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차 산행기(2012.6.22.유엔기념공원, 부산박물관)
간 곳 : 대연역-부산박물관-유엔기념공원
참가자 : 태화, 춘성, 흰내, 중산, 난곡. 혜종, 청암, 석당, 국은, 매암, 연암, 벽암 이상 12명
전국이 찜통이라고 언론에서 연일 경고 방송을 하지만
우리 부산은 24-5c도 정도로 야회활동에 별 지장은 없다.
지난 등산회에서부터 오늘의 산행에 관련된 일체 일들을 자임했던
춘성이 반장역을 맡아 대연역에서부터 앞장서서 인도한다.
춘성은 대연역 출구를 나와 처음 부딪힌 빌딩하나를 가리키며 자기 집이라고 한다.
하도 유머에 뛰어난 사람이라 때로는 농담도 진담처럼 들리게 하니
분별에 혼란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 되었다.
중산에게 물어본 다음에야 농담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부산박물관에 들어서니 “6.25특별전”이란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고
박물관의 분위기가 진하게 풍겼다.
“부산박물관은 부산의 어제와 오늘을 알리고
우리 문화와 전통을 발전, 보존하기 위하여 1978년 7월 11일에 개관하였습니다.
국보 2점, 보물 1점, 시지정 문화재 16여점 등 총 30,000여 점의
고고, 미술, 민속, 인류학 등 다양한 역사 자료를 수집, 보관, 전시,
연구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 홍보하고 있습니다.
또 산하에 복천 박물관, 근대역사관, 임시수도기념관,
동삼동패총전시관 등 전문박물관을 두어 유적 보존 및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안내 팜프렛
문화재해설사?인 중년여인의 해설을 들으며 제1전시관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춘성이 앞장서고 그 뒤를 질서 있게 졸졸 따라 다니며 해설을 듣고 간혹 질문도 했다.
선사실-삼한․삼국실-통일신라실-고려실-조선실을 차례로 관람하고
실외의 그늘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유엔기념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유엔기념공원은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 유일의 성지로서
유엔기념공원을 잘 관리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뿐 아니라
관련국과의 외교관계에 초석이 되며 교육의 장,
관광명소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안내 팜프렛
공원은 기념관, 추모관, 유엔군 위령탑, 제2기념관, 무명용사의 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나 우리는 시간상 건물 내부 관람은 하지 못하고
전몰장병 유해를 국가별로 안장한 기념공원을 주로 관람하였다.
볼 것도 많고 더 알아보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시간을 절약하여
압축적 학습을 하였으나 관람한 시간은 2시간 반이 지나 13시가 다 되었다.
춘성이 예약해 둔 식당에 들어가 두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정식에 생탁을 곁들이니 공부한 내용도 땀도 피로도 사라진다.
혜종이 한참 동안 보이지 않기에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한참 만에 석당과 함께 들어온다.
석당은 “자주 오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풀려고 일부러 들렀다”고 한다.
정말 고마운 친구이고 진한 정에 감사한 마음이 솟아난다.
피로도 풀리고 배도 부르고 땀도 식으니 재담의 대가들이
각자 한두 가지의 유머를 풀어 놓는다.
산행기에 쓸려고 열심히 듣고 머릿속에 다져 넣었는데
웃다가 보니 아무것도 남은게 없다.
웃음이 최고의 소화제이며 망각촉진제도 됨을 알게 해 주었다.
중산에게 물어보고 다시 다져 넣었는데
하나도 글로 써지지 않는다.
못 들어 아쉬운 사람은 다음 산행에 참가하면 후속프로의 공연이 있을 겁니다.
나이 들고 높은 훈장 받은 국가의 원로급들이니 입장료 관람료 모두 무료인데
점심값 술값 모두 춘성이 계산했다면서 모두의 수업료를 대납해 버린다.
운동 잘 하고, 공부 잘 하고, 술 밥 모두 잘 먹고, 많이 웃고, 우정 다지고
이 많은 것들을 다해도 차비까지 공짜니 돈 한 푼도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말하지만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는 모임은 찾지 못 할 것이니
동기 여러분! 매주 금요일을 잊지 마세요.
다음은 괴정역에 모여 다대포 아미산과 낙동강하구 전망대를 관람합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첫댓글 산행기의 전범이올시다. 사진과 글이 있으니 남계의 글만의 산행기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난곡의 산행기 - 산행기란 이래야 하는 것. 잘 보고 잘 읽고 갑니다.
옛날 도로가 포장되기 전에는 한길<차나 많을 사람이 다니는 큰 길>은 차바퀴에 길이 파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굵은 자갈을 깔았으나 그래도 파이는 것은 어쩔 수 없어 1년에 두번씩은 부락민을 동원하여 자갈을 가져다 덮는 공사를 했는데 이를 자갈억사라 했고 노동력이 없는 어린이나 노인의 참가도 <참가>로 인정해줬는데, 이와 같이 형식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을 "자갈역사 나간다"하고 했는데, 지금 산행기를 그런 식으로 쓰고 있다네. 남계가 빨리 나와서 산행분위기와 친구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기를 바라는 "SOS" 보내는 바이네,
나이가 들어감에 더욱 성숙해 진 탓인지 등산장소가 의미있는 곳으로 택해졌군요. 오늘의 영광을 지켜 준 호국용사들의 넋을 잠시나먀 찾아 준 애국정신 길이 만만세세 할 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