 신화적인 공간으로 도시화된 공간에서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병적인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하여 도덕성이 타락한 오늘의 현실공간을 병으로 사유하는 시인이지만, 다른 한편 현실 공간에 사는 다수의 사람들은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혼자 중얼대는 시인의 행위가 병적으로 보일지도 가정을 하고 있다.
모두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게 인식되지만 결국 신화적인 원형을 찾아가는 죽음이라는 생명의 한계는 우리에게 무한한 서정성의 보고일 수밖에 없다. “살구꽃 향기를 널어 말리고 절뚝절뚝 논둑길을 걸어오면/ 머큐로크롬을 발라 주고 반창고를 감아주던 내 유일한 주치의 햇살”처럼 그는 숙명적으로 “살구꽃 향기를 널어 말리고 절뚝절뚝 논둑길을 걸어”가는 현실공간의 상처를 안고 걷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신화적 상상력을 제공하는 신화소인 유년의 공간은 「꽃점」에서도 나타난다. “내가 배울 국어 산수 자연의 기초이자 선수과목인 기다림에/ 매번 낙제했고/ 시나브로 잠이 들면 붉은 노을이었지”라는 과거 유년의 독백적 진술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고고학자처럼 유년의 공간에서 귀중한 상상력의 보물을 캐내는 작업을 기록한 「출토기」에서 “다 쓴 치약 같은 햇볕에/ 창(窓)이 오래 버려두었던 상처들이 드러나고 있어요.”라고 토로하고 그가 발굴해낸 상상력의 공간을 “사라졌던 길들/ 깨진 기와들/ 죽은 잎사귀들”이라고 과거의 유물들을 꺼내고 있다. 일한 행위들은 자아와 우주의 일체화를 통한 신화적 원형을 추구하는 그의 시작업과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현대인의 정체성 상실에 대한 불안의식과 고독감
조영민 시인이 시를 쓰는 창작행위는 현실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시인은 현실공간에서 고독감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감수성이 예민한 촉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시는 내시경 카메라로 들여다본 자아의 내면풍경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내면세계에 잠재해 있는 현실적인 갈등의식을 생생한 묘사력으로 형상화한 시로 현대인들의 정체성 상실의 불안과 고독감을 드러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타인들의 상처를 공감을 통해 치유한다.
그는 이제 “휴일이면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어른이 아이가 되는/ 사내아이가 되고 아줌마가 되고/ 좌판이 되고 밤나무 그늘 밑의 노인이 되는/ 그 헛기침을 배워가는 불혹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는 내과 의사처럼 내시경카메라를 들고 수년 동안 곳곳의 공간을 검진하고 다녔다. 그가 검진하고 다닌 공간은 때로는 “길이 없어지고 몸 안으로 새 길이 난다/ 그 길속에서 길을 찾는다”는 상상력의 창조적인 공간을 탐색하다가 「해거름」이 된 것이다. “당신은 어스름에 나갈 때마다 꼭 종이처럼 방을 구겨놓지/나는 그것을 다 읽느라 편두통이 왔어”라는 시 창작의 고통을 겪으며, “당신의 환한 오른쪽 어딘가에 잠들고 싶었지만/ 내 문들은 덜컹거리는 것들이 많았어/ 제대로 닫히는 문들이 하나도 없었어”라는 진술을 할 덜커덩거리고 재대로 닫히지 않는 고장 난 문을 단 낡은 집에서 「해거름」을 맞이하는 쓸쓸한 자신을 뒤돌아보고 회한에 젖는다. 그는 자신의 창작의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저녁이 팽팽한 테잎처럼 감기면 방이 천천히 움직여요. 볼펜은 나에 대해 쓰고 싶어 안달이에요. 책장의 '시베리아 독수리'는 내 몸을 노리는 듯 잔뜩 발톱을 움켜쥐고 있어요. 건너편 청소기는 언제 날 빨아들일지 몰라요. 태엽이 천천히 풀리고 달이 떠오르면 방은 부화장이 되어요 나는 나도 모르는 나를 계속 낳아요 방 안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너무 많아져요. 연필을 깎다 칼에 베인 후 없어졌던 나, 참새 혓바닥 같은 학교 종소리에 신발을 잃어버렸던 나. 꽁꽁 언 골목의 모서리를 되돌아오다 주머니에서 잃어버렸던, 나 나 나들을 만나요 나는 바쁘진 않지만 수많은 동생을 둔 고아원의 큰언니처럼 쉴 새 없이 나를 돌보아요 옷을 한 뼘 한 뼘 기워주고, 깍지 않는 다른 쪽 발톱을 깎아주어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곱게 따주어요 인형들을 만들어 주어요 밤을 꼬박 새워요 팽팽했던 테잎이 느슨해지는 아침. 밤이 순식간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요 내가 곳곳에서 타인으로 녹아 내려요 돼지 떼 같이 킁킁 거리는 해는 녹아내린 내 발부터 머리까지 꼼꼼히 핥아 먹어요. 그동안 내가 너무 많았어요.
-「타인의 방」 전문
그의 원형적인 상상력의 공간인 유년의 공간을 방으로 상정하고, 고정된 방을 움직이는 방으로 환상하여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초현실주의적인 상상력으로 볼펜으로 글 쓰려는 창작욕을 불태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의 방을 달이 떠오르는 부화장으로 환상하며 고아원의 아이가 된 고독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인형들을 돌보는 유년시절을 재생적인 상상력으로 묘사하여 자아가 많은 다중인격체로서의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속에서 정체성 상실의 불안감을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밤을 핥아 먹는 행위로 묘사하고 있다.
