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반 학습 열기
전날 일기 예보에 이른 아침부터 비가 온다는 오월 중순 금요일이다. 자연학교 등교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야외 학습이 대부분이라 강수가 예보되어 일찌감치 실내 수업하기로 마음을 정해 놓았다. 여름이 길었던 작년에는 더위를 명분 삼아 가술 평생학습센터 작은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올봄에도 몇 차례 비가 오거나 황사가 심한 날 아침나절 도서관에 머물기도 한다.
어제는 이른 시각 우암리 들녘 비닐하우스 재배 수박 수확 현장에서 상품성이 처진 것이 보여 수집해 집으로 가져와 잘 먹는다. 크기만 작을 뿐이지 당도나 숙성은 완전해 최상급 수박과 마찬가지였다. 이 수박을 대산면 행정복지센터 청사를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아동안전지킴이 동료에게도 나눠 농사는 농부가 짓고 들녘에서 수집 나르느라 수고는 했지만 나눔 인심은 내가 들었다.
날이 바뀐 금요일 새벽에 날씨 상황을 검색해보니 비는 아침 일찍부터 오긴 오는데 바람은 약하게 불었다. 바람 세기에 신경이 쓰임은 도서관 열람실 문을 열어주기 전 들판을 누벼 어제 봐둔 수박 하품을 더 수거해 어디로 보낼까 싶어서다. 아침밥을 일찍 해결하고 창이대로로 나가 창원역 기점 2번 마을버스 첫차를 탔다. 그곳 출발 시각이 6시 반이니 남들보다 일찍부터 서둘렀다.
미니버스에는 어제 아침 그 시각 같은 차를 타던 아낙과 갔다. 그는 남모산에서 내리면 강 건너서 와 대기한 승용차로 밀양 명례로 비닐하우스 일을 나가는 분이다. 나눈 대화 속에 수박 비닐하우스 수박 순을 질러 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나는 수확을 마친 대산 농장에서 수집상이 두고 간 하품을 챙기러 가는 길이라 했다. 그는 이즘은 들녘에서 흔히 보는 풍경임을 잘 알고 있었다.
모산에서부터는 혼자 남아 유등 종점을 거쳐 동곡과 용등을 거친 월림를 지난 덕현에서 내렸다. 가는 빗줄기에 바람은 약해 우산을 펼쳐 쓰고 걸어도 어려움 없었다. 유등으로 향하는 차도에는 토목공사 현장으로 가는 대형 트럭들이 질주했다. 멀리 들녘이 끝난 곳에는 대산면 소재지 아파트단지가 보였다. 들녘으로 드는 농로를 따라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단지를 거쳤다.
토마토는 수확을 마치고 곧장 오이를 심어 넝쿨이 뻗어갔다. 주키니 호박은 무지개처럼 아치형 철골을 세운 터널을 만들어 넝쿨이 타고 가도록 키우는 이색 농법이었다. 잎줄기가 무성한 당근은 땅속뿌리가 토실해져 갈 때였다. 그곳 어디쯤부터 수박을 거둔 비닐하우스들이 보였다. 어제 다녀간 비닐하우스 안은 수박 넝쿨이 하루 새 말라 시들어도 뒹구는 하품 덩이는 그대로였다.
여러 개 가운데 배구공 크기만 한 예닐곱 개를 골라 배낭에 두 개 채우고 나머지는 장바구니 대용 보자기에 싸 묶어 손에 들었다. 한 손은 우산을 들고 한 손은 묵직한 짐을 들고 들녘을 한참 걸어 아직 업무가 시작되지 않은 대산 행적복지센터에 닿아 손을 씻고 숨을 돌려 쉬었다. 가야 할 곳인 노인대학 2층 평생학습센터로 이동하니 9시 맞춰 직원은 하루 업무를 시작하려 했다.
센터장과 사서와 인사를 나누고 지난번 다다기 오이에 이어 수박 덩이를 풀어 안겼다. 오늘 열람실에서 여는 문해반 강좌 할머니들과 나누십사고 했다. 나는 컴퓨터를 둔 곳으로 비켜 앉아 어제 동네 서점에 산 손평원의 ‘아몬드’를 펼쳐 읽자 잠시 뒤 할머니가 나타나고 강사는 휴대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분이 왔다. 그새 글을 배워 익혀 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침나절은 마을도서관 열람실에서 보내고 오후는 빗줄기가 약하다가 세차지기도 하는 속에 들녘 초등학교 근처 머물며 ‘문해반 학습 열기’를 남겼다 “문해반 할머니를 한동안 못 뵙다가 / 들녘에 파지 수박 짐 지고 안은 채로 / 비 오는 아침나절에 공부방을 찾았다 // 지난번 격려 삼아 오이를 전한 이후 / 정해진 학습 진도 어느새 쑥쑥 나가 / 폰으로 보내는 문자 배움 열기 뜨겁다” 25.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