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건강의 비밀, 손글씨에 있다: 디지털 시대 되찾아야 할 아날로그 습관
: 2025-02-25 17:33
http://www.hcnews.or.kr/news_gisa/gisa_view.htm?gisa_category=02010300&gisa_idx=88231
스마트폰과 키보드가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 손으로 글을 쓰는 행위는 점점 더 희귀해지고 있다. 과거 일기장을 꾸준히 채우거나 편지를 손으로 썼던 습관이 사라지며, 많은 이들이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글쓰기, 특히 손글씨가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놀라운 뇌 건강 효과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지 기능 향상부터, 정서적 안정, 심지어 치매 예방까지, 글쓰기는 우리 뇌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쓰기가 인지 능력을 키우는 이유
2022년 발표된 한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손글씨로 노트를 정리하는 학생들이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사용하는 학생들보다 퀴즈 점수가 더 높았다(Lau, 2022). 또다른 연구에서도 손글씨로 정보를 기록한 참가자들이 동일한 내용을 타이핑한 사람들보다 정보를 더 빠르게 회상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최근 전기뇌파 연구에서 나왔다(Van der Weel & Van der Meer, 2024). 노르웨이의 연구자들은 고밀도 뇌파도(EEG)를 사용하여 뇌의 전기 활동을 측정했다. 그 결과, 손글씨를 쓸 때 뇌의 연결 패턴이 타이핑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이는 필기가 뇌를 활성화한다는 기존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했다. 손글씨는 타이핑보다 더 많은 미세 운동 기술을 필요로 하며, 이 과정에서 뇌는 시각, 운동, 인지 영역을 통합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다시 말해, 손글씨는 뇌에 더 포괄적인 '운동'을 제공하는 셈이다.
"손으로 쓰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라, 배울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라고 신경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손글씨를 쓸 때, 우리는 각 글자의 모양을 인식하고, 그것을 모터 명령으로 변환하며, 실시간으로 조정해야 한다. 이 복잡한 과정이 인지 능력 향상에 기여한다.
감정적 안정과 스트레스 감소 효과
글쓰기는 인지 기능만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다.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라고 불리는 과정, 즉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글쓰기는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
미국 PMC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과거의 부정적 경험이나 실패에 대해 글을 쓰면 감정 처리와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Brynne , Ahmet , Jamil & Elizabeth, 2019). 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불안과 우울 증상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60대 중반의 박현숙씨는 배우자와 사별 후 극심한 우울감을 겪었지만, 치료사의 권유로 매일 10분씩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3개월이 지나자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고, 감정을 더 잘 조절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박씨의 경험은 표현적 글쓰기가 어떻게 감정 처리에 도움이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장기적 뇌 건강과 치매 예방 가능성
정기적인 글쓰기는 노년기 인지 저하 위험을 줄이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The Nun Study'로 알려진 저명한 연구에서는 젊은 시절 언어적으로 복잡한 글을 쓴 수녀들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더 낮았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Snowdon, ... & Markesbery,1996).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더 느린 경향이 있다. 이는 글쓰기가 '인지적 예비력(cognitive reserve)'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지적 예비력은 뇌가 노화나 질병으로 인한 손상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호주에서 70세 이상의 건강한 노인 10,318명을 대상으로 10년 동안 치매 위험을 평가한 연구에 의하면, 성인 문해 활동이나 적극적 정신활동, 창의적 예술활동이 치매 위험을 감소시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Wu, ... & Ryan, 2023).
신경가소성 관점에서 보면, 글쓰기는 뇌에 새로운 연결 경로를 만들어 내는 활동이다. "Your Brain on Ink(Adams & Ross, 2016)"에서 저자들은 글쓰기를 통해 뇌가 지속적으로 새로운 신경 경로를 형성하고, 이것이 장기적인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디지털 시대, 손글씨의 가치
손글씨와 타이핑 모두 뇌에 좋지만, 연구 결과는 손글씨가 특별한 이점을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DiMenichi, Ceceli, Bhanji, & Tricomi, 2019). 그렇다고 타이핑이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니다. 표현적 글쓰기의 정서적 혜택은 타이핑으로도 얻을 수 있다. 다만, 인지 기능과 기억력 강화를 위해서는 손글씨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손글씨를 일상에 통합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하루 5분이라도 손으로 일기를 쓰거나, 중요한 메모를 손으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뇌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손글씨는 마치 뇌의 전신 운동과 같아서, 다양한 뇌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시킨다.
우리가 글을 쓸 때, 단순히 정보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뇌 건강을 위한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디지털 기기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현대인들도 때로는 펜을 들고 종이에 글을 써보는 것이 좋겠다. 그것은 단순한 추억의 행위가 아니라, 미래의 뇌 건강을 위한 과학적으로 입증된 방법이다.