「타인의 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불안과 고독감에서 몸부림하는 창작의 행위는 「11월」이면 “내가 가꾸었던 드라마나 물 주었던 책의 활자들이/ 하나둘 잎이 맺히고 줄기가 올라오는 이 계절/ 잘못 찾은 집배원 같은 어둠이 창으로 기웃거리는 어스름.” 책의 활자로 독자들에게 배달된다. 그러나 자꾸만 창을 기웃거리는 어스름의 고독감에 빠진다.
그는 이러한 정체성 상실의 불안과 고독감을 어찌 보면 오히려 좋아하고 애린」하고 있었음을 진술한다.
앉았다 간 자리에 펑퍼짐한 침묵이 앉는다
빗살무늬의 방석이 보이고
그가 앉은 곳은 무늬들이 대신 이야기한다
무늬들마저도 침묵할 때
어둠의 실반지 낀 손가락이 쓰다듬고
밤새도록 어둠과 무늬는 또 하나의 방석을 짜고
아침이면 나에게 내놓는다
어둠도 잘 짜여진 시나리오 같은 것인데
나는 어둠을 바람 같은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애린愛悋」 일부
“앉은 곳”이라는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방석의 “무늬”이 이야기를 나누듯이 “밤새도록 어둠과 무늬는 또 하나의 방석을 짜고/ 아침이면 나에게 내놓는다”는 초현실적인 환상의 결과물을 소유하는 행복감은 불안과 고독감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 기쁨일 것이다.
그는 “빅 브라더”의 전방위적 감시체계에 내시경 카메라로 자신과 이웃의 공동체험공간인 유년시절을 재현하고 다시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자아와 우주를 일체화하여 보여줌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한 자기 정체성 찾기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3. 에필로그
현대는 과학기술문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첨단 디지털매체의 시대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과학문명의 편리함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며, 자연과 투쟁하고 더불어 살아온 생명의 신화를 잃어버리고 안일한 일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 안일함의 이면에는 조영민시인의 시 「고양이 카메라」처럼 집을 나간 길고양이들이 인간을 매서운 눈초리로 감시하고 있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소외당한 고양이의 삶처럼 지구촌의 주인인 인간이 자기 주체를 첨단디지털과학 문명의 기계들에 자리를 내어주고 객체로 전락한 주객전도의 불안과 고독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방식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들의 다양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디지털전자문명의 도구가 마침내 인간을 감시하는 주체가 빅 브러더의 실체인 길고양이 카메라가 주체화가 된 주체와 객체가 뒤바뀐 사회양상을 생태계로 소외당한 고양이로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위주의 생태관의 사회구조에 의해 생존을 박탈당하고 쫓겨난 무수한 생명체의 상징물로서의 길고양이와 첨단디지털기기인 감시 카메라를 합성한 「고양이 카메라」라는 푸코의 판옵티콘이 되는 시대의 불안감을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현대인들의 자성적인 사고와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창조적인 작업들을 통해 조영민시인은 인간으로써의 주체성을 찾고 잃어버린 인간성을 찾아가는 길을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안내한다. 그 길은 유년의 체험과 사향의식을 바탕으로 한 과거 경험의 형상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이러한 경험들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재현함으로써 인간성의 원형을 찾아가는 시창작업의 과정으로 형상화하여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면세계의 역동적인 묘사와 시적 형상화로 자아와 사회현실의 이면을 내시경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곳저곳의 숨어서 들어나지 않는 내면풍속도를 들추어내는 작업을 해왔으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자유 분망한 상상력으로 경험세계를 농밀한 서정성을 압축하고 형상화하여 감각적으로 구체화시키기 위해 역동적인 묘사기법을 차용했다.
이러한 그의 시 창작방법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이다. 특히 자아와 사회현상을 일체화시키고 융합하여 내면풍속도를 정밀묘사해내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경험세계의 역동적인 묘사력은 마술에 가까울 정도로 독자들을 공감의 블랙홀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은 놀랍다.
조영민 시인, 그만이 레시피 할 수 있는 독특한 묘사력으로 자아와 우주의 일체화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로 명확하게 보여주는데, 그것이 가능해진 까닭은 신화적 상상력에 의한 원형을 가시화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자신의 시 창작 행위에 따르는 고통을 타인에게 형상화하여 보여줌으로써 정체성 상실의 불안감과 고독감에서 벗어나는 길을 안내한다. 자연과 공존하는 원시지향의 세계를 향한 그의 집념은 오늘날 현대인이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원초적인 원형으로서 고향이며, 그의 신화적인 상상력의 원천임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원형을 탄생한 공간으로서의 고향을 찾아감으로써 오늘날 첨단과학문명 속에 주객전도가 되어 인간성을 상실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있다.
※ 참고 문헌※
1. 프로이트, 정장진 옮김,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열린책들, 1996.
2.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잊혀질 권리』, 지식의 날개, 2011.
3. 김인숙, 남유선 지음, 『4차 산업혁명, 새로운 미래의 물결』, 호이테북스, 2016.
4. 미르치아 엘리아데, 『신화와 현실』, 한길사, 2015.
5. 신동욱, 『신화와 원형』, 고려원, 1992.
첫댓글 내면세계의 역동적인 묘사
^0^좋은 자료 입니다 모셔